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47화 (147/200)

황혼의 살인자. 147. 정벌.

147. 정벌.

-백화점 내부엔 총탄자국들이 있는 걸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pc모니터가 흘려내는 뉴스를 보며 이왕길은 뜨거워진 숨을 연신 흘려냈다. 젊은 시절의 그때, 서영나이트에 있을 때의 느낌이 밀려들어서다.

-밤사이 백화점에 무슨 일이 생겼던 건지 내막을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백화점 내부에서, 지하에서 모종의 사건이 일어난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경찰이 통제하기 전에 정체모를 조직이 출입한……

국정원이란 것을 이왕길은 확신했다.

그들이 저곳, 소공동의 백화점에서 무슨 일인가를 했고, 마무리까지 한 것이다.

그 뒤를 경찰이 닦는 상황인 거다.

이건 긴밀하게 연계되고 짜인 액션이다.

채널링과 관련한 거다.

-처음 백화점에 진입한 남자에 대한 목격담에 의하면……

백화점 대로 건너편이 명동이다.

밤이 없던 그 동네도 이젠 과거와 달라졌지만 그래도 명동은 명동이다.

노점상과 행인과 취객 등, 다수의 목격자가 그 남자를 봤다.

보광동과 이태원에서 목격된 자와 비슷한 자다.

‘그림자 조직의 채널러.’

그자가 확실하다. 이미 일본과 중국을 문지르고 미국까지 박살냈던 자다. 그러한 내용에 대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지만, 모두 온라인에서 피어난 음모론이지만, 그게 진실이란 것을 믿는다. 그 자는 귀신이다.

‘안 죽었어……!’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감정이 소름처럼 전신에 퍼지는 가운데 이왕길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귀신이 죽지 않았다는, 그가 저렇게 적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예감을 넘은 확신, 이건 97년 그때의 그것이다.

‘귀신은 살아 있는 거야……!’

* * *

사건 보고서를 들고 과장실 앞에 선 최재우는 블라인드 사이로 안을 보고 돌아섰다. 과장 이왕길이 뉴스를 보다가 눈을 감은 모습이 그렇게 만들었다. 자리로 돌아와 벽걸이 tv가 쏟아내는 뉴스에 다시 시선을 고정했다.

-정부는 현재까지 확인해줄 내용이 없다고 합니다. 제기되고 있는 백화점 내의 일본정보국 비밀거점설과 그곳을 그림자 조직이 공격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일체 반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되풀이 하고 있는 주장은 대한민국의 안보질서를 흔들고 위태롭게 하는 세력들을 일소하겠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거다.

그래야 할 거라고 최재우는 생각했다.

저 일이 정확히 뭔지 모르지만, 누가 흘려낸 건지 모르게 일본 정보국거점을 공격한 것이라는 설이 맞다면, 채널링전쟁의 판떼기인 거다.

‘그림자조직과 정부는 서로 칼을 겨눈 게 아니야.’

확신하는 예감은 그 부분이다.

정부와 국정원은 그림자조직을 위험한 적으로 규정했지만 그건 껍떼기다.

속살은 전혀 다른, 저렇게 그림자 조직이 진짜 적을 까부수면 그 뒤를 마무리하고 청소해 주는 게 정부다.

‘그렇게 이뤄진 상황.’

확신을 이에 물었던 숨과 함께 삼킨 최재우는 또 다른 예감을 어금니로 씹었다.

너무나 강렬한 예감, 아니 이젠 확신이다.

귀신은 죽지 않았다.

‘살아 있어. 저건 그가 한 거야.’

대림동도, 판교에서도, 보광동과 이태원도, 저 백화점까지 귀신 장철이 한 거다.

물론 전혀 다른 인물이 목격됐다.

영상으로 찍힌 존재는 젊은 남자다.

명확하게 안면을 구분할 정도로 찍힌 영상도 없다.

그렇지만 그자를 본 순간부터 든 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이젠 의심치 않는다.

‘장례식장에서 귀신을 사살한 자들, 그림자조직이 가져간 귀신의 사체가……’

어떻게 만들어진 이후인지 모르겠지만 귀신은 죽지 않은 거다.

죽었다가 살아난 건지도 모른다.

어떠하든 귀신과 그림자조직은 합쳐졌다.

그렇게 된 내막도 짐작이 어렵지만, 타국의 공격으로 인한 것으로 가늠된다.

‘귀신과 그림자조직, 서로 원하는 것에 대한 합의를 본거야.’

국정원을 이탈한 위험세력이란 그림자조직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그렇게 표피를 만들어 놓고 지원하는 거다.

그 내막도 비슷한 터다. 그렇게 흘러가는 판국이란 것을 확신한다.

귀신은 이제 혼자 싸우지 않는다.

“하아.”

깊은 숨을 내쉰 최재우는 의자에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과장 이왕길처럼.

