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148. 오래 전에 예정된.
148. 오래 전에 예정된.
하규진은 지갑을 들여다보고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천원짜리 세장이 들어 있는 전부다.
이거 가지곤 어디 가서 밥 한끼도 못 먹는다.
돈을 구해야 한다.
그렇지만 돈 나올 구석이 없다. 다니던 공장도 잘린 신세다.
“씨발.”
감정마저 체념한 욕을 허공에 뱉은 하규진은 냉장고를 열었다. 중고매장에서 사온 작은 냉장고는 여전히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시원찮은 냉기를 풀어낸다. 그 냉기를 받고 있던 소주병을 꺼냈다. 김치통도 꺼냈다.
“씨발 거.”
다시 욕을 뱉으며 하규진은 소주병을 잔에 기울였다.
반나마 있던 소주는 금세 바닥났다. 시큼한 김치도 그마저도 바닥을 보인다.
정말로 뭣 같은 인생이다.
한때는 그래도 잘나갔는데, 말년에 이게 무슨 꼴인가.
‘아직 육십도 안됐는데, 신세 참 더럽구나.’
처량한 분노를 삼키며 하규진은 벌렁 드러누웠다.
월세 30만원짜리 빌라방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누수가 되는 게 확실하다. 얼룩이 점점 커진다.
저런 얼룩이 기억 속에 있다.
은주, 그년하고 살 때 집 천장이 저랬다.
“그 집……”
그때가 제일 좋았다.
아버지가 은주 엄마를 후려서 그 집에 들어가 살게 됐을 때 꿈인가 싶었다.
친아버지도 성이 하씨였다는 공교로운 우연 같은 걸 은주 그년에게 말하려다가 냉정한 면박만 당했지만, 좋았다.
‘아버지가 그년이 일하던 업소에 찾아갔었어.’
분명하다, 어느 날 아버지는 만신창이가 된 몰골로 집에 돌아왔다.
제대로 당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뭣 때문에 그런 꼴이 됐는지 알았다.
은주를 찾아갔었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러운 늙은이.’
아버지가 은주에게 보인 집착은 유난히 강했었다.
그년이 집을 나간 후에도 찾으러 다녔었다.
그러다 수유리 벌떼클럽을 찾아갔고, 거기서 기도에게 호되게 당한 거다.
그 뒤로 집을 팔고 그 동네를 완전히 떠났다.
‘정릉.’
지금은 상전벽해가 이뤄진 동네다. 감나무집은 사라지고 아파트 숲이 생겨났다. 그 집을 판돈으로 쏠쏠하게 살았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어서 그런 건지,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새듯 새어나가 버렸다.
“그렇게 하는 일마나 안 되기도 쉽지 않을 거다. 씨발 거.”
천정을 향해 회한의 욕을 던진 하규진은 눈을 감았다.
잠시나마 이것저것 사업이랍시고 하던 시절을 음미했다.
길지 않던 그 때는 그래도 웃었었다.
남들이 불러주는 사장님 소리에 우쭐해 소주가 아닌 양주를 마셨다.
‘아버지하고 갈라선 건 정말로 잘한 거야.’
집 판돈을 들고 튄 건 지금 생각해도 최선의 선택이었다.
아버지가 그 돈을 썼으면 하규진 자신은 구경도 못해봤을 거다.
그래도 전부 다 가지고 튄 건 아니었다. 아버지가 혼자 먹고 살만한 정도는 남겨두고 갔다.
“씨발 늙은이, 어디서 뒈졌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네.”
죽은 것 같다. 그 인간이 돈을 관리하면서 불리고 살았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어디선가 술에 취해 객사했을 것이다. 가장 어울리는 죽음이다.
‘미성년자 강간 같은 걸로 뉴스에 나오지 않나 했는데.’
제 버릇 개 못준다고, 조두순 같은 짐승처럼 흉악한 사고를 저질러 뉴스를 타지 않나 지켜보긴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없는 건지 안 걸린 건지 뉴스에 나오진 않았다. 했어도 뉴스에 나오진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복불복이니까.’
후하고 한숨을 내쉰 하규진은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동네 슈퍼에 가서 외상이라도 소주를 가져와야겠다.
외상값이 밀려 주지 않겠지만 강짜를 부리든지 해야겠다.
정 안되면 씨발 강도짓이라도 하든지.
“퉤.”
열려 있는 욕실 바닥을 향해 거한 침을 뱉은 하규진은 현관을 향해 다가갔다.
현관문손잡이를 잡고 막 돌리려는데 문이 열렸다.
어? 하며 보니 젊은 남자가 서 있다.
소주병이 든 비닐 봉투를 들고 있다 내민다.
“뭐, 뭐요?”
당황 속에서도 남자가 내민 소주를 보며 하규진은 침을 삼켰다.
“하규진씨 되십니까?”
자신의 이름을 밝힌 남자, 서른 초중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누군지 몰라 하규진은 미간을 강하게 찌푸렸다. 남자는 방문용건을 말한다.
“하은주씨에 관해 나눌 이야기가 있어 온 사람입니다.”
하은주, 그 이름이 둔기처럼 머리를 때린다.
