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33화 (133/200)

황혼의 살인자. 133. 반격.

133. 반격.

멀어져 가는 장철 뒷모습을 응시하던 황철현은 팀원들을 돌아봤다.

김충식이 가장 먼저 차문을 열고 내렸고 다른 두 팀원도 장비를 들고 나갔다.

이미 확보해둔 위치로 간다. 만일을 위한, 마무리를 위한 액션이다.

‘마약창고란 말이지.’

장철이 이제 들어갈 곳의 정체가 그렇다고 파악됐다. 그러나 그것도 외형, 진정한 얼굴은 중국정보국인 국가안전부의 서울 거점이다. 그중 하나로 판명 났다. 그동안 더 확실한 정보를 위해 두고 봤지만 이젠 아니다.

‘너희는 귀신을 만나게 될 거다.’

그게 어떤 의지인지 새삼 떠올린 황철현은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귀신, 장철이란 이름의 저 남자는 정말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존재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은 차치하고, 저 자가 만든 결과들이 그렇다.

‘부활한 게 무엇보다 황당하고 충격이지만.’

도대체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건지 알고 싶다. 그게 채널링과 관련한 것이라면, 장철의 능력이 그러하다면, 그 능력을 나눌 수 있다면 엄청난 일이 될 것이다. 국정원 채널러요원들은 죽음을 넘는 존재가 된다.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장철의 부활은 분명 그가 채널러이기 때문이지만 장철 개인의 고유한 내막으로 인해서라고 여겨진다.

일어나선 안 되고 있을 수 없는 특별한 예외인거다.

아니면 세상이 흔들린다.

‘죽음은 그런 거야.’

정해진,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법칙이다.

그것이 깨지고 어긋나면 세상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지금도 망해가는 세상, 확실하게 망할 것이다.

어째서 그런지 명확한 예를 들어 말하기 어렵지만 그럴 거란 걸 안다.

‘죽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어.’

귀신의 죽음은 분명 임상적으로 죽음이었지만 아닐 수도 있는 거다.

그의 몸에 박혔던 폭발탄환들은 터지지 않았다.

귀신은 온누리연구소에서도 시체로 변해 빠져나갔었다.

그것과 분명 다르지만 비슷한 것인지 모른다.

‘그날 귀신은……’

죽음을 받아 들였다.

모든 걸 버리고 그렇게 했다. 영상 속의 귀신 장철은 분명히 그랬다.

그렇게 죽은 건데 되살아난 거다.

이건 마치 죽음이 귀신을 거부한 것만 같다.

무엇인가? 죽음의 신이 귀신을 튕겨낸 건가?

“후우.”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 황철현은 다시 현실로 정신을 집중했다.

* * *

“확실히 이상하군요.”

귀신 장철의 영상을 보고 낸 실장의 한마디, 조중건은 새삼 그 등을 바라봤다.

‘함인건 기획조정실실장.’

48세의 젊은 기조실장이다. 젠틀하고 세련된 용모는 다른 이의 호감을 끌어낸다. 늘 드러나지 않게 일하는, 진짜 모습을 아무도 모르는 이다.

‘막후실력자의 손이고 입인 사람.’

함인건 기조실장은 그런 존재다. 그렇다는 걸 아는 것이 전부다.

함실장의 이력은 알고 있지만 그건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중학생 때 혼자가 된 함실장은 후견인의 도움으로 공부하고 유학한 엘리트, 저 모습이다.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 된.’

이만큼 된 이유가 물론 막후실력자의 후광과 힘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본인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 실력도 없는 자였다면 애초에 선택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선택을 한 후견인이 누군지는 모른다.

‘막후 실력자.’

베일에 가려진, 함실장과 황철현 자신 같은 이를 부리는 진정한 힘의 주인이 누군지까진 모른다. 아는 부분은 오성회의 협력하는 거란 거다.

‘오성회.’

그들의 정체도 최근에 알았다.

원로들, 정관군 출신의 인물들이다.

면면을 따져보면 대단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퇴역한 함선들이기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이 미치는 영향력은 아직도 대단한 것이다.

“무엇인가에 충격을 받아 저런 모습인 것 같은데, 그렇지요?”

다시 귀를 파고든 함인건의 목소리에 조중건은 정신을 집중했다.

“그렇습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예, 차분히 물어볼 시간도 없었다는 걸 압니다.”

심안을 탈취해간 중국측에 반격을 하기 위해서, 귀신은 지금 대림동에 나가 있다. 그사이에 함인건 자신이 온 것이다. 보광동 안가엔 처음이다.

‘채널링에 들었다가……’

7호실에 있던 장철의 영상은 의문과 궁금함을 갖게 한다.

사망했다가 살아난 자, 친구 조웅의 사면을 조건으로 협력하겠다 한 사내, 무엇을 품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채널링에서 깨어나며 저런 모습은 무엇인가?

