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127. 귀신이 살아났다.
127. 귀신이 살아났다.
-나라를 들썩거리게 했던 귀신의 살인행각은 이제 종을 쳤습니다.
R호텔을 뒷배경으로 두고 선 유튜버는 고글과 마스크로 가린 얼굴을 바로 치우고 호텔을 화면에 채운다.
-바로 저곳에서 엄청난 살육전이 벌어진 겁니다. 세경개발의 고종환회장과 조폭들 수십 명이 죽어나갔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진상을 덮었습니다. 그런다고 우리가 모릅니까? 귀신은 바로 용인의 온누리정신연구소를 공격했습니다. 그리곤 고초희마저 죽였습니다.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박인수는 폰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 엄청나도 너무 엄청난 일이지.’
유튜버의 말대로 진실로 묻히고 있다. 자신이 맡아야 했던 살인사건, 민수경건도 저 흐름 안의 것이지만 손댈 수 없다. 진실을 말할 수도 없다.
‘고초희가 한 짓이라고.’
말해도 이젠 의미 없는 일이 됐다. 그년은 귀신에게 결국 죽었다.
‘그년도 채널러였어.’
채널러, 지금도 그것의 명확한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다.
분명한건 위험한 존재라는 거다.
고초희 같은 년이 그런 존재였으니 더욱 위험했다. 그런데 귀신이 죽였다.
그년이 살았다면 무슨 짓을 더 할지 알 수 없었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유튜브 영상은 장례식장의 것으로 바뀌었다.
눈에 힘을 준 박인수는 이미 본 영상을 다시 봤다.
고초희와 귀신이 싸우는 광경이다.
악을 쓰는 고초희는 염동력자다.
황당무계한 능력, 영화에나 있는 거다. 그런데도 결국 귀신에게 죽었다.
‘아직 다 수습하지 못하고 있구나.’
정부에선 총력을 다해 영상이 퍼지는 걸 막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새는 구석이 있는 거다. 해당영상 자체가 온라인에서 재생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 같은, 원천적인 걸 마련하지 못하는 이상 계속 이럴 것이다.
‘그런 게 안 되나? 되는 걸로 알았는데?’
알고리즘 어쩌고 하는 내용, 이해는 잘 못하지만 가능한 걸로 안다. 어쩌면 곧 그렇게 될 건지도 모른다. 그사이의 구멍은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고초희와 싸운 귀신은 정말 불가해한 존재라고 해야 할 겁니다. 영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초희는 보통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염동력능력자였습니다. 경찰은 영상오류니 뭐니 헛소리를 하고 있지만, 진실을 말하면 유언비어 유포죄로 처벌하겠다고 지랄이지만 이건……
진실과 음모론이 뒤섞여 확산중이다. 이 상황을 치안당국은, 정부는 어떻게 제어하고 수습할지 모르겠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이젠 상관없지만.
“잘들 해 봐라.”
냉소를 뱉은 박인수는 폰을 엎어 책상위에 놓았다. 찌푸린 미간으로 창밖의 강남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귀신이란 존재가 가졌던 의미를.
‘대신 싸운 건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든다.
진짜 더럽고 악한 범죄자들을 귀신이 쓸어버린 건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완벽하게 끝내진 못했다.
귀신도 결국 쓰러졌다.
“하.”
감정 모를 한숨을 내쉰 박인수는 식은 커피잔을 들었다.
* * *
“괜찮아. 거정하지 마.”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유인주는 남편 최재우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깊은 숨을 들이 내쉬었다. 그런데 아무리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해도 버겁다. 친구 민수경이 살해된 현실, 그리고 귀신의 죽음.
‘귀신은 나하고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
민수경의 죽음은 충격으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것이 맞다. 그런데 귀신의 죽음이 왜 그만한 감정의 충격을 주는지 모르겠다. 그날 그 광경을 봐서일까? 귀신의 손녀, 천사같이 웃던 그 아이가 희생되던 날을?
“이제 편히 쉬세요.”
유인주는 진심을 담아 애도를 표했다.
민수경에게는 물론이고 귀신 장철에게다.
그가 복수를 위해 미친 듯이 달린 행로를 알고 있다.
그 여정은 이제 끝이 났다.
마침내 고초희까지 죽였다.
그런데 정말 끝인 걸까?
‘국정원.’
그들이 달려든 끝에 끝이 났다.
모양새가 그렇다. 그런데 그들은 비밀을 갖고 있다.
남편 말에 의하면 온누리정신연구소는 채널링을 연구하던 곳이다.
그게 뭔지 이젠 안다.
국가에서도 그런 걸 연구했을 것이다.
‘접점.’
그것이 이뤄진 꼭지점에 귀신이 있던 거다.
