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146. 채널링 전쟁 2.
146. 채널링 전쟁 2.
“함인건이 가진 가치관은 정확히 뭡니까?”
대통령의 물음에 차승환은 간장을 삼켰다. 지금 이 자리가 얼마나 엄중한 자리인지를 새삼 느껴서다. 대통령을 비롯한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과 법무부장관과 행안부장관까지,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모여 앉았다.
‘이렇게 허름한 순댓국집에……’
총리가 정한 장소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장소가 아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그런 자리다.
지금 대통령이 듣고자 하는 것은 정확한 내용이다.
함인건을 어디까지 신뢰할 것인지, 그게 안 되면 어디까지 이용할 것인지.
“함실장은 근본적으로 악한 자는 아닙니다.”
짧게 대답을 낸 차승환은 부연 설명을 바로 이어냈다.
“악하다는 의미가 뭔지, 가치기준을 어디에 두느냐는 이론의 여지가 있습니다만,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해를 초래하는 측면, 그런 시각으로 본다면 함실장은 아닙니다. 그는 그러한 자들을 이용해 하고자 한 일을 하는 자입니다. 오성회에 접근해 그들을 이용한 것도 그러한 일환입니다.”
차승환 자신 역시 그렇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았다.
선생님이란 가공의 인물을 뒤에 세우고 호가호위한 함인건은 능력과 수완은 새삼 감탄하게 된다.
비교적 젊은 함인건 저 하나 만으로는 부족하기에 만든 존재다.
‘이 나라의 모든 곳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존재.’
그런 존재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사람들이 가진 음모론적 생각이다.
과거의 역사로부터 흘러온 이 나라의 상처 같은 거다.
오성회는 자신들이 그러한 존재가 되려했던 자들이다.
“그가 원하는 게 뭔지, 정확한 목적이 무엇인지 차원장은 압니까?”
차승환은 상념을 밀어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모릅니다. 함실장이 권력에 대한 욕심이나 재화에 대한 탐욕이 없는 자라는 건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만, 아니 그렇게 알고 있다고 여깁니다만, 어디까지나 제가 가진 추측성 판단일 뿐입니다. 정확한건 그가 얘기해야……”
“그 자에게 듣기 전엔 모른다?”
국방부장관의 시선은 목소리만큼이나 날이 섰다.
차승환은 담담히 받아냈다.
“그렇습니다. 본인이 직접 이야기 하는 걸 듣는 것만큼 명쾌한 건 없을 겁니다. 다만, 그를 판단하는 범주를 더 이야기 하자면 이렇습니다. 함인건은 채널링이란 비대칭전력을 지키고 키우고자 했습니다. 그건 분명히 사사로운 이해관계 때문이 아닙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선택입니다.”
명료하고 강하게 뒷말을 맺은 차승환은 곧바로 이야기를 이었다.
“그렇지 못한 자가 바로 저 같은 자입니다. 함실장을 CIA에게 팔아먹었습니다. 그래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상대는 다름 아닌 미국이니까요.”
미국, 그 이름이 주는 거대한 의미에 대통령을 위시한 모두가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아닐 수가 없는 현실인 것이다.
“함실장에게 약점을 잡혀 국정원 통제조차 못하는 처지의 반발도 작용했습니다. 미국이라면, CIA가 나선다면 함인건이란 인물과 그 조직을 깨끗하게 말소될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렇습니다. 그건 사형수가 최후판결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오판이란 걸 깨닫게 됐습니다.”
오판의 결과, 그건 엄청난 것이었다.
함인건의 그림자 조직은 CIA를 반격해 청소했다.
보광동 안가에서의 전투영상은 보고 또 봐도 황당하고 놀랍다.
아니 충격이다.
미국의 채널러들과 한국채널러의 능력, 그것이다.
비대칭 전력, 그것을 확보하기 위해, 타국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거다. 중국과 일본이 달려들었고 미국이 허릴 세웠다.
그들은 한국이 가진 채널링 능력을 강탈하려했다. 하지만 다 박살났다.
“그림자조직, 함실장이 주관하던 그곳을 정확히 g6라고 불렀습니다.”
입술에 침을 바르듯 혀를 움직인 차승환은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방향을 바꿨다. 자신의 비리로 인한 함인건의 국정원장악의 흐름으로부터, 함실장의 그림자조직이 보유한 능력과 현실로부터, 시초의 뿌리로 갔다.
“g6는 그림자조직과 같은 개념은 아닙니다. 그곳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습니다. 국정원에서 그곳을 기밀로 분류하고 별도로 떼어낸 것은 정권의 교체로 인한 악순환에서 비켜서고자 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잊혔습니다. 직접관련자가 아니면 존재하는지도 모르게 됐습니다.”
“그랬는데 함인건이 그걸 장악했다?”
대통령 옆자리의 총리가 눈동자를 번득이며 물음을 뱉었다. 지금 저 사람의 속마음은 뭘까, 차승환은 갑자기 궁금해졌다. 국가안보보장회의에 참석하는 면면들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이들의 속마음이.
‘완벽하게 미국 등의 입김에서 벗어난.’
