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129. 진실의 파도.
129. 진실의 파도.
“하……”
자신도 모르게 숨소리를 낸 이왕길은 모니터에 뜬 기사작성자를 다시 봤다.
한세일보 최준후, 최기자다.
이 기사가 뜬 배경이 뭔지 알겠다.
[귀신사건의 진실한 내막]
어그로를 끌 생각은 없는 건지 이렇게 해도 충분하다고 여긴 건지, 아니면 한세일보라는 이름이면 이래야 한다는 건지, 기사제목은 차분하다.
‘귀신이란 이름이면 충분하겠지.’
그렇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귀신, 그 이름이면 충분하다.
사람들은 진실의 내막이 뭔지 궁금해서보다 귀신이란 이름 하나로 기사를 볼 거다.
그런데 기사 속에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짐작 못한 진실들이 있다.
‘추정과 정황이라는 단서를 달고……’
최준후기자는 그렇게 기사를 작성했다. 명확한 증거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는, 법적으로 유효한 내용들이 아니라는 전제를 달고 기사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앞뒤가 딱딱 들어맞는 내용, 읽고 나면 그렇구나 하게 된다.
‘채널링이라는 게 황당하긴 하지만.’
그렇긴 한데 그것 때문에 지금 뜨거운 상황이다. 온누리장례식장에서 귀신과 고초희가 싸우던 광경은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인 거다. 유리겔러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인식된 염력의 차원을 넘은 사건이다.
‘그것이 채널링……’
고초희가 채널러이며 염동력을 발휘했다는 증거 영상을 사람들은 봤다.
‘귀신도 채널러.’
기사엔 그 내용도 있다, 귀신 장철의 인생내력이다. 그가 원산도에서 태어나 서산의 형제보육원에 가기까지의 기구한 인생, 그곳에서 미국인들에 의한 불법적이고 은밀한 실험대상이 됐던 기구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귀신을 동조하는 뉘앙스……’
기사의 분위기가 그렇다.
누구라도 장철의 인생사를 알고 나면 동정하지 않을 수 없을 터다.
비참한 가족사, 이 나라가 빚어낸 원죄다.
‘귀신이 죽인 자들은, 죽여 온 것들은 전부 죽어도 싼 것들.’
과거의 미제사건들, 귀신의 손에 처단된 자들은 흉악한 범죄자들이었다. 이왕길 자신이 초임형사로 발을 디뎠던 97년 서영나이트사건도 그랬다. 그곳에 죽어 있던 놈들은 하나 같이 없어지는 게 나았던 놈들이다.
‘그렇지만 이번 희생자들은……’
솔직히 별다르지 않다. 윤완규를 시작으로 한 귀신의 복수, 처단의 대상들은 동정의 여지가 없는 자들이다. 윤완규의 아버지 윤종대는 함진웅 같은 살인마를 끌어들였다가 함께 죽었다. 그런 놈과 일하는 놈인 거다.
온누리그룹의 한대건회장도 다르지 않다. 그만큼 오르기 위해 온갖 더러운 짓을 다한 건 불문가지. 그 대가를 아들과 같이 받았다. 그리고 세경의 고종환회장, 그 흡혈귀영감은 따로 말할 것도 없다. 고초희 역시.
‘충격적일 만큼 놀라운 건 그들의 비밀……!’
온누리그룹이 품고 있던 비밀을 기사는 밝혔다.
용인의 온누리정신연구소의 정체다.
그곳은 채널링을 연구하던 비밀의 장소인 거다.
거길 귀신이 찾아갔고 한용수를 죽였다. 그런데 공교롭게 국정원이 얽힌 거다.
‘장례식장에서 귀신을 사살한건 그들.’
기사는 국정원도 채널링을 알고 있으며 연구해 왔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 흐름 안에서 온누리정신연구소와 접촉이 있었을 것이고, 연구소 이후 장례식장을 공격한 귀신에의 대응, 예측이 그래서란 거다.
‘고초희가 귀신의 최종목표란 걸 누구나 알지만.’
피곤한 숨을 몰아 내쉰 이왕길은 의자를 뒤로 빼며 밖을 봤다.
블라인드 사이로 강력계가 보인다.
최재우도 보인다. 서류업무를 하고 있다.
저 모습은 평시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다르다. 최팀장은 진실을 아는 자다.
“그래, 잘 했다.”
의미모를 중얼거림을 흘려낸 이왕길은 의자를 돌리며 눈을 감았다.
* * *
효과는 기대이상이다. 온라인상으로 퍼지는 진실의 파도가 느껴진다.
‘수경아.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런 거 밖에 없어, 미안해.’
모니터를 응시하며 유인주는 입술을 물었다.
민수경에 대한 미안함과 서글픔으로 눈가를 떨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눈동자에 힘을 주고 파도를 봤다.
남편을 통해 한세일보에서 터트린 폭탄의 위력을.
