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139. 죽음의 그림자.
139. 죽음의 그림자.
정말 오랜만의 휴식이다. 과장 이왕길이 강제로 안겨 준 휴가 덕분에 늦잠을 진저리나게 잤다. 그동안 못잔 잠이 보상받으려는 것처럼 밀려왔다. 간밤에 아내와 마신 술이 도와주긴 했지만 정말 제대로 잘 잤다.
“하웅.”
하품과 기지개를 진하게 뿌린 최재우는 침대를 벗어났다.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10시가 넘었다.
주방에서 날아오는 된장찌개 냄새에 홀리듯 나갔다. 그런데 아내 유인주는 주방이 아닌 거실에 앉아있다. tv를 본다.
‘응?’
뉴스에 눈을 박은 아내 유인주에게 말을 걸려던 최재우는 뉴스에 홀려버렸다.
-원소프트는 ‘데드위시’ 게임으로 유명한 기업입니다. 일본과의 합작으로 알려진 배경에 전범기업이 있다고 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벌어진 간밤의 사건내막을 두고 갖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느새 아내 옆에 앉은 최재우는 유인주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저 말이 믿겨? 야쿠자들이 국내에 만든 자금 세탁처였다는 말?”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에 더해 유인주의 물음을 더한 최재우는 복잡한 눈빛을 흘려냈다. 경찰이 수사한 내용이라는 것인데 거짓말 같다.
“뭔지 모르겠지만 진짜 내용이 따로 있는 거잖아? 그렇지?”
누가 경찰출신 아니랄까봐 제대로 짚는 아내다.
경찰이 발표한 내용을 경찰이 모를 수가 없는 것도 이유다.
분명 진실을 감추기 위한 내용이다.
난데없이 야쿠자와 얽힌 게임사의 사건이라니, 위화감이 강하게 든다.
“대림동사건도 그렇고 뭔가 냄새가 나잖아?”
이어지는 아내 유인주의 의문에 최재우는 강력한 공감을 느꼈다. 대림동사건, 중국 흑사회의 국내 마약유통거점을 박살낸 일은 생뚱맞은 갑툭튀다. 물론 공안과 정보계통의, 경찰내의 일들은 은밀하게 이뤄진다.
‘그렇다고 해도…… 중국에 이어서 이번엔 일본?’
모래를 씹는 것처럼 지금거리는 느낌이 입 안에 가득하다.
분명 보이지 않는 진실한 내막이 있다.
귀신이 죽고 난후에 이건 무슨 일들일까?
‘관련이야 전혀 없겠지만.’
귀신 장철로 인해 일어났던 사건, 엄청났던 그 일들과는 분명 관련이 없다. 그 일은 귀신의 죽음으로 끝났다. 그런데 뭔가 불안한 예감이 든다.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일체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 측 역시 이렇다 할 반응이 없는 가운데 경찰이 발표한 내용이 진실이 아니라는 주장들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한 배경으로는 사건 당시 현장인 원소프트 빌딩 내에 있던 직원들의 증언……
최재우는 직감하며 그 이름을 떠올렸다
“국정원.”
아내 유인주가 휘뜩 돌아보는 걸 느꼈지만 마주 시선을 돌리진 않았다. 저절로 흘러나오는 중얼거림, 자신도 그 소리를 귀 기울여 들었다.
“국정원이 하는 일인 거야. 저건 국가 간의 전쟁, 그런 거야.”
아내 유인주의 얼굴에 불안한 그늘이 드리우는 걸 모르는 채 최재우는 tv만 응시했다.
* * *
“타 새꺄!”
강도강간범을 차에 밀어 넣은 유지건은 화가 안 풀린 눈으로 범인을 노려봤다. 멀쩡하게 생긴 저 새끼는 여중생을 뒤따라가 집안에 까지 침투해 범행을 저지르려 했다. 천만 다행하게 여중생의 빠른 신고로 잡았다.
“학생이 집에 들어가면서부터 신고 안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유지건과 같은 눈으로 차 안의 범인을 노려보며 송치호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한다. 마음 같아선 흠씬 두들겨 패고 싶은 심정, 잘 참고 있다.
“그러게요. 그런데 저 새끼 상태가 맛 간 거 같죠?”
“그래, 딱 봐도 약 처먹은 새끼다.”
그런 놈을 잡았다. 여중생이 들어가 걸어 잠근 문을 부수고 진입했다. 집안에 아무도 없던 상황, 방문을 건 여중생을 잡으려고 문을 부수다가 집안을 뒤졌다. 숨겨둔 패물과 현금을 쥐고 웃는 동안 경찰이 온 거다.
“아유 이게 무슨 일이래?”
소곤거리는 투지만 누구라도 들을 수 있는 아줌마들의 목소리.
