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31화 (131/200)

황혼의 살인자. 131. 차이나쇼크, 재팬어택.

131. 차이나쇼크, 재팬어택.

“예. 보고 드린 대로입니다.”

긴장을 삼키며 대답한 조중건은 묵묵한 얼굴로 폰을 귀에 대고 듣기만 했다. 전화상대방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존재, 국정원의 핵심인물이다.

“고인범은 찾았습니다. 처리중입니다.”

다시 짧은 대답 후 신중한 얼굴로 듣던 조중건은 마지막 말을 냈다.

“신중하게 처리하겠습니다.”

폰을 귀에서 뗀 조중건은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며 긴장을 밀어냈다. 전화상대방으로 인한 긴장이 아니라 현실의 긴장, 현황의 흐름으로 인한 긴장이다. g6가 파괴되고 연구자료를 도둑맞고 귀신을 품은 현실.

‘오른 팔이 날아갔는데……’

괜찮냐고 한 번도 묻질 않았다.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아랫사람이다. 부리는 부하가 팔이 잘라질 정도의 부상을 입었는데 언급도 안 한다. 병실에 누워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일하고 있어서? 누군 하고 싶나?

‘무슨 생각을,’

부질없는 생각과 감정, 조중건은 고개 흔들어 털어냈다. 자신에게 지시 내리는 인물은 지엽적인 것에 신경써야할 인물이 아니다. 괜찮냐고 말 한마디 안 해도 다 알고 있다. 더 크고 중대한 일에 몰두해야 할 이다.

숨을 몰아 내쉰 조중건은 다시 현안에 집중했다.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거야.’

드디어 고인범을 찾았다.

평택에서다.

좌명균의 1팀이 잘 처리할 것이다. 그런데 놈의 밀항 목적지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었다는 게 의문이다.

그 부분에 대해 좌명균이 알아낼 테고 보고할 테지만 정말 궁금하다.

‘설마, 중국까지 얽힌 건가?’

불안한 예감을 삼키던 조중건은 노크 소리를 들었다. 이내 문을 여는 자는 황철현이다. 신중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들어온다. 왜 왔는지 안다.

“좌팀장과 1팀이 잘 할 거다.”

황철현은 고개를 묵묵히 끄덕였다. 자신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채널러들이고 고인범은 그들의 팀원이었으니 확실히 다를 것이다. 평택항에서 대번에 찾아낸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계속 불안이 엄습한다.

“종말팀이 크게 도움이 안 될 거라고는 생각합니다만……”

“왜 그렇게 불안한 얼굴이냐?”

“아니 그게, 전 그냥 확실하게 대처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래서 평택으로 갈 것을 원했지만 조국장은 잘랐다. 좌명균팀만으로 충분하다는 거다. 좁게 보면 그들 내부의 배신, 결과는 그들 몫이란 거다.

“그 얘긴 이제 됐고, 귀신은 괜찮은 것 같으냐?”

쓴 입맛을 다신 황철현은 알고 있는 상황을 말했다.

“숙소로 정해준 7호실 안에서 한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조중건은 미간에 선명한 내천자를 그리며 중얼거렸다.

“분명 뭔가 있는데……”

카메라를 통해 본 귀신 장철은 뭔지 모르지만 심각한 동요를 일으킨 것 같은 모습이었다.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드는 모습이었다.

그건 채널링을 통해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 그런데 갑자기 깨어나 휘청거렸다.

“생수를 두병이나 마시고……”

헉헉거리던 모습은 마라톤을 한 자와 비슷하다고 할 것이었다.

뭔지 모르지만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원인은 분명 채널링과 관련돼 있음이다.

“무슨 일인지 대면하고 알아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음, 그래야겠지. 그런데 지금은 결과를 먼저 보고.”

결과, 고인범의 마무리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심안에 대한 자료를 완전히 소실한건 아니니까요.”

“그래, 온누리연구소의 백업자료를 확보한건 정말 다행이지.”

말해놓고 조중건은 인상을 구겼다.

“그렇지만 노리던 놈들도 그걸 갖게 됐다는 건 정말 불행한 일이고.”

한숨 같은 조중건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폰이 울었다.

“뭐야?”

폰을 귀에 댄 조중건은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눈썹을 확 곤두세웠다.

“길한수의 오피스텔?”

곤두세운 눈썹을 부들거리던 조중건은 폰을 내리고 이를 갈았다.

“개새끼들이……!”

무슨 일인지 몰라 눈동자에 힘만 주던 황철현은 조중건의 시선을 받았다. 이글거리는 분노를 담은 조중건의 눈은 열리는 입을 통해 토해낸다.

“길한수 오피스텔을 경비하던 경찰들이 공격당했다.”

황철현은 눈을 치떴고 조중건은 남은 말을 냈다.

