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124. 네 차례다.
124. 네 차례다.
“다른 팀원들은 매복해 있는 겁니까?”
좌명균의 물음에 황철현은 고개 끄덕임으로 대답했다. 곁에 있는 김충식을 제외한 다른 두 명의 팀원들, 상황발생에 대비한 종말대응중이다.
그런데 귀신으로 인한 일이 일어나도, 포착해도 명령이 없으면 허사다.
“국장님의 지시사항은 뭡니까?”
구제적인 이란 말이 생략된 것을 알기에 좌명균은 선선히 대답했다.
“일단 고초희를 지켜보는 겁니다.”
그것 외에 다른 특별한 지시는 없었다는 소리, 황철현은 미간을 깊게 좁혔다. 그러며 좌명균 팀원들을 봤다. 눈동자에 힘이 들어간, 아니 보이지 않는 기세를 뿜어내는 것 같은 모습들이다. 귀신을 탐지하는 거다.
‘인간 레이더들이냐?’
아직도 황당한 마음이 들어 황철현은 새삼 한숨을 흘려냈다. 귀신이란 존재를 겪고 있고 온누리정신연구소에 발을 디뎠었는데도, 채널링이 뭐고 채널러가 뭔지 아는데도 이렇다. 알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여긴 특별한 유의점이 없는 겁니까?”
좌명균의 물음이 건너오자 황철현은 민승환을 떠올렸다.
“고초희의 오른팔이 안보입니다. 고초희측 말로는 설사로 화장실에 갔다는데, 확인해보려던 참입니다. 그 외에 주시할 점은 현재까지 없습니다.”
좌명균은 팀원들을 바로 돌아봤다. 여섯 명의 팀원들인 즉각 움직였다. 장례식장 건물 위아래층, 화장실들을 찾아 흩어지는 모습은 기민하다.
“계속 주시하고 있었을 텐데 놓쳤군요.”
이어 나온 좌명균의 말은 힐난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거다.
맞는 말이다. 황철현 자신과 김충식은 고초희측을 계속 주시했다.
그런데 잠깐 틈이 생긴 거다. 그사이로 민승환은 빠졌다. 그렇지만 화장실이다.
‘그걸 확인해야 하는 거지만.’
화장실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는 거다. 그래서 확인이 필요한 거다. 화장실에 갔다니까 cctv확인까진 필요 없는 일이다.
“우리도 확인해 보겠습니다.”
황철현이 다시 움직이려 하자 좌명균은 고갤 저었다.
“팀원들이 여섯입니다. 장례식장 내 화장실뿐만 아니라 다른 곳까지 확인하는 데 그들이면 충분합니다. 우리 팀원들이 특별한걸 아실 겁니다.”
황철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불필요한 행동을 중복할 필요는 없겠죠.”
좌명균은 김충식의 눈을 응시한 후 고초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종환회장의 빈소, 그 앞엔 건장한 경호원들이 서서 주변을 지켜보고 있다.
“초특급 경호를 받고 있군요.”
좌명균의 목소리는 담담하지만 어쩐지 비웃음이 담긴 것 같다고 황철현은 느꼈다.
고초희에 대해서 가진 감정인 거다.
경찰은 기본이고 국정원이 곁에서 경호해주는 상황인 거다.
누구도 이런 경호를 받긴 힘들다.
“지난밤에 고초희가 연구소 앞에 찾아왔던 상황에 대해 파악해야 합니다.”
황철현이 목소리를 내자 좌명균은 시선을 돌렸다. 그 눈길 속에 황철현은 뒷말을 이어냈다.
“분명 한용수회장과 고초희 간에 접촉이 있었던 겁니다. 대면할 시간은 없었을 거라고 보지만, 고초희가 우리 눈에 안 보였던 시간을 생각하면 가능성은 있습니다. 물론 그보다는 전화통화가 쉽고 빠를 테지만……”
그건 아닐 것 같다는 말은 황철현은 속으로 삼켰다.
한용수와 고초희는 만났을 것 같다.
한대건에 이어 고종환까지 귀신에게 살해된 마당, 둘은 서로의 눈을 보기 위해, 전화로는 못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났다.
“그런 배경인데 한용수회장이 귀신에게 당했다는 거군요. 그걸 인지한 고초희가 달려온 거고요. 당한다는 생각보다는 귀신의 방문 때문이었겠죠.”
황철현이 다시 입을 열려는 데 김충식이 폰을 내리며 끼어들었다.
“한용수회장의 폰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용수회장처럼 휘어지고 꺾어져 박살이 난폰, 이제야 결과가 나왔다.
“일이 생기기 전에 통화를 나눈 번호가 있습니다. 발신자가 누군지 모를 번호는 그거 하나라고 합니다.”
역시 그렇겠지란 얼굴로 황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다른 거다.
“온누리정신연구소의 그들 말입니다.”