‘은주?’
하규진은 직전 보다 조금 더 큰 당황을 삼켰다.
난데없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수십 년 전에 연이 끊어진 이름이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면부지의 젊은 남자가 찾아와 그 이름을 말한다.
“누군데 은주에 대해……”
“들어가서 말하죠.”
젊은 남자가 밀고 들어온다. 하규진은 막고 거부하고 자시고 할 새도 없이 뒷걸음 했다.
“아니 이거 보쇼!”
뒤늦게 반발을 소리치려던 하규진은 남자가 바닥에 푸는 비닐 봉투 안 내용물을 보고 멈칫했다. 소주병들 아래에서 정체를 드러낸 것은 보쌈이다.
향긋한 돼지고기 수육냄새가 확 풍겨온다. 온몸이 마비되는 냄새다.
“한잔 하시면서 말씀 나누죠.”
스스럼없이 거실 바닥에 앉아 소주병을 까는 젊은 남자, 그가 따라 내미는 소주잔을 보고 하규진은 엉거주춤 마주 앉았다. 받아든 소주잔을 보고 남자의 얼굴을 보고 하다가 단숨에 마셨다. 수육도 바로 집어 먹었다.
“햐, 쥑이네.”
감탄사를 절로 낸 하규진은 제 손으로 연거푸 소주를 따라 마셨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잊은 채, 눈앞의 소주와 보쌈에 취해 취기에 젖었다.
소주반병으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던 상태, 금세 소주 한 병을 비웠다.
“어 좋네.”
얼큰한 기분으로 흐뭇해진 하규진은 뒤늦게 젊은 남자를 응시하고 물었다.
“은주에 대해 말할게 있다고 그랬나?”
취기 때문에 담대해진 어투는 초면의 젊은 남자를 이렇게 대하면 안 된다는 경각심도 잊고 나온다. 오래전부터 알던 손아래 사람처럼 말했다.
“뭔데?”
다시 새 소주병을 까던 하규진은 귀를 파고드는 소리에 멈칫했다.
“갚아주려고.”
맥락 없는 말, 그러나 의미와 뉘앙스가 확 하고 전신을 조인다.
깨달아 진다.
‘갚아 줘?’
눈썹을 세운 하규진은 젊은 남자의 눈을 봤다.
깊고 무겁게 가라앉은 눈동자다.
생전 처음 본 남자다.
이런 남자와 어디선가 얽힌 기억이 없다.
그런데 이 남자는 하은주를 말하며 문을 열었다.
선의로 온 게 아니다.
‘이거!’
뒤늦은 현실 자각으로 하규진은 움직였다. 소주병을 들어 휘둘렀다. 하은주와 자신의 관계가 그렇다는 걸 이 순간 확실히 깨달으면서다.
그렇다. 그녀와 자신은 악연이었다.
그년이 청부폭력을 하려는 게 분명하다.
‘어?’
소주병이 멈췄다.
젊은 남자의 머리통을 후려갈겼어야 하는데 멈췄다.
그런데 젊은 남자가 손으로 잡은 게 아니다.
움직인 게 아니다. 처음 앉은 그 모습 그대로 있다.
소주병은 남자의 머리 옆, 허공에 멈춰 있다.
“뭐, 뭐?”
소주병을 놓고 엉덩이를 물리던 하규진은 눈을 치떴다. 젊은 남자의 깊고 무거운 눈동자가 한순간 피처럼 붉은 빛을 발산하다가 암흑이 됐다.
‘헉!’
위험을 본능으로 절감하는 그 순간 소주병이 움직였다. 허공에 못 박힌 듯이 멈춰 있던 그것이 이동했다. 벼락처럼 날아와 머리를 강타했다.
산산조각 나는 소주병 파편들 속에 뒤로 쓰러진 하규진은 들었다.
“나는 장철이다.”
아찔한 의식 속에서 하규진은 지금 들은 이름이 누군지 헤아렸다.
장철, 모르는 이름이다. 그렇지만 저 놈은 하은주가 보낸 놈, 죽이러 왔다.
“사, 살려주십시오!”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닦을 상객도 못하고 하규진은 엎드려 빌었다. 어떠하든 자신과 아버지와 같이 하은주의 인생을 망친 장본인인 거다. 그렇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하은주 입장에선 분명 그런 거다.
“자, 잘못했습니다! 절 보십쇼! 쓰레기처럼 사는 놈입니다! 저 같은 놈 죽인다고 달라질게 하나도 없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부탁합니다!”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던 하규진은 두 번째 이름, 호칭을 들었다.
“나는 귀신이다.”
귀신, 그 이름이 귀에 박히는 순간 하규진은 얼어붙었다.
저 호칭의 존재가 누군지 안다. 모를 수가 없다.
그렇다, 귀신의 이름이 장철이다.
그 존재는 죽었다. 죽는 광경이 영상으로 돌았다. 그런데 안 죽었다 한다.
‘정말 귀신이라고!
괴담과 음모론, 그런 거라고 말하지만 귀신은 살아 있다는 소문이다.
‘귀신이 왜 나를!’
