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141. 귀신플레이.
141. 귀신플레이.
“우회 격파한다!”
김충식 등에게 소리친 황철현은 미친 듯이 달렸다.
안가의 비상출구를 향해서다.
어떤 곳의 적들인지 모르지만 주 출입구로만 공격해 들어오고 있다.
비밀출입구에 대해선 파악 못한 거다. 그렇다면 뒤를 칠 수 있다.
‘지하로 나가서!’
통신선로와 우수관이 있는 땅 밑을 통해 나가는 거다.
옆 건물로 이동해 위치를 잡고 적들을 저격하면 귀신을 도울 수 있다.
아무리 귀신이지만 혼자서 싸우는 건 무리다.
동료 채널러들은 벌써 두 명이 희생됐다.
“서두르자!”
김충식과 다른 두 명의 팀원들을 독려하며 황철현은 지하통로로 들어갔다. 그런데 앞쪽에서 섬광이 터진다. 가슴에 충격을 받고 쓰러지며 알았다.
적들은 이곳도 파악한 거다. 그렇다면 결론은 돌파 아니면 죽음이다.
“뚫고 나가!”
쓰러진 황철현의 외침과 동시에 김충식과 팀원들의 총이 불을 뿜었다.
좁은 지하통로가 총격섬광으로 환해졌다. 케이제로 소총은 탁월한 위력을 발휘했다. 진입해오던 적들의 육신 안에서 폭발하며 흩어버린다.
한순간 격렬했던 총격전의 공방은 이내 끝이 났다.
방탄복 가슴의 충격을 밀어내며 몸을 일으킨 황철현은 팀원들의 안위를 살폈다.
귀신의 보우함인지 팔다리에 크지 않은 부상만이 전부다.
서둘러 전진해 나갔다.
“미국 같습니다.”
무겁게 가라앉은 김충식의 의견, 황철현은 공감했다.
진입해 들어오던 적들은 외국인들, 서양인들이다.
특수전 장비로 무장한 자들이다. CIA에서 운용하는 전투원들로 짐작된다.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안 좋다.
“나가자.”
불안을 털어내며 황철현은 빠르게 전진해 나갔다.
* * *
‘개새끼들이!’
이 악문 분노 속에 눈을 부릅뜬 조중건은 왼손의 권총을 겨누다 내렸다. 사라진 오른 손만큼 정확히 사격할 자신도 없지만, 2팀요원들이 대적해서다. 귀신이 치고 올라간 계단을 통해 내려온 적들, 채널러들이다.
‘저런 놈들이 있을 줄은……!’
흐릿한 영상의 잔영처럼 움직이는 놈들이다. 대원들의 총격을 희롱하며 피하고 있다. 한 놈은 그런데 다른 한 놈은 무시하고 맞고 있다. 체격이 영화 속 존재인 헐크처럼 커다란 놈이다. 온몸이 근육으로 불거졌다.
‘정말로 헐크야!’
놈이 휘두르는 주먹에 벽이 부서져 먼지처럼 휘날린다.
2팀의 스토퍼들이 놈을 속박하려 소리치지만 소용없다. 순간순간 멈칫하기만 할뿐이다.
게다가 다른 한 놈, 이놈은 황당 자체다. 입으로 불을 터트려 날린다.
“헉!”
가까스로 몸을 던져 피한 조중건은 2팀장과 다른 채널러 요원이 놈에게 달려드는 걸 봤다. 염동력을 발휘해 주변사물들을 무기로 날리면서다.
‘해치워버려!’
몸을 일으키며 강력하게 염원을 외치던 조중건은 얼어붙었다. 2팀장과 팀원이 폭발하며 튕겨 나와서다. 그렇게 만든 폭발은 화염, 무섭게 퍼진다.
* * *
품자로 막아선 적들, 채널러들을 응시하며 장철은 뒤를 가늠했다.
뚫고 나온 안가내부로 들어간 적들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두 명의 채널러가 들어갔다.
그들을 2팀이 잘 막아낼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은 앞이 먼저다.
‘중국이나 일본이 아니야.’
적은 바로 미국이다. 그렇다는 걸 저들이 말하지 않았고 귀로 듣지 않았지만 안다.
저들의 외모가 우선 그렇고 이렇게 대담한 공격이 그렇다.
한국 내에서의 작전에 대해선 수습가능하고, 필요하면 한다는 거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어디서나.’
흑인 한 명과 백인 한명, 그리고 히스패닉 한명이다.
세 명의 채널러들은 눈동자로 붉은 빛을 흘려내고 있다.
저 의미를 장철은 안다.
저들은 붉은 외눈의 존재와 합일된 자들인 거다. 이 단계를 넘은 채널러 들이다.
“헤이.”