[한세일보발 귀신사건의 내막, 과연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인가]
[채널링이란 무엇이며 그 역사는 어떠한 것인가]
[고초희의 진정한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연관 기사들이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sns와 각종 포털을 비롯한 커뮤니티들은 해당 내용으로 출렁거리는 중이다. 거의 핵폭탄이 터진 것 같다.
‘채널링에 대한 증거가 있으니까.’
고초희와 귀신이 싸운 장례식장 영상이다.
헛소리라고 하지 못하는 이유다.
정부에서 차단하고 삭제했지만 이미 볼 사람들은 다 봤고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보고 있다.
그렇게 이해한다. 그동안의 사건들에 대해서도.
‘채널러인 귀신이 만든 사건들.’
신출귀몰한 귀신을 잡지 못한 이유, 장철이 채널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의지로 그렇게 된 게 아니다.
살인자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 역시 희생자였다.
그렇다는 걸 이제 사람들은 이해 할 것이다.
‘마지막까지 비참하고 기구했던……’
손녀와 딸을 잃고 복수에 나선 남자, 그는 복수를 이뤘다.
종국은 죽음이었다.
죽음을 받아 들였다.
그가 손을 내리던 영상 속 모습, 처연하다.
‘이제 편히 눈을 감으세요.’
유인주는 진심으로 애도를 올렸다. 장영, 그 천사 같던 아이에게도 마음을 전했고 아이 엄마에게도 그랬다. 그대로 가슴은 여전히 아릿하다.
“후우.”
깊은 숨을 몰아 내쉰 유인주는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PC앞을 떠나 싱크대로 가 커피물을 올렸다. 믹스커피를 따 잔에 부으며 자신을 생각했다.
‘상관없던 일.’
남편 최재우가 맡았던 사건.
그게 커져 합수부에 이르렀지만 남편은 떨려났다.
차라리 잘됐다고 여겼다.
힘들고 고단한 사건에 얽히는 것보다 편하게 일상을 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상관이 생겼다.
민수경, 그녀가 고초희에게 살해됐다.
그 진실이 묻히게 둘 수는 없었다.
고초희가 귀신에게 죽었다지만, 귀신이 복수를 해줬다지만, 그것만으로 끝낼 수 없었다.
진실을 밝히기로 마음먹었다.
“수경아……”
친구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부른 유인주는 새 잔을 꺼내 커피믹스를 하나 더 땄다. 끓어오른 물을 두 잔에 붓고 하나를 들어 잔을 부딪쳤다.
“너 좋아하던 믹스커피다, 맛있게 먹어 이년아.”
슬픈 미소로 중얼거리는 유인주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 * *
“무슨 생각일까요?”
황철현은 정말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조중건을 응시했다.
“글쎄, 말한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말한 그대로, 귀신이 요구한 조건 그대로, 그건 조웅의 안전보장이었다.
귀신을 부리는 값이 그거다.
친구 조웅의 완벽한 안전과 보통사람으로서의 삶을 확보해 준다면 하겠다는 거다.
너희가 뭘 시키든 한단 거다.
“복수를 끝냈으니 다른 목적이 없다고는 하겠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귀신의 말이다. 그런데 액면 그대로 외에 달리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귀신에겐 남은 게 없다. 오직 친구 조웅 뿐이다. 그를 위한 조건이다.
“중요한건 귀신이야. 그가 협조하기로 한 이상 문제될 건 없어.”
그렇다, 귀신의 협조가 이뤄졌다. 그가 죽음으로부터 어떻게 살아 돌아 왔는지, 그의 능력의 원천은 무엇인지, 채널링 연구에 전기가 될 터다.
“문제는 고인범이고 여론이지.”
심각하게 굳어지는 조중건의 얼굴을 응시하며 황철현은 한사람을 떠올렸다.
‘최재우팀장.’
그가 언론에 터트린 주인공이라는 걸 확신한다.
한세일보가 기사를 낸 배경에 대해 파악 중이니 그가 정보제공자란 알게 될 거다.
그렇지만 그뿐이다.
그에게 불이익이나 위해를 가할 일이 아니고 계제도 아니다.
‘똥 밟은 셈.’
국정원 입장에선 그런 거다. 더 이상 긁어 부스럼 만들 일이 없다.
“애초에 막을 수 없었던 일인지도 몰라.”
조중건의 심각한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아니 이번엔 허탈하게다.
“장례식장 영상이 퍼지는 걸 막지 못한 이상 필연적인 결과라고 하겠지.”
그렇다, 국정원이 얽혀 있다는 것도 그 흐름 안이다.
주머니 속의 송곳은 언제고 튀어나온다고 했던가.
이건 그런 일이다. 피할 수 없던 결과다.
“고초희가 저지른 범행에 대해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에 대한, 전체의 대응을 어쩔 거냐는 황철현의 물음.
“고초희 건은 경찰이 알아서 할 거다.”
