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32화 (132/200)

황혼의 살인자. 132. 거대한 존재.

132. 거대한 존재.

보광동 안가 주변은 평범한 모습이다. 가까운 거리에 주민센터가 있고 우체국도 있으며 편의점과 상가건물과 주택가가 이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홍천의 g6를 버리고 이곳으로 우선 옮겨왔지만 연구소로는 무리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긴 하지만.’

잡화대리점의 창고겸 장사 안 되는 영업소의 외형을 가진 안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으며 황철현은 새삼 현실의 무게를 숨으로 삼켰다.

좌명균의 1팀은 전멸했고 2팀은 아무 소득도 없이 움직이는 상황이다.

‘3팀도 있나?’

거기까진 아직도 모른다.

조중건 국장은 다 이야기 해준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g6에 대해선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지휘체계다. 국정원장으로부터의 명령을 받는 게 아니란 걸 알지만 대체 어딜까?

‘궁금해도 아무 소용없는 부분.’

황철현 자신이 의문을 품는 다고 달라질 건 하나도 없다.

명령을 받으면 이행하는 존재가 황철현 자신이고 종말 팀이다.

조국장도 다를 바 없다.

여태 해온 것처럼 명령만 따르는 거다. 그런데 요샌 그게 잘 안 된다.

‘일본과 중국.’

그들이 가세했다. 이제 눈앞의 일은 복잡하고 거대해졌다.

중국에서 채널러로 확신되는 능력자들을 보내 고인범에게서 심안을 탈취해갔다.

그 와중에 좌명균의 1팀이 죽었다.

길한수의 오피스텔엔 일본이 다녀갔다.

‘조국장이 확신 하는 결과.’

편의점에서 마신 뜨거운 커피 기운이 올라온다.

되새김질 하듯 숨을 멈췄던 황철현은 지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냉기가 확 반겨준다.

그래야 할 공간이어서다. 좌명균과 1팀의 시신을 둔 곳이다.

조중건이 보고 있다.

“정확히 어떤 형태라고 보나?”

조중건의 물음을 받은 자, 가운을 걸친 채널링연구자이자 의학자는 신중한 얼굴로 대답한다.

“영상을 보면 역시 염동력의 일종입니다. 기합을 터트려 보이지 않는 공격을 하는 기법이죠. 채널러들이 염동력을 발휘하는 일반적인 형태입니다만, 이 경우엔 특별합니다. 내적인 힘을 채널링을 통해 투발하는 걸로 판단됩니다. 무술가들이 내력이라고 말하는 힘, 그런 게 분명합니다.”

“내력……”

신음처럼 중얼거린 조중건은 테이블 위에 누워 있는 좌명균을 내려다본다. 시체가 돼 창백한 모습으로 천정을 보는 자, 뒤늦게 눈을 감겨준다.

“좌팀장도 그런 힘을 사용했다.”

연구자에겐지 지금 막 들어온 황철현에겐지 모르게 조중건은 말을 이었다.

“폭경이라고 불렀지. 50cm가 넘는 두께의 콘트리트벽 뒤에서 폭경을 발출하면, 벽 너머의 대상물이 파괴됐지. 수박 같은 건 산산조각으로 터졌어.”

어떠한 모습일지 황철현은 상상했다.

‘폭경.’

그 힘을 좌명균은 사용했다. 트럭 블랙박스영상을 확인했다. 왜소한 체격의 중국인 능력자와 격투를 벌이던 중에 그것으로 여겨지는 힘을 썼다.

‘그랬는데……’

중국인 채널러는 바람에 밀린 나뭇잎처럼 뒤로 밀려갔다. 하지만 견뎌냈다. 나뒹굴어 피를 토하거나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휘청거리기만 했을 뿐 엄지까지 들어보였다. 왜소한 사내지만 대단한 능력자다.

‘좌팀장을 이렇게 만들 만큼.’

폭경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위력인지 알지 못하지만 엄청난 능력이란 걸 안다.

물리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과는 다른 경지의 힘인 거다.

무술로 심신을 닦아온 좌팀장은 그 기반위에 채널링의 능력을 세운 것이다.

그런데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 중국인 채널러는 좌팀장의 심장을 터트렸다.

폭경과 비슷한 방식으로 판단된다.

다른 점이라면 비수처럼 찌르는, 목표로 정한 부위를 파괴하는 공격인 거다.

좌팀장은 피하지 못했다.

“영상을 보면 왜소한 중국인 외에 다른 자들 셋이 더 있었습니다.”

황철현이 목소릴 내자 시선을 돌려 눈을 맞춘 조중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비슷한 놈들, 같은 기반을 가진 놈들이다.”

왜소한 중국인채널러처럼 그들 셋은 1팀원들을 죽였다.

그들이 사용한 무기는 유엽도였다.