* * *

-백화점 내부에, 지하에 일본내각조사실 산하 한국거점이 있었다는 것이 특급정보입니다. 판교 원소프트에 이어 이번 사건은 채널링과 관련된 전쟁, 전투였던 겁니다. 그림자 조직은 타국 정보기관들과 치열한 싸움……

유튜버는 침을 튀어가면서 떠든다. 실시간으로 돈을 투척하는 자들이 많아질수록 더욱 기세가 오르고 있다. 새삼 기묘한 세상이란 감회가 든다.

“저렇게 돈을 버는 세상인데……”

박인수 자신은 뭐하고 살았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강남서 형사과장이란 타이틀은 돈을 안겨주진 않는다. 그러자면 비리와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를 않았다. 그래서 이모양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림자조직의 다음 목표가 뭔지 궁금해 미치겠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죠?

자극적으로 선동하는 유튜버의 말에 어느새 휘말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박인수는 폰을 내렸다. 그런데 정말로 궁금하다. 다음은 어디일지.

‘떠드는 소리들이 정말이라고 믿는 거냐?’

스스로를 힐책한 박인수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유튜버들이 떠드는 내용, 온라인에서 진실로 출렁이는 내용들이 정말이어야 가질 궁금함인 거다.

그런데 부정할 것이 없다. 이 흐름은 누가 봐도 명백한 격류인거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그림자조직, 그리고 그 존재가 이뤄내는 결과다. 그런데 바로 그자가 문제다. 보광동에서 미국채널러들을 박살낸 젊은 남자, 그자는 귀신같다.

‘죽은 게 아니라면, 귀신이 살아 있다면……!’

그 생각이 자꾸만 든다. 점점 더 강렬해 진다. 외모가 전혀 다른 존재인데도, 귀신이 장례식장에서 수십 발의 총격을 맞고 죽은걸 아는데도 그렇다. 그런데 귀신의 시체를 확인 못했다. 그림자 조직이 가져갔다.

“안 죽었어, 안 죽은 거야.”

신음 같은 중얼거림을 흘려낸 박인수는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았다.

* * *

별장 안으로 들어오는 검정색 세단을 바라보며 황철현은 침을 삼켰다. 동시에 별장주변에 들어차는 삼엄한 기세를 느꼈다. 대통령경호실의 접근이다. 아니 별장은 이미 완벽하게 봉쇄됐다, 하늘엔 헬기가 떴다.

‘신명시에선 흔한 일이니까 의심할 것도 없는 광경.’

군헬기가 늘 날아다니는 곳이다. 그런데 지금 저 헬기들이 대통령의 이동에 맞춰 비행하는 거라는 걸 알 사람은 없다. 철저한 기밀 속의 행보다.

‘이곳으로 온 것 자체가 결단.’

대통령은 그렇게 했다.

함인건 실장이 대면하자고 연락을 하자마자 왔다.

위험을 감수한 걸음, 그래야 한다고 판단한 대한민국호의 선장이다.

‘내가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행동만 해도……’

벌집이 될 것이다.

지상과 하늘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총탄이 날아올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빈손으로 저들을 보고 있다.

김충식과 고동식과 차현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차분하고 담담한 얼굴로 들어가고 있다.

‘모든 게 잘 되기를.’

마음속의 기원을 하늘을 보는 시선에 담으며 황철현은 그를 생각했다.

‘귀신.’

* * *

대통령이 왔다.

지금 함인건실장과 대면중이다.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모르겠다.

알고 싶은 마음도 없다.

장철 자신을 보고 싶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상관없다.

봐야 한다면 보는 거다.

이건 전쟁이니까.

‘깊은 곳의 전쟁, 현실의 전쟁.’

의미를 되새기며 장철은 떠올렸다. 백화점에서 싸운 존재들, 일본 채널러들이다. 그들은 전투 직전 서로 손을 잡고 도깨비가 됐다. 그런데 허공에서 칼을 꺼냈다. 원래 있던 곳에서 꺼내는 것처럼 했다. 그건 뭘까.

깊은 곳에.

울림이 뇌리를 흔든다.

장철은 일어섰다.

테이블 위에 둔 두 자루 나이프를 잡았다.

말없이 들여다보다가 등 뒤로 갈무리했다.

케이스도 없는 빈 공간, 나이프 두 자루는 들어갔다. 그걸 다시 빼내 가슴 앞에 세웠다.

‘이런 건가.’

가슴 앞에 든 두 자루 칼날의 서늘한 빛을 눈에 담던 장철은 다시 뒤로 갈무리했다. 반팔길이의 두 자루 특수전 나이프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 * *

대통령은 돌아갔다. 삼엄하게 펼쳐졌던 경호의 기세도 사라졌다.

‘여길 노출시킨 의도가 있겠지.’

주변을 날카로운 눈으로 돌아보며 황철현은 생각하고 가늠했다.

함실장이 이곳으로 대통령을 오게 한 배경이다.