충격과 공포 속에서 엉덩이를 뒤로 밀던 하규진은 귀신의 음성을 다시 들었다.
“네가 한 짓의 대가를 받는 거다.”
흐릿한 귀신의 발이 안면을 강타했다는 걸 하규진은 뒤늦게 깨달았다.
공포에 먹힌 의식은 고통조차 느끼지 못한다.
뭉개진 얼굴을 들어 귀신을 봤다.
부들거리는 경련 속에, 흐릿한 시야 속의 귀신은 칼을 꺼낸다.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나이프, 영화에서 보던 무기가 사타구니를 내리친다.
‘헉.’
쩍 소리가 퍼지는 걸 하규진은 분명히 들었다. 그런데 역시 고통은 모르겠다. 화끈한 충격의 감각뿐이다. 그러나 육신이 아닌 영혼이 고통스럽다.
‘대가.’
귀신이 한말을 뇌이며, 영혼을 맷돌로 갈아대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하규진은 꿈틀거렸다. 귀신이 칼을 내리치는 속에서 천정의 얼룩을 봤다.
* * *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유심히 바라보던 하대근은 관리소장의 전화를 받았다. 재활용품분리장에 가서 마대자루를 치우라는 지시, 욕을 했다.
“젖같은 년이 이래라 저래라야?”
아파트 관리소장은 여자다. 한번 준대도 손대고 싶지 않은 년이다. 지은 지 삼십년이나 된 구축 아파트, 그래도 세대수가 많아 하대근 자신 같은 경비들이 제법 된다. 그 위에 군림하는 소장 년을 보면 벨이 꼴린다.
“여자는 그저 남자가 누우라면 눕는 것들이지 무슨, 에이 씨발.”
침을 뱉으며 재활용품장으로 걸어간 하대근은 놀이터를 힐긋 돌아봤다. 며칠 전부터 눈에 보이기 시작한 여자아이의 밝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조거 아주 예쁘게 생겼네.’
새로 이사 온 아이가 분명하다. 하대근 자신이 근무할 때가 아닌 날 이사 왔다. 자꾸만 눈에 밟혀 집중이 안 된다. 그런데 시킨 일은 끝내야 한다.
“마대가 왜 이렇게 많아?”
재활용품 수집상에 재고가 워낙 많아 며칠 수거가 밀린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이걸 지하주차장 옆 빈 공간에 옮겨 놓아야 한다. 안 그러면 주민들이 내놓는 쓰레기로 감당이 안 되는 거다. 어떻든 아파트는 좋다.
‘이런데서 살 수 있었는데, 규진이 그 새끼 덕분에 이 꼴이구나.’
돈을 들고 튀어버린 아들놈, 하규진을 생각하며 하대근은 마대를 열심히 옮겼다. 동반돼서 떠오르는 과거, 옛 기억을 더듬었다. 하은주가 생각난다. 그년을 찾아갔던 수유리 벌떼클럽에서 당한 폭력이 생생하다.
‘그 새끼 전도성이, 더럽게 말년을 장식했어. 날 그렇게 한 벌을 받은 거지.’
그 당시에 하대근 자신을 잘근 잘근 밟은 놈이 전도성이란 걸 나중에 알았다. 그놈은 국회의운까지 하고 정말 잘 나갔다. 그런데 권총자살했다.
“퉤, 씨발새끼.”
거한 침과 욕을 뱉은 하대근은 문득 시선을 느꼈다.
주차장의 차안에서 젊은 남자가 나온다.
이쪽으로, 하대근 자신을 향해 똑바로 걸어온다.
‘뭐야?’
기묘한 불안을 예감한 하대근은 파이프를 손에 움켜쥐었다. 마대자루 주둥이를 돌려 감아 마무리할 때 쓰는 것, 여차하면 휘두를 생각이다.
“하대근씨.”
젊은 남자가 부르는 자신의 이름에 하대근은 움찔했다.
상대는 분명히 자신에게 용건이 있어 온 것이다.
누굴까? 경찰인가? 그럴 일이 없는데?
“뉘, 뉘슈?”
젊은 남자는 전혀 뜻밖의 말을 한다.
“하은주씨의 전갈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은주, 귀를 파고든 그 이름이 가진 의미가 전신에 퍼져 하대근은 경직했다.
“으, 은주? 전갈?”
의붓딸이었던 그년이 보냈다는 거다.
뭔가?
수십 년이 흘러갔는데 날 어떻게 찾은 건가?
설마 앙갚음 하겠다고?
이 젊은 놈이 그래서 왔다고?
“뭐야!”
버럭 소리친 하대근은 파이프를 무작정 휘둘렀다. 그런데 그러기 전에 젊은 남자가 먼저 움직였다. 귀신처럼 다가와 멱을 잡았다. 숨이 콱 막힌다.
“네 아들, 하규진이 기다리고 있다.”
젊은 남자의 눈동자가 붉은 빛에서 암흑으로 물든 순간, 하대근은 죽음을 깨달았다. 지옥으로 길에 가는 들었음을 알았다. 아들놈은 먼저 갔다.
팔다리와 몸통이 흩어지는 속에서 하대근은 그녀를 봤다. 웃는 하은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