황혼의 살인자. 122. 두 번째 귀신의 사인.
122. 두 번째 귀신의 사인.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계단을 내려간 권동현은 문 앞에서 인상을 구겼다. 이찌반pc방, 닫힌 문을 도배한 점포의 로고와 상표가 새삼스럽다.
처음 저 이름을 정했을 때 주변에서 일본말이라고 얼마나 욕을 해댔었나.
‘씨바, 요즘 세상에 그런 게 뭐 대수라고 지랄들이야.’
정말로 그 입들을 다 꿰메 버리고 싶었다. 강남 요지에 pc방을 차려 꿈을 펼치려는 젊은 사업가에게 격려와 힘을 주진 못할망정 욕들을 했다. 온라인이란 익명성 뒤에 숨은 그것들을 찾아내 모조리 아가릴 찢고 싶다.
‘지금도.’
후 하고 한숨을 내쉰 권동현은 다시 콧노랠 흥얼거리며 비밀번호를 눌렀다. 명쾌한 도어락의 전자음이 울리는 가운데 품고 있는 말을 뱉어냈다.
“일본이니 뭐니 신경 쓰는 것들이 요즘 있기나 해? 지나간 과거에 집착해서 뭐 먹을 게 있다고 지랄이야? 돈이 최고잖아, 그럼 돈이 최고지.”
피식 거리며 자신의 말을 즐기던 권동현은 미간을 좁혔다.
“어? 이거 왜 이래?”
도어락이 풀려 있다. 잠긴 상태가 아니었다.
손잡이를 당겨보니 문이 스르르 열린다.
불안한 예감이 확 닥친다.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방역수칙위반으로 문을 닫아걸었다가 이제야 다시 여는데 문이 열려 있다.
‘도둑?’
불안한 눈동자로 문을 열고 들어간 권동현은 움찔하며 멈췄다.
‘무슨 냄새야?’
코를 확 찌르는 냄새,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게 역한 냄새가 가득하다.
이유가 뭔지 다시 걸음을 내고 들어가 살폈다.
카운터를 지나 pc좌석들을 돌아갔다.
그렇게 다시 멈췄다.
얼어붙었다.
냄새의 원인을 봤다.
“으아악!”
공포의 비명을 지른 권동현은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았다.
* * *
“오늘부터 영업이 풀려 저녁장사를 하려고 나왔다가 발견했답니다.”
부하형사의 보고를 받으며 박인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찌반이라는 쪽발이 상호부터가 맘에 안 드는 공간, 도대체 대가리에 뭐가 들었길래, 어떤 가치관이길래 이런 이름을 쓰는 건지 물어보고 싶다.
그런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사체 옆엔 귀신의 했다, 라는 사인이 있었습니다.”
듣기만 하며 박인수는 바디백에 들어가는 사체를 응시했다.
여자다.
그것도 경찰이다. 신분증이 전시하듯 놓여 있었다.
상계지구대 민수경 경사다.
잔혹하게 훼손된 채 죽었다.
저 모습과 신분증은 두 경우를 연상케 한다.
‘고초희의 살해방식, 장위동에 전시된 오씨형제와 문형철의 죽음.’
난도질되고 토막 난 시신의 상태는 밤의 여신, 고초희의 살해방식이다.
그렇다는 걸 안다.
사체 옆에 신분증을 놓아둔 건 오동철 오동진과 문형철의 사례와 같다.
어째서 이런 겹침이 발생하는지 의문 따윈 없다.
‘문형철은 고초희가 죽였고 오씨형제의 사체는 고종환이 가지고 있었으니까.’
양평동 폐공장에 조폭간부들의 사체를 전시한 것과 같이 해 놨다.
귀신이 했다, 라고 표시를 놓아뒀다.
귀신은 저런 어설픈 짓을 안 한다.
그래도 해 놨다. 언론에서 떠들어 주고 사회의 불안만 가중시키며 되는 거다.