좌명균이 미간 좁힘으로 시선을 돌렸고 황철현은 뒷말을 냈다.
“그걸 뭐라고 할지, 거구의 도깨비 같은 걸로 변했던 자들 말입니다.”
좌명균의 눈동자가 서늘한 빛을 내는 걸 보며 황철현은 의문을 물었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연구소 내 cctv에 고스란히 찍힌 귀신의 격투광경.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기는 겁니까?”
눈동자를 순간 응축했던 좌명균은 다시 고초희측의 빈소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깊은 곳이라고 우리는 부릅니다.”
깊은 곳이라는 말처럼 좌명균의 목소리는 깊게 가라앉은 채 흘러나왔다.
“채널링이라는 거, 우린 각자 발을 디딘 경로가 다릅니다. 무속, 종교, 개인, 제 경우를 말하자면 무예의 궁극을 탐구하던 중에 잡게 됐습니다.”
황철현은 좌명균을 새삼 다시 봤다. 그런 느낌은 갖지 못했는데 무예자라는 거다. 말대로 극한을 궁구하다 채널링의 길에 들었다는 소리다.
“채널링, 깊은 곳에 이르는 길이 있습니다. 계단을 내려가게 되죠.”
좌명균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깊고 깊은 아래에 미지의 존재가 있습니다. 그 존재와 접촉하는 것이 채널링입니다. 그런 결과로 합일이 되는 것을 목표로 훈련한 것이 우리들입니다. 온누리연구소도 마찬가지죠. 힘을 갖겠다는 목적이니까요.”
황철현은 조국장에게 들은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이단계라고 부르는 채널링이란 거다.
그것에 실패하면 g6의 영상에서 본 것처럼 채널러들이 죽게 되는데, 그 결과를 비껴간 존재들이 그들이라는 것이다.
‘도깨비.’
귀신장철과 싸우던 존재들을 떠올리던 황철현은 좌명균이 폰을 드는 걸 봤다.
“그래?”
폰을 내린 좌명균은 황철현에게 스산한 눈빛을 던졌다.
“장례식장 내 화장실 어디에도 민승환은 없답니다.”
김충식은 바로 몸을 돌려 뛰어갔다. cctv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 * *
태연한 걸음으로 장철은 계단을 올라갔다.
비상계단 문을 열고 나갔다.
거울처럼 반들반들한 대리석 벽을 지나며 모습을 확인했다.
검정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 누가 봐도 조문객이다.
마스크 안 얼굴은 변장했다.
‘배가 조금 나온, 세경개발과 관계가 있는 업체의 어떤 인물.’
그 모습으로 장철은 장례식장 복도를 걸었다. 그런데 앞에서 그들이 온다. 채널러들, 국정원 요원들이 분명한 자들, 인지하고 있는 기운들이다.
‘온누리연구소에 왔던 자들.’
예상했던 부분이다. 국정원에서 고초희 곁에 붙었을 가능성, 지난밤에 고초희가 연구소 앞에 왔었다는 걸 확인했으니 이런 흐름은 확연했다.
국정원 채널러들, 그들이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장철 자신을 포착해서가 아니다.
그런데 저 모습은 분명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는 거다.
분명히 뭔가 위험한 징후를 감지한 거다. 그게 장철 자신일 가능성이 크다.
‘시간이 없어.’
어금니를 힘껏 물었다 푼 장철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국정원 채널러 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걸 보면서다.
그중 한명이 곁을 지나쳐갔다. 그런데 돌아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내 가던 길로 빠르게 간다.
‘저들에게 감추는 게 가능해.’
가사상태가 아닌데도 됐다. 바로 곁을 스쳐지나간 자도 속였다. 가능할 것이란 울림이 아니래도 예감하던 결과, 하지만 힘을 쓰면 알게 될 거다.
‘고초희, 너만 끝내면……!’
다시 어금니를 물었던 장철은 긴 숨으로 냉정을 가슴에 채웠다.
발끝에 힘을 주며 계속 걸었다.
고종환의 빈소는 저 앞, 그런데 그들이 또 있다.
국정원요원들, 한 남자는 정말로 명검과도 같은 기운을 흘려낸다.
세 남자를 바라보며 걸어가던 장철은 변화를 눈에 담았다.
명검 같은 기운의 남자가 폰을 귀에 댄다.
곧바로 한 남자가 어디론가 달려간다. 남아 있던 두남자도 움직인다.
그런데 명검 같은 기운의 남자가 힐긋 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조문 온 기업관계자의 모습으로 장철은 걸어갔다.
아직도 시선이 남아 있는 걸 느끼며 빈소로 들어갔다.
경호원들이 막아선다.
조웅이 구해온 신분증과 명함을 내밀어 통과했다.
* * *
-화장실에서 나와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김충식의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흥분으로 강렬했다.
백 마디 말보다 나은 영상을 보냈다.
민승환이 화장실로 들어가고 난후 어떤 남자가 뒤이어 들어갔다.