낭창이는 그 칼날로 1팀원들의 욕신을 갈랐다.

그런 결과가 나온 건 그들이 채널러이기 때문, 그냥 무술가로선 불가능하다.

“놈들의 기운을 전혀 감지 못하는 건 그럴 만한 환경을 만들고 도주했기 때문이야.”

이 악문 목소리로 말한 조중건은 뒷말을 이어냈다.

“가사상태로 빠져들었거나 차폐가 가능한 차량으로 이동했거나.”

한 박자 사이를 두고 조중건은 아니길 바라는 부분을 뱉어냈다.

“아니면 그럴 수 있는 능력자이거나.”

그럴 수 있는 능력자, 채널러들로 하여금 자신의 기운을 감지하지 못하도록 조절하는 능력자다. 그게 가능하려면 이단계에 성공한 자여야 한다.

‘중국이?’

현실의 무게와 엄중함을 새삼 삼키는 황철현의 귀에 조중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길한수의 자료를 훔쳐간 일본도 다르지 않을 거다. 그래, 그런 거지, 우리가 이만큼 오는 동안 그들이라고 놀고 있었을까. 당연히 채널링을 연구하고 성과를 거두고 있었겠지. 동시에 주변을 살피고 감시하면서 말이야.”

그 부분이 길한수인 거다.

죽어버렸으니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치밀하고 지독한 일본의 거미줄에 포착돼 걸려든 거다.

길한수는 그걸 이용하려 했을 걸로 짐작된다.

여차하면 일본에 자료를 넘기고 한몫 챙기는.

“일본이든 중국이든 잡아서 혀를 뽑아봐야 알겠지만……”

분노를 삼키는 조중건의 목소리는 또 이어져 나온다.

“중국이 일본의 상황을 염탐하고 있었던 결과로 봐야겠지. 고인범의 동생가족을 인질로 심안을 얻으려던 일본의 계획, 중간에 가로챈 거야.”

황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국장의 말대로 자세한 내막은 그들의 입을 통하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렵다.

하지만 결과가 명확하니 다른 의문을 가질 일이 아니다.

중국과 일본은 한국을 공격했다. 이것이 핵심이다.

“이제부터 반격한다.”

단호한 어조로 결론을 뱉은 조중건은 황철현과 눈을 맞추고 남은 말을 냈다.

“귀신이 필요한 이유지.”

* * *

암흑속의 존재, 아니 암흑 자체인 존재, 거대하고 강력한 존재를 장철은 바라봤다.

본다고 하지만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울림의 목소리 역시 그렇다.

모든 것이 마음속의 교류, 영혼으로 이어진 대면이다.

“당신은 누굽니까?”

장철은 물었다.

거대한 존재는 웃었다.

암흑이 출렁거리는 미소다.

네가 누군지는 아느냐?

되물음, 장철은 대답하지 못했다.

너무나 명료하고 확실한 대답들이 있는데 내지 못했다.

인간 장철, 55세의 남자, 그런데 그러한 분명함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모호하게 여겨진다.

허망한 그림자가 아닐까.

이곳이 어딘지는 알고 온 것이냐?

두 번째 물음, 장철은 역시 대답하지 못했다.

거대한 존재는 다시 말한다.

전쟁이 일어났다.

이어 나온 울림, 무슨 이야긴지 장철은 알았다.

직전에 내려와 본 광경이다.

붉은 외눈의 존재들이 서로를 멸살하는, 처절하고 무시무시한 전쟁,

너희 인간들의 침습으로 인해서다.

전쟁이 일어난 이유를 들었다.

인간들 때문이라고 한다.

왜인지도 들린다.

인간들이 접촉해온 것은 오랜 일이다. 그런데 이제 이뤄지는 접촉은 이전과 다르다. 강력한 힘으로 밀물처럼 닥쳐오고 있다. 그것이 변화를 일으켰다. 정확하게는 너희 인간들을 통해 나가려는 것들의 준동인 것이지.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하겠다. 하지만 알아듣기는 하겠다.

이곳, 깊은 곳의 존재들이 인간의 침습으로 인해 변화를 겪고 있다는 거다.

마치 병균에 감염된 환자가 발작을 일으키는 것처럼, 전쟁으로 이어진 거다.

막아야 한다.

천둥벽력처럼 영혼을 치는 울림, 장철은 흠칫하며 거대한 존재를 봤다.

경계가 무너지면 종말이 올 것이다.

붉은 외눈, 영혼을 태워 버릴 것처럼 이글거리는 그 눈을 보며 장철은 부들거렸다.

네가 막아라.

인간세상의 일을 맡으라는 거다. 거대한 존재는 이곳을 맡을 테니.

네게 내 힘을 주겠다.

경직 속에서 장철은 전율했다.

붉은 외눈, 그것이 영혼을 삼키는 전율을.