“하루 전 시간부터 건물 앞과 주변이면도로의 모든 영상을 체크하고 있습니다만, 수상한 차량이나 인물의 포착이 안 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쪽으로 대로에서 들어온 차량들을 전부 파악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거운 부하형사의 목소리에 박인수는 대답했다.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아직 이름이 남은 합수부가 됐든 국정원이 됐든 올 거다. 그들이 할 일이야. 뭐 그래도 시키는 건 우리가 해야겠지만.”
고저 없는 목소리를 흘려낸 박인수는 돌아섰다.
허망한 시선의 부하형사를 두고, 감식반의 분주한 모습을 두고 pc방을 나갔다.
복도 창가에 서서 선릉역 이면도로의 유흥가를 바라보며 섰다.
황당한 웃음이 나온다.
‘귀신은 귀신이라서 그렇다지만 이것들은 정말로 대담하네.’
사체를 유기한 이 장소, 해당건물의 cctv는 물론 주변 카메라들도 손을 댔다. 사체를 버리러 온 시간이 분명한 오늘 새벽 5시 30분경, 아직 어둠이 남아 있지만 대로엔 차들이 달리는 그 시간에 와서 버리고 갔다.
‘카메라들이 죽은 시간…… 여기 형편을 잘 아는 것들이야.’
건물 주변에 카메라가 얼마나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왔다. 대로에서 이면도로로 들어오고 나간 차들을 추적하면 결국 찾아내기야 할 테지만, 그 수고를 하고도 얻을 건 없을 거다. 사용한 차량도 손을 봤을 테니까.
‘온누리정신연구소 사건으로 해일이 덮친 판인데……’
그 해일이 물이 아니라 불인 거다. 그 위에다 기름을 뿌렸다.
고초희의 소행이다.
그 악마 같은 년은 지금 웃고 있을 것이다. 정말 소름끼친다.
‘그런데 피해자는?’
상계지구대 여경이다. 갑툭튀고 생뚱맞다. 피살자를 손댄 배경을 모르겠다.
‘가만, 최팀장 와이프 친구가 상계지구대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들은 기억이 있다. 상계직업소개소 사건을 이야기 하던 중에 들었다.
‘설마?’
설마는 설마인데 피살자는 경찰이고 상계지구대 소속이다. 그게 팩트다.
긴장한 숨으로 폰을 꺼낸 박인수는 최재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허……”
뭐라고 형용하기 힘든 감정으로, 떨리는 숨을 내며 최재우는 폰을 내렸다. 퇴근시간을 두 시간 남겨둔 지금 듣게 된 충격적인 사건의 내용, 아내 친구 민수경이 죽었다는 것을, 잔혹하게 살해된 현실을 못 믿겠다.
‘수경씨가……!’
현실이다. 그녀가 죽었다.
잔혹하게 훼손된 시신으로 강남에서 발견됐다.
박인수의 말로는 고초희의 범행으로 추정된다고, 아니 확신된다 한다.
그런데 고초희가 범인이 맞다면 민수경을 왜 죽인 건지 모르겠다.
‘마귀 같은 년이……!’
분노 속에 현실을 받아들인 최재우는 냉정을 붙잡으며 전후를 헤아렸다.
귀신 장철이 온누리연구소를 공격해 한용수회장이 살해된 마당, 그 위에 이 사건을 얹은 거다. 그런데 이유가 그것 뿐은 아닌 게 분명하다.
‘유희.’
민수경을 난도질 하며 웃고 있었을 고초희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년은 죽일 대상이 필요했던 거다.
제 즐거움을 위해 희생할 제물로 민수경을 택한 거다.
이유라면 오동진 사건 때 관계된 인물이란 것, 그 하나다.
‘관계된 흐름 속에서의 랜덤, 틀림없어. 그년한데는 그런 게 이유야.’
시큰거리게 어금니를 물었던 최재우는 다시 폰을 들었다. 아내 유인주의 단축번호를 눌렀다. 아내의 명랑한 목소리는 신호 두 번 만에 들린다.
