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144. 거짓과 진실의 사이.
144. 거짓과 진실의 사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파악이 안 되는 거냐?”
김실장을 노려보듯 강하게 응시하며 김호는 물었다.
확실하게 알아야겠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는, 정말로 답답하고 화가 치미는 상황인 거다.
분명 함인건놈들을 공격한 게 맞는데, 돌아가는 꼴은 실패한 것만 같다.
“보광동에서 공격이 실패한 거야? 그렇지? 그러고 난 직후에 이태원에서 반격 받은 거고? 그 할랄레스토람이 너희 CIA 거점이었지? 그렇지?”
김호 앞에 선 김실장은 곤혹스런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대답했다.
“저는 CIA가 아닙니다. 단지 그들과……”
“잡소리 집어 치우고! 정확하게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아내서 보고 하란 말이다!”
테이블 위의 찻잔을 집어 던질 듯 김호는 몸을 움찔거렸다.
김실장은 고개를 깊게 숙여 보이고 바로 돌아섰다.
찻잔을 맞는 봉변을 피하기 위한 반응, 그런데 돌아서며 얼굴을 구긴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서다.
‘연락해 오기 전에 연락할 방법이 없어.’
빅터 차와의 소통방식이다. 그런데 그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다. 이태원이 CIA거점이란 것도 몰랐다. 이곳 한남동에서 지척이다. 그림자조직이란 것들의 보광동 안가도 마찬가지다. 지금 돌아가는 흐름을 모르겠다.
‘당한 건 확실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이로서 어떠한 결과가 있을지, 어떤 위험이 생겨날지, 그것이 닥쳐올지를 더듬으며 김실장은 빠르게 거실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런 김실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김호는 이가는 숨을 뱉었다.
“쓸모없는 새끼들……!”
종친회에서 소개한 놈이 저놈이다. 족보를 따지면 먼 친척이다. 그런 인연도 인연이지만 빠릿빠릿한 일처리가 맘에 들어 곁에 뒀다. 그런 놈인데 CIA와 붙어먹고 있는 줄 이제 알았다. 괘씸함 보다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랬는데, 그런 건데, 이것들이 당하고 말았으니……!’
찻잔에 남은 차를 단번에 마신 김호는 현실을 냉철하게 가늠했다.
‘그래도 CIA야, 미국이야.’
불변의 진리다.
그들을 이기는 힘이란 건 없다. 그러니 현 상황은 전술의 실패정도, 그런 피해인 거다. 함인건을 제거했다고 했으니 반은 된 거다. 그래서 놀랍다.
함실장이 부재한 데도 그림자 조직은 반격을 했다.
‘함인건 그놈을 정말로 제거한 게 맞긴 한 거야?’
빅터 차에게서 온 연락은 분명 함인건의 제거라는 결과였다.
역시 CIA라는 놀람을 줬다.
김호 자신과 대면하고 난 후 바로 그 일을 한 거다.
그건 분명 국정원과 결착된 결과다. 그렇지 않고선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CIA라고 해도, 국정원 고위층 누군가 협조한 거야.’
아마 국정원장일 거라고 짐작된다. 그런 정도의 인물이 함인건과 은밀히 만나는 장소에서 기습한 걸 거다. 사전에 은밀하게 계획된 암살인 거다.
‘그런데 그것들이 반격했다?’
함인건이, 머리가 사라졌는데도 몸통이 몸부림친 거다. 그 결과로 빅터 차와 연락이 안 된다. 물론 그쪽에서 연락해 와야 알던 상태였지만, 어떤 상황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지만, 짐작이 된다. 당하고 만 것이다.
‘설마 선생님이란 존재가 정말로 있는 건 아니겠지?’
미간을 꿈틀거리는 불안한 예감으로 김호는 빈 찻잔을 움켜쥐었다.
‘아니야, 그건 허구라고 했어.’
빅터 차는 자신 있게 말했다.
함인건이 내세운 선생님이란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이 일은 뭘까?
정말 몸통만의 몸부림인 걸까?
‘보광동을 공격한 그놈들은……’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영상, 김호는 그 광경을 떠올리고 소름을 삼켰다. 그건 정말이지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게 채널링……!’
빅터 차가 말한 채널러들이다. 보통의 인간들하고는 다른 존재인 거다. 그런 것들이 일으킨 사건들은 이미 있었다. 귀신장철과 고초희사건이다.
그런데 그것들은 죽었다. 국정원이 귀신을 죽였다. 그리고 이 일이다.
‘그림자 조직에서 튀어나온 채널러 놈이 미국놈들을, CIA가 기른 채널러들을 죽였어. 혼자서 셋을 죽였어, 그리고 이태원 거점을 박살낸 거야……!’