물론 그가 움직이기 힘든 상태라는 전제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곳을 노출한 건 다른 의미인 거다.

‘2팀을 비롯한 지원팀이 이동해간 장소.’

황철현 자신도 아직 모르는 그곳이 있는 거다. 그곳은 숨기고 이곳을 노출하고, 스스로를 노출시키고 함실장은 대통령을 만났다.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모른다. 어떠하든 이젠 전쟁이다.

‘응?’

밖으로 나온 귀신을 보고 황철현은 눈에 힘을 줬다.

그런데 귀신만이 아니다.

휠체어에 의지한 모습으로 함실장도 나왔다. 조국장이 뒤를 밀며 별장 뒤 숲으로 간다.

이젠 그럴 차례, 저들이 나눌 이야기는 뭘까.

* * *

“아버지가 어릴 때 늘 들려주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연 함인건은 문득 생각이 난 듯 뒤를 돌아본다. 조중건 국장이 한손으로 밀던 휠체어의 느낌을 털어내려는지 왼팔을 흔들고 있다. 이편의 대화에서 일부러 거리를 둔 그는 몸까지 돌린다.

“잘 못된 건 바로잡아야 한다. 제 때 바로잡지 못하면 나중엔 할 수 없다.”

숲을 보며 함인건은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늘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본인은 그렇게 하지를 못하셨습니다. 잘못을 바로 잡기는커녕 뒤집어 쓰셨지요. 결국 죽음을 받으셨습니다. 말씀대로 된 겁니다. 제 때 바로 잡지 못해서, 나중엔 할 수 없어서 그런 겁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장철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그런데 지금 드는 생각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어떤 말을 했던가이다. 어부로 사신 아버지는 별다른 말씀이 없었다. 그저 머리를 쓰다듬은 거 외엔.

‘아버지.’

간첩이 되어 북으로 가신 아버지, 그곳을 탈출하려다 압록강변에서 차가운 죽음을 맞은 아버지, 마지막에 가슴에 품었을 것이 뭔지 알고 싶다.

‘나와 같았겠지.’

은주를 생각하고 딸 민지를 생각하고 손녀 영이를 생각한.

“정벌을 꿈꿨습니다.”

다시 귀를 파고든 함인건의 목소리에 장철은 귀를 기울였다.

“정벌 당하는 게 아니라 정벌하는 걸 꿈꿨습니다.”

강렬한 눈빛을 흘려내는 함인건의 목소리를 아픈 자의 것이 아니었다.

“혼자 살아남기에도 바쁜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내가 당한 일들이, 힘이 있었다면 당하지 않았을 일들이 화가나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미친 듯이 공부했습니다. 힘을 가진 자가 되기 위해서요. 그러다 알게 됐습니다.”

함인건은 장철을 올려다보며 뒷말을 냈다.

“이 나라도 나와 같다는 것을요.”

커다란 산을 품은 것 같은, 거대한 바다가 든 것 같은 함인건의 눈을 장철은 말없이 응시했다.

“잘못된 것을 제때 바로잡지 못한 나라, 그로인한 피해를 국민들이 받아내고 사는 나라, 바로 잡고 싶었습니다. 내 인생의 굴곡을 바로잡고 되갚아 주려는 결심 위에 그 결심을 얹었습니다. 우릴 유린한 적들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눈치만 보고 사는 걸, 박살내기로 했습니다.”

함인건은 분명한 어조로 또박또박 뒷말을 이어냈다.

“받은걸 돌려주기로 한 겁니다.”

사죄니 배상이니 필요 없다는 거다.

불공정한 압력과 굴종은 타파하겠다는 거다.

그 일에 귀신을 칼로 쓰겠다는 의지다.

장철은 입을 열었다.

“전쟁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감정에 밀려드는지 흔들리는 함인건의 눈을 항해 장철은 뒷말을 던졌다.

“다음일정, 시작합시다.”

* * *

최재우가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이며 시간을 확인하던 유인주는 tv소리에 미간을 좁혔다.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거실로 가 뉴스에 눈을 박았다.

-잠시 전 7시 40분에 일어난 동두천 염색공장의 화재는 평범한 화재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 대부분이 중국……

눈을 크게 뜬 유인주는 신음 같은 중얼거림을 흘려냈다.

“그 사람이야……”

귀신 장철, 그가 한 거다.

소공동 백화점의 일본거점에 이어 바로 중국거점을 공격한 거다.

귀신이 살아있고 그가 한 거란 남편 최재우의 말이 맞다.

자신 역시 같은 예감을 품고 있던 차, 이젠 확신으로 새긴다.

-내부에서 총격전과 폭발이 있었다는 주변의 증언위에 그 남자의 모습이……

멀리서 찍힌 블랙박스영상, 귀신으로 예감되는 젊은 남자를 보며 유인주는 전율했다.

그렇다, 귀신은 죽지 않았다.

그의 응징이 세상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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