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142. 귀신이 온다.
142. 귀신이 온다.
전멸이다.
도심 속으로 스며들어 후퇴한 요원들을 제외하면 공격팀 전원이 전멸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채널러 다섯을 잃고 말았다.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에 빅터 차는 진저리를 치며 분노했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 이미 일어난 결과가 바뀌진 않는다. 중요한건 이제부터의 대응이다. 산개해 후퇴한 요원들의 걱정은 없다. 이곳을 그들은 모른다.
‘정해진 위치로 귀환하겠지만……’
현재까지 후퇴하는 요원들이 위험에 빠진 정황은 없다.
보광동 안가의 국정원 놈들은 그들을 적극적으로 추적하고 있지 않다.
그럴 여유도 없는 상황, 내부를 수습하기도 바쁘다.
국정원의 도움은 1도 받을 수 없다.
‘차원장에게 더 강하게 경고를 줘야겠어.’
보광동 안가 놈들이 전멸하지 않은 결과를 그가 안다면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숨통인 함인건을 잡고 있다. 죽어가고 있다. 차원장이 근본적으로 등 돌릴 일은 없다. 미국의 힘을 다시 알려주면 된다.
‘붙잡고 있는 줄이 어떤 줄인지.’
폰을 잡고 짧지만 강력한 어조의 메시지를 차승환 원장에게 보낸 빅터 차는 함인건을 다시 돌아봤다. 의식이 가물가물해져가는 자, 저 입으로 명확한 대답을 듣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그놈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보통 위중한 일이 아니야.’
채널러요원 다섯이 당한 결과다. 손톱만큼도 예상 못했던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건지, 한국이 그런 놈을 어떻게 보유하게 된 건지 알아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이 당한 건 약해서가 아니라 그놈 때문이다.
“이봐, 아직은 갈 때가 아니다.”
함인건의 뺨을 때리듯 두드린 빅터 차는 주사기를 잡았다. 함인건의 팔을 잡고 주사액을 찔러 넣었다. 그런데 그 순간 함인건이 중얼거린다.
“귀신이 온다……”
강하게 미간을 좁힌 빅터 차는 함인건의 팔을 놓고 물러나 바라봤다.
의자에 결박돼 고개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모습의 함인건실장.
혼몽함 속에서 지껄이는 잠꼬대 같은 말이 귀신이다.
그놈은 이미 죽었다.
“죽은 놈이 오길 바라는 거냐?”
냉소로 반응한 빅터 차는 그놈을 생각했다.
스테판을 비롯한 채널러요원들을 해치운 놈, 무섭게 강한 그놈이 존재한다.
그놈이 귀신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위험한 놈이 한국에 있다.
그놈이 공격해올 수도 있다.
‘아니 현재 위치를 아는 건 그들뿐이야.’
스테판을 비롯한 오인의 채널러요원들, 그들은 죽었다. 그들이 이곳을 말할 일이 없다. 살아 있다고 해도 누설할 가능성이 없다. 채널러들은 약물을 사용하던 어쩌든 정신제압이 안 된다. 따라서 여긴 안전하다.
“으……”
함인건이 부들거리기 시작했다. 주사약물이 퍼지는 반응이다.
“그래, 정신 차려라.”
다시 함인건의 뺨을 두들긴 빅터 차는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물음을 냈다.
“그놈이 누구야? 그것만 말해, 그러면 깨끗하게 보내준다, 고통 없이.”
물음을 받은 자, 함인건은 흐릿했던 의식에 들어차는 명료함으로 떠올렸다.
태블릿영상으로 본 엄청난 싸움의 장본인, 귀신 장철이다.
그는 분명 그다. 젊어진 다른 얼굴이지만 그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귀신이 온다고 지껄였지? 그놈이 귀신이라는 소린 아니지? 그렇지? 그놈 얼굴을 귀신 장철의 얼굴과 조합해 가능한 젊은 얼굴을 확인해 봤지만 전혀 달라. 그놈이 대체 누구야? 너희 채널링 연구가 그 정도라고?”
의혹과 놀람을 담은 빅터 차의 눈을 바라보며 함인건은 말했다.
“그냥 죽여.”
거칠게 미간을 뒤튼 빅터 차는 권총을 뽑았다. 클래식한 초기 버전의 콜트m1911, 아끼는 권총을 함인건의 미간에 댔다. 이 악문 숨을 뿜어낸다.
“얼마든지 죽여줄 수 있다. 너, 내 주변의 모든 것들, 이 나라에서 숨 쉬는 것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할 수 있어. 우리 손을 대지 않고도 말이야, 그게 가능한 이유는 네가 더 잘 알거다. 맞아, 우리는 너희 숨통을 잡고 있는 거야,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권총을 떼어낸 빅터 차는 차분해진 목소리를 이어냈다.