혼란스러울 게 없는 일이다, 앞뒤가 명료하다. 이 시점에서 분명한건 빅터 차와 연락이 안 된다는 것, 그들이 함인건을 제거했다는 것, 그림자 조직을 말살하려다 실패하고 당했다는 것, 그렇다면 흐름은 눈앞에 있다.
‘나도 위험해……!’
함인건측이, 그림자 조직이 김호 자신의 변절을 알 리가 없다. 그렇지만 CIA 이태원 거점을 알아내 공격한 놈들이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대비해야 한다. 이러고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우선 피해야 한다.
현실인식, 갑자기 등골에 퍼지는 오한 속에서 김호는 소파를 밀고 일어섰다.
“김실장!”
이젠 믿기 싫은 놈이지만 김호는 불렀다. 그런데 밖에서 소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경호원들의 고함소리다. 위험한 예감이 실체가 된 순간이다.
* * *
황철현의 시선을 등으로 받으며 장철은 차에서 내렸다.
김호라는 인물이 산다는 저택, 높은 담장을 말없이 응시하다 달려가 점프했다.
허공에 떠 담장을 넘어가며 흐름 속에 들었다.
소용돌이가 돼 정원을 밟았다.
그 순간 반응이 왔다.
경호원들이 소리치며 달려든다. 그들에게로 흘러가 휘감았다.
장철은 어둠의 조류가 되어 움직였다.
그 형상에게 달려든 경호원들은 돌림판 위에 뿌린 모래알처럼 튕겨나간다. 그 누구도 앞을 막지 못했다.
짧은 순간 토네이도가 휩쓴 후의 정적.
현관 앞에 멈춘 장철은 문 안쪽의 기운을 감지했다. 엽총을 겨눈 자의 형상을 보지 않고도 봤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주먹을 질렀다.
쾅, 소리를 남기며 현관은 뚫렸다. 그렇게 만든 힘, 장철의 주먹으로부터 이탈해 나간 검은 기류는 엽총 든 자의 가슴을 뚫고 나가 벽까지 쳤다.
무심한 얼굴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장철은 쓰러진 자의 부들거림을 지나갔다.
뒤에서 숨이 끊어지는 자를 부르는 인물을 봤다.
김실장이라고 부르며 뒷걸음질 치는 늙은이, 8선의원출신이라는 추악한 놈이다.
“누, 누구냐? 왜, 왜 이러는 거야?”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하는 자, 김호는 폰을 황급히 들었다.
그 순간 장철은 걸음을 냈다.
거실을 찰나에 좁히며 다가갔다. 동시에 뒤허리의 특수전 나이프를 뽑아 후렸다.
폰을 들던 김호의 손은 생선처럼 잘려나갔다.
“으악!”
비명을 지르는 김호, 그 입에 장철은 주먹을 박았다.
콱하는 기음과 함께 김호는 쓰러졌다.
늙은 이빨은 한순간 다 사라졌고 안면은 뭉개졌다.
고통의 반응도 소리 내지 못하고 버둥거리는 김호에게 장철은 고요히 말했다.
“때가 지났잖아.”
뭉개진 입주변의 고통, 오른손이 잘려나간 충격 속에서 김호는 알아들었다.
죽을 때가 지났다는 말이다.
여든 여덟이면 백세 시대인 요즘 그런 말을 들을 나이는 아니다.
그러니 저 말은 의미는 너무나 명료하다.
‘거머리 같은 인생.’
대한민국이란 몸통에 붙어 흡혈하며 산 인생이다.
늙어서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피를 빨고자 했다.
이건 그대가다.
눈앞의 저자는 사신이다.
이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김호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업보다.
‘나는……’
김호는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나오는 걸 알지 못했다. 사신의 저 존재가 그 어떠한 말도 해주지 않을 것이란 걸 깨달으며, 사신의 선고를 받았다.
장철이 내리친 칼은 김호의 머리통을 쪼개며 내려갔다.
* * *
들어갈 때와 달리 저택의 출입문을 열고 나오는 귀신 장철, 그가 차에 오르는 순간까지 황철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뒷자리에 몸을 묻는 걸 보고 시선을 돌리면서도 묻지 안했다. 그냥 운전대를 잡고 출발했다.
묻고 자시고 할 것이 없다.
위험하지 않았냐고, 안은 깨끗하게 끝난 거냐고, 의문을 품을 일이 없다.
귀신 장철이 한 거다.
김호는 완벽하게 처리됐다.
이제 이 밤에 남은 자들을 처리할 거다.
오성회는 사라진다.
뒤따라오는 김충식과 차현과 고동식의 차를 룸미러로 보며 황철현은 악셀을 밟았다.
* * *
[오성회를 암살한 범인은 누구인가?]
일면 머릿기사의 제목을 보며 차승환은 숨을 부들거렸다.
밤사이에 일어난 또 다른 엄청난 사건, 소위 오성회라고 부르는 막후 실력자들의 죽음이다.
