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종말전야. 1. 북극에서 온 선물.
1. 북극에서 온 선물.
가을볕이 화창한 날이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중랑천변 산책로엔 사람들이 가을을 즐기는 모습이 한창이다. 손잡고 나온 젊은 연인들부터 나이 지긋한 노부부와 행복한 가족들, 라이딩족들도 행복하게 달리고 있다.
“저게 사는 건데…… 2021년도 벌써 가을로 물들었구나.”
창밖을 보며 한건(韓建)은 컵라면을 후루룩 먹었다.
늘 먹는 새우탕면이다. 오늘도 실망을 주지 않는 msg의 맛이 훌륭하다.
그렇지만 이젠 그만 먹고 싶다.
패밀리레스토랑에 가서 스테이크 한번 썰어보고 싶다.
“대박을 한번 쳐야……”
중얼거리다 미간을 구긴 한건은 의자를 돌려 책상 앞으로 붙었다.
모니터를 ‘얘기천지’ 싸이트가 오연하게 차지하고 있다.
국내 장르소설 플랫폼으로는 최고라는 곳, 그러나 그건 한건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다.
“조회수가……”
백 명대를 겨우 넘긴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확인하며 한건은 고개 숙였다. 자괴감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손에 잡은 젓가락을 움직이는 건 멈추지 않았다. 새우탕면의 맛을 씹고 음미하면서 다시 다짐한다.
“한번만 터지면 되는 거야……!”
비뚤어진 신앙, 이게 그런 거라는 걸 한건은 알고 있다.
그릇된 신념을 넘어서 이건 그런 거다.
한번만 터지면이라니, 소설은 로또가 아니다.
잘 쓰고 재밌는 이야기는 뜨게 돼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면 된다.
‘그게 안 된다는 게,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지.’
라면 때문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는 숨이 뜨거워 한건은 허공으로 숨을 불어냈다. 허탈하고 안타까우며 비루하게 까지 느껴지는 찐 한숨이다.
“때려치우고 공사판 질통이라도 매는 게 나을 텐데……”
그러질 못하는 몸이라는 게 문제다. 다리부상을 안은 이 몸으론 육체노동을 할 수가 없다. 이렇게 된지 어느새 오년, 나이는 이제 서른넷이다.
‘하, 서른넷이라니.’
한참일하고 왕성하게 연애할 나이다.
옛날엔 노총각이라고 부른 나이라고 안다. 하지만 요샌 새파란 젊은이다.
그 젊음을 이렇게 방구석에서 삭이고 있다.
이렇게 된 건 누구 탓일까, 흙수저 인생은 이런 것인가.
“아버지 어머니, 두 분 원망은 안합니다.”
다시 창으로 의자를 돌리며 한건은 흐린 미소를 지었다.
화사하게 내리치는 가을 볕 아래 삶을 즐기는 이들을 바라보니 부모님이 떠오른다.
늘 자신이 먼저였던 두 분, 사랑만 주시던 분들, 그러나 훌쩍 가셨다.
“열여덟에 두 분을 보냈으니 혼자서 십육 년을 살았네요.”
미소를 더 짙게 만든 한건은 지난 삶을 반추했다. 날벼락 같은 화재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고2 겨울의 그때부터, 스물이 돼서 군대엘 가고 말뚝을 박던 날, 해외파병이 돼서 임무수행 중 부상을 당한 운명의 그날까지.
“뭐, 그런대로 잘 보내고 잘 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테니 걱정 마세요.”
실없는 놈처럼 히죽 웃은 한건은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꿈이었던 거야?’
어젯밤 너무나 생생한 꿈을 꿨다.
채널링전쟁, 귀신.
그러한 호칭들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사건들, 깨어보니 꿈이다.
‘꿈이라기엔……’
너무나 생생하다. 이건 흡사 그런 것 같다. 평행세상의 또 다른 한국에서 일어난 일, 한건 자신과 연결된 헤아리지 못한 섭리, 그러한 예감이다.
“무슨 헛생각이냐.”
피식 웃은 한건은 잠시 잊었던 새우탕을 인지했다.
“에고, 다 식고 불었네.”
미간을 옅게 찌푸린 한건은 그냥 먹을까하다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아무리 라면이지만 하루 두 끼 먹는 건데, 오늘은 제대로 좀 먹자.”
방을 나가던 한건은 휘청했다.
‘이놈의 다리.’
