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35화 (135/200)

황혼의 살인자. 135. 귀신을 부린다는 것.

135. 귀신을 부린다는 것.

7호실에 들어 가부좌의 명상모습인 장철을 화면으로 보던 함인건은 조중건을 돌아봤다. 꿈틀 하며 눈가로 반응을 보인 조중건은 입을 열었다.

“뒤탈이 날 걱정은 없습니다. 현장을 완벽하게 처리했습니다.”

함인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 받았고 인지하는 내용이다.

대림동의 중국 국가안전부 거점을 격파하는 일은 성공했다.

귀신은 생각보다 훨씬 잘했다. 아니 그렇게 말할 결과가 아니다.

무서울 만큼 제대로 했다.

‘현장주변 카메라영상들은 모조리 수거했고, 경찰의 빠른 봉쇄도 이뤄졌고.’

아침 뉴스에 보도되고 있는 내용은 아직 단편적인 것들이다. 하지만 서울시내 대림동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충격으로 팥죽단지처럼 끓고 있다. 내다보진 못했지만 귀를 열고 있던 주변시민들의 신고가 있던 거다.

“보도자료 배포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하며 폰으로 지시하는 조중건을 보며 함인건은 영상을 떠올렸다. 도림천에서 귀신 장철이 중국인 채널러들을 격살하던 모습이다.

그렇다, 그건 말 그대로 격살, 박살이었다.

귀신은 경악스럽게 강했다.

‘그걸 뭐라고 해야 하지? 장풍?’

새삼 황당한 생각이 들어 함인건은 실소할 뻔했다.

그런데 헛웃음을 터트릴 일이 아니기에, 엄연한 현실이고 실제란 것을 절감한다.

채널링은 진실이고 채널러들은 엄존하는 거다.

국정원의 비밀을 안 건 행운이었다.

‘예산외 예산이 빠져나가던 곳 g6……’

처음 누구의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g6를 비밀 속에 감춰둔 것은 정말 혜안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g6의 진실한 의미는 흐려져 갔다.

국정원장들이 자리를 바꿔가는 동안 비밀지원조직의 하나로 묻힌 거다.

‘내가 다시 닦아놓기 전까지는.’

예산을 다루는 기조실장의 권한으로 g6를 종말팀과 합쳐 운용하도록 했다.

물론 함인건 자신은 그저 기조실장이 아니다. 원장과 차장들을 아우르는 실질적인 지배자다. 치명적 약점을 틀어잡은 그들을 이용하고 있다.

“보시겠습니까?”

조중건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벗어난 함인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중건은 앞서 나갔고 둘은 시체들이 누워있는 지하실로 향했다.

어제는 좌명균과 1팀원들의 시신이 누워 있던 장소, 오늘은 중국인 채널러들이다.

“뭐라고 형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침 삼키며 나온 조중건의 목소리, 함인건은 비슷한 심정으로 시체를 봤다.

물속에서 튀어나와 귀신에게 칼을 휘두른 자는 가슴에 구멍이 났다.

그냥 구멍이 아니라 축구공만한 크기의 구멍이다.

장철의 주먹질 결과다.

‘장풍, 권풍.’

머리에 떠오른 것을 다시 황당해하며 함인건은 두 번째 시체를 봤다.

왜소한 중년인, 중국인 채널러들의 리더다. 머리가 사라졌다.

역시 장철이 주먹을 내지른 결과다. 거리를 격하고 뻗은 그 주먹질이 머릴 부쉈다.

‘산산조각으로, 흔적도 없이.’

뜨거워진 침을 목구멍으로 넘긴 함인건은 전율로 이는 소름을 밀어냈다.

‘달라, 확실히 급이 다른 거야.’

귀신 장철의 능력, 놀랍도록 강력하다.

g6의 채널러 요원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채널링능력에 대해 알고 있지만, 귀신의 파워는 정말 놀랍다.

이건 치명적이다. 염동력이나 기타능력에 비할게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g6의 의미와 효용성을 확실하게 확인했어.’

그러기 위해 지시하고 명령했었지만 그 정도를 넘은 일이다.

“폭경이라는 기법과 비슷합니다.”

조중건의 목소리에 반응하며 함인건은 시선을 돌렸다.

“좌팀장도 이런 비슷한 힘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만, 한번 사용하고 나면 두 번째 사용에 무리가 따른다고 했습니다. 발출한 파워를 보충하고 회복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죠. 그런데 귀신은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미간에 힘을 준 함인건은 물음을 냈다.

“이걸 뭐라고 생각합니까? 옛이야기에 나오는, 아니 영화나 소설 같은데 있는, 장풍 같은 거라고 봐야 합니까? 좌팀장은 뭐라고 설명했습니까?”

“아 그게……”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던 조중건은 사라진 오른팔을 한번 보고 대답을 냈다.

