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143. 장막 뒤의 전쟁.
143. 장막 뒤의 전쟁.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뱉은 말, 저 눈동자에 든 심정을 박인수는 십분 이해하기에 뜨거운 숨을 삼켰다. 도대체 대한민국 안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보광동과 이태원이 발칵 뒤집혔다.
-보광동과 이태원에서 밤사이에 벌어진 사건은 충격 속에 의혹을 낳고 있습니다만, 이에 대해 경찰은 이렇다 할 입장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들 보십니까? 국정원이 개입된 사건이 맞을까요?
진행자가 질문을 던지자 패널들이 서로 대답하려 입을 연다.
-총기를 사용한 사건입니다. 보통 일이 아닙니다.
-현장 주변의 목격담과 증언에 의하면 국정원개입설이 힘을 받는 걸로 생각됩니다.
-아예, 교수님 먼저 말씀해 주시죠.
진행자가 지정해 주자 중년 교수는 입술을 혀로 핥으며 입을 다시 연다.
-사건 발생 자체가 일련의 흐름 속에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대림동의 중국범죄조직 소탕사건, 그리고 판교 게임회사 원소프트 사건, 그 뒤로 이어진 사건이 어젯밤의 보광동과 이태원 사건인 겁니다.
-그런가요? 개별적인 그 사건들이 연관성이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개별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지만 배경이 같은 겁니다. 모두다 총기가 사용된 사건들입니다. 대한민국에선 흔하지 않은, 특별한 사건들이죠. 게다가 핵심적인 부분은 외국인들에 의한 사건이란 겁니다.
-외국인요? 정말 그렇군요.
pc모니터가 흘려내고 있는 프그로램 영상을 뚫어지게 보며 박인수는 공감을 삼켰다.
교수패널이 짚은 대로 이 사건들은 분명 같은 배경의 것이다.
그런 예감이 확신처럼 드는 이유는 저러한 내용들, 특별한 부분이다.
-대림동 중국범죄조직은 범죄조직이니까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 사건인 판교 원소프트는 정확하게 총기가 사용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 곳 다 국정원이 개입한, 그렇게 결과가 난 사건인걸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 경찰과 국정원의 사건관련 발표가 있었다. 국내 안보질서를 해치는 해의 범죄조직의 정체를 밝혀낸, 첩보를 토대로 한 작전이었다 했다.
‘그런 발표로 여론과 시민들의 동요를 달래보려고 한 건데……’
이런 사건이 또 터졌다. 이건 연속해서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이번 사건들에 대해선 뭐라고 할까, 경찰도 그렇고 국정원은 더욱더 말이 없다.
‘아직 밤이 지나간 것뿐이지만.’
그렇지만 여파가 엄청난 사건이다.
대림동과 판교에선 사건현장은 물론 주변 cctv영상들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경찰과 국정원이 철저히 걷어서다.
그런데 어젯밤 일은 그렇질 않다.
특히 보광동현장은 활화산이다.
‘그들, 싸우던 자들은 채널러야……!’
뜨겁게 꿈틀거리는 입 안의 침을 박인수는 억지로 삼켰다.
* * *
이젠 서에 남아 의자만 혹사시키는 짓을 더 하기 눈치 보여 나왔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사건이 터져 눈을 부릅뜨게 한다. 이건 채널러들이다.
‘이것들은 대체 누구야?’
최재우는 움켜쥔 주먹을 펴지 못하고 폰을 들여다봤다.
유지건과 송치호와 홍인구가 열심히 움직이는 데 혼자만 차에 남아 이러고 있단 생각 같은 건 할 수가 없다.
밤사이 엄청난 일이 생겼다. 채널러들 전투다.
-영상을 보십시오, 보광동 사건현장인근에서 목격자들이 폰으로 촬영한 영상입니다. 건물 앞에서 싸우는 이 사람들은 평범한 보통사람들이 아닙니다. 기류를 일으켜 공격하는 광경입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요? 온라인에선 윈드블레이드라고 하던데 그렇게 부르는 게 맞겠습니다.
터무니없는, 황당무계한, 엄청난 광경이다.
채널러 하나가 제 의지로 만들어낸 수많은 바람의 칼날 같은걸 날려 보냈다.
그런데 그걸 맞는 자가 소용돌이처럼 움직이며 빨아들인다. 그리고 그걸 다시 날려 보낸다.
‘이 자들은……!’
또 다른 채널러들은 투명한 방패 같은걸 만들어내고 땅을 뒤집어 올려 방어막을 만들었다.
만화 같은 광경, 하지만 소용없었다.
소용돌이처럼 움직이는 존재에게 당했다.
세 명의 채널러가 순식간에 죽음을 맞았다.
‘귀신은 사라졌는데……!’