여의도 정가의 출렁임은 물론 대한민국 전체가 팥죽단지가 됐다.
‘함인건……!’
그다, 그가 한 일이다.
그는 분명 CIA에게 당했는데, 그 광경을 눈앞에서 본 사람이 차승환 자신인데, 함인건이 죽지 않았다는 증거를 지금 본다.
‘그림자 조직, 그들을 너무 과소평가 했어……!’
반면에 CIA는 과대평가했다.
아니 그건 아니다.
그들은 CIA다, 미국이다. 그러니 이건 오판이 아니라 불운이다.
원래의 흐름을 벗어난 역류다.
[정재계와 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원로들, 소위 오성회라는 이름으로 은밀하게 존재가 알려지던 실력자들, 오성회 멤버 전원이 지난밤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8선의원 출신인 김호 전의원은 한남동 자택에서 살해당했습니다. 경호원들의 증언에 의하면 살인자는……]
기사내용을 다시 읽던 차승환은 폰이 우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반응했다. 정부인사들의 연락을 차단한 상태, 책상 안에서 우는 폰은 작전용이다.
‘누가?’
책상을 열어 폰을 잡은 차승환은 침을 삼키고 전화를 받았다.
-원장님.
차승환은 얼어붙었다. 힘겹게 나오는 목소리, 누군지 안다.
“함실장……!”
함인건의 목소리를 차분하고 명료하게 이어져 나왔다.
-중요한 순간입니다. 제 말 잘 들으십시오.
* * *
사건 보고서를 작성하던 최재우는 자판에서 손을 뗐다.
마음이 딴 데 가 있어서 제대로 되질 않는다.
간밤에 일어난 사건들은 또 충격파를 던졌다.
오성회, 이름도 생소한 그 단체의 인물들이 전부 살해당했다.
“하아.”
제어하지 못하는 감정 속에서 최재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돌아가는 판국인지 짐작이 되면서도 모르겠다.
정말로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된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간밤사건은 누가 왜 한 건지 모르겠다.
‘오성회 멤버들 전원이 자택에서 살해당했어.’
살인자는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한남동 김호의 저택에선 살인자와경호원들이 충돌했다.
그들의 생생한 증언이 있다.
살인자는 혼자였고 동양인, 한국사람 같았다고 한다.
다른 네 곳의 목격자들 역시 다르지 않다.
‘그들이야, 보광동에서 공격받았다가 물리친.’
최재우는 영상을 떠올렸다. 외국인 채널러들 삼인의 공격을 받아 싸운 인물, 그가 오성회를 말살한 존재라는 것을 예감한다. 아니 확신한다.
‘그들은……’
온라인세상에서 퍼지고 있는 이야기는 그들이 국정원소속 요원들이란 거다.
공격자는 미국, CIA라고 한다.
채널링을 두고 벌어지는 전쟁이란 거다.
그런 내용들이 주류, 의심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는 것 같다.
‘오성회가 CIA하고 무슨 상관이 있길래?’
그들이 정말로 국정원 소속 요원들이라면, 이란 전제하에 생기는 의문이다. CIA와 대적한 직후에 그들을 공격한 거다. 그래야 할 이유가 뭔가.
의문과 충격을 거듭 삼키던 최재우는 박인수의 전화를 받았다.
-뉴스 보고 있나? 안 보고 있으면 빨리 봐.
짧은 통화를 끝낸 최재우는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리모컨을 찾아 강력팀 전면 벽에 설치된 TV를 향해 눌렀다. 긴급성명 발표가 흘러나온다.
‘국정원장?’
화면 속 인물은 국정원장이다. 이름은 흐릿해도 차씨라는 것까진 않다.
-나라가 혼란스럽게 된 상황,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국정원장으로서 조직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책임은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니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혼란을 수습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자조직은……
이어지는 이야기와 이미 이야기한 내용들이 자막으로 나오는 걸 보고 들으며 최재우는 상황을 파악했다. 국정원장의 긴급성명발표다. 국정원내 그림자 조직이 제어되지 않는 상태로 이탈, 사건을 일으키고 있단 거다.
-오성회라는 이름으로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물들은……
김호를 비롯한 그들의 비리와 범죄사실을 국정원장은 말하고 있다.
그들은 그림자 조직과 결탁한 자들이었다는 거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결착은 깨졌고, 그림자 조직이 오성회를 말살하기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다.
-정부와 국정원은 현사태의 엄중함을 깊고 무겁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그 어떠한 무력충돌도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그러한 움직임을 포착하는 순간 강력한 응징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그 어떤 단체나 조직, 국가라고 해도 대한민국 내에서의 불법……
국정원장의 단호한 눈동자를 응시한 최재우는 한사람을 떠올렸다. 왜 그가 떠오르는 지도 모르는 체, 이미 죽은 그가 왜 생각나는지 모르는 체.
‘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