“오피스텔을 뒤져서 외장하드를 가져갔다. 길한수가 비밀금고에 숨겨둔 건데, 총 여섯 개의 외장하드 중에 하나를 골라 가져갔어. 실내를 찍는 홈오토카메라에 그 광경이 담겼다. 개의치 않고 가져갈 것만 가져갔어.”

황철현은 치뜬 눈가를 미세하게 떨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알아서다.

길한수가 누구인가, 그는 온누리정신연구소장이었다.

그가 집에 숨겨둔 외장하드 라면 뻔하다, 연구자료가 든 것이다.

그걸 가져갔다. 알고 한 거다.

‘중국, 아니면 일본.’

황철현이 이를 악무는 그때 조중건의 폰은 또 울음을 터트렸다.

“뭐?”

경악하는 얼굴이 된 조중건은 황철현을 보며 소리쳤다.

“2팀과 같이 평택으로 가!”

* * *

팀원들이 적들과 얽히는 속에서 좌명균은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상대는 강자다. 연원을 알기 힘든 무술을 펼치고 있다.

남권계열인가 하면 어느새 가라테나 태권도의 발차기를 뿌리고 무에타이의 필살기를 펼친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쉰 좌명균은 공명을 다시 이뤘다.

주변의 대기와 자신이 하나가 되는 공명, 깊은 곳의 울림으로 이뤄내는 혼연일체다.

상대방의 미세한 기운과 움직임까지 인지하게 된다, 그런데 상대도 그런 자다.

‘염동력, 그 중에 비수처럼 찌르는 기법으로 특화된.’

왜소한 중년사내, 저자의 공격기법은 그렇다.

처음 팀원들의 케이오소총을 폭발시킨 방법도 그것이다.

소총을 버리라고 하지 않았다면 피해가 더 생겼을 터다.

그 기술을 공격을 펼치는 와중에 화살처럼 터트린다.

팔다리에 생겨난 상처, 갈라져 피가 흐르는 부위를 무시하고 좌명균은 다시 움직였다.

숨 막히는 공방을 주고받던 상대, 중년사내 역시 움직인다.

입가엔 여전히 흐릿한 미소가 걸려 있다. 이 싸움을 즐기고 있다.

‘위험한 놈, 반드시 죽인다.’

공명 속에 흘러 들어간 좌명균은 벼락처럼 튀어나갔다.

자신의 특기이자 공격방식인 손발의 기세를 서릿발처럼 뻗어냈다.

투명한 그 힘이 상대의 옷깃을 갈랐다. 하지만 중년 사내는 흔들리는 갈대처럼 다 피한다.

‘폭경!’

연속해서 돌개차기를 날리고 회전한 좌명균은 발을 땅에 박고 착지하며 주먹을 뻗었다. 정권지르기, 일미터나 떨어진 상대를 향해 힘을 뿜었다.

보이지 않는 힘.

좌명균의 정권으로부터 터져나간 기세가 중년사내를 강타했다.

두 팔을 십자로 들어 막은 중년사내는 뒤로 밀려갔다.

밭고랑을 만들 듯이 바닥에 깊고 긴 흔적을 남기며, 끌려가듯이 거릴 벌렸다.

휘청, 무릎을 꿇을 뻔했던 중년사내는 자세를 유지했다. 그러더니 엄지를 든다.

“하오(好).”

좌명균은 다시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 순간 중년사내가 움직였다.

제자리에서 왼발을 축으로 휘돈다. 그런 회전 속에서 유엽비도가 날아온다.

‘이!’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좌명균은 유엽비도들을 쳐냈다.

그런데 그건 막지 못했다.

오천단구의 중년사내가 다시 터트린 기합, 그 비수가 심장에 박혔다.

폭경을 발산한 후의, 유엽비도들을 쳐내는 틈으로 들어온 비수.

‘헉.’

눈을 치뜬 좌명균은 심장이 폭발하는 소리를 들었다.

* * *

거친 심장의 고동소리를 무시한 채 조중건은 움직였다.

길한수의 오피스텔은 보광동 안가에서 멀지 않다. 한남대교만 건너면 밟게 되는 신사동이다.

한강이 보이는 풍광 좋은 위치, 이곳을 누군가 습격하고 도주했다.

‘금고에 외장하드가, 연구자료가 있다는 걸 아는 놈들, 길한수가 알려줬을 리가 없으니 평소에 감시하고 있었다고 봐야겠지. 길한수가 온누리정신연구소에서 뭘 하는지도 알았고, 그건 길한수가 밝혀야 가능 하고.’

앞뒤를 가늠하며 조중건은 길한수의 오피스텔을 뒤졌다.

동시에 한숨을 계속 내쉬었다.

정말로 만시지탄이다. 길한수라는 구멍을 예측 못한 거다.

현안에 눌려 시선을 두지 못한 거다. 그걸 비웃듯 이렇게 불거졌다.