체념의 숨을 낸 한건은 절름거리는 걸음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부상을 안고 귀국해 병원치료를 마치고 제대한지 5년이 됐다.
왼다리의 장애는 평생을 안고 가야 한다.
삶의 일부다. 그런데도 때때로 그걸 잊는다.
“어디보자, 냉장고에 뭐가 있냐.”
소형 냉장고를 연 한건은 차돌박이 남은걸 보고 눈을 빛냈다.
주말에 맥주 한잔이 생각나서 함께 사 구워 먹고 남은 거다.
얼른 꺼내서 싱크대 위에 올렸다.
라면을 꺼내 물을 올리고 수프와 면을 때려 넣었다.
‘끓기 시작하면 차돌박이를 넣고.’
생각하며 미소 짓던 한건은 미간을 옅게 찌푸렸다.
‘잔고 남은 게 칠백이십인데……’
매달 내는 월세가 50이다. 생활비를 안 쓴다고 해도 이젠 일 년 정도면 바닥이다.
‘원래대로라면 상이연금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중사였던 한건 자신은 직업군인이니 사병과 달라 상이연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국가에서 감춰야 할 작전에서 입은 부상이라 그게 안 된다.
‘누굴 원망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니니까.’
지난 기억을 더듬던 한건은 묵직한 숨으로 털어내고 현실을 더듬었다. 비어가는 통장 잔고다. 완전히 바닥이 나기 전에 소득을 올려야 한다.
‘얘기천지’에서 유료연재로 들어가 터지기만 하면 되는 거다.
그런데 현제 조회수로는 난망이다.
‘생보초였던 놈에겐 역시 무리인건가.’
공모전에서 입선만 하지 않았어도 안했을, 관심을 접었을 일이다.
무협매니아였던 터라 무협이야기로 응모해서 입선을 했다.
정말 우연 같은 일이었다.
이 몸으로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해서 잘 됐다고 좋아했었다.
그런데 시작뿐이었다.
장려상 입선상금 이백만원이 지난 이 년간 번 돈의 전부다.
일 년에 백만 원 번 꼴이다.
그렇지만 실망보다는 열의를 가지고 계속했다.
통장에 돈이 있었기에 그럴 수 있었다. 정말 큰돈이 있었다.
“응삼이 이 새끼……!”
친구 이응삼의 이름을 부르며 한건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중고등학교 동창이고 가장 친한 친구 두 명 중의 한명인 이응삼, 그놈이 통장의 돈을 훑어갔다. 물품대금 때문에 그런다고 정확하게 사흘만 쓰고 준다면서.
“으, 내 목숨 값……!”
고개 숙인 한건은 허탈한 숨을 연신 내쉬었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하는 넋두리는 이제 나오지 않는다.
군대에 젊음을 바치고 다리까지 바친 돈이다.
‘모아뒀던 돈에다 특별 전역축하금, 거기다 퇴직연금으로 일시불 수령한 돈을……!’
그런 돈이라는 걸 이응삼 그 놈도 안다. 그래서 도망친 거다.
“응삼아, 다 용서할 테니까 그냥 나타나기만 해라. 네 아버지 어머니도 생각 해야잖아? 약혼녀는 저렇게 둘 거냐? 용서해 줄 테니까 그 상판을……”
달래듯이 중얼거리던 한건은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며 젓가락을 분질렀다.
“내 돈 가지고 처 나오라고 새꺄!”
빽하고 소리친 한건은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골랐다.
그렇게 분노를 잠재우고 다시 한숨 쉬었다.
이응삼이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면서다.
젊은 놈이 사업한다고 하다가 그런 거다. 오죽 어려움이 많았을까 짐작된다.
“그래, 은행 대출도 안 되고 여기저기 돈줄이 막혀서 그랬겠지. 내 돈이 네 돈 아니냐. 우린 단팥빵 하나도 갈라먹던 삼총사였으니까 말이다.”
한건은 중얼거리며 다 이해한다는 얼굴로 주억거렸다. 미소도 피워냈다, 그런데 그 미소가 다시 일그러진다. 참고 있던 욕이 절로 튀어나온다.
“개새꺄! 네가 나한테 그럴 수 있냐!”
버럭 소리치던 한건은 그 순간 들리는 벨소리에 반응하며 몸을 돌렸다. 뭐지? 하면서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택배박스 하나가 놓여 있다.
‘누가 뭘?’
택배 시킨 게 없기에 한건은 고개를 갸웃하며 작은 박스를 들었다.
