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134. 응징의 시작.
134. 응징의 시작.
건물 밖으로 나온 장철은 빠르게 주변을 감각열림으로 인지했다.
움직이는 자는 없다. 건물 안과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국정원 체널링 1팀을 살해한 중국 채널러들을 만났다.
그렇지만 핵심인물은 이곳에 없었다.
‘왜소한 중년사내.’
그자는 없다. 그렇지만 유엽도를 사용하던 삼인 중에 이인은 조우했다.
말 그대로 조우다. 이곳에 저들이 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이곳은 흑사회의 거점, 그렇지만 중국국가안전부의 숨결이 깃든 거점이라고 들었다.
‘범죄조직의 거점을 정보조직거점으로 활용하는.’
국정원의 설명이 그러했다.
한국 내에 침투한 중국 범죄조직의 거점이란 건 진즉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거다.
이들이 마약을 유통하는 것을 최근에 파악, 그 와중에 중국국가안전부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도 안 거다.
이곳을 응징목표로 삼은 것은 그러한 배경이다.
응징을 했다. 이제 뒤처리를 경찰이 할 것이다.
내부에서 총소리가 났으니 덮을 순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주변 인기척이 없다.
이곳사람들은 여기가 뭔지 아는 거다.
‘거의 대부분이 중국국적자들.’
이 거리의 사람들은 한국에 속한 한국사람들인 동시에 중국에 뿌리를 둔 중국인들이다. 이곳이 범죄조직의 거점이며 건드려선 안 되고 신경써서도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 거다. 그래서 누구하나 내다보지 않는다.
‘오늘 일은 끝인가.’
시선을 거둔 장철은 건물을 벗어나 걸음을 옮겼다. 지켜보며 이탈하던 놈들을 저격한 종말팀, 황철현팀장이 타고 있는 차가 빠르게 다가온다.
이제 저차에 올라 왔던 것처럼 돌아가면 된다. 그런데 뭔가 잡아당긴다.
멈춰서 고개를 돌린 장철은 어둠 저편을 바라봤다. 그러다 뛰어갔다.
* * *
보광동 바로 옆의 한남동에 그가 살고 있다.
김호, 8선의원을 지내고 정계를 은퇴한 인물이다.
여든 여덟이란 노구인데도 아직 짱짱한 늙은이다.
‘팔색조.’
김호의 별명이 그러했다. 여야를 넘나들며 정치변신을 하던 인물, 그러함에도 적을 만들기보다는 특유의 친화력과 정치력으로 선도하던 존재다.
‘당신이 오성회를 만든 건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할, 세상에 대한 욕심 때문이지.’
김호의 노안을 떠올리며 함인건은 차를 몰았다.
대한민국의 초상류층만 거주하는 곳 한남동, 그 안의 저택 앞으로 다가갔다.
주차장의 문이 저절로 열린다.
온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고 함인건의 차임을 봐서다.
저택외부를 감시하는 카메라를 힐긋 본 함인건은 안으로 차를 몰았다.
‘8선의원으로 정가를 주름잡는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치부(致富)를 한 걸까?’
그러함을 알고는 있지만 전체를 다 파악하진 못했다.
분명한건 김호의 재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돈의 힘을 바탕으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초록은 동색, 그렇기는 오성회의 나머지 4인도 같다.
‘당신 같은 자들이 정말 오래 살지.’
주차장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간 함인건은 차를 멈추고 나섰다.
경비원들의 삼엄한 기세 속에 저택 내부로 들어갔다.
비서실장노릇을 하는 자가 목례한다. 마주 목례하고 거실로 향했다.
김호가 소파에 앉아 있다.
“이런 시간에도 쉬지 못하고 수고가 많군.”
의례적인 인사말을 던지는 김호, 주름진 노안은 미소 짓고 있지만 눈빛은 차갑다. 냉정하고 치밀한 계산을 하는 눈, 그래서 저렇게 건재하다.