“오늘 이후로는 상황이 매우 악화될 걸로 판단합니다만……”

조중건은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냈고 함인건은 뒤돌아 시선을 던졌다. 새삼 오른팔이 보인다. g6가 고인범에 의해 폭발되는 피습을 받은 결과, 저런 부상인데도 병실에 눕지 않고 움직이는 건 조중건이기 때문이다.

“늘 고마움을 느낍니다.”

갑작스러운 함인건의 말에 조중건은 당황했다.

“무, 무슨 말씀을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단호한 뒷말로 어색함을 털어낸 조중건, 그 얼굴에 든 확고한 충성을 함인건은 읽었다.

“선생님께서도 조국장의 충정을 잘 알고 계십니다.”

충정.

그 한마디에 조중건은 가슴속애 얹혔던 것들이 다 날아가는 걸 느꼈다.

피곤도 사라지고 오른팔의 지독한 통증도 잊힌다.

그렇다, 자신은 충정 하나로 이렇게 일하고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사는 거다.

“언젠가 때가 되면 선생님과 대면하게 될 겁니다.”

함인건의 미소를 향해 조중건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예. 열심히 일할 뿐입니다.”

무엇을 위해서도 아닌,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대가를 바래서도 아닌, 오직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인, 그 일을 함이 자랑스러울 뿐이다. 그렇게 되도록 선택하고 이끌어준 함인건과 선생님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심안의 제작은 이미 시작했습니다.”

이어 나온 함인건의 말에 조중건은 반사적으로 시선을 들었다.

“물론 중국도 일본도 그걸 가진다고 봐야겠지요. 그들에게 심안은 불편하게 걷는 걸음에 도움을 주는 지팡이 정도, 그런 의미일 겁니다. 평택영상을 보면 1팀을 공격한 자는 분명히 이단계에 진입한 자입니다. 그런 채널러를 중국은 이미 가진 겁니다. 일본도 다르지 않다고 봐야겠지요.”

조중건은 어금니를 물며 분노를 삼켰다. 좌명균과 1팀을 죽인 왜소한 중국인채널러를 떠올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걸 함인건은 눈치챘다.

“오늘밤 공격으로 그들을 불러낼 수 있을 겁니다.”

눈썹을 꿈틀하는 조중건에게 함인건은 중얼거림처럼 뒷말을 이어냈다.

“혹시 모르죠, 귀신이 간 곳에 그들이 있을 지도요. 우연이란 그런 거니까요.”

* * *

5층 상가 건물이다. 빛바랜 당구장간판이 3층에 걸려 있다.

그런데 당구장은 없는 게 분명하다.

건물 외관에 붙은 다른 간판들은 전부 중국어다.

중국물품수입창고로 사용한다더니 누가 봐도 그렇게 보이는 곳이다.

‘주차장.’

건물 오른쪽과 후면으로 연결된 주차장으로 장철은 걸어갔다.

드럼통의 불 앞에 둘러선 남자들이 뭔가를 굽고 있다.

저마다 고량주병을 들고 웃고 떠든다.

한 사내가 트럭에서 상자를 꺼내 돌아서다가 장철을 봤다.

뭐라고 소리친다. 중국말이다.

장철은 무시하고 걸어갔다. 다시 한국말로 소리친다.

“야 이 새끼야! 너 뭐야!”

남자의 외침에 불앞의 사내들이 돌아선다. 웃던 얼굴은 사라지고 험악한 얼굴들이다. 고량주병과 굽던 고기를 던지고 잡은 건 손도끼와 칼이다.

“야!”

처음 소리친 놈이 다시 소리치는 순간 장철은 움직였다.

발끝에 걸리는 나무토막을 걷어찼다.

벼락처럼 날아간 그것이 소리친 놈을 강타했다.

억 소리도 못 내고 쓰러지는 놈.

그 광경을 본 다른 놈들이 일제히 달려든다. 험악한 얼굴로 손도끼와 칼을 들었지만 공격하진 않았는데 한다.

머리를 쪼개오는 손도끼를 가볍게 피한 장철은 왼손을 피스톤처럼 뻗어냈다. 안면이 박살난 놈이 쓰러지는 순간 식도와 같은 칼을 내리치는 놈의 멱을 잡았다. 허공으로 밀어 올렸던 놈을 바닥에 꽂듯 내리쳤다.

흘러.

장철은 여울을 흘러가는 물처럼 흘렀다. 휘어지고 꺾어지고 튀고 도약하며 어둠을 흔들었다. 그런 속에서 손도끼와 칼을 든 놈들은 휘날렸다.

* * *

김충식이 보내오는 영상, 목표 건물로 들어간 장철은 중국놈들을 박살내고 있다. 건물 주차장의 조명과 놈들이 피워놓은 드럼통 불로 선명하다.