온누리병원 장례식장 사건은 그렇게 일어났다.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그들이 원하던 것이었다.
그들 중 남은 건 이제 국정원이다. 그들이 수거해 갔다.
‘모든 비밀을, 귀신의 시체까지.’
그렇지만 진실의 파편들이 튕겨 나와 파문을 일으키는 중이다.
장례식장영상은 일파만파다.
지금은 거의 다 사라졌지만 온라인의 생명력은 무섭다.
정부당국에서 아무리 단속한다고 해도 수면 아래서 숨 쉬고 있다.
‘볼 사람은 이미 다 본 거고.’
채널링, 채널러, 그러한 것들에 대해 정부는 뭐라고 할까.
‘모르겠다. 정말로 나하곤 상관도 없고.’
고개 흔들어 상념들을 털어낸 유인주는 두 손을 모아잡고 다시 애도를 올렸다. 비통하게 살해된 친구 민수경, 그리고 귀신 장철과 그 가족까지.
* * *
출동한 소방서 관계자와 경찰들은 폰을 귀에 대고 있다. 마뜩찮은 표정들, 하지만 골치 아픈 일에 얽히고 싶지 않다는, 그래서 더 알고 싶지 않다는 눈들이다. 거의 수습이 되는 상황이라 저희 갈 데로 돌아간다.
‘1팀 팀원 중 한명이란 말이지?’
g6을 파괴한 자의 정체다.
좌명균팀장이 일그러진 얼굴로 말한 이름은 고인범이다.
그가 내부에서 암약하던 간첩이었던 거다.
아무도 모르던 정체를 오늘 드러냈다.
정말 제대로 했다. g6의 기능을 거의 파괴했다.
“하아……”
절로 나오는 한숨을 막지 못하고 황철현은 걸음을 옮겼다.
천진암민속연구소라는 외형의 건물, 검은 연기가 사라진 그 안으로 들어갔다.
가동이 멈춘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내려갔다.
폭발흔적은 아주 심각하다.
‘여긴 가망이 없겠어.’
그렇게 작정하고 한 공격일 테니 성공한 거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피해는 연구자료의 소실이다. 고인범은 기왕의 연구테이터에 온누리의 심안자료까지 훔쳐갔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공격을 한 것으로 짐작이 된다.
‘어디가 배후인거냐?’
새삼 곤두서는 분노를 이에 물고 걸음을 옮긴 황철현은 조중건 국장이 누워 있는 의무실로 들어갔다. 침대 옆에 좌명균 팀장이 서 있다. 안면이 경직된 그는 돌아보지도 않는다. 폰을 잡고 팀원들 연락만 기다린다.
“종적을 못 잡는 겁니까?”
황철현은 물었다. 침대에 누운 조중건의 상태가 어떤지 보다 그걸 먼저 물었다. 오른팔 하박이 잘려 나간 조국장의 상태는 심각하다. 하지만 고인범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고, 그를 잡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팀원들이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g6 채널러 1팀원들, 그들 외에 2팀도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안다.
현장 지휘는 2팀장이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고인범을 잡을지 모르겠다.
작정하고 때려버린 후 도주한 놈, 분명 대단한 배후를 가진 놈인 거다.
“뒤가 어디 같습니까?”
거듭 던진 황철현의 물음에 좌명균은 미간을 더욱 찌푸렸고 조중건이 입을 열었다. 오른팔이 잘린 고통을 참느라 찡그린 얼굴은 볼만하다.
“일본으로 추정된다.”
“일본이요?”
“그래, 고인범의 출생지가 일본이다. 교포 3세지.”
“아니 그런 놈을……”
“신원확인과 검증은 철저하게 했다.”
그렇다는 거다. 왜 안 그랬을까, 국정원이 그런 부분을 소홀히 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속았다. 자세한 내막이야 아직 모르지만 어쨌든 당했다.
“고국을 동경한다고, 뿌리를 공부하겠다고 온 놈이었다. 민속학을 공부하다 무속에 천착하게 된 놈이지. 자연스럽게 채널링에 대해 연구하게 됐고, 그런 흐름으로 우리조직에 들어오게 된 거다. 엄밀히 끌어들였지.”
그런 건데 지금의 결과로 보면 유인당한 거다.
“황팀장 너는 괜찮은 거냐?”
조중건의 물음이 건너오자 황철현은 뒤늦게 조중건의 상태를 다시 인지했다. 어떠냐고 물어보지 못한 자신을 힐난하는 것 같아 헛기침을 했다.
“보시다시피 괜찮습니다. 깨지고 째진 것 빼면 멀쩡합니다.”
행운이다. 조중건처럼 파편에 맞아 팔이 날아가거나 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그 행운이 좌명균에게도 작동한 건지 황철현보다도 더 멀쩡하다.