“의원님이야말로 밤이 깊은데 피곤을 물리치고 계십니다.”
의원님, 그렇게 불러주는 걸 제일 좋아한다는 걸 함인건은 알고 있다.
언젠가 술 몇 잔을 넘긴 기운에 마음속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금배지 단 국회의원이야말로 가장 좋은 거라고, 대통령보다 그게 더 실속있다고.
그래서 국회의원만 8선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김호라는 인물의 욕심이 어떤지는 잘 안다.
그래서 이렇게 보고 있다. 면전에 허리를 굽히면서.
“나야 뭐, 그래, 선생님은 잘 계신가?”
역시 의례적인 김호의 반응, 앞으로 가 소파에 마주 앉으며 함인건은 미소로 대답했다.
“덕분에 잘 계십니다. 때가 무르익어 의원님을 비롯한 오성회분들과 대면할 날을 고대하고 계십니다.”
“음, 그래야지, 국가를 위해 고민하고 대사를 이뤄나가는 사람들이 만나봐야지. 하지만 선생님 의견처럼 혼란스러운 때를 넘기고, 우리의 의지가 제대로 세상에 뿌리 내리고 난후라야 되겠지. 난 그 말씀 좋아하네.”
함인건은 더 진한 미소를 흘려내며 속으로 말했다.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거다.’
* * *
‘뭐야?’
황당한 눈을 치뜬 황철현은 장철의 달림을 바라보며 차문을 열고 내렸다. 하지만 그냥 보고만 있을 상황이 아니란 걸 깨닫고 다급히 지시했다.
“쫓아가!”
차문이 닫히기도 전에 튀어나가는 차의 진동에 몸을 맡긴 황철현은 불안을 삼켰다. 설마 귀신이 이대로 도주라도 하는 것인가 하는 불안, 자신이 인지 못한 다른 상황이 생긴 건가 하는 짐작, 팀원들에게 말했다.
“귀신을 따라 이동 중이다.”
김충식과 다른 두 팀원은 알아서 따라 올 것이다. 지원차량들도 대기 중이기 때문에 원거리로 이동하게 된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공격한 건물은 잠시 후면 경찰들이 봉쇄할 것이다. 내일 뉴스가 화려하리라.
‘어디로 건 거야?’
당황한 얼굴로 황철현은 차를 멈추게 했다.
차문을 열고 나가 주변을 돌아봤다.
괴괴한 어둠과 보안등빛만이 주택가를 비추고 있다.
장철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폰이 번득인다. 장철의 신호가 떴다.
‘저기구나!’
장철에게 부착한 위치신호기가 활성화됐다. 장철이 그렇게 한 거다. 유사시를 대비해 준비했던 것, 장철은 갑작스러운 행동을 목적지를 알린다.
‘도림천.’
천변을 향해 황철현은 달려갔다. 다세대들이 밀집한 골목길을 지나 천변 앞에 이를 즈음 7자를 로고로 쓰는 유명 편의점 불빛이 확 반긴다. 편의점 앞엔 인사불성으로 취한 취객 둘이 테이블에 엎어져 있다.
‘어디?’
천변로로 달려 내려간 황철현은 저 앞쪽의 다리 아래를 봤다. 그곳에 장철이 서 있다.
그런데 장철이 바라보는 더 앞에 누군가 있다.
달려가며 누군지 알았다.
왜소한 중국인 사내, 채널러다. 그와 귀신이 마주섰다.
“도림천이다!”
팀원들과 대기 중인 요원들에게 알리며 황철현은 미친 듯이 달렸다.
* * *
“함실장 같은 인재를 발견하고 육성한 선생님의 혜안이 나는 존경스럽네. 함실장이 중학생 때 혼자가 됐다고 했지? 참 대단한 세월을 보냈어.”