그런 이들만이 지금 이 자리에 모인 거다. 그런 대통령의 저 시선이 부담스럽다. 차승환 자신은 CIA에 함인건과 그림자 조직을 팔아넘긴 자니까.
“그렇습니다. 기조실장의 권한으로 g6를 집중 육성했습니다.”
기조실장은 국정원의 예산을 다루는 위치,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했다는 걸 모두 짐작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결과는 그렇다고 해서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안다. 어떠하든 미중일을 다 까부숴버렸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해야 맞을지, 그게 아니라 일어날 일이 때가 돼서 일어났다고 해야 할지, 현재의 상황은 그러한 배경으로 발발했습니다. 채널링을 비밀리에 육성하던 각국에서 한국내의 상황을 인지하고……”
이어지는 차승환의 이야기를 모두가 귀 기울여 들었다. 귀신 장철이란 존재로 인해 일어난 사건들, 그로인해 표면으로 부상한 한국의 채널링능력, 온누리정신연구소의 심안, 그걸 탈취하려 달려든 미중일의 현재.
“귀신이라는 그 자는 확실히 죽은 겁니까?”
다시 나온 대통령의 물음에 차승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대단한 자였기에 의혹을 품긴 했습니다만, g6가 미국채널러들과 대적케 한 자와는 전혀 다릅니다. 어떠하든 그런 채널러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안도할 부분입니다. 함실장의 능력이지요.”
대통령을 비롯한 인사들은 곱씹었다.
함실장의 능력이란 말, 부인할 수 없다.
그는 CIA의 공격을 받아 죽을 뻔했다. 거의 죽은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림자 조직, g6에서 구출했다.
곧바로 미국을 반격해 박살냈다.
“가능한 상태가 된다면 우선적으로 함실장과 만나야겠습니다.”
가능한 상태, 부상 중인 함인건이 대면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면이란 거다. 대통령이 만나자는 의미를 그가 모르지 않은 것이기에 응할 것이다.
“지금 상태를 철저하게 유지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총리의 말, 대통령과 다른 인사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함인건의 그림자조직이 국정원을 이탈해 범죄를 일으키고 있는 거다. 그들을 잡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를 총력을 기울일 것이며, 외국세력도 일소한단 거다.
당연한 일이다. 주권국가인 대한민국 내에서 타국의 정보기관이나 범죄조직이 활보하고 사건을 일으키는 건 용인할 수 없다. 철저하게 발본색원해 박멸하고 근절해야 한다. 그런 입장을 취하면서 도모해야 한다.
“함실장과 그림자조직이 사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서 움직이는 게 진실이라면, 그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행운입니다.”
차분한 음성으로 입을 연 대통령은 결연한 눈빛을 흘려냈다.
“그러나 현재로선 모호한 상황, 그들의 의지를 명확히 판단하게 되는 때까지 긴장해야 합니다. 함실장 측이 가진 힘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니까요.”
차승환과 다른 인사들을 일일이 응시한 대통령은 다시 목소리를 냈다.
“미국의 거센 압력과 방해가 있을 겁니다. 중국과 일본도 말할 것 없겠지요. 잘 이겨내야 합니다. 그렇게 할 겁니다. 대통령은 그러라고 앉혀준 자리니까요. 여러분이 도와줘야 합니다. 우리 다 같이 힘을 냅시다.”
뒤늦은 소주잔을 들어 올리는 대통령, 그 눈에 든 의지가 미소로 흘러나오는 걸 보며 모두가 잔을 들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단숨에 넘겼다.
* * *
백화점은 화려했던 조명을 잠들게 했지만 여전히 호화롭고 웅장하다.
그 모습을 눈에 담고 다가간 장철은 커다란 출입문에 손을 댔다.
암흑의 기운의 흘러나와 성문 같은 유리문에 스며든다. 그리고 잠김이 풀렸다.
열려 있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처럼 장철은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 경보장치는 전혀 울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백화점 내 보안팀의 카메라에는 당연히 포착됐을 터, 그 상황을 무시하고 장철은 걸었다.
잠들어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응시했던 장철은 지하로 걸음을 냈다.
1층의 명품브랜드관들이 유혹하듯 존재를 과시했지만 장철은 정해진 위치를 향해 내려갔다. 일본 내각조사실 산하 한국 내 정보거점을 향해서다.
“멈춰!”
등 뒤에서 날아온 외침, 백화점 보안팀이지만 실상은 다른 자들의 공격이 바로 날아왔다. 무자비한 총격이다. 이럴 거면 멈추라고 왜 했을까.
장철은 흐름 속에 들었다.
휘어져 돌아가는 여울의 흐름이 되어 총 쏘는 자들을 휘감아 날렸다.
꽈배기처럼 휘어진 자들이 이리 저리 날린다.
통로 사방에 충돌하고 떨어진 자들, 난사하던 총이 엿가락처럼 휘어진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을 발아래 두고 장철은 다시 걸음을 냈다.
역시 앞에서 적들이 달려온다.
야상점퍼 안에 감춘, 뒤허리의 특수전 나이프를 뽑아 양손에 쥔 장철은 격류로 흘러나갔다.