백인이 부르는 소리에 장철은 시선을 던졌다. 얼굴 가득 미소를 피워낸 백인은 앞으로 나서며 두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그러자 그의 몸 주변에 기류가 휘돌며 맺히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내 수많은 칼날로 변했다.
‘바람의 칼날.’
백인의 형상을 덮어버릴 정도로 수없이 생겨난 기류의 편린들, 바람의 칼날들을 응시하며 장철은 눈동자를 응축했다. 붉은 외눈의 존재 셋과 합일해 나오던 붉은 눈빛은 이제 없다. 그 대신 무한의 암흑이 꿈틀댄다.
“kill it!”
백인의 외침이 터지는 순간 장철은 움직였다.
놈에게서 폭발해 나오는 수많은 바람의 칼날들을 향해 마주나갔다.
양손에 쥔 특수전정글도를 좌우로 펼치며 휘돌았다.
소용돌이가 되어 바람의 칼날들을 휘감았다.
* * *
“저놈은 뭐야?”
태블릿 화면에 눈을 박은 빅터 차는 황당한 놀람 속에 불안을 삼켰다.
채널러요원 중 하나를 두 동강으로 갈라버리고 튀어나온 놈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건지가 우선 이해가 안 되는 가운데 정체가 의문이다.
‘한국 채널러 중 한 놈?’
그렇다고 봐야한다, 그런데 저렇게 강한 파워를 가지 놈이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이단계 진입레벨의 체널러를 단번에 갈라버린 힘인 거다.
지금 그 칼을 양손에 쥐고 휘돈다. 스테판의 에어블레이드에 대적한다.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스테판의 에어블레이드에 산산조각……’
당연한 결과를 의심치 않던 빅터 차는 경직했다.
정체모를 한국의 체널러가 소용돌이처럼 휘도는 모습, 그 속으로 에어블레이드들이 휘감긴다.
저건 분명이 스테판의 공격에 의한 것이 아니다. 저놈의 수작이다.
* * *
스프링이 감기듯 소용돌이로 응축한 장철, 그 형상에 바람이 칼날들이 휘감겼다.
그런데 감아 돌리면 반대로 풀리는 것이 이치.
장철은 역회전 소용돌이로 팽창했다. 그 기세로부터 바람의 칼날들이 터져 나왔다.
화산의 폭발, 그런데 용암의 분출이 아닌 바람의 확산, 칼날들은 퍼져나갔다. 본래의 주인인 백인과 상황을 보며 눈을 치뜨던 흑인과 히스페닉 놈에게 날아갔다. 본능적인 반응으로 그들의 저희의 힘을 발산한다.
백인의 능력이면 충분할 것으로 보고 지켜보던 흑인과 히스패닉, 둘의 힘은 소닉파워와 그라운드파워다. 흑인이 소리쳐 발산한 힘은 투명한 방패를 만들었고, 히스패닉이 일으킨 힘은 보도블럭과 흙을 치솟게 했다.
장철은 바람을 타고 흘러나갔다.
이미 날려 보낸 바람의 칼날들 뒤로, 소닉쉴드와 그라운드월을 향해 나아갔다.
양손에 쥔 특수전정글도를 바람의 결로 실어냈다.
가름은 소닉쉴드와 그라운드월을 쪼개고 나갔다.
흘러나가 갈라.
울림에게 한 박자 늦었다는 걸 알리듯 장철은 가르고 쪼갰다.
거듭 힘을 터트리는 적들에게 진짜 칼날의 감각을 안겨줬다.
백인의 목을 날리고 소리치는 흑인의 입을 갈랐으며, 물러나는 히스패닉의 몸을 쪼갰다.
* * *
‘뭐!’
빅터 차는 경악으로 얼어붙었다. 숨을 쉬지 못하는 상태로 태블릿을 보고 굳어버렸다. 지금 눈으로 본 게 뭔지 헤아리려고 해보지만 되질 않는다.
스테판을 비롯한 채널러 요원들이 당했다. 적의 칼에 산산조각났다.
‘아니야!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부정을 외치며 빅터 차는 휘청거렸다. 자신도 모르게 일어선 상태, 의자를 잡고 겨우 균형을 잡았다. 그렇게 숨을 헉헉댔다.
그런데 충격은 중첩된다. 어디선가 총격이 날아와 요원들을 저격한다.
‘이것들이!’
보광동 안가를 포위한 유닛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고 있다. 스테판이 흘어지면서 그가 보내오던 영상이 사라졌는데, 다른 곳의 영상도 그렇다.
안가에서 나온 한국요원놈들이 부하들을 해치우고 있다.
이건 꿈이다.
“이!”
뒤늦은 외마디 목소리로 분노를 터트린 빅터 차, 귀를 파고드는 목소리에 돌아섰다.
“너희는 사신을 건드렸어……”
함인건의 죽어가는 목소리, 그러나 얼굴엔 미소가 맺혀 있다.