차가운 눈빛으로 치사를 하는 김호 앞에서 함인건은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아무런 불편함 없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은혜에 보답하는 길을 찾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요. 저는 선생님이 품고 펼치시려는 뜻을 좇아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할뿐입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고민하시는 선생님이나 의원님의 마음에 비하겠습니까.”
김호는 흡족한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선생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야. 그만한 분이라면 내가 모를 수가 없는데 정말로 감이 안 잡힌단 말이지. 자네가 날 찾아왔을 땐 정말로 놀랐었어.”
함인건은 그때를 떠올렸다.
바로 지금 이 자리다. 국정원 기조실장이란 직함으로 인사를 왔었다.
갑작스러운 그 방문에 미간 좁히던 김호는 선생님이란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었다.
허무한 말장난 같은 거란 눈이었다.
대한민국의 정치판에서 8선의원을 지낸 자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선생님이란 존재를 눈앞에서 대면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국정원기조실장이 대단한 자리지만, 그런 자를 대리인으로 보냈지만,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내용이 그러했다.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손잡고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제안.
김호는 차가운 눈빛을 번득였다.
오성회를 결성한 외연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목적은 나라를 좌우하는 것이지만.
그 욕심을 이용하고자 접근했던 것이다.
결국은 성공했다. 의심 많고 치밀한 김호지만 결국 그 욕심에 발목 잡혔다.
여야 정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욕심.
그러할 수 있도록 해줬다. 유력인사들의 약점을 줬다.
“뭐 우리 일이야 그렇고……”
화제를 전환할 때 보이는 특유의 차가운 눈빛, 김호는 뒷말을 이러낸다.
“세경그룹은 어떻게, 잘 처리가 될 것으로 보는가?”
함인건은 원하는 대답을 해줬다.
“그동안 고종환회장의 비리를 조사하고 증거자료들을 확보해뒀습니다. 외형적으로 세경은 법에 의한 절차대로 처리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경이란 거인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덩어리가 더 큰, 정말 거인이지요. 오성회에게 필요한 힘을 보태기 위해 자연스럽게 흡수될 겁니다.”
김호는 만족한 미소를 흘려냈다. 정말로 좋아하는 웃음이다.
“함실장이 정말로 수고가 많아. 허허허.”
속에서 우러나온 흡족한 웃음을 지은 김호는 표정을 바꾸며 물었다.
“시끄러운 소리들은 정확히 뭔가? 채널링이라고 하던데? 장례식장에서 고초희가 귀신이란 놈과 싸울 때 보인 그 광경은 뭐야? 그게 정말인가?”
함인건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일전에 잠깐 말씀드렸던 비대칭 전력의 기법과 전술들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이게 정말로 그런 거라고?”
“그렇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입니다. 채널링은 미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연구하고 투자해 결실을 보고 있는 비대칭 전력입니다. 온누리연구소에서 그것을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이 공격해 자료를 탈취해 갔습니다. 엄연한 실제상황의 위중함입니다. 우리의 존재이유지요.”
중차대한 현실, 안팎의 위험한 흐름을 함인건은 힘주어 말했다.
김호의 눈이 흔들리는 것을 분명히 봤다.
우리의 존재이유, 선생님과 오성회가 손잡은 이유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그런데 진짜는 욕심이다.
‘당황스럽겠지. 동시에 내 것을 뻬앗으려는 적들에 대한 적개심도 들 테고.’
그런 마음이 내 것에 대한 욕심 때문임을 함인건은 잘 알고 있다. 특히 김호를 비롯한 오성회에게는 그렇다. 아니 그것이 속마음의 전부다.
“정말로 우리가 모든 힘을 합쳐 대적해야 할 때로군.”
단호한 음성을 뱉으며 등을 물린 김호는 소파에 기댄 체 뒷말을 이어냈다.
“미국은 어떤가? 미국에 도움을 청해보는 건 어때?”
김호의 눈을 응시하며 함인건은 미소를 머금었다.
“고려할 생각입니다.”