잠시 후에 민승환이 남자에게 부축 받는 모습으로 나왔다.
‘귀신!’
부축하는 남자가 귀신임을 확신하며 황철현은 영상의 남은 부분을 봤다.
B1주차장의 F17구역이다.
민승환을 부축한 남자가 BMW에 올라탔다.
“지하입니다!”
돌아보는 좌명균에게 황철현은 뒷말을 소리쳤다.
“민승환을 확인할 테니까 귀신을 계속 찾아요!”
황철현은 비상계단을 달려 내려갔고 좌명균은 서늘한 눈으로 다시 움직였다.
* * *
태흥로지스 대표 김인식이란 이름으로 방명록을 작성한 장철은 조의금봉투를 함에 넣었다. 신문지를 잘라 만든 두툼한 봉투는 묵직하게 떨어지는 소릴 냈다. 그 소리를 뒤로 두고 애도하는 얼굴로 빈소를 향해 갔다.
향냄새가 가득한 빈소엔 고초희가 없다.
정면을 향해 섰다.
고종환의 영정사진을 보며 고개 숙였다가 앞으로 나가 향을 잡아 불을 붙이고 꽂았다.
그러는 사이 고초희가 나왔다. 유족휴게실에 있다 문상객을 맞는다.
장철은 고종환의 영정을 향해 두 번 절하고 읍했다.
고초희를 보며 돌아서 맞절을 했다. 일어서 예를 차리고 애도의 말을 전하려 눈을 맞췄다.
“얼마나 비통하십니까.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고초희는 슬픔에 찬 얼굴로, 누구나 동정할 미모의 눈동자에 눈물을 비추며 겸사했다.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젠 다시 애도를 표하고 돌아설 순간, 장철은 한마디를 던졌다.
“네 차례다.”
* * *
잠겨 있지 않은 BMW의 차문을 연 황철현은 경직했다.
민승환, 그가 죽어 있다.
눈을 까뒤집고 혀를 길게 내민 채 절명했다.
뭐라고 형용하기 힘들게 무서운 모습이다. 그런데 귀신의 손을 대 죽인 게 아닌 것 같다.
‘뭐지 이건?’
창백하게 변한 피부에 흔적들이 남아 있다.
목을 조이고 얼굴을 할퀸 것 같은, 드러난 피부가 다 그렇다.
마치 다수의 손이 그런 것 같다.
그러니 이건 귀신의 솜씨와 다르다. 그가 목을 조르거나 할퀴진 않는다.
‘때려잡아 죽이지.’
이게 뭔지 모르겠다.
민승환의 뒤집힌 저 눈과 얼굴은 극한의 공포를 보여준다.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 앞에 영혼이 무너진 자의 모습 같다.
‘귀신은?’
그는 역시 민승환을 버리고 이동했다.
목표는 당연히 고초희다. 그런데 고초희 곁은 아직 이상이 없는 거다.
그랬다면 벌써 신호가 울렸다. 게다가 g6요원들이 움직이고 있다.
곧 귀신을 장례식장 안에서 찾아낼 거다.
‘그라지 못하면……!’
불안한 예감을 세찬 움직임으로 밀어낸 황철현은 다시 위를 향해 달려갔다.
* * *
중년남자다. 태흥로지스라는 곳에서 왔다.
대표라고 명함이 돼 있었다.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하찮은 곳이지만 외부로 보여야 하기에 나왔다.
오늘 보고 다시 볼일 없는 놈이다.
그런데 저놈의 눈이 한순간 변한다.
“네 차례다.”
귀를 파고든 목소리, 울림이 뇌에 전달되는 순간 고초희는 깨달았다.
지금 마주 선 저 남자는, 배나온 중년남자는 태흥로지스의 대표 같은 게 아니다.
귀신이다.
그가 왔다.
그런데 어째서 아무런 느낌도 없던 걸까?
눈을 치뜬 고초희는 귀신에게서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기세를 전신으로 받았다.
정말로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화산의 폭발 같은 기운이다.
그것에 밀려, 아니 본능적인 반응으로 물러났다.
그 순간 귀신이 왔다.
쾅, 복부를 강타한 엄청난 충격에 밀려 고초희는 벽을 뚫고 들어갔다.
상주휴게실, 산산조각 난 잔해 위를 굴러 일어섰다.
귀신이 또 온다.
“아아아악!”
고초희는 사력을 다해 소리 질렀다. 그 괴성이 맞춰 귀신이 날아갔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해머가 후려친 것처럼, 반대편 벽을 뚫고 들어갔다.
경호원들이 움직인 건 그때다. 벽 뒤로 사라진 귀신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그런데 귀신이 튀어나왔다. 흐릿한 그림자로 경호원들을 휘감는다.
비틀려 튕겨나가는 경호원들의 최후를 보며 고초희는 다시 소리 질렀다.
“캬야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