“그렇게 판단하는 게 맞을 겁니다. 좌팀장이 훈련한 연구보고서를 검토하면 더 이해가 빠르시겠지만,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언급하신 그런 겁니다. 내경이라고 하는 속힘을 채널링이란 수단으로 발출하는 겁니다.”

입술을 혀로 핥은 조중건은 뒷말을 빠르게 이어냈다.

“본래 무예수련의 결과에 따라 가능한 것인데, 채널링은 고속열차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경이란 탄환을 만들고 체외로 발출하는 총과 같은 역할이라고 좌팀장은 비유했습니다. 연마에 따라 대포가되는.”

마지막 말을 속으로 되뇌며 함인건은 귀신을 생각했다.

‘장철은 대포?’

그렇게 여겨지는 결과다.

대포까지는 몰라도 벌컨급의 중화력인건 분명하다.

상대의 능력과 힘을 무시하는, 강력한 파워를 가진 존재인 거다.

그런 자를 부리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절감케 된다.

‘귀신을 부리는 건……’

돈이 아니다. 장철이 원하는 건 조웅과 이영숙의 완전한 사면이다.

그렇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결과를 지금 보고 있다.

그런데 귀신이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모른다. 귀신에겐 다른 의지가 있을 것만 같다.

“후.”

숨을 소리 내 뱉은 함인건은 조중건과 눈을 맞췄다.

“다음 일, 신속하게 진행합시다.”

조중건은 눈동자를 강하게 번득였다.

“알겠습니다.”

* * *

-대한민국의 치안력에 구멍이 생긴 건 아닌지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얼굴의 뉴스앵커를 바라보며 최재우는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밤새 엄청난 사건이 또 생겼다. 대림동에서 중국범죄조직 거점을 소탕하는 작전이 펼쳐진 거다. 경찰과 국정원이 합동으로 작전을 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하고 다수의 사망자가 나온 유혈사태였다.

-흑사회라고 부르는 중국암흑가의 그림자가 국내에도 드리운 결과입니다. 삼합회계열의 조직이 마약유통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외형은 영상으로 보이는 바와 같이 중국물품을 수입 유통하는 곳이지만 실상은 마약을 유통하고 국내에 조직을 포진하는 역할을 해온 것으로……

뒷골에 인기척이 느껴져 최재우는 뒤를 봤다.

“앉아서 뉴스만 보니까 좋냐?”

과장 이왕길이 고개를 빼고 있다. 최재우 자신의 어깨위로 넘겨다보듯이, 자신이 보던 뉴스를 바라본다. 그런데 흘려낸 말은 호의적이지 않다.

이렇게 서에 처박혀서 뉴스보고 서류만 만지작거리는 꼴을 지적한다.

“싸댕기지 말라고 할 땐 지독하게 말 안 듣더니, 이젠 이러기냐?”

시선을 내린 이왕길은 옆의 의자를 당겨 최재우 옆에 앉았다. 할 말이 없어 한숨 쉬는 최재우를 째려보듯이 응시한다. 그러던 끝에 혀를 찬다.

“누가 보면 실연당한 노총각이라고 하겠다? 아니 사별한 홀아비인가?”

최재우는 바로 발끈하며 반응했다.

“과장님?”

“어 그래, 미안. 너 연주한테 잡혀 살지? 그 말은 최소다. 근데 네 꼴이 지금 그렇잖아?”

뭐라고 변명 섞인 반발을 하려던 최재우는 그 순간 들리는 뉴스로 시선을 돌렸다.

-현장 인근 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도림천 산책로에서도 싸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들이 흉기를 들고 싸우는 걸 목격하던 와중에, 경찰인지 국정원인지 모를 사람들이 다가와 제지당했다는……

시선을 돌리게 한 대목, 귀를 파고드는 이야기에 최재우는 귀를 세었다.

-이상한건 도림천 현장에 그런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경찰도 이 부분에 대해 아는 게 없다며 언급을 피하고 있습니다. 더더욱 이상한건 사건 현장 주변 그 어떤 카메라에도 영상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겁니다. 국정원에서 조치한 결과라는데,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한 부분……

최재우는 멈췄던 좁힌 미간을 꿈틀거리며 물음을 던졌다.

‘뭐지? 뭘 감추려는 거지?’

곁에서 과장 이왕길이 계속 뭐라고 했지만 최재우는 듣지 못했다.

* * *

스르르 눈을 뜬 장철은 깊은 숨을 거듭해서 들이 내쉬었다.

내려갔던 깊은 곳의 공허를 곱씹었다.

거대한 존재, 천둥벽력 같은 울림을 주던 그 존재는 없었다.

붉은 외눈의 다른 존재들도 없었다.

암흑만이 출렁였다.

‘내게 할 일을 주고 자신의 할 일을 하러 간 거야.’

깊은 곳의 공허는 그래서다. 전쟁, 그곳이 그러함을 안다.

그런데 이곳도 마찬가지다. 채널러들을 동원한 작은 전쟁이 어둠속에서 시작했다.