함인건의 눈동자가 김호 자신의 것보다 차갑게 빛나는 걸 김호는 몰랐다.
* * *
심야의 도림천, 늦은 밤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사라졌고 새벽운동을 나오려는 이들은 아직 이른 시간의 공간, 그 안에서 장철은 그를 바라봤다.
중국채널러, 영상에서 본 것처럼 오척단구의 왜소한 체격이다.
그렇지만 강한 자다.
침투경의 비수로서 좌명균팀장의 심장을 터트린 자다.
본래 무예를 닦아온 기반위에 채널링의 힘을 더한, 저 눈동자처럼 무섭다.
“불렀으면 시작하자.”
장철은 상대에게 말하고 걸음을 냈다.
그렇다, 불렀다.
왜소한 중년인, 저자는 장철 자신에게 스스로의 기운을 밝혀 이곳으로 오게 했다.
두 명의 채널러 동료가 죽은 걸 알았다.
인근에 숙소가 따로 있었던 거다.
“워.”
왜소한 중년인은 손을 들어 장철을 제지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아니다, 장철이 멈춘 그 순간 기습이 왔다.
도림천 물속에서 튀어나온다.
벼락처럼 닥쳐오는 유엽도, 세 번째 인물이다.
채널링의 기운을 머금어 투명한 은빛을 뿌리는 칼날은 장철의 목으로 쇄도해 들어온다.
같은 순간 왜소한 중년인이 진각을 밟으며 기합을 터트린다.
침투경의 칼날이다.
받아라.
울림, 장철은 흐르지 않았다. 피하지 않았다.
눈동자로 피처럼 붉은 빛을 폭사했다.
목을 갈라 들어오는 유엽도를, 쇠기둥이든 암반이든 두부처럼 가를 칼날을 무시했다.
심장으로 날아오는 침투경칼날도 무시했다.
콰콱,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장철은 느꼈다.
목을 친 유엽도가 불꽃을 내며 튕겨나가는 것을, 심장을 찌른 보이지 않는 칼날이 흩어진 것을.
눈을 부릅뜬 채 물러나는 자, 유엽도의 인물에게 장철은 바람처럼 흘러갔다.
본능적인 반응으로 유엽도의 칼바람을 미친 듯이 일으키는, 그렇게 물러나려는 자에게 손을 뻗었다. 붉은 손그림자가 그의 가슴을 쳤다.
펑, 가슴에 커다란 구멍에 생긴 채 유엽도의 채널러는 허공을 날아갔다. 부들거리는 육신이 떨어진 곳은 왜소한 중년인의 앞, 그가 눈을 치뜬다.
“나는 대가를 받고 일할 뿐이야.”
장철은 무심한 목소리를 던졌다. 상대가 알아듣거나 말거나, 내가 하는 지금의 이 행동은 너희에게 원한 같은 게 있어서가 아니란 것을, 월급을 받고 일하는 월급쟁이처럼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란 의지를 던졌다.
“우와아악!”
왜소한 중년인은 격렬한 기합을 터트렸다. 그의 전신에 투명하고 위험한 기운이 확 뭉치며 팽창했다. 그 팽창 속에 터져 나오는 것은 유엽비도다.
장철은 두 손을 흔들었다.
기관총의 발사처럼 비상해오는 유엽비도들, 저 왜소한 몸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비도들을 지니고 있었던 건가 싶은, 장철 자신을 죽이기 위해 비상해 오는 칼날들은 모조리 강타했다.
왜소한 중년인은 경악한 눈으로 휘청거렸다. 그 눈동자가 바라보는 앞에 장철이 파괴한 비도들이 떨어졌다. 정확하게 반씩이 동강난 칼날들이.
“더 할 거 없으면 끝내자.”
장철은 진각을 밟았다.
왜소한 중년인이 한 것처럼, 도림천 산책로의 바닥을 밟아 도장을 찍으며 오른손 주먹을 내질렀다.
붉은 힘이 터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