* * *
케이제로 소총을 움켜쥐고 통로를 전진하던 황철현은 새삼 등골을 조이는 한기에 사로잡혔다.
귀신 장철이 지나간 길, 피와 죽음으로 물들었다.
그를 막으려던 자들, 죽이려던 일본유닛들은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귀신.’
그 존재의 의미를 절감하며 황철현은 현재 자신팀의 존재의의를 더듬었다. 이곳 소공동백화점에 침투한건 귀신 장철과 황철편 자신팀 뿐이다. 채널러 2팀이 부상 중이기도 하지만, 귀신은 혼자가 빠르다 했다.
‘정말로 그렇게 하고 있어.’
다른 자들의 도움 없이 귀신은 박살내고 있다. 혼자가 빠르다더니, 편하기도 한 거다. 황철현 자신 팀은 뒤따르며 돌발상황만 제어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으로선 그런 일도 안 생길 것 같다. 귀신은 무인지경이다.
‘아침이 되면 또 엄청난 뉴스가 터지겠군.’
이곳의 결과가 드러나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림자조직은, g6는 이제 국정원의 진정한 그림자로서 움직이는 거다. 정부도 모든 진실을 인지한 상태, 은밀한 협약이 이뤄진 거다.
‘깨끗하게 청소하고 덮을 지도.’
어떠한 결과가 있을지를 가늠하며 황철현은 귀신의 뒤를 좇아갔다.
* * *
식상한 느낌 속에 멈춘 장철은 적들을 응시했다. 채널러들, 일본전투원들이다. 이미 경험한 미국채널러들과 유사한, 거의 같은 능력자들이다. 음파와 기류와 땅을 일으키는 염동력자들, 그렇게 특화된 공격자들이다.
‘다른가?’
네 명의 채널러가 손을 잡는 걸 장철은 지켜봤다. 그들의 모습이 변하는 것도 지켜봤다. 이단계 불완전 합체자들의 형상, 도깨비 같은 존재다.
저희의 의지로 그렇게 변하고 있다. 거대한 칼들을 손에 잡는다.
‘저건 어디서 나오는 거지?’
일본도의 형태지만 크기가 전혀 다른, 커다란 칼들을 움켜쥔 채널러들을 장철은 붉은 눈으로 응시했다. 존재하지 않던 무기가 갑자기 생긴 거다.
바로 옆 허공에서 가방을 열고 꺼낸 것만 같다. 칼빛이 무시무시하다.
“우린 다르다.”
한 놈이 지옥의 사자가 말하는 것 같은 소리로 말했다.
다르다는 의미, 장철이 이전에 상대한 자들과 다르다는 거다.
장철은 무심히 대꾸했다.
“그런 것 같다.”
대답과 동시에 장철은 걸음을 냈다. 그 순간 네 명의 일본 채널러들, 도깨비로 변한 자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거대한 칼을 벼락처럼 휘두르며 튀어나왔다. 칼로부터 이탈한 칼빛들은 장철의 형상은 물론 모든 걸 벴다.
흐르고 흘러.
울림에 동화된 장철은 칼빛의 사이로 흘러나갔다.
벽과 천장과 바닥, 모든 걸 가르는 도깨비들의 칼춤 사이에서 휘돌았다.
양손에 쥔 특수전 나이프에 들어차는 암흑빛을 눈동자에도 물들이며, 암흑의 기류로 흘렀다.
장철의 흐름 속에서 도깨비들은 갈라졌다.
거대한 칼들이 토해내던 붉은 칼빛이, 칼날 몸통이, 그걸 잡고 휘두르던 팔들이, 도깨비가 된 흉악한 몸통이, 무시무시한 머리통이 쪼개졌다.
그러한 결과가 이뤄진 것은 찰나, 장철이 휘돌며 흘러가는 와중이다.
흐름을 멈추고 선 장철은 양손의 나이프를 갈무리하고 돌아섰다. 분해시켜버린 자들의 최후를 눈에 담으며 중얼거렸다. 그걸 황철현이 들었다.
“달라도 결과는 같다.”
케이제로 소총을 움켜쥔 채 황철현과 김충식과 고동식과 차현은 얼어붙었다.
* * *
“알았다.”
폰을 내린 조중건은 침대 위 함인건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무리했다는 보고입니다.”
허공으로 시선을 돌린 함인건은 힘겨운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귀신.”
작지만 분명한 감탄이 담긴 반응, 이 자리에 없는 자를 부르는 저 심정이 뭔지 조중건은 알 것 같았다. 자신 역시 마찬가지 감정이기 때문이다.
“차원장에게 연락합시다.”
조중건은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지시를 따랐다. 소공동 백화점을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일은 이제 g6가 하는 게 아니라 국정원이 한다.
“대통령과 대면해야겠습니다.”
뒤이어 나온 소리에 조중건은 흠칫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럴 때가 됐습니다. 미룰 수 있는 때가 아닙니다.”
함인건을 바라보던 조중건은 전화상대방, 차승환원장에게 차분히 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