고초희와 귀신 장철이 벌인 싸움, 장례식장에서의 그 엄청난 영상이 후로 또 이런 사건이 터졌다.
고초희는 죽었고 귀신도 최후를 맞았는데 이건 뭔가?
온라인에서 제기되는 의혹처럼 국정원과 타국의 전쟁인 건가?
‘채널링을 둘러싼.’
기민한 반응은 역시 인터넷 세상의 호흡이다. 들이마시고 뱉어내는 숨처럼 사람들은 빠르게 전후를 이어 결과를 도출한다. 상관없을 것 같던 일련의 사건들을 조합해 배경을 들추고, 원인과 목적과 이후를 도출한다.
-사건의 배경을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만, 평론가께선 어떻게 보시나요?
진행자의 지목을 받은 정치사회평론가라는 자가 대답한다.
-확실한건은 알 수 없지만 일련의 사건 흐름을 통해 줄기를 잡을 수 있다고 봅니다. 국정원이 사건에 개입돼 있다는 주장에 동감합니다. 사건들이 터진 배경에 채널링연구가 있다는 내용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한국정보당국과 타국 정보기관들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는 말씀인가요? 일각에서 제기된 주장처럼 온누리정신연구소의 연구결과물을 놓고 벌어진 사건요? 보광동 현장의 저 인물들은 소위 말하는 채널러라는 말씀이죠? 다른 현장에서도 같았고요? 혼자서 셋을 상대한 저 인물은 한국이 보유한 채널러가 되겠군요?
최재우가 내쉬는 숨보다 가볍지만 묵직한 숨을 내며 평론가는 대답한다.
-그렇게 판단합니다. 현 상황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한 심정입니다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요? 드러난 결과만 놓고 유추해보면 한국이 타국의 공격을 막은 걸로 보입니다. 보십시오, 혼자서 셋을 상대한……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멈췄던 평론가는 뒷말을 이어낸다.
-저 인물은 분명 동양인의 외모입니다. 한국사람, 국정원의 요원으로 확신됩니다. 공격자들은 외국인들입니다. 저들을 물리친 결과로 보입니다.
진행자가 다시 목소리를 낸다.
-그렇군요. 국정원에서 한국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 벌인 싸움, 도심 속의 전투였다는 것으로 해석이 되는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시작된……
최재우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림을 흘려냈다.
“귀신……”
그가 시작이다.
그로인해 세상에 채널링이란 게 드러났다.
그런데 그는 죽었다.
이건 무슨 일일까?
외국 채널러들을 상대한 저 젊은 남자는 누굴까?
-귀신 장철사건과 이번 사건들엔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 걸까요?
당연히 관련이 있다는 진행자의 의문제기를 들으며 최재우는 눈을 감았다. 그렇지만 귀로 이야기들은 이어져 파고든다. 귀신과 채널링에 관한.
* * *
“고비는 넘겼습니다.”
조중건의 무거운 숨소리가 섞인 말, 장철은 표정 없는 얼굴로 들었다.
“공작을 주도한 인물은 빅터 차, 미대사관 서기관입니다. 표면적으론 그렇습니다만, CIA가 국내에서 비밀리에 공작활동을 하던 팀의 보스였습니다.”
장철은 여전히 무심하게 듣기만 했다.
조중건이 이야기 하는 내용은 짐작하는 것들, 중요한건 그게 아니다.
이제부터의 대응이다.
적들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국정원이 등 돌린 마당, 섬멸하기 위해 움직일 터다.
“완전히 고립된 겁니까?”
장철은 물음을 냈다.
기대하지 않던 반응이기에 조중건은 흠칫했다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상황이 대단히 안 좋습니다.”
대답하고 조중건은 장철의 기색을 살폈다.
지금 낸 물음의 배경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귀신이 원하는 것, 목표가 있다.
친구 조웅의 안위다.
그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현재 상황은 그렇게 될 흐름이다.
“실장님이 건재한 이상……”
“국정원을 다시 장악하고 싸움을 이어나간다는 건가요?”
말을 자른 장철의 눈을 응시하며 조중건은 숨을 조심스럽게 내쉬었다. 가슴속엔 할 말이 많은데 뭐라고 딱히 대답할 말이 안 나와 답답하다.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겨우낸 말이 이건가 하는 자괴로 조중건은 시선을 내렸고, 장철은 무심히 응시했다.
“피할 생각 없습니다.”
명료하게 대답을 던진 장철, 조중건이 다시 시선을 드는데 의사가 부른다. 교외의 별장인 이곳으로 부른 의사, 누군지까지 알 필요는 없다.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조중건은 반색한 얼굴로 바로 몸을 돌렸다. 그러다 장철을 돌아봤다. 함께 함인건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자는 눈빛, 장철은 말없이 걸음을 냈다.
* * *
기묘한 인연이라고 황철현은 생각했다.