‘인간들의 침습으로……’

거대한 존재에 의하면 그러한 원인으로 전쟁이 일어났다 했다.

무슨 소린지 안다, 채널링이다.

한국에서 이러했듯이 전세계각지에서 마찬가지인 거다.

중국과 일본은 야욕을 드러냈다.

그들이 뭘 하는지 알 수 없다.

‘힘을 준다고 했지. 정말 그랬어.’

거대한 존재의 힘, 중국채널러들과 싸우며 사용했다.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안다.

더 크고 강력한 힘의 싹이 트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이 힘을 사용해 이곳의 일을 막으라 했다.

그것이다, 장철 자신이 살아난 이유.

‘한다.’

붉은 안광을 흘려낸 장철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 후에 내가 갈 곳이 어딘지 보겠다.”

장철을 비추는 천장구석의 카메라는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 * *

-고초희의 흉악한 범죄행각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녀를 따르고 명령을 받아 범죄를 저지른 가드들의 자백에 의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뉴스가 흘러나오는 모니터에 시선을 박은 채 함인건은 커피를 마셨다.

남산의 푸름이 보이는 이 자리에 앉아, 국정원 기조실장의 의자에 몸을 묻고 이렇게 커피를 마실 때가 가장 좋다. 의도가 풀릴 때는 더 좋다.

‘고초희.’

그녀에 대한 판단을 두고 갈등했었다.

귀신이란 존재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옳은지, 세경그룹의 미래를 어떻게 해야 맞는 건지 갈등했었다.

그런 속에서 고초희를 R호텔로 들어가게 했고 이후를 지켜봤다.

‘결론은 역시 그랬지만.’

고종환회장을 버리기로 결정한, 아니 그의 대응에 대한 결과를 지켜보기로 한 것과 같았다. 그가 도움을 요청했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성회의 결론도 그랬다.

그들이 원한 건 고종환의 몰락이었다.

‘그렇게 해서 가지게 될 것을 어떻게 참겠나?’

차가운 미소를 지은 함인건은 다시 뉴스에 의식을 집중했다

-고초희는 법무이사 민승환을 협박해 범죄에 가담토록 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세경그룹의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도록 법률적인 부분을 담당한 것이 민승환 법무이사인 것입니다. 이들이 저지른 참혹한……

상계지구대 민수경 경사의 살인을 비롯한 그동안의 범죄가 흘러나온다. 그런데 그 끝에 나오는 이야기는 반갑지 않다. 덮어야 할 부분인 거다.

-의혹의 핵심중 하나이자 가장 강력한 정수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채널링이란 것입니다. 한세일보 발 진실의 파장은 여론을 흔들고 온라인을 장악한 실정입니다. 진실인지 아닌지는 아직 분명치 않지만 증거영상……

장례식장 영상, 귀신 장철과 고초희가 싸우는 광경이 나온다.

분명하게 보이지 않도록, 일부러 흐릿하게 만든 영상이다.

그렇지만 다 알아볼 수 있다. 고초희가 괴성을 지르자 주변물건들과 콘크리트가 나는 광경.

미간을 구기며 뜨거운 숨을 내쉰 함인건은 눈을 감았다.

동시에 귀신을 생각했다.

이단계 체널러가 분명했던 고초희를 목 뽑아 죽인 귀신, g6 1팀을 전멸한 중국인 채널러들을 죽인 존재, 그 무게를 새삼 삼켰다.

* * *

도림천에서의 일을 떠올리며 황철현은 커피를 마셨다. 잠이 모자란 데도 커피는 계속 당긴다. 그래서 더 잠을 못자는 거겠지만 지금은 필요하다.

‘귀신……!’

커피 때문에 뜨거운 입안의 숨처럼 가슴이 뜨겁다. 귀신이 중국인 채널러들을 죽이는, 박살내는 광경을 떠올리면 심장의 고동을 주체 못한다.

‘이단계, 아니 그 이상의 존재야.’

귀신 장철은 그런 자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실체를 경험하고 있는 채널링, 그것엔 단계가 있다.

이단계에 들자면 미지의 존재와 접촉해야 한다.

조국장이 말한, 한용수의 말에 의하면 붉은 외눈이다.

‘귀신은 그런 존재와 합체한 건가?’

그렇다고 봐야할 터다. 그게 아니면 귀신의 능력은 설명이 안 된다.

그런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귀신은 그이상은 것 같다는.

‘귀신을…… 우리가 부릴 수 있는 거야?’

커피잔을 손에 든 채 황철현은 모니터를 봤다. 7호실의 귀신 장철, 그는 식사를 하고 있다. 태연하고 평범한 모습으로 넣어준 밥을 먹고 있다.

‘아니, 귀신의 필요에 의해서라면 모를까, 귀신은 부릴 수 있는 자가 아니야.’

예감을 확신으로 삼키며 황철현은 커피를 마셨다. 뜨거운 줄도 모르고, 입천장과 목구멍이 데는 줄도 모르고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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