“저놈이 누구야!”
소리치며 빅터 차는 함인건의 멱살을 잡았다.
어린아이가 흔드는 인형처럼 흔들리던 함인건은 미소만 지었다.
빅터 차는 심중의 의심을 뱉었다.
“귀신이냐?”
말해놓고 빅터 차는 바로 부정했다
“아니야, 그놈하곤 생김새가 완전히 달라.”
그렇다, 스테판 등과 싸운 한국 놈은 귀신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젊은 놈이다. 귀신이 변장에 능하다지만, 저건 절대로 꾸민 용모가 아니다.
“저놈이 누구냐고!”
빅터 차는 거듭 소리치며 함인건을 흔들었다. 하지만 함인건은 미소만 지었다. 자신도 대답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흐려가는 눈으로 본 저 남자는 분명 귀신이다. 그렇다는 걸 안다. 그런데 귀신의 용모가 아니다.
* * *
저격 라이플의 방아쇠를 당기던 황철현은 움찔하는 반응으로 전신은 경직했다. 자신과 김충식 등이 주변 건물 옥상에 위치를 잡고 적들을 저격하는 이 순간, 귀신 장철은 미국 채널러들과 싸웠다. 무시무시한 광경이다.
‘죽였어.’
귀신이 결과를 냈다. 뭐라고 설명도 못하겠고 이해도 하기 힘든 능력을 발산하던 적들을 갈라버렸다. 그래놓고 다시 안가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하아……”
잊었던 숨쉬기를 겨우 다시 찾은 자처럼 황철현은 숨을 내쉬었다.
새삼스럽게 그 생각이 다시 든다, 귀신같은 자를 적으로 만들지 않은 다행이.
* * *
화염을 터트리던 채널러가 둘로 나뉘어 쓰러지는 광경.
현실이 아니고 환상인 것 같은 그 모습을 보던 조중건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귀신이 헐크 같은 자와 부딪쳤다.
양손의 나이프를 던지고 손과 발로 적을 친다.
헐크 같은 자의 육신이 뭉개지고 흩어지는 걸 보는 건 역시 또 다른 환영 같다.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은 귀신의 공격 속에 헐크는 허물어진다.
그 과정이 영원 같고 찰나 같다. 적들을 물리친 결과를 이제 받는다.
“부상자 수습해라!”
소리쳐 안가의 요원들을 독려하며 조중건은 황철현의 보고를 들었다.
-놈들이 차를 물리고 도주합니다!
“쫓아가지 마라. 지금은 여길 벗어나는 게 급하다.”
-알겠습니다.
황철현과의 대화를 마친 폰을 내리고 조중건은 2팀을 살폈다.
팀장과 팀원들은 부상이 심하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정도는 아니다.
이 정도인 게 귀신 덕분이란 걸 새삼 깨닫는다.
장철이 없었다면 오늘 전멸이었다.
“미국입니다.”
다가오는 귀신에게 심중의 것을 말한 조중건은 미간을 옅게 찌푸렸다.
언제부턴가 귀신에게 찐 존칭을 하고 있다. 경어를 사용하는 어투정도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나온 승복이다. 그걸 생각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실장님이 놈들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장철은 심유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를 돌려 해치운 적들을 봤다.
머리를 날려버린 채널러에게 다가갔다.
눈 부릅뜬 그 머리에 손을 대고 의지를 풀었다. 그러자 손을 통해 암흑이 출렁이며 나갔다. 머리에 스며든다.
“끄어어……”
조중건은 경악하며 뒷걸음질했다.
‘저거!’
귀신 장철이 손을 댄 머리, 미국채널러의 잘려나간 수급이 입 벌려 소리를 내고 있다. 부릅뜬 눈을 버들거리며 피를 흘려낸다. 목소리를 낸다.
“한국 국정원 기조실장…… 잡고 있다…… 이태원……”
영어로 지껄이는 말, 알고 싶은 정보를 듣는 이 순간을 조중건은 꿈이라고 생각했다.
지독하게 무섭고 끔찍한 고어영화를 보고 꾸는 꿈인 거다.
그런데 꿈이 아닌 걸 안다. 너무나도 생생한 현실, 대응해야 한다.
장철이 손을 떼자 머리통은 다시 죽어버렸다.
눈가를 떨며 침을 삼키던 조중건은 장철과 눈을 맞췄다. 그 순간 황철현 팀이 다급히 들어왔다.
“시간이 없을 걸로 생각합니다.”
장철의 말에 황철현은 무슨 소린가 미간 좁히다가 뒤늦게 내부결과를 보고 눈을 치떴다.
머리 잘린 적과 뭉개지고 부서진 거구의 적의 최후다.
그걸 곱씹을 새 없는 조중건의 명령이 터졌다. 함실장을 찾는 일이.
“이태원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