지금 발을 딛고 있는 곳이 신명시라는 것이 그렇다.
서울을 벗어나 의정부를 건너 도착한 곳이다.
이 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 별장이 있다. 윤완규 아버지 윤종대의 별장.
‘귀신사건의 시작.’
윤완규의 윤진수와 고초희, 그들이 출발점이다.
그 셋이 귀신 장철의 손녀를 해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도 지금처럼 일이 됐을까?
모르겠다. 채널링과 관련한 일은 어떠하든 터졌을 것은 분명하다.
‘때가 영글었던 거야.’
그 때에 귀신 장철이 낀 거다. 그의 불운과 불행은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다. 동감하고 동정하면서도 그가 저지른 사건들을 생각하면 두렵다.
‘어떠하든 그는 많은 인명을 살상한 존재……’
별장 밖 숲을 바라보던 황철현은 미간을 강하게 구겼다.
‘나는 뭐가 달라?’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사람이 스러졌다. 그런 일을 해 온 게 황철현 자신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지만 살인자다. 귀신과 전혀 다를 게 없다.
“뭐하십니까?”
돌아본 황철현은 김충식이 내미는 커피잔을 받았다.
“현이하고 동식이는?”
종말 팀의 다른 두 팀원, 차현과 고동식에 대해 묻자 김충식은 씩 웃는다.
“그것들이 뭐하겠습니까?”
“또 내기장기 둔다고?”
“지는 놈이 책임지고 여자 만들어주기라는데, 미친 쉐이들, 가능성이 있는 걸 걸어야죠.”
어처구니없단 비웃음의 김충식을 향해 황철현은 묻는다.
“너는 왜 안 끼냐?”
“제가요? 왜요? 그것들 사이에 있다 무슨 피해를 보라고요? 그것들한테 여자 소개시켜줬다가 욕먹은 게 아직도 생생하거든요? 미친놈들이 여자 앞에 두고 총질한 얘기나 하고 앉았으니 누가 좋다고 하겠습니까?”
얼굴을 찡그리는 동시에 웃음을 머금은 황철현은 다시 숲을 봤다.
“우리, 낙동강 오리알 된 겁니까? 확실하게요?”
김충식을 돌아보지 않은 채 커피를 음미한 황철현은 대답했다.
“확실히 그렇게 됐다. 함실장을 팔아넘긴 건 차원장이야.”
의식이 완전히 흩어지기 전에 함실장은 그 내용을 조국장에게 말했다.
“그렇긴 한데, 흠, 완전히 죽을 꼴은 아니야.”
“그거야 뭐 그렇죠, 함실장님도 살았고 우리도 건재하니까요. 뭣보다 우리한테 귀신이 있다는 것이 그렇고요. 하, 그 사람 참, 뭐라고 해야 할까요? 미국 채널러놈들하고 싸우던 걸 생각하면 소름 돋고 숨이 막힙니다.”
황철현은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를 어떻게 할지 지금 심각하게 논의 중일 거다. 차원장 쪽에선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어. 미국하고 손잡고 우릴 말살하려한 거니까. 결과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를 포함해 완전말살이 함께 돌아갈 거야.”
“사태를 우리책임으로, 우리가 불법을 저지른 무리로 덮어씌운단 말입니까? 국정원을 이탈해 반역을 꿈꾸는 무리, 뭐 그런 거쯤 되겠네요?”
당연히 그럴 것이라 걸 알면서도 김충식은 반응했다, 분노가 치밀어서다.
“개 같은 것들, 모조리 쓸어버려야 되는데……!”
거듭 이어진 김충식의 분노를 옆에 두고 황철현은 상상했다. 정말로 김충식의 말처럼 되는 일을. 더럽고 악한 것들을 깨끗하게 쓸어버리는 것을.
‘그러겠다고 언제나 말하지만, 이 나라에선 단 한 번도 이뤄진 적 없는.’
꿈같은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 * *
“그들이 생각할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힘겨운 모습으로 하고자 한 이야기를 마친 함인건 실장, 그 눈을 응시하며 장철은 아무런 반응도 내지 않았다. 그런 장철의 모습을 조중건이 불안하게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품은 게 뭔지 알 수 없어서다.
“당신은 뭘 위해 이 일을 합니까?”
장철은 물음을 냈다. 정말로 궁금하다. 함인건이란 이 남자의 가슴에 있는 것은 뭘까.
“나는 정상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함인건은 자신을 말한다, 존재해선 안 되는 존재라고, 그런데 존재하게 됐다고, 세상이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런 걸 핑계 삼지 않는다 한다. 언젠가 지은 죄에 대해 대가를 치를 때가 올 때까지, 할 일을 한단 거다.
“누군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조차도 잘못된 것이란 걸 압니다……”
그래도 한다는 함인건의 눈, 장철은 말없이 응시하다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