‘고인범이 탈취해간 자료만 신경쓰느라…… 비루한 변명이지.’

처음부터 만전을 기해야 했다. 연구소가 귀신에 의해 쑥대밭이 됐고 연속해서 장례식장에서 고초희가 죽는, 그로인한 여파가 엄청났지만 챙겨야했다.

‘고인범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구멍이 생길 수 있음을 대비해야 했어.’

뒤늦은 후회를 씹으며 금고를 살피던 조중건은 요원의 부름에 돌아섰다.

“국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우편물 뭉치를 든 요원은 그중에 하나를 내민다.

일본에서 온 우편물, 연구자포럼의 초대장이다.

‘정신의학의 미래’라는 제목, 도쿄에서 열렸다.

길한수 같은 자에겐 이상할 게 없는 것, 그런데 위화감이 확 든다.

‘일본?’

미간을 틀어 올리는 조중건을 폰이 부른 건 그때였다. 발신자는 황철현이다.

“말해.”

황철현의 가라앉은 목소리를 들으며 조중건은 이를 갈고 치를 떨었다.

* * *

보고를 마친 황철현은 현장을 다시 눈에 담았다.

처참하고 허망한 광경이다.

좌명균의 1팀은 전멸했다.

잘 닦아놓은 명검과도 같은 느낌을 주던 자, 좌명균은 눈코입으로 피를 흘려내고 죽었다. 그 눈을 뜨고 있다.

‘하아.’

뜨거운 숨을 몰아 내쉰 황철현은 다른 자들의 죽음도 다시 확인했다.

다섯 명의 팀원들, 채널러들은 더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최후다.

두 명은 폭발에 휩쓸린 것 같다. 원인은 케이오소총이다.

‘고인범을 잡긴 잡았는데……’

그도 죽었다.

이 장소, 재활용품 수집창고의 컨테이너 사무실 앞에 죽어 있다.

마지막까지 뭘 빼앗기려 하지 않은 건지 오른손이 분해돼 있다.

‘이용당하고 결국 죽었어.’

고인범의 최후를 지나 황철현은 컨테이너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김충식이 영상을 확인중이다. 입구 옆에 세워져 있던 트럭의 블랙박스다.

“나옵니다.”

꿈틀하고 튀어나오는 것 같은 김충식의 목소리에 반응하며 황철현은 태블릿을 봤다.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이 고스란히 담겼다.

고인범을 찾아온 좌명균 팀, 그 뒤로 나타난 공격자들, 원인을 알 수 없게 폭발한 소총.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원하면 이루어진다던가. 밖에서 팀원이 폰을 들고 들어왔다.

“사망한 좌명균 팀원의 것으로 추정되는 폰입니다. 녹음이 되어 있습니다.”

폰을 넘겨받은 황철현은 녹음파일을 재생했다. 좌명균 팀이 이곳으로 고인범을 잡으러 온 순간부터, 고인범과 마주서 주고받은 대화가 나온다.

‘중국……!’

으스러지게 이를 물었던 황철현은 컨테이너 사무실 밖을 봤다.

어둠이 짙게 깔린 저 밖에서 g6 2팀이 움직이고 있다.

좌명균의 1팀을 공격하고 도주한 자들을 찾기 위해서다. 평택서의 경찰력도 그물처럼 깔렸다.

‘못 잡을 거야.’

그럴 것이라는 강력한 예감 속에 황철현은 이전의 예감을 곱씹었다. 왜 그토록 이곳으로 오고 싶었는지, 불안했었는지, 이제야 확실히 알겠다.

‘귀신.’

이 순간 왜 그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 * *

숨을 고르고 벽을 응시한 장철은 다시 가부좌를 틀었다.

들리지 않는 울림의 흔적을 따라가듯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다시 철계단이다.

하나하나 밟으며 내려갔다.

암흑은 출렁거린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알아야 해.’

의지에 힘을 실으며 장철은 내려갔다. 한도 없고 끝도 없을 것 같은 깊은 곳으로, 계단을 하나하나 디디며, 쉬지 않고, 영원처럼 이어질 아래로 내려갔다. 그 길은 마침내 끝이 났다. 바닥에 닿았다. 그런데 공허다.

암흑만이 출렁이는 공간, 어디에서 어느 존재도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이곳에선 전투가,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붉은 외눈의 존재들의 전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처음이구나.

울림이 전신을 친다.

장철은 벼락처럼 돌아섰다.

그렇게 봤다. 붉은 외눈의 존재다.

그런데 이전에 본 존재들과 다르다.

더 거대하고 강력한 존재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데도, 그렇게 느낄 외형이 없는데도 안다.

이곳까지 온전히 내려온 자, 네가 처음이다.

다시 뇌리를 울리는 붉은 외눈의 음성, 장철은 전율 속에서 영혼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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