‘채널러라서.’
직접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래서라고 황철현은 짐작한다. 폭발이 일어나던 그 순간, 찰나에 좌명균은 반응한 거다. 본능적이고 반사적인 대응으로 위험을 피한 거다. 날아가는 좌석들을 방패로 파편들을 막았다.
“일본으로 건너가려고 할 겁니다.”
고인범에 대해 다시 입을 연 이는 좌명균, 심각한 얼굴로 뒷말을 이어낸다.
“탈취한 자료야 이미 전송했을 겁니다만, 여기서 할 일을 마쳤으니 돌아갈 겁니다. 숨어 있다간 언젠가 잡힌 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밀항을 시도하겠군요?”
황철현은 돌아본 좌명균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 가능한 모든 방법에 대응해야 합니다.”
조중건이 입을 열었다.
“보고 올릴 테니 조치해라.”
좌명균은 바로 폰을 들었고, 조중건은 황철현을 응시하고 다른 걸 물었다.
“귀신은?”
지시를 내리던 좌명균도 시선을 돌린다. 두 사람의 눈길 속에 황철현은 곤혹을 삼켰다. 아니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숨, 그를 생각해서다.
‘귀신.’
그가 살아났다.
폭발공격에 휩쓸린 그 순간에 그가 일어났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지만, 살아났다.
“아니다. 가서 봐야겠다.”
침대에서 일어서는 조중건, 고통스러운 얼굴이지만 결연한 그의 걸음을 아무도 막지 못했다. 황철현도 좌명균도 뒤따랐다. 귀신이 있는 곳으로.
* * *
숨 쉬어. 흘러.
울림을 따라 장철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의식은 이제 명료하다.
자신을 둘러싸고 분주히 움직이는, 의사 같은 이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체내에 박혀 있던 총탄들이 다 밀려나왔어.”
“허, 이게 가능해? 갈랐던 가슴의 절개부위도 아물었잖아?”
“누가 아니래? 진흙을 메운 것처럼 흔적도 안 남았어.”
“그런데 왜 다시 저런 상태로 쓰러진 걸까?”
“그걸 누가 알겠어? 죽은 줄 알았던 자가 일어난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건데.”
“어? 맥박과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호들갑스러운 주변을 인지하며 장철은 기억을 더듬었다.
장례식장에서의 최후다.
고초희의 머릴 뽑고 그들의 총격을 맞았다.
그게 끝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깨어났다.
죽음을 받아들였는데 죽음이 튕겨내 버렸다.
‘폭발.’
깨어나 일어섰던 순간 분명 폭발이 있었다.
이곳, 국정원 기밀 시설로 짐작되는 곳이 공격을 받은 거다.
그 일이 일단락되고 이제 다시 깨어났다.
일어섰다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다시 쓰러지던 그때 그들을 봤다.
‘국정원 관계자들.’
장철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시신을 수거해온 자들이다.
그들이 다가오고 있다.
셋, 그중 한명은 장례식장에서 총질한 자, 채널러들 리더다.
“물 좀 주시오.”
명료한 목소리를 던지며 장철은 상체를 일으켰다.
몸에 연결된 선들을 떼어내면서다.
화들짝 놀란 의료진 뒤에서 그들 셋이 들어온다.
오른팔이 잘려나가 붕대를 감고 있는 자, 가장 상관이 분명한 자가 말한다.
“물 가져다 줘.”
의료진 중 한명이 화급히 움직여 생수를 가져왔다. 받아든 장철은 단숨에 다 마셨다. 그 모습을 세 사람, 조중건과 좌명균과 황철현이 지켜봤다.
* * *
은회색 스타렉스에 짐을 때려 넣은 조웅은 이영숙이 가지고 나오는 마지막 물건, 여행가방을 받아 차에 실었다. 차안의 짐을 새삼 응시했다.
‘캐리어 몇 개.’
가져갈 짐이란 건 애초에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빈손이었던 인생, 죽을 때도 그렇게 가는 거다. 그런데 사는 동안 왜 그렇게 못 가져 안달일까.
‘귀신, 너도 빈손으로 갔구나. 아니, 그렇진 않은 건가?’
장철은 가지고 갔다, 지옥으로 끌고 가야할 자들을 가지고 간 거다. 그러니 빈손은 아니었다. 그런데 조웅 자신은 나중에 무엇을 가져갈까.
‘나는……’
조수석에 올라타는 이영숙을 돌아본 조웅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는 동안의 추억……”
하늘을 올려다보고 집을 돌아봤던 조웅은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엷은 미소를 짓는 이영숙과 눈을 맞춘 후, 가야할 곳으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