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145. 채널링 전쟁 1.
145. 채널링전쟁 1.
-이 위치에선 사건이 일어났던 현장이 자세히 보이지 않습니다만 최대한 접근한 상태입니다. 경찰이 봉쇄선을 치고 통제하고 있는 마당이라 더 이상의 접근은 어렵지만, 이곳에서도 사건 당시의 긴박감을 느낄……
유튜버들은 역시 개떼처럼 들끓고 있다. 보광동 안가가 있던 사건현장 주변에서 흘린 뼈다귀 하나라도 물겠다고 눈이 벌게져 배회하고들 있다.
저 중에 진실을 아는 이가 없다는 것이 현실, 그러나 거짓도 아니다.
‘채널링전쟁.’
유튜버들이, 온라인 세상에서 떠들어 대는 그 명칭을 삼키며 황철현은 새삼 현실을 가슴에 각인했다. 그로인한 무게 때문일까, 눈 밑이 가늘게 떨린다. 마그네슘 부족으로 인한 생체반응과는 다른, 마음의 반응이다.
-국정원장이 발표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곳 보광동엔 그림자 조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성회라는 늙은이들과 배를 맞추고 장막 뒤에서 세상을 좌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반목이 생겼고 결국 서로 공격했습니다. 그건 분명 중간에 미국이, CIA가 개입해서 생긴 일이 분명합니다.
이어지는 유튜버의 장황하기까지 한 설명, 그러나 귀에 쏙쏙 들어온다.
저래서 사람들은 유튜버에 빠져드는 모양이다. 자극적인 언사와 행동으로 원하는 이야기, 듣고 싶은 말을 떠들어서다. 하지만 객관성은 없다.
-미국새끼들이 오성회와 붙어먹은 겁니다. 예, 미국이니까요, 오성회란 늙은 흡혈귀들은 관속에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 빨대를 물기 위해서 그들은 택한 겁니다. 아니죠, 미국이란 더 크고 강력한 빨대를 원한 겁니다. 그런 결과가 어느 쪽의 요구에 의한 것인지 모르지만 이뤄졌습니다.
그런 결탁으로 오성회가 그림자조직을 배신했고, CIA 채널러들이 보광동 안가를 공격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실패, 그림자조직은 바로 반격, 이태원의 CIA 거점을 급습했다는 주장이다. 정말 제대로 앞뒤를 맞췄다.
‘우리만 빼고.’
그림자 조직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황철현 자신의 조직, 그 진실한 정체성은 덮였다. 오성회와 붙어 세상에 피해를 주려했던 놈들로 알려졌다.
채널링 연구를 관리하던 핵심별도 조직, 그런데 그 힘을 장악한 거다.
‘그건 진실이 아니지만……’
함실장이 원해서 만들어진 진실이다. 그는 국정원장 차승환과 통화했다. 차원장은 성명을 발표했고 지금의 상황이 이뤄졌다. 채널링과 관련한 정확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세상은 채널링 전쟁이란 말을 하게 됐다.
‘미국, 중국, 일본과 한국이 얽힌.’
의지와 상관없이 꿈틀거리려는 미간에 힘을 주며 황철현은 마우스를 움직였다. 유튜브영상을 토해내던 모니터는 다른 뉴스기사들로 채워졌다.
[한국의 변란.]
자극적인 기사를 낸 곳은 중국인민일보다. 번역된 내용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목만 보면 한국 내에 내전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제목, 내용은 현상황에 대해 자세히 담고 있다. 있는 그대로 알려진 사실들이다. 그러나 저희와 관련한 부분은 부정한다. 대림동 중국범죄조직은 날조란 거다.
“짱꼴라 새끼들.”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욕에 황철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식의 비하가 아무런 득이 되질 않는 다는 것, 저들도 한국을 꺼우리방쯔라고 욕한다는 걸 안다. 미래지향이니 어쩌니 생각하면 입에 담아선 안 된다.
“난 의식 높은 인간이 아니니까.”
학식이 높은 것도 인품이 좋은 것도 아니다. 황철현 자신은 그냥 보통사람이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입각해 뱉는 거다. 그러니 부족한 인간이라고 욕한대도 상관없다. 그런 건 그런 거니까.
[위기의 한국.]
이번엔 일본 산케이 신문 기사다.
특유의 근성이 드러나는 기사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냉정한 척 하는, 한단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어조다.
사실을 나열하면서 역시 저희와 관련한 부분은 부정이다.
[원소포트사와 관련한 한국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으며, 이번 사건으로 인한 양국 간 마찰에 대한 우려를 내각에서 정식 제기……]
황철현은 이번에도 튀어나오는 욕을 제어하지 못했다.
“까고 있네, 쪽발이 새끼들.”
욕설이 흩어지던 그 순간 김충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팀장님 사발면 하실래요?”