두 손으로 움켜쥐면 될 정도로 작은 박스다.
뭐가 들었는지 아주 가볍다.
“어라? 병철이가 보낸 거네?”
현관문을 닫으면서 보낸 사람과 주소를 확인한 한건은 반가운 얼굴로 좁은 거실에 앉았다. 투룸다세대 2층이지만 햇빛이 정말 잘 드는 집, 이 가을 햇살만큼이나 반가운 택배다. 친구 최병철이 선물을 보냈다.
‘자식이 고맙네.’
뭔지 모르지만 북극연구소 연구원인 최병철이 보낸 거면 특별한 걸 거다.
최병철, 한건 자신과 이응삼을 제 목숨처럼 생각하는 친구다.
그래서 말 못했다. 이응삼이 돈을 그렇게 했다는 걸 알면 북극에서 달려올지 모른다.
“어디 보자, 뭐냐?”
박스를 개봉한 한건은 뽁뽁이로 감싼 작은 돌을 확인했다.
회색빛이 도는 돌, 몽돌해변에서 보는 조약돌 같다.
메모지를 보니 내용을 알겠다.
[건아, 행운을 가져다주는 행운의 돌이다. 이 돌이 준 행운으로 나는 여자를 만났다. 러시아 연구소의 아나스타샤다. 그녀와 난 사랑에 빠졌다.]
“어라 이 자식?”
[그 행운을 이제 너에게 보낸다. 복에 파묻혀라 자식아.]
마지막문장은 역시 최병철답게 마무리한 메모, 바라보며 한건은 피식 피식 웃었다. 그러다 작은 회색돌을 응시했다. 행운의 돌이라는데 특별하게 보이진 않는다. 그렇지만 최병철이 한건 자신을 위해 보낸 선물이다.
“고맙다 병철아.”
진한 미소로 친구를 떠올리던 한건은 흠칫하며 주방을 돌아봤다.
씽크대 쪽창을 열어 놨는데, 고양이가 들어왔다.
차돌박이를 물고 돌아선다.
“어? 야 이 도둑고양이새꺄!”
소리치며 벌떡 일어난 한건은 왼다리의 불균형으로 휘청했다.
주저앉듯이 바닥을 짚은 그 순간 고양이가 이편을 돌아봤다.
약 오르지? 하는 것 같은 눈이 새파랗다. 그 순간 한건은 자신도 모르게 돌을 던졌다.
“꺼져!”
회색돌은 총탄처럼 날아가 정확하게 고양이를 강타했다.
날카로운 소릴 낸 고양이는 차돌박이가 든 스티로폼 용기를 떨어뜨렸고, 한건은 바닥을 짚은 손을 밀고 일어서 달려갔다.
고양이는 부리나케 도망쳐 나갔다.
“얌체 같은 놈아! 다신 얼씬 거리지 마라!”
쪽창에 대고 고양이를 욕한 한건은 도둑맞을 뻔한 차돌박이를 라면 냄비에 넣었다. 보글보글 끌어 오르기 시작한 라면은 냄새가 살인수준이다.
“좋네.”
흡족한 미소를 지은 한건은 라면냄비에 젓가락을 넣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씽크대 주변에 있어야 할 돌이 안보여서다.
그걸 고양이에게 던질 생각은 애초 없었지만 상황이 그렇게 된 터, 그런데 눈에 안 보인다.
‘어디로 떨어진 거야?’
라면 냄비에서 돌아선 한건은 돌멩이를 찾아 주방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는 동안 보지 못했다. 라면 냄비에서 무지개빛이 피어나는 것을.
“이러다 라면 불겠네.”
그게 어딜 갔겠어, 우선 먹고 찾아야겠다, 하면서 한건은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죽이네.”
차돌박이를 넣어서 그런지 정말로 훌륭한 맛이다. 그 맛에 취하고 감탄하면서 한건은 선 채로 라면을 해치웠다. 국물까지 남김없이 먹었다.
“후.”
마침내 냄비와 젓가락을 놓은 한건은 포만감에 미소 지었다. 잠시 그 기분을 눈감고 음미한 후 바로 설거지를 했다. 냄비와 젓가락뿐이지만 미루지 않는 것은 몸에 밴 습관, 깨끗하게 씻어서 정리한 후 돌아섰다.
“자, 이제 밥도 먹었으니까 힘내서 일해 보자.”