황철현은 답을 알았다. 밤의 여신으로 자신을 위장하고 저지른 그년의 살인행각을 밝힌다는 거다. 경찰이 알아서 하고 마무리까지 한단 거다.
“국정원이란 이름이 채널링과 관련해 나오는 건 계속 부인할 거다. 국정원이 귀신을 사살한건 정부의 대국민 담화로 밝힌 것과 같이 귀신이란 테러범을 잡기 위한 공식적인 행동이었을 뿐, 음모와 루머로 나갈 거야.”
가장 중요한 부분, 국정원의 개입과 채널링에 대한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황철현은 속으로 삼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해해서다. 현재로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음이다.
조중건에게 내려온 지시가 그런 거다. 그러나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
드러난 진실을 막기엔 너무 옹색한 방어다.
‘아마 다른 사건을 터트려 이목을 돌리겠지.’
그게 확실한 방법이 될 거야 라고 생각하던 황철현은 흠칫했다.
조국장의 폰이 울음을 터트려서다.
좌명균팀장이다. 고인범을 잡기 위해 나갔다.
-밀항선을 찾았습니다만 고인범은 잡지 못했습니다.
조중건국장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황철현은 지켜봤다.
‘가장 화급하고 중요한 일.’
고인범을 잡는 일이다. 아니 고인범을 간첩으로 부린 세력과 대적하는 일이다.
g6의 자료는 이미 넘어갔다.
그렇지만 고인범을 잡아 배후를 밝혀야 한다.
일본이라면 그들과 과거가 아닌 미래를 놓고 전쟁이다.
‘응?’
자신의 폰이 몸부림치는 걸 느낀 황철현은 바로 귀에 댔다.
“뭐야?”
-팀장님, 뉴스 좀 보셔야겠습니다. 고초희가 채널러가 된 배경이 나옵니다.
김충식의 목소리를 귀에 걸고 황철현은 바로 tv를 켰다.
알려준 채널로 돌리자 긴급편성이란 제목을 단 프로그램이 방송중이다.
패널로 나온 여교수가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 하고 있다.
고초희가 채널러가 된 내용을.
-중학생 때부터 정신상담을 해 왔습니다.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로서 말씀드리면, 고초희는 싸이코패스가 맞습니다. 아주 위험한 아이였죠.
조중건 국장도 tv에 눈을 박고 있다.
-고초희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만 헛수고였습니다. 그러던 중 제 후배 중에 체널링 연구를 하는 친구가 생각나 도움을 청했죠.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후배를 본 것도 고초희를 본 것도.
* * *
리모컨을 눌러 tv를 끈 장철은 고초희를 떠올렸다.
염동력을 무섭게 펼치던 년, 사악하게 빛나던 그년의 눈동자가 생생하다.
그년은 채널러 였다.
방금 본 tv속 여교수 말에 의하면 채널러로 이끈 사람도 죽인 거다.
‘그저 이야기로 남는 거야.’
고초희의 이야기, 그것이 됐다.
장철 자신이 죽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다 죽였다. 죽여야 할 자 중에 살아 있는 자는 없다.
온누리자동차의 한경수, 그만 남았다. 하지만 제외다.
복수의 대상은 직접관련자, 그리고 공격해 오는 자다.
한경수는 그 속에 있지 않았다, 물러선다고 밝혔다.
‘진심이기를.’
온누리그룹의 이름으로 낸, 모든 걸 잊고 그룹의 미래와 나라의 경제부흥에만 매진하겠다는 한경수회장의 발표, 그 눈처럼 진정이기를 바란다.
‘왜 살아났을까.’
장철은 다시 의문을 품었다.
눈을 뜨고 의식을 찾으면서부터의 의문이다.
죽음을 받아들였는데 어째서 산건지, 죽음이 자신을 튕겨낸 것인지 모르겠다.
이 느낌은 분명히 그거다.
죽음이 귀신을 거부한 게 확실하다.
‘할 일이 남아 있지도 않은데.’
그런데 왜 살아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것에 대해 울림도 없다.
묻는 다고 친절하게 답해주지 않지만, 그래도 물어보고 싶다.
‘국정원이 원하는 건……’
채널링, 장철 자신이 깊은 곳에 이른 모든 것이다.
되살아난 부분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건 말해 줄 수가 없는 부분이다.
원하는 건 다 해줄 생각이다. 그 대가로 조웅과 이영숙이 안전해질 수 있다면.
‘안 그래도 잘 살 수 있겠지만.’
음지에서 평생 숨어 사는 것과 양지에서 떳떳하게 사는 걸 비교할 순 없다.
‘웅아.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다.’
친구 조웅과 이영숙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며 장철은 눈을 감았다.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를 탄 고속으로다. 그런데 이전과 다르다.
흉악하고 처절한 전투가 펼쳐졌다.
붉은 외눈, 그 존재들이 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