황철현은 바로 일어섰다.
고동식과 차현이 언제나 그런 것처럼 옥신각신하는 모습, 사발면을 앞에 둔 테이블로 다가가며 밖을 봤다.
별장 밖 수풀들은 여름으로 달리며 푸름을 흘려내고 있다.
계절은 늘 소리 없다.
“귀신도 먹을 건지 물어 볼까요?”
젓가락을 비비던 차현의 말에 황철현은 미간을 옅게 좁혔고, 고동식은 일어나 귀신의 방으로 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충식은 벌써 먹고 있다.
* * *
“불안합니다.”
무겁게 굳은 얼굴의 조중건은 침대 위 함인건을 다시 응시했다. 자신의 불안함을 아는 얼굴, 그런데 그걸 만든 사람이다. 힘겹게 입을 연다.
“차원장은 이제 어쩔 수 없는 처지가 됐습니다……”
말하는 게 힘든지 크게 숨을 들이마신 함인건은 조금 나아진 얼굴로 뒷말을 냈다.
“CIA와 손잡고 나와 그림자조직을 말살하려던 작업이 박살난 순간부터.”
그렇다, 그래서 그를 이용하기 위해 함인건은 전화를 했다.
함인건의 의도대로 됐다.
차원장은 성명을 발표했고, 그 내용은 세상을 흔들고 있다.
정확한 언급은 안했지만 체널링으로 인한 각국의 전쟁이란 현실이다.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되고 결정된 후 나온 겁니다.”
그러니 불안해하지 말라는 함인건의 의지, 저런 꼴로 침대에 누워서도 저런 의지를 보이는 모습이 새삼 존경스럽다. 하지만 현실은 냉엄한 거다.
차원장이 CIA에 팔아먹은 일이 또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업는 거다.
“내가 가진 비리 자료를 포함해서 완전 말살이 될 줄 알았을 겁니다. 그런데 CIA는 실패했고 나는 살아 있습니다. 오성회의 말살로 경고했습니다. 차원장은 판단이 빠르고 기민한 사람입니다. 포지션을 잡았습니다.”
함인건의 의도대로 하는 것.
“대통령도 현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불안이 남은 조중건의 얼굴을 함인건은 응시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조중건은 뜨거워진 숨을 길게 흘려내며 시선을 내렸다. 그렇다는 걸 자신도 알고 있음이다. 판이 이렇게 급격히 돌아가는 마당인데 모를 수 없다.
‘차원장의 성명발표는 NSC가 소집된 후에 나왔지.’
대통령을 포함한 이 나라의 수뇌부는 이제 모든 걸 안다.
채널링이 뭔지, 그로인한 사건들이 뭔지,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알고 하는 대응이다.
그림자조직을 반역의 테러세력으로 규정한 것도 그러한 배경이다.
“차원장은 본성이 악한 사람은 아닙니다.”
이어 나오는 함인건의 이야기에 조중건은 다시 시선을 들었다.
“작정하고 자초한 것보다는 휩쓸렸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부하들이 저지른 비리를 용서하고 포용하려다가 만든 결과들이지요. 잘못된 게 뭔지 깨달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제 그럴 겁니다.”
말하면서 힘이 나는지 함인건의 목소리는 점점 또렷해진다.
“귀신은 지금 뭐하고 있습니까?”
조중건은 옅은 곤혹을 품은 얼굴로 대답했다.
“돌아와서 휴식을 취한 후에 계속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걸 훈련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명료한 상태인건 분명합니다.”
명료한 상태, 아무런 혼란이 없는 의식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을 명쾌하게 해내는 상태라는 거다. 무엇을 해야 할지, 갈 길이 어딘지 아는 것처럼.
“그렇군요. 그럼 이제 또 일을 해야겠네요.”
미간을 확 좁히는 조중건에게 함인건은 정말 명료하게 말했다.
“일본부터 시작하지요.”
국정원이 파악한 한국내의 타국 정보기관이나 범죄조직의 거점들, 청소시작이다.
* * *
전신에 흐르는 땀을 느끼면서 장철은 움직임을 멈췄다. 양 손에 쥔 특수전 나이프를 내려놓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차가운 물을 머리부터 맞으며 땀을 씻어냈다. 적들이 뿌린 피와 죽음이 배어든 냄새까지 씻어냈다.
‘전쟁.’
그것은 시작됐다. 깊은 곳에서도 현실에서도 시작됐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이다.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파멸의 피바람이다.
세상은 대가를 치를 터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사람들은 겪고 나서야 알게 될 것이다.
‘죽여야 할 것들은 죽인다.’
명료한 그 의지를 가슴에 품고 다시 새기며 장철은 샤워를 마쳤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나오자 노크가 들리고 문이 열린다. 조국장이다.