“네가 아직 살아 있는 이유는, 너희가 아직 숨을 쉬고 있는 건……”
뒷말을 내지 못하고 빅터 차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비상을 알리는 소리가 터져서다.
* * *
골목 안으로 들어가는 귀신 장철을 바라보며 조중건은 뜨거운 숨을 연신 삼켰다.
‘이런 곳에……’
이태원, 보광동에서 지척이다.
유흥가대로변에서 안으로 들어간 이면도로, 주택가와 상가가 혼재한 위치다.
할랄인증음식점, 2층짜리 저 건물이 CIA의 거점이다.
보광동 안가를 치기 위해 급조한 거점으로 추측된다.
‘너희가 귀신을 불렀어, 그게 어떤 건지 이제 알게 될 거다.’
흥분과 분노로 떨리는 숨을 조중건은 다시 삼켰다. 그러며 황철현팀이 움직이는 상황을 가늠했다. 귀신을 지원하기 위한 위치로 파고들어간다.
‘귀신, 당신 혼자서라는 의문이나 걱정은 더 이상 갖지 않겠습니다.’
귀신 장철이 사라져간 골목을 응시하며 조중건은 기원했다. 함인건 실장이 무사하기를.
* * *
-이상하지 않습니까?
김충식의 의문을 리시버로 들으며 황철현은 위치를 잡았다. 할랄레스토랑이 대각선으로 보이는 위치, 3층상가건물의 옥상 난간에 바싹 붙었다. 케이스를 열고 저격라이플을 빠르게 조립하며 뒷말을 이어 들었다.
-귀신의 모습이 젊어졌잖아요? 그런데 우린 그걸 이상하게 보거나 놀라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귀신이 저런 모습으로 변한 걸 지켜 본 것처럼 받아들였죠. 우리 반응이 그랬습니다. 당연히 귀신은 그러니까란듯이요.
김충식의 말이 맞다.
귀신은 젊은 모습으로 변했다. 우린 그걸 보고 놀라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인지로서 받아들였다. 그게 어느 시점부터인지 모르겠다.
귀신이 젊은 모습이 된 건 언제부터인지.
-귀신 혼자서 괜찮을까요?
이어진 김충식의 물음, 우려 섞인 소리에 황철현은 입을 열었다.
“여태도 혼자였다. 우리가 동행한다고 달라질게 없어.”
김충식은 묵직한 숨소리로 침묵한다. 반발할 수 없어서다.
귀신은 늘 혼자였고 불가능해 보이는 결과들을 만들었다.
오늘 공격해온 미국 채널러들 다섯을 해치웠다. 그런 존재를 걱정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인 거다.
‘실장님이 무사해야 할 텐데……’
심중에 들어차는 걱정과 불안을 밀어내고 황철현은 라이플을 어깨에 댔다.
“집중하자.”
김충식을 비롯한 다른 팀원들의 대답을 들으며 황철현은 호흡을 골랐다.
* * *
음식점을 향해 거침없는 걸음을 옮긴 장철은 문 앞에 섰다.
영업이 끝났다는 표시가 붙어 있는 음식점 안을 기웃거리듯 들여다봤다.
그런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느끼며 손을 들었다.
유리문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팡, 하늘에서 초음속 전투기가 날아갈 때 나는 소리 같은 충격음이 터졌다.
유리문은 산산조각으로, 아니 가루가 돼 흩어졌다.
문틀과 벽도 휘날려 들어갔다. 그 직후 침입을 알리는 경보음이 미친 듯 울려 퍼졌다.
아무 일도 없는 자처럼 담담한 얼굴로 걸음을 낸 장철은 우측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정권에 맺힌 암흑의 기운이 터져나가 총 든 놈을 강타했다.
드르르륵 하며 허공을 쑤시는 총탄 사이로 장철은 흘러나갔다.
또 다른 두 놈이 m4소총을 난사하며 튀어나온다.
빗발처럼 날아오는 그 총탄들 사이로 장철은 계속 흘렀다.
두 놈의 사이를 지나며 칼을 휘둘렀다.
한순간 형상이 여러 개로 흩어지는 놈들, CIA요원들 사이를 지난 장철은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밟았다. 낯설지 않은 함인건의 기운을 찾았다.
* * *
음식점 이층에서 움직이는 그림자를 향해 황철현은 방아쇠를 당겼다. 유리창을 지나 벽 뒤로 이동하던 형체는 뚫려버린 벽 뒤에서 쓰러진다. 다음 유리창에 그 모습이 비췄다. 그런데 그 유리창도 김충식의 총격에 터진다.
