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36화 (136/200)

황혼의 살인자. 136. 세컨드어택.

136. 세컨드어택.

-고초희에게 내부의 정보를 전달하던 경찰청 간부들이 긴급 체포됐습니다. 이들은 고초희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민승환변호사가 고초희의 수족이 된 것과 유사한 경우인 것으로……

시사보도프로그램, 사회적인 현안에 의문을 제기하고 실제적 진실이 뭔지 밝힌다는 취지의 방송이다. 유명한 이름으로 패러디 된 것들도 많다. 프로그램만큼 유명한 진행자를 보는 장철은 무심한 시선만 흘려냈다.

-고초희와는 별도로 고종환회장의 라인이 존재했다는 것도 드러났습니다. 경찰은 당혹 속에 대대적인 사정에 나서고 있습니다만, 고종환회장 같은 거물과 결착한 인물이 누구일지를 두고 여론이 분분한 상황입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의문으로 당연하게 의심되는 것은 경찰 수뇌……

끝내 경찰청장이란 직함이 거론되는 걸 장철은 들었다.

-경찰청장은 여론의 의문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만, 그동안 고종환회장과 긴밀하게 연락하고 접촉을 가져온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청장의 측근인사와 주변에서 나온 증언들로……

결국 저런 거다. 살기 위해 팔수 있는 걸 파는 거다. 대가리가 드리워진 경찰청장을 다른 놈들이 팔아먹고 있다. 그렇게 제 살길들을 찾는 거다.

-고초희가 살해한 것으로 확신되는 채널링 연구자의 유골을 찾아냈다는 소식입니다. 고초희가 사용하던 차명폰과 개인기록을 검토한 경찰은……

과천 고종환회장 저택 뒤의 야산에서 유골을 찾아냈다는 이야기다.

고초희가 어떻게 살해하고 그곳까지 시체를 이동해 묻었는지는 밝혀야할 부분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중학생 여자애가 어떻게 그게 가능 했을까.

-사건과 관련해 채널링이 세간의 뜨거운 주제가 됐습니다.

채널링이란 말에 장철은 눈동자를 응축했다.

이젠 숨길래도 숨길 수 없게 된 단어다.

내막의 배경이 드러났다. 물론 그렇게 된 것엔 장철 자신의 공이 크다.

고초희와 싸우던 장례식장 영상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채널링은 실시간 검색순위 1위에서 내려오질 않고 있습니다. 관련한 내용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이해한 시민들의 반향은 더 뜨거워지는 상황입니다. 채널링이 단순한 정신학문의 분야를 넘은 군사력으로서의……

그런 내용들까지 이해하고 논의하는 상황인 된 거다. 파도가 한번 치면 연이어 들이치듯이 사람들의 인식은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어젯밤 일어난 대림동 중국마약조직 소탕작전도 채널링과 관련된 사건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해가 어려운 부분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것이 사건 현장 주변 영상이 전부 제거된 부분입니다. 국정원이 주체가 된 사건이란 점도 그런 의문에 힘이 실리는……

대림동 현장화면이 나오는 가운데 진행자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국정원은 귀신 장철을 검거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고종환회장의 장례식장에서 고초희를 살해한 귀신 장철을 사살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국정원의 진정한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과연 국정원은 채널링에 대해 모르고 있었을까요? 이전부터 알고 있던 내용은 아닐까요?

역시 유명한 프로그램답게 핵심으로 접근하고 있다.

-미국 같은 선진각국에서 오래전부터 연구해왔다는 채널링, 비대칭 전력의 일환으로 연구와 투자가 이뤄져왔고 진행 중이라는 그것에 대해 국정원은 몰랐을까요? 알았을까요? 우리나라는 아무것도 안했을까요?

진행자의 눈은 날카롭게 빛난다.

-만일 우리도 채널링에 대해 연구해왔다면, 그런 배경으로 사건들이 관련돼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알게 된 진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입니다.

진행자의 무겁게 빛나는 눈을 응시하며 장철은 리모컨을 눌렀다.

tv는 바로 침묵 속에 잠겼다.

고요만이 내려앉은 실내, 장철은 일어섰다.

천정 구석의 카메라를 향해 손을 들었다.

반응은 바로 왔다. 문이 열렸다.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경직한 눈빛의 국정원 요원에게 장철은 원하는 것을 말했다.

“몸을 써야겠소.”

* * *

체력훈련장으로 들어간 장철을 모니터로 응시하던 황철현은 조중건을 돌아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조국장은 무거운 시선으로 장철을 보고 있다. 국장의 윗선이 누군지 이번에 알았다. 기조실장이었다.

‘원장보다 힘이 센 기조실장이라는 말을 듣긴 했었는데……’

은밀한 이야기다. 국정원 밖에서 현장 근무만하는 황철현 자신 같은 자에겐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내부의 소문, 실상 그런 것엔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사실인 거다. 함인건 기조실장이 실세며 조국장의 윗선이다.