방으로 돌아간 한건은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모니터에 떠 있는 ‘얘기천지’를 접어두고 한글을 띄웠다. 연재 중인 이야기의 이후 스토리를 써 내려갔다.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가 경쾌한 가운데 술술 써내려갔다.
‘실연당한 최승범은 소주를 세 병이나 마시고 하염없이 길을 걷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한강대교, 흐르는 한강물을 내려다보던 그는 다리 위로……’
한건은 자판 두들기던 손을 멈췄다. 미간을 강하게 찌푸렸다.
“아니지, 이건 아니지.”
군대에서 임무수행 하던 때의 눈동자로 한건은 고갤 저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정말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어서다.
그 누구보다도 절망에 대해 잘 알고 겪은 이가 한건 자신이다. 하지만 그런 짓은 안했다.
“죽는 건 쉬운 거야, 지는 거지. 사는 게 어려워, 그게 이기는 거고.”
불구가 된 다리를 내려다 본 한건은 방금 써내려간 내용을 지웠다.
의자를 물리고 창을 보며 생각했다. 지금 자신의 상황이다.
불구자에다 이젠 돈도 떨어져 가는 처지, 그렇지만 저 가을 햇살은 정말로 눈부시다.
‘만든다. 내 인생, 내가 빛이 나게 만들고 만다.’
결연한 의지로 미소를 피워낸 한건은 다시 자판을 두들겼다. 새로 만드는 이야기의 주인공 최승범이 비관을 버리는 걸로, 투신자살을 포기하고 돌아선 그가 간곳이 의정부 신곡동 중랑천변 산책로로 배경을 바꿨다.
“음, 여기서 주인공에게 뭔가 신박한 일이 생겨야……”
그걸 어떻게 할까 한건은 고민하고 고민했다. 일반 소설이 아니고 현대판타지장르이니 당연히 신비하고 기이한 부분이 있어야 한다. 주인공의 처지를 바꿀만한 능력 같은 거, 찾아내든 우연히 갖게 되던 그런 거다.
“우연히 스마트폰 하나를 줍게 된다…… 그 스마트폰은 신비한 힘을 가진……”
한건은 미간을 강하게 찌푸렸다. 식상하고 뻔한 스토리여서다. 그런데 당장 떠오르는 게 없다. 삭제하고 다시 쓰더라도 일단은 써보는 거다.
‘스마트폰을 주운 최승범은……’
자판을 두드리던 한건은 귀를 파고드는 비명에 흠칫하며 고갤 돌렸다.
눈부신 가을 햇살이 내리치는 창밖의 천변 산책로를 봤다.
그곳에서 비명이 터지고 있다.
피가 튀고 있다.
일본도를 휘두르는 남자 때문이다.
‘뭐!’
경악과 충격으로 한건은 경직했다.
중년 남자 한 명이 일본도를 잔인하게 휘두른다.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쓰러진다. 생선토막처럼 팔이 떨어져 나가는 광경은 현실 같지 않다.
피로 물들인 지옥, 그걸 만든 남자는 도망간다.
‘저 미친놈이……!’
이게 뭔지 한건은 직감했다.
묻지 마 살인이다.
일본의 지하철에서 자주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 불특정다수를 향한 범죄다.
그런 일이 창밖에서, 중랑천변 산책로에서 일어났다.
이 충격을 다스리기가 힘들다.
“후아……!”
고개 숙이고 숨을 몰아 내쉬던 한건은 자신도 모르게 자판을 다시 두들겼다.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이 분노를 풀듯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묻지 마 살인을 하고 도주하던 범인은……’
새로 쓰던 주인공 최승범의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경찰의 추적으로 도주로가 차단돼 고립된 범인은 일본도를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출동한 경찰관 여섯 명이 쏜 총격을 받고 즉사하고 만다.’
마침표를 찍고 손을 내린 한건은 그 순간 귀를 파고드는 소리를 들었다.
창밖의 상황이다.
어떻게 된 건지 경찰이 즉각 출동했다.
경관 여섯 명이 일본도를 휘두르는 범인에게 경고한다. 그리곤 바로 총을 쏜다.
일본도를 버리고 손을 들려던 범인은 춤을 췄다.
머리가 터지고 가슴에서 피를 뿜고 팔다리를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저거……”
황당한 눈을 치뜬 한건은 꿀꺽하는 소리가 나게 침을 삼켰다. 자신도 모르게 가늘게 떠는 손가락, 그 끝에 무지개빛이 어린 것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