“여기 집터가 안 좋은 가봐. 귀신인가 뭔가 하는 흉악범이 살던 데라잖아?”
“그러게 말야. 아유 짜증나, 이 빌라단지 때문에 주변 집값도 떨어지고 있잖아?”
송치호와 유지건은 미간을 찌푸리며 서로를 봤다.
그렇다, 이곳은 귀신 장철이 살던 빌라단지다.
차안에 잡아 놓은 놈은 하필 이곳에서 지랄했다.
못 올 곳은 아니지만 별로 오고 싶던 곳은 아닌 곳, 이렇게 왔다.
“가죠.”
“그래, 가자.”
유지건과 송치호, 둘은 차에 올랐다. 그런데 홍인구의 전화가 왔다.
-뉴스 봤나?
이어지는 홍인구의 이야기에 두 형사는 미간의 내천자를 선명하게 만들었다. 대림동에 이어 판교의 게임회사에서 벌어진 사건, 심상치 않다.
-야, 나는 이상한 예감이 든다. 귀신은 죽었는데 아닌 것 같은 예감.
송치호가 바로 반응했다.
“뭔 헛소리냐?”
“그러게요, 장철 그 사람이 총격 속에 죽는 걸 다 봤는데요.”
그 영상을 안본 사람은 거의 없을 터다. 귀신 장철을 추모하는 이들의 모임도 온라인상에 생기고 있다. 그의 인생사와 손녀의 억울한 죽음에 동정하고 공감하는 이들의 목소리다. 그의 복수는 정당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이상한 예감이리고 하잖아. 니들은 귓구멍이 다르냐?
화내는 홍인구를 무시하고 송치호는 짜증을 냈다.
“아 됐다. 우리 들어간다. 나중에 지껄여라.”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는 송치호를 보며 씩 웃은 유지건은 차를 출발했다. 그런데 서로 돌아가는 내내 둘은 말을 하지 않았다. 생각이 가득 해서다.
* * *
깊은 곳의 정적.
암흑이 고요하게 출렁이는 속에서 장철은 움직였다.
그 무엇보다 자유롭게, 그 어느 때보다 임의롭게, 마음과 영혼이 가는대로 흘렀다.
암흑과 동화되어 흐르고 출렁이는 그 속엔 아무도 없었다.
‘거대한 존재도, 붉은 외눈의 다른 존재 그 무엇도.’
없다.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
알고는 있다. 전쟁이다.
인간들의 침습으로 인해 촉발한 전쟁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곳이 어디인지, 지금 장철 자신이 흐르는 이 암흑과 같은지 다른지, 모르겠다.
‘나에게 준 힘.’
흐름을 멈춘 장철은 암흑을 응시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주시다.
한도 없고 끝도 없을 것 같은 암흑, 그 속을 들여다보며 손을 뻗었다.
암흑의 요동친다.
무심하게 낸 장철의 손을 따라 출렁인다.
소용돌이가 된다.
그 흐름이 장철이란 존재를 타고 돈다.
용오름으로 휘몰아친다.
* * *
“저거!”
조중건은 눈을 치떴다.
모니터로 보는 7호실의 장철, 그가 명상에 든 상태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오른 손을 앞으로 냈다. 그런데 7호실 안의 기류가 요동친다.
좁은 저 공간 안에 검은 소용돌이가 들어차 흐른다.
“허.”
충격과 놀람속의 조중건은 허탈한 숨을 이어냈다.
한순간, 암흑이라고 해야 할 검은 기류가 생겨나 장철을 중심을 두고 소용돌이치다가 사라졌다.
그런데 그 결과가 있다.
장철이란 존재를 두고 주변이 가루가 됐다.
‘미친……!’
침대는 장철이 앉은 곳만 남기고 사라졌다.
의자와 테이블도 가루가 돼 흩어졌다.
벽과 바닥엔 무수한 흔적들이 생겼다.
면도날로 그은 것 같은, 소용돌이의 암흑기류가 만든 결과다. 콘크리트가 밀가루처럼 떨어졌다.
‘카메라가 무사한 건……’
장철이 의도해서다, 그렇게 판단된다. 아니면 저런 속에서 무사할 리가 없다.
귀신은 숨기지 않는 거다.
그게 협력하는 관계여서라기 보다는 담대함이다.
굳이 무엇을 숨기고 다른 마음을 품지 않아도 된다는 의지.
“후우.”
길고 깊은 숨을 내쉬며 상체를 의자에 묻은 조중건은 문득 그들을 생각했다. 간밤에 판교 원소프트에서 움직인 황철현의 종말팀을 비롯한 2팀, 그들의 현장에서 느꼈을 심정이 어떠했을지 새삼 가슴으로 인지된다.