-자기야, 퇴근 시간도 전에 내가 보고 싶어? 그래서 전화했지?
최재우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입을 열었다.
“수경씨말이야……”
* * *
-현재 국정원의 주도로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귀신은 정말 대담하게도 강남중심부인 선릉역 뒤편의 유흥가에 사체를 유기했습니다. 온누리정신연구소에서 한용수회장을 살해하고 도주한 직후로 추정……
황당한 얼굴로 조웅은 tv를 향해 분노를 드러냈다.
“저것들은 생각할 줄 아는 머리도 없는 거야? 뭐? 여경을 먼저 살해하고 온누리정신연구소를 공격한 후에 강남으로 이동해서 사체를 버렸다고? 시간상 그게 맞다고? 불러주는 대로 씨부리면 다냐? 저게 언론이야?”
격노를 드러내는 조웅을 싱크대의 이영숙이 힐긋 돌아봤지만 아무 말 없다. 소파에 같이 앉은 당사자인 장철이 아무 말 않고 있는 상황인 거다.
“고초희, 그 죽일 년 짓이잖아? 그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지? 미쳐버린 건가? 귀신에게 당해 죽을 거라고 생각해서 발악하는 거야?”
그건 아닐 거라는 표정을 조웅은 바로 지었다.
그년이 숨어서 한 짓들을 생각하면 절대로 그런 년이 아니다.
어쩌면 이 상황을 즐기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귀신이 죽을지 제가 죽을지 모를 게임을 즐기는 거다.
‘나라에서 귀신을 잡겠다고 나선 마당이니까……!’
그게 현실이다. 고초희는 불리할 게 없다. 당연히 불안도 없다.
국정원이 전면에 나섰다. 그들에게는 채널러라는 존재들이 있다.
장철이 간밤에 그들을 봤다. 그러한 내용까지 고초희가 알고 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어쩔 거냐? 지금 고초희를 잡겠다고 나섰다간……”
“장례식장.”
물음을 냈던 조웅은 장철이 반응하며 낸 말에 움찔하며 경직했다.
장례식장, 그곳에 고초희가 있다. 그러니 저 말은 그곳으로 가 죽이겠다는 소리다.
그렇게 들린다. 그런데 정말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거다.
“고초희가 보이게 서 있는 건 널 오게 하려는 거잖아? 안 보이는 곳에 국정원이 있잖아? 그놈들은 여태 상대해온 놈들이랑 다르다니까? 채널러들도 있다면서? 질이 다른 게 느껴진다면서? 어쩌려고 그러는데?”
걱정을 쏟아내는 조웅에게 장철은 담담히 대답했다.
“할 건 해야지.”
일어서 방으로 들어가는 장철을 보며 조웅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 * *
쓴물이 넘어오는 것 같은 느낌에 박인수는 강하게 침을 삼켰다.
영상을 보면서 이 악문 숨을 계속 흘려냈다.
민수경을 저놈이 데려간 게 분명하다.
교묘하게 카메라를 등지고 있어 얼굴을 가린 새끼, 미남형이다.
‘일차는 스테이크집에서, 이차는 펍에서 호프를 마시면서……’
전부 계획된 동선이다. 민수경을 홀린 저 새끼는 제가 가야할 장소에 위험요소가 뭔지 다 파악하고 있었다. 업소의 카메라들을 교묘히 피했다. 들고 날 때는 마스크를 썼고, 밤이라서 얼굴이 명확히 안 드러났다.
‘민수경 경사, 저렇게……!’
허무하고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잘생긴 남친 생긴다고 좋아했을 거다. 저 밤에 역사를 만들려고 했을 거다. 그 설렘이 죽음으로 돌아왔다.
‘응?’
몸부림치는 폰을 잡은 박인수는 황철현 임을 확인하고 귀에 댔다.
“바쁠 텐데 전화를 하셨습니다?”
조롱기가 섞인 박인수의 목소리에 황철현은 대수롭잖게 반응한다.
-지금은 안 바쁩니다. 향냄새만 맡고 있습니다.