‘기조실장의 위는?’

모른다. 조국장이나 함실장이 말해주기 전엔 모를 부분이다.

그런데 확실히 그런 게 존재한다고 본다.

아무리 실세 기조실장이라 해도 국정원장이나 차장들을 주무르자면 그럴만한 힘이, 확실한 배경이 있어야 한다.

‘정치적인 것이든 뭐든.’

함인건 기조실장은 아직 오십이 안 된 사람이다.

능력만큼은 탁월하다고 정평이 난 인물이다.

중학생 때 혼자가 돼 어렵고 공부하고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다.

후견인으로 대단한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후견인이 진정한 힘을 가진 배경일 지도……’

조국장의 얼굴에 놀람이 들어차는 걸 본 황철현은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가볍게 도움닫기를 시작한 장철은 귀신같이 움직이고 있다. 혼자서 가상의 적을 대상으로 격투를 벌이는 것 같은 모습, 분간 못할 스피드다.

‘가볍게 몸을 푸는 정도인 거야.’

지금 저 모습이 그런 것이란 걸 황철현은 확신했다. 어젯밤 도림천에서 본 광경은 다시 떠올리면서다. 그런 놀람과 전율은 혼자만이 아니다.

“정말 귀신이야……!”

감탄인지 뭔지 모를 반응을 낸 조국장은 고개를 돌린다. 흔들리던 눈동자는 깊게 가라앉는다. 응축한 그 눈동자의 힘이 내는 목소리는 무겁다.

“함인건 실장이 모시는 분이 있다.”

황철현은 눈가를 움찔했다. 물어보고 싶지만 물어보지 못하던 것이다.

“선생님이라고만 나도 알고 있다.”

한 번도 대면한 적 없다는 소리다.

그렇지만 그런 존재가 있고 함실장의 위에서 지시하는 인물이란 거다.

역시 더 강한 배후, 짐작한 그림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기로 맹세한 분이지. 함실장은 당연히 그 대의를 좇아 충성하는 거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 국정원은 함실장이 장악했다. 선생님의 의지로 만든 결과지. 그분의 힘은 정말로 크다.”

국정원을 장악했으니 당연히 그렇다는 걸 황철현은 절감한다.

크다는 힘의 크기가 국정원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란 것도 짐작한다.

그래서 의문이다.

선생님이란 인물이 누구일까?

그럴만한 인물이 감이 안 잡힌다.

“오성회라고 들어봤나?”

미간을 좁혔던 황철현은 기억을 잡았다.

오성회, 정가에 떠도는 풍문 같은 이야기라고 정치기사에서 읽은 적이 있다.

조국장은 그걸 말하는 거다.

‘그것도 실재한다고?’

조국장이 이어내는 이야기는 놀람과 의문을 해소해 준다.

“김호라고 알 거다. 8선의원을 지내고 은퇴한 정치원로지. 좋은 말로 정치원로고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탐욕으로 숨 쉬고 있는 늙은 쓰레기고.”

입술을 혀로 핥으며 사이를 둔 조국장의 목소리는 다시 이어진다.

“김호를 중심으로 오성회가 존재한다. 정치계와 관료계, 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원히 그러고 싶어 하는 늙은 쓰레기들이 그들이지. 그들에게 선생님의 의지로 함실장이 접근해 더 강한 힘을 줬다. 정말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해줬지. 여의도 정가에선 김호와 오성회를 두려워 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그렇게 된 건지 황철현은 전후를 짐작했다.

함인건실장이 가진 내밀한 정보들이 칼이 된 거다.

금배지들은 그 칼을 맞을까 떠는 거다. 국회에 발을 들인 자 치고 안 그럴 자는 찾기 힘들다.

“오성회는 도구다. 선생님과 함실장이 가는 길에 짚는 지팡이 정도인 거지. 그들이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지금 손에 쥔 힘에 어떻게 취해있는지는 알바 아니야. 결국인 그들도 쓸어버려야 할 더러운 쓰레기니까.”

그런데 오성회는 그걸 모른다는 것.

아니 어쩌면 그들도 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김호처럼 뱀 같고 여우같은 늙은이가 의심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선생님이란 존재와 함실장의 손바닥 안인 거다.

“여태 우리가 해온 일이 그렇지만……”

조국장의 눈동자가 이글거리는 걸 황철현은 분명히 봤다.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은, 이뤄나가는 일은 진정 나라와 국민을 위한 일이다. 우리가 해야 한다. 이뤄내야 한다. 진짜 좋은 나라를 만드는 거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는 가운데 황철현은 입을 열었다.

“저는……”

그 순간 부하요원이 다가왔다. 긴장한 얼굴로 빠르게 보고한다.

“일본정보국의 거점을 확인했습니다.”

눈동자를 확 팽창한 조국장은 강한 목소리를 토해냈다.