‘저런 자를 적으로 만든 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용인의 온누리정신연구소에서의 일이 떠오른다.
‘귀신을 반드시 제거하라고 명령했지.’
그랬다. 조중건 자신의 그때 결정이었다. 당시로선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날 그곳에서 귀신에게 죽었을 수도 있다.
‘함실장은 그래서 나완 다른 거지.’
함인건, 조중건 자신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상관이다.
기조실장이고 국정원을 장악한 실세여서가 아니라 그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귀신 장철을 품은 그의 선택은 현명한 것이었다.
물론 귀신이 부활한 결과지만.
‘미국에서도 움직일 거라고 했는데……’
함인건은 예상하고 있다. 미국이 상황을 구경만 하고 있지 않을 거란 거다. 중국이나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게 강하고 무서운 상대가 그들이다. 국정원 실세인 함실장을 향한 움직임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했다.
‘어떤 형태로든.’
지그시 어금니를 물었던 조중건은 지금 귀신 장철이 보인 변화, 영상을 함인건에게 보냈다.
* * *
경직했던 숨을 다시 흘려내며 함인건은 폰에서 눈을 뗐다.
보광동 안가, 7호실 안의 귀신이 만들어낸 광경은 뭐라고 형용할 길이 없다.
상식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도 아니다.
채널링이란 자체가 그런 것이지만.
‘귀신.’
새삼 그 이름의 의미를 곱씹어 삼킨 함인건은 영상을 삭제했다. 폰도 분해해 버렸다. 멈췄던 차를 출발해 목적지로 향했다. 이내 도착했다.
삼선동에서 혜화동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길, 카페에 차를 대고 나갔다.
‘낙산공원.’
성곽아래 산책로를 향해 함인건을 걸음을 냈다.
자신을 이곳으로 부른 자, 국정원장 차승환은 이곳을 즐긴다.
자택이 혜화동인 까닭도 있지만 유난히도 이곳을 좋아한다.
그가 부른 이유가 무엇일지 짐작이 간다.
‘미국으로부터 가스가 들어왔겠지.’
그런 내용을 이야기 하려는 거다.
아무리 함인건 자신에게 실권을 양보하고 물러나 있지만 국정원장인 거다.
그런데 현재상황은 차승환이 실질적으로 양보해준 측면이 있다.
군시절의 비리자료에 굴복해서가 아니다.
‘무슨 소리를 할지……’
차분하지만 부지런한 걸음을 낸 함인건은 약속한 장소에 다다랐다. 성벽의 축성내력에 관한 표시판 붙어 있는 위치, 벤치에 차승환이 앉아 있다.
“원장님.”
미소를 지으며 차승환을 부른 함인건은 걸음을 멈췄다.
강렬하게 엄습하는 위화감.
지금 이 순간 이공간의 느낌이 그렇게 만들었다.
원래도 사람들의 왕래가 흔하지 않은 곳이지만, 주말인데도 너무나 조용하다.
“함실장.”
벤치에서 일어서 반가운 미소를 보이는 국정원장 차승환, 그 눈을 바라보던 함인건은 번개처럼 돌았다. 하지만 그 순간의 습격을 피하진 못했다.
퍽퍽퍽.
성곽 바로 아래 발을 딛고 선 산책로, 그 옆으로 비탈진 난간 너머 수풀 안에서 섬광이 터졌다. 소음기총격음이 퍼지는 가운데 함인건은 쓰러졌다.
줄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진 함인건을 수풀에서 튀어나온 자들이 업었다. 빠르고 기민하게 산책로를 벗어나는 그들 뒤로, 위쪽에서 누군가 왔다.
“차원장님.”
밝은 미소로 목례하는 자, 빅터차를 행해 차승환은 물었다.
“함실장을 밀착경호하는 팀이 있을 텐데요?”
빅터 차는 차가운 미소로 대답했다.
“그게 무슨 소용일까요?”
차승환은 옅게 찌푸린 미간의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함실장이 당할 때까지 아무 동정이 없었으니까.’
경호팀은 당한 거다. 함인건이 저렇게 당할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당했다.
역시 미국이다.
CIA, 이들의 힘과 능력을 절감하는 순간이다.
‘함인건.’
업힌 채 사라진 함인건을 생각하며 차승환은 눈가를 가늘게 떨었다. 자신의 비리를 무기로 국정원을 장악한 자, 그러나 그걸 용인 아닌 용인으로 받아들인 건 함인건의 눈 때문이었다. 차승환 자신이 가지지 못한 눈.
‘결국 이런 거다, 우리의 한계는 이런 거야.’
곁에서 미소 짓는 빅터 차의 시선 속에서 차승환은 시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