“향냄새요?”
-뭐하십니까? 선릉역 pc방 사건 자료 보고 계십니까?
“아뇨, 그런 건 국정원에서 다 가져갔습니다.”
-그럴리가요, 카피본이 있겠죠.
박인수가 켕기는 숨을 삼키는 데 황철현은 다시 목소릴 냈다.
-고초희가 한 걸로 보십니까? 왜 그랬다고 생각하십니까?
물어놓고 바로 결론으로 들어가는 황철현, 박인수는 미간을 꿈틀대며 입을 열었다.
“유희라고 누가 그러더군요.”
-유희? 누가요? 최재우 팀장 생각입니까?
대번에 맥을 짚는 황철현, 역시 국정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박인수는 대답했다.
“희생자가 최재우팀장하고 무관한 사이가 아닙니다. 최팀장 와이프 친구가 됩니다.”
-예? 그렇습니까?
“남자 만난다고 자랑했답니다. 역사를 만들 거라고 했다는 군요. 그런데 결과가 이겁니다. 고초희가 부린 놈이 의도적으로 접근한 결과입니다.”
박인수는 한숨을 내쉰 후 뒷말을 이어냈다.
“다 떠나서 귀신이 한 게 아니질 않습니까? 국정원은 어떻게 대응하려는 겁니까? 언론에서 진실이 아닌 걸 저렇게 떠들도록 놔둘 겁니까? 귀신을 잡고 고초희 같은 미친년을 잡자면, 범죄를 일소하자면 진실을 우선……”
-그러기 위해 때론 거짓이 필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아니, 이건 그런 거하곤……
-제가 그 부분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닙니다.
박인수는 멈칫하며 입을 닫았다. 지금 들은 말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답답한 마음에 황철현에게 말하고 있지만, 황철현도 유닛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반발이 든다. 어쨌든 국정원이 아니냔 말이다.
“나한테 전화는 왜 하는 겁니까? 뭐 속이는 거 있나 확인하는 겁니까? 그런 거 없습니다. 이젠 합수부가 아니라 국정원에서 다 가져갑니다.”
알지 않냐는 박인수의 반발, 황철현은 한숨 쉬며 말한다.
-현장만 구르는 놈은 자세한 것까진 모릅니다. 전화하는 이유를 말하라면…… 답답해섭니다.
답답해서,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박인수는 알 것 같은 느낌이다.
자신이 느끼는 것과 비슷한 거다. 거대한 벽 앞에 선 무력감, 조직이란 이름 속에서 돌아가는 톱니바퀴 하나에 불과하다는 자괴감, 그런 거다.
-다음에 다시 통화하죠.
황철현의 목소리가 사라진 폰을 박인수는 한참동안 들여다봤다.
* * *
커피가 독물처럼 느껴지지만 민승환은 또 마셨다. 피곤에 절은 몸을 지탱하려면 어쩔 수 없다. 조문객은 이제 뜸해졌지만 장례식장을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 고초희가 생생한데 자신이 졸기라도 하면 큰일 난다.
‘그래도 오줌은 싸야지.’
빈소를 나온 민승환은 화장실을 찾아 걸어갔다. 반들반들한 바닥이 걸을 때마다 소리를 낸다. 그 소리마저 자장가처럼 들려 고개를 흔들었다.
“후아.”
일부러 한층 내려온 민승환은 화환들이 늘어서 있는 빈소들을 지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소변기에 서서 지퍼를 내리고 시원하게 오줌을 뿜었다.
“으.”
어깨를 떨며 배설의 쾌감을 만끽하던 민승환은 화장실로 들어오는 남자를 힐긋 돌아봤다. 마스크를 쓰고 뿔테 안경을 쓴 평범한 남자다. 지나쳐 들어가 소변기에 붙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은 오줌을 뿜어냈다.
“시원하냐?”
귀를 파고든 목소리, 민승환은 휘뜩 옆을 돌아봤다.
그 순간 남자의 손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