* * *

-정부에선 영상이 조작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지 않습니까? 조작된 흔적이 없는 거라고요? 게다가 고초희가……

염동력 영상으로 tv는 계속 뜨겁다. 채널링에 관한 특별프로그램을 편성해 앞다퉈 방송중이다. 기묘하고 씁쓸한 건 이 상황을 만들었다는 거다.

‘진실을 위해서.’

tv에 시선을 박은 최재우는 파도처럼 출렁이는 여론상황을 씁쓸히 삼키며 리모컨을 돌렸다. 역시 다른 방송도 비슷하다, 그런데 아는 얼굴이 나왔다. 나인규 교수다. 채널링 연구전문가로 나와 신중하게 말한다.

-채널링은 오래 전부터 연구된 분야입니다. 미국을 위시한 각국에선 비대칭 전력의 일환으로 연구해왔습니다. 수십 년의 시간동안 어떠한 성과를 이뤘는지 모릅니다. 이번 사건을 단순하게 봐선 안 되는 이유가 바로……

귀신과 고초희 사건에 국한된 것이 아닌, 더 거대한 시야를 제시하는 나인규 교수다. 저 말이 맞다고 생각되면서도 과연 어디까지 그러한 것일까 궁금하고 의문이 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선 피를 흘리고 있는 걸까?

“최팀장님, 범인 검거했답니다.”

강력팀 형사가 알려주는 소리에 최재우는 손을 들어 보였다.

여전히 똑같은 신명서의 밤이다.

살인사건이 일어나 유지건과 송치호와 홍인구가 나갔다.

범인을 잡았다는 거다. 그런데 최재우 자신은 이러고 앉아 있다.

‘귀신은 죽었는데……’

이유모를 한숨을 쉬며 최재우는 리모컨을 또 눌렀다.

* * *

“채널링에 대한 협조는 우선 뒤로 미룹시다.”

심각하고 단호한 얼굴로 말하는 자, 조중건국장의 눈을 장철은 바라보기만 했다.

지금 한 말의 의미를 짐작한다.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단 소리다.

그만큼 다급하고 위험한 상황이란 반증, 이유가 이어 나온다.

“온누리연구소에서 개발한 심안이란 게 있소. 채널링 증폭장치요. 그걸 중국 측에서 탈취해 갔소. 일본에서도 온누리연구소장의 오피스텔에 침투해 자료를 훔쳐간 상황이오. 물론 우리도 백업자료가 있긴 하지만……”

미간에 칼날 같은 분노를 드리운 조중건, 남은 말을 뱉어낸다.

“우리 땅에서 우리요원들을 해치고 중요한 자료를 훔쳐간 놈들,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겠소.”

자료는 이미 넘어갔으니 회수라는 건 무용한 짓, 그렇지만 방관할 수 없단 거다. 침략당하고 대응하지 못한다면 그건 모든 걸 빼앗긴 것과 같은 거다. 그렇기에 상응하는 조치를, 아니 그이상의 반격을 한단 거다.

“요구조건만 충족되면 무슨 일이든 합니다.”

이미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 장철, 그 요구조건을 조중건은 내밀었다.

“법무부장관이 승인한 서류요.”

조웅과 이영숙에 대한 사면서류다. 그 내용을 장철은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조중건의 눈을 응시했다. 조중건은 기다린 듯 대답한다.

“대통령이 승인한 서류도 갖게 될 거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원한다면 해준다는 대답이다.

장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서 뭘 하면 됩니까?”

조중건이 이어내는 이야기를 새겨들으며 장철은 머리 한쪽으로 생각했다. 깊은 곳에서 대면한 거대한 존재, 그가 자신에게 준 사명의 구현을.

* * *

흔들리는 차의 진동에 심신을 맡긴 장철은 목적지를 생각했다.

대림동이다. 그곳에 첫 번째 타격대상이 있다.

중국물품 수입창고로 위장한 곳, 실제는 중국정보국의 거점이다.

국정원의 반격은 그곳이 시작점인 거다.

‘기묘하군.’

피하고 숨어야 하는 대상인 자신이 국정원의 도움을 받고 이동하고 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장철 자신은 해야 할 일을 하고 이들은 기다릴 것이다.

뒷마무리도 이들의 몫, 돌아가는 길도 이렇게다.

기묘한 감회가 든다.

‘채널러 2팀이 움직이고 있다던데, 소득이 없는 건가.’

조중건에게 들은 그들을 떠올리던 장철은 차가 멈추는 걸 느꼈다.

조수석에 앉은 자가 돌아본다.

황철현이란 이름을 밝힌 자, 종말팀장이라했다.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인다. 마주 끄덕여 보이고 차문을 열었다.

새벽어둠에 잠긴 대림동 골목길, 저편의 목적지를 향해 장철은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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