‘모조리 죽인다.’
악문 이의 시큰거림을 느끼지 못한 채 황철현은 연거푸 방아쇠를 당겼다. 김충식과 다른 팀원들의 총구도 미친 듯 불을 뿜는다. 소음기를 달았지만 야심한 밤거리를 울리는 소리가 작지 않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보광동도 여기도 내일 뉴스를 장식하겠지.’
이 악문 숨 속의 황철현은 탄창이 비도록 총을 쐈다.
* * *
계단을 내려가던 장철은 아주 잠깐 멈춰 섰다.
2층에서 움직임이 감지돼서다. 이미 인지하던 기운들, 예상한 일이다.
그런데 사라지고 있다. 왜 그런지 안다, 황철현팀이 저격하는 거다.
이놈들은 전혀 예상 못했다.
‘너희가 손짓해 알려준 거다.’
이곳까지 찾아온 길, 죽은 자의 의식을 깨워 알아낸 정보에 의한 것이다.
터무니없는 일, 가능하지 않은 결과다.
거대한 존재가 준 힘이다.
그렇기에, 이곳이 드러날 가능성이 없었기에 이놈들은 안심했다가 당한다.
드르르륵.
계단아래서 날아오는 총탄사이로 흐릿한 형상이 돼 흘러간 장철은 나이프를 후렸다.
네 명의 CIA요원들을 흩어버렸다. 그렇게 문을 봤다.
함인건 실장의 기운이 느껴지는, 그의 숨결이 흘러나오는 문이다.
두 자루 특수전 정글도를 허리 뒤 케이스에 갈무리한 장철은 주먹을 쥐었다.
암흑의 기운이 감싸고 뭉치는 주먹, 문을 향해 나가며 내질렀다.
폭음을 꼬리로 달고 문이 터져 들어갔다.
그 순간 안에서 총탄이 쏟아져 나왔다.
죽음이 빗발치는 그 속으로 장철은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봤다.
죽어가는 함인건 실장과, 그 뒤에 붙어 총질하는 CIA 책임자 놈.
철컥철컥.
탄창이 비는 소리에 이어 권총이 포효한다.
소총을 버린 놈이 콜트의 탄창을 또 비운다. 그러는 동안 장철은 지하실을 흘러 누볐다.
그 움직임의 끝은 탄창을 갈아 끼우는 놈, 그 손과 목을 움켜잡았다.
“컥!”
두발이 들린 채 허공에 뜬 놈, 충격과 경악으로 눈이 터질 것 같은 놈을 장철은 천천히 내렸다. 눈높이가 같아지자 잡은 손을 놓고 물러섰다.
“이!”
놈이 다시 권총을 겨누는 순간 장철은 허리 뒤 나이프를 뽑아 후렸다.
“크악!”
오른 손이 사라진 놈, 벽에 튕겨 떨어지는 권총 잡은 자신의 손을 보며 휘청거린다. 그 사이에 계단을 차고 내려오는 자가 있다. 조중건국장이다.
“실장님!”
격하게 부르짖은 조중건은 함인건에게 달려와 결박을 풀었다. 대기하던 지원팀에게 다급하게 오라고 지시한다. 그리곤 빅터 차를 본다. CIA라는 건만 알지 신분이 뭐고 이름이 뭔지 모르는 자, 함인건이 말한다.
“빅터 차……”
손이 잘려 부들거리며 주춤거리던 놈, 빅터 차가 함인건을 본다.
그 눈은 묻고 있다.
왜 이런 거냐고?
내가 뭘 잘못한 거냐고?
너희가 뭘 잘한 거냐고?
나하고 너희가 다를 게 뭐냐고?
내겐 미국이 있는데 왜냐고?
“선택한 결과는……”
뒷말을 내지 못하고 숨을 헉헉대는 함인건, 남은 말은 빅터 차가 낸다.
“선택한 자의 몫이지……!”
피 흐르는 오른손을 늘어뜨린 빅터 차는 허리를 세웠다. 가슴을 폈다. 그 순간 조중건은 위기를 직감했다. 그건 너무 찰나, 폭발화염이 덮쳐왔다.
‘헉!’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삼키던 조중건은 암흑을 봤다.
아니 느꼈다.
지하실 사방에서 폭발이 확산해 나오는 찰나, 귀신으로부터 확산한 암흑이다.
암흑이 휘감았다.
차단했다.
폭발화염을, 물리력을 튕겨냈다.
그렇게 만든 자, 귀신 장철이 돌아서 다가온다.
함인건실장을 안는다.
그가 걸어 나가는 뒤를 따라 조중건은 나갔다.
폭발화염이 무서워 물러나는 가운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