“귀신을 준비시켜.”

* * *

작전이동차량에 올라탄 장철은 시선을 던지는 자와 눈을 맞췄다.

황철현팀장, 어젯밤 대림동에도 같이 갔던 종말팀 리더다.

목례하는 반응에 마주 목례했다. 그런데 오늘은 종말팀 외에 다른 자들이 함께 타고 간다.

‘채널러 요원들.’

2팀이다.

좌명균 1팀의 전멸 후에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들이다.

1팀처럼 정제된 기운을 흘려내고 있다.

장철 자신을 보는 눈이 날카롭다.

적의가 아니라 호기심과 흥분이다. 귀신의 능력을 알기 때문이다.

“목표지점은 판교에 위치한 원소프트라는 게임개발업체입니다.”

입을 연 황철현은 작전에 대해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다들 이름은 들어봤을 겁니다. ‘데드위시’ 라는 온라인게임으로 유명한 회사입니다. 70년대 말 찰스 브론슨이 주연한 영화와 제목이 같습니다.”

말하다 말고 황철현은 장철을 힐끔 봤다. 흉악범들에게 아내와 딸을 잃은 남자가 복수한다는 영화 내용, 장철의 사연과 비슷해 기묘한 느낌이다.

“원소프트는 배후에 일본의 합작사가 있습니다. 우리에겐 유명한 전범기업이 지원하는 걸로 파악됐습니다. 중요한 부분은 그들의 진실한 정체와 목적입니다. 내각조사실의 정보원들이 원소프트의 직원으로 암약중입니다. 그들이 이번 길한수소장 오피스텔을 습격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래서 지금 간다는, 황철현의 눈동자는 강한 빛을 낸다.

“중국의 경우에서 겪었듯이 일본도 채널링능력자들이 있습니다.”

황철현의 시선을 받은 자들, 2팀의 눈동자가 서늘한 광채를 흘려냈다. 1팀의 전멸로 충격과 분노를 삭이던 차다. 이제 역할을 할 시간인 거다.

“일본의 거점을 찾아낸 2팀에게 늦었지만 수고했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2팀의 팀장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는 걸 보며 황철현은 뒷말을 냈다.

“오늘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를 그들에게 확실하게 알려주는 날입니다. 당하면 가만있지 않는 다는 걸, 백배로 갚아준다는 걸 제대로 알립시다.”

2팀의 눈동자가 꿈틀거리는 가운데 황철현은 귀신에게 시선을 돌렸다. 뭘 생각하는지 무슨 감정인지 모를 깊고 어두운 눈동자, 귀신은 무심하다.

‘이자의 마음은……’

황철현 자신과 같지 않다. 같을 수가 없다. 같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잘해 봅시다.”

황철현이 마지막으로 낸 말, 장철은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위치 확인한다.”

팀원들과 통신하며 김충식은 어둠 저편을 바라봤다. 원소프트가 입주해 있는 빌딩, 통유리창으로 이뤄진 빌딩의 7층엔 아직도 불이 훤하다.

‘게임 개발은 개발자들의 영혼을 갈아 넣어서 만든다더니.’

밤새워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그렇기는 김충식 자신도 마찬가지다.

목표빌딩의 건너편 빌딩 옥상에 엎드린 처지다.

누군가에겐 이 밤이 tv 앞에 엎어져 뒹굴며 치맥을 즐기는 밤일 터다.

“체, 내가 언제부터 그런 걸 부러워했냐?”

옆으로 침을 뱉은 김충식은 스코프를 통해 그를 봤다.

‘귀신.’

그가 빌딩으로 들어가고 있다.

원소프트는 6층부터 10층까지다. 최상층인 10층에 그들이 있다.

일본 내각정보조사실의 요원들, 길한수 소장의 오피스텔을 급습해 자료를 훔쳐간 놈들, 늦었지만 이제 응징할 때다.

‘오늘도 별로 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예감인데.’

저격라이플에서 눈과 어깨를 뗀 김충식은 하늘을 보고 누웠다. 그러다 다시 엎드려 단말기를 들여다봤다. 귀신의 몸에 장착한 카메라가 전송하는 빌딩 내의 영상이다. 지금 이 영상을 황철현팀장도 보고 있을 터다.

‘2팀도 들어가나?’

의문을 삼키던 김충식은 답을 얻었다. 2팀이 귀신의 뒤를 따라 빌딩으로 들어가고 있다.

* * *

엘리베이터 앞에 멈춘 장철은 2팀의 기운을 감지했다.

아주 흐릿하다.

바람의 노래에 귀기울이고 그 흐름 속에 올라타라는 조언이 먹힌 모양이다.

저 정도라면 일본정보국의 채널러들은 기운을 감지하지 못할 거다.

‘10층.’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장철은 느릿하게 걸어오는 2팀을 바라보며 등을 기댔다.

문이 닫힌 엘리베이터는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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