‘시작.’
조중건 국장이 왜 왔는지, 저 눈이 뭘 말하는지 장철은 읽었다.
“어딥니까?”
조중건은 명료하게 대답했다.
“일본부터 시작합니다.”
* * *
“돌아가는 판이 이상하잖아? 그렇지? 최팀장도 느끼지?”
강남에서 신명시까지 찾아온 박인수경정, 말은 돼지갈비 맛을 못 잊어서라고 하지만 지금 뱉어내는 말들이 본심이다.
“국정원 그림자조직이 채널링연구를 빼돌리고 오성회와 결탁했다가, CIA와 손잡은 그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반격해 다 죽이고, 그런 상황을 NCND(긍정도 부정도 안하는)의 스탠스로 성명을 발표한 국정원장?”
맞는 말이다. 내막을 아는 최재우 자신이나 박인수경정의 눈으로 보면 이상함 자체다. 국정원은 채널링 자체에 대해 인정하는 모양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걸 그림자 조직이 빼돌렸고, 타국의 무장세력들이 준동한다고, 충돌하고 있다고 밝혔다.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응징한다고 했다.
“패딩을 입긴 입었는데 이건 입은 게 아니라고 하는 거나 같다. 누가 봐도 두툼한 오리털 패딩을 입었는데 말이야? 그러면서 패딩에 손댄 놈들은 후려치겠다고? 이게 말이야 소야? 사람 탈 게 못되니까 소나타라고?”
마지막 비유는 적절한 건지 모르겠지만 최재우는 공감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돼지갈비 한 점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하는 생각은 다른 거다.
“귀신은 정말로 죽은 걸까요?”
젓가락으로 갈비를 집던 박인수는 눈썹을 확 세운다.
“뭐?”
그게 무슨 소리냐는 뒷말을 입안에 머금은 박인수, 그 눈을 최재우는 응시했다.
“장례식장에서 귀신을 사살한 게 국정원입니다. 그들이 그림자조직인 거지요. 바로 그자들이 귀신의 사체를 가져갔습니다. 그 후로 어떻게 한 건지를 모릅니다. 왜 그런지 자꾸 그런 예감이 듭니다. 귀신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거라면?”
나도 그런 예감을 가지고 있어, 라는 박인수의 눈은 강한 번득임을 낸다.
“그자 말이야. 정체모를 한국 측 채널러, CIA가 보낸 채널러들을 해치운 젊은 남자, 그자를 보고 든 예감이 그거야. 왜 귀신이 생각나는지 모르게.”
자신이 하고 싶던 말, 최재우는 눈에 힘을 주며 입술을 혀로 핥았다.
“그렇죠? 전혀 다른 사람인데 귀신이 생각나죠?”
박인수는 돼지갈비를 입안에 넣고 소주를 털어 넣었다. 순서가 바뀐 것 같지만 아무려면 어때 하는 얼굴, 무거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누구든 다행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은, 그자가 어쨌든 중국놈들이나 일본놈들하고, 미국놈들하고 싸운다는 거야. 우리 땅에 들어와서 저희 땅인 것처럼 활개 치는 것들을 박살냈다는 거지. 이게 무슨 국뽕이냐는 생각을 하면서도 가슴이 그렇단 말이지. 나는 그들이 잘한다고 봐.”
“잘해요?”
소주를 한잔 더 털어 넣은 박인수는 다시 입을 연다.
“음, 국정원에서 발표한 내용은 위장포 같은 거라고 본다 이거야. 그렇게 불순하고 불의한 무리로 규정해 놓고 한국정부의 책임과 이격해 놓는 거지. 그들이 하는 짓, 짱꼴라 쪽발이 양키를 박살내는 결과하고는.”
최재우는 헤아렸다.
박인수가 말한 잘한다는 의미엔 그림자조직만이 아니라 한국의 대웅까지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전쟁의 첨병들이다.
‘그런가?’
소주잔을 거칠게 입안에 턴 최재우는 나지막한 중얼거림을 흘려냈다.
“그렇기를……”
* * *
소공동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된 유명 백화점, 맘모스와 같은 외관을 바라보며 장철은 옛 생각을 떠올렸다.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본 저 백화점의 기억이다. 촌놈티를 안 내려고 유난히 힘주며 걸었었다.
‘명동은……’
수십 년 세월이 흘렀으니 거리는 기억 속의 그 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명동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저 곳을 하은주와 걸었었다. 대로를 건너 백화점에도 들어갔었다. 밝게 웃는 하은주를 보며 행복했던 시절이다.
‘모두 다시 볼 때가 올 거야.’
걸음을 내며 장철은 가족들의 모습을 하나씩 보듬었다. 하은주와 딸 민지와 손녀 영이, 그들의 웃는 얼굴을 추억의 책장에 갈무리하고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