이 광경을 숨어서 촬영하는 김충식의 위치를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귀신은 더 더욱.’

다른 두 팀원이 저격위치에서 스코프로 보고 있다. 여차해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안 생길 터다.

‘귀신이니까.’

뜨거운 숨을 이에 문 황철현은 단말기가 흘려내는 영상에 눈을 박았다.

* * *

주차장의 놈들 중 더 이상 움직이는 놈은 없다.

무심한 눈길 한번을 던진 장철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안에 있던 놈들이 반응하며 나온다. 달려드는 대로 박살내며 들어갔다.

계단 앞에 서서 잠시 갈등했다.

‘위? 지하?’

갈등은 오래 가지 않았다. 위에서 총탄이 날아왔다.

바람의 노래를 따라 한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피했다.

연이은 흐름으로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연속해서 날아오는 총탄들, 그 흐름의 사이로 흘러가며 휘돌았다.

권총과 기관단총을 발사하던 놈들, 장철의 휘돎에 휘말려 휘날린다.

부러지고 휘어지고 꺾어진 처참한 모습으로 벽과 천장에 부딪쳐 박살난다.

그렇게 흘러가는 장철의 걸음을 막는 존재가 나타났다. 채널러다.

‘그렇군.’

유엽도를 쥐고 복도에 선 자, 자신의 기운을 감추는 능력자다.

이단계에 성공한 자인 거다. 그렇기에 장철 자신이 이곳에서 기운을 감지 못했다.

그런데 이젠 아니다. 이 상황을 잘라내기 위해 상대는 앞을 막았다.

‘뒤에도.’

박살난 자들의 피를 밟으며 다가오는 존재도 채널러다.

돌아보지 않아도 유엽도를 가진 것을 안다.

이들은 그들이다.

평택에서 국정원 채널러 1팀을 멸살한 자들, 명검 같던 기운의 좌명균팀장을 죽인 자들이다.

장철은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가 뱉으며 말했다.

“죽일 거다.”

그 순간 앞뒤의 적들이 움직였다.

시릿한 칼빛만이 형상의 전부인 것처럼 변한 모습으로 닥쳐왔다.

그 시릿함은 번개가 되어 갈라왔다.

장철의 형상을, 벽과 바닥을, 무수한 칼질로 난자했다. 공간을 압살했다.

칼빛 속에서 면도날에 흩어지는 두부처럼 으스러지는 것 같던 장철, 흐늘거리는 연기처럼 아지랑이처럼 흘렀다. 있을 수 없는 것 같은 유엽도의 칼질 사이로 움직였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팔괘장의 장력을 뿌렸다.

한순간 공간이 폭발하는 것 같은 기운이 터졌다.

폭음을 꼬리로 달고 생겨난 그 일은 유엽도의 채널러들을 뒤로 날렸다.

그들은 처음 닥쳐왔던 복도의 앞뒤로 날아가 굴렀다.

벌떡 일어났지만 우웩하며 피토했다.

적들이 휘청거리며 피토하는 그 순간, 찰나에 장철은 다시 움직였다.

두 팔을 뻗어내 적들의 복부를 친 양손, 이젠 주먹 쥐었다.

앞의 적에게 흘러갔다.

부릅뜬 눈을 치뜨는 놈의 안면에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수박이 터지는 것 같은 감각 속에 놈은 다시 굴렀다.

그래도 일어서려는 놈에게 또 흘러가 주먹을 다시 안겼다.

양손 주먹을 변개처럼, 번자권이 부끄러워 도망갈 정도의 스피드와 파워로, 적의 전신을 다져버렸다.

등 뒤에서 유엽도가 닥쳐오는 걸 느끼며 장철은 발을 뻗어냈다.

고깃덩이나 다름없게 된 적이 날아갔다.

복부가 펑하고 터지는 소릴 뒤늦게 내는 순간 돌아서며 유엽도를 후려쳤다.

채널러의 힘이 담긴 번개를 쳤다.

수수깡이 잘라지는 것처럼 유엽도가 동강나는 찰나, 장철은 돌아서며 수도를 후린 힘 그대로 흐르며 돌았다. 왼팔꿈치를 적의 안면에 후렸다.

파괴돼 흩어지는 감각은 뒤늦게 느꼈다. 적의 머리가 휘날리는 때에.

* * *

-이탈하는 놈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김충식의 다급한 목소리, 황철현은 단호하게 명령했다.

“사살해.”

단말기에 현장의 영상이 보인다. 귀신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난후, 총격섬광과 소리가 요란했던 후, 건물을 버리고 이탈하는 놈들이 쓰러진다.

김충식과 다른 두 팀원들이 저격하는 거다. 한 놈도 저곳을 못 벗어난다.

‘귀신……!’

건물 안에 있는 장철을 생각하며 황철현은 눈 밑을 가늘게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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