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종말전야. 2. 뭐가 어떻게 되는 건가.
2. 뭐가 어떻게 되는 건가.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뉴스를 전하는 앵커의 눈과 표정을 응시하며 한건은 이어지는 뉴스내용을 들었다.
-의정부시 신곡동 중랑천변 산책로에서 벌어진 묻지 마 살인, 일본도를 휘둘러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출동한 경찰의 총격에 의해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범인이 휘두른 흉기에 사망한 시민이 셋, 부상자가……
아직도 떨리는 심정을 억누르며 한건은 맥주캔을 땄다. 도저히 제정신으로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편의점에 가 사온 거다. 믹스커피를 일주일에 한번만 마신다는 철칙처럼 맥주는 한 달에 한번만이다.
‘이런 날 안마시면 언제 마시겠냐.’
복잡한 마음을 한건은 맥주와 함께 삼켰다.
뉴스에서 보도하는 것처럼 경악할 사건이다.
백주대낮에 세 사람이 죽고 둘이 부상한 끔찍한 살상이다.
팔이 떨어져 나가던 광경은 칸다하르의 전투현장을 연상케 한다.
‘그런 일은 전장에서나 있는 건데……!’
대낮에, 서울에서, 주택가가 바로 붙어 있는 중랑천변에서 일어났다.
범인은 마흔 일곱의 이혼남이다.
창동에서 이혼한 아내와 중학생 아들을 살해하고 의정부로 넘어왔다.
그래서 경찰들이 쫓아왔고 총까지 쏜 거다.
‘그렇다고는 하는데……’
기묘한 소름을 한건은 다시 삼켰다.
뉴스를 시청하는 지금 이 모니터 안에, 아니 한글파일에 어제 써내려간 글이 있다.
묻지 마 살인을 목격하고 분노를 토하듯 쓴 내용이다.
그 내용대로 범인은 경찰에게 죽었다.
‘여섯 명의 경찰관이 동시에 권총을 발사해서 즉사……’
범인은 그렇게 사망했다.
한건 자신이 쓴 대로다.
물론 오비이락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경찰이 창동에서부터 쫓아와 범인을 사살한 거다.
그 순간에 한건 자신이 자판을 두들긴 거다. 그게 현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건 너무나 기가 막힌 우연이어서다.
‘묻지 마 살인이 벌어지자마자 경찰들이 출동한건 범인을 처음부터 쫓아와서인데, 총을 쏜 건 이미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저항하는 걸로 판단해선데, 이 일은 전후가 그런 건데, 왜 그렇게 믿기지가 않는 건지……’
여섯 명의 경찰, 동시사격, 범인 즉사, 그 내용을 한건은 곱씹고 곱씹었다.
-범인을 사살한 경찰관들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과잉대응이라는 주장과 흉악살인범에 대한 적절한 현장 판단이고 대응이었다는 주장이 엇걸린 여론입니다. 경찰은 출동 경관들을 임무에서 배제시키고 조사한다는 방침입니다. 당시 현장상황과 경관들의 정신상태에 대한 분석……
맥주캔을 비운 한건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여섯 명이 동시에 총을 쏜 상황파악이 우선이지.”
누군가 명령을 내린 건지, 처음 쏜 게 누군지다. 그런데 그게 부질없는 짓임을 한건은 직감한다. 여섯이 동시에 쏘는 걸 자신은 분명히 봤다.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흉악범죄에 시민들은 불안……
리모컨을 눌러 tv를 끈 한건은 창으로 의자를 돌렸다.
흉악한 살인이 벌어졌던 곳, 천변산책로는 폐쇄됐다.
노란색의 폴리스라인이 쳐져있다. 그 위로 가을 햇살은 어제처럼 눈부시게 내리치고 있다.
슬픈 화사함이다.
‘이 풍경이 좋아서 이 집에 세 든 건데.’
보증금 이천에 월 오십이다. 방이 두 개나 되는 다세대, 잘 구한 집이다. 오래되고 낡았지만 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요즘처럼 미친 듯이 집값이 오르는 때엔 더 그렇다. 주인은 월세를 올려달라거나 하는 말이 없다.
‘통장 잔고가 떨어지면 보증금을 빼야……’
한건은 미간을 찌푸리고 친구 이응삼을 나직이 불렀다.
“응삼아, 내 돈 가지고 돌아와라.”
전역하면서 받은 위로금과 연금을 일시불로 수령한 거다. 그 피 같은 돈을 가져간 거다. 이게 한건 자신이 처한 현실, 환타지보다 못하지 않다.
“글 쓰자, 이번에 해보고 안 되면 다른 길을 찾는 거야.”
고개를 든 한건은 창밖을 보던 시선을 거뒀다.
어제의 충격적인 사건을 마음에서 밀어내고, 복잡하고 심란한 감정과 생각들을 잘라내고 한글을 띄웠다.
전혀 새로운 이야기, 미래를 배경으로 한 무협환타지를 썼다.
‘좋아, 잘되고 있어.’
정신없이 자판을 두들기며 한건은 시간 가는 것도 잊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 후하고 한숨을 내쉰 한건은 자판에서 손을 뗐다.
반나절 동안 써내려간 분량이 연재 5회분량, 엄청나게 많이 썼다.
“홀린 듯이 썼네.”
스스로에게 놀라며 흡족한 미소를 지은 한건은 원고 말미에 ‘대박난다’ 라고 썼다. 그냥 기분이 시켜서 그렇게 했다. 물론 이 글귀는 연재 게시판에는 안 올라간다.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니까 원고본문만 올라간다.
‘올리자.’
비축분도 없이 그렇게 하기로 한건은 마음먹었다. 이젠 정말로 홀가분하게 결정하자는 심정으로, 원고를 복사해서 ‘얘기천지’ 게시판에 올렸다.
“됐어, 저녁 준비하자.”
의자를 밀고 일어선 한건은 주방으로 가 쌀을 씻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어제사건을 떠올리고 애도의 념을 올렸다. 마음이 또 복잡해진다.
* * *
“어?”
놀람으로 눈을 치뜬 한건은 다시 확인했다. 조회수 오천을 넘어갔다. 연재를 시작한지, 아니 게시물을 올린 지 두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다.
“뭐, 뭐야 이거?”
황당한 놀람 속에서 한건은 기쁨의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아하하하!”
마지막이다, 이게 반응이 없으면 다른 일을 찾는다, 하는 심정으로 올린 글이 반응이 왔다. 미래무협환타지, 솔직히 기대를 안했다. 그냥 홀가분하게 미련을 털어낸다는 기분으로 쓴 글이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다.
‘글 올린 지 두 시간 만에 오천 조회수가 넘었다고?’
새삼 황당한 놀람과 기쁨으로 한건은 댓글들을 읽었다. 하나같이 재밌고 좋다 한다. 어깨가 저절로 굼실거리는 것이 춤이라도 춰야 할 기분이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황당함이 있다. 정말 이례적인 일인 거다.
‘지금도 조회수가 무섭게 올라가고 있는데……’
이 추세라면 밤이 되면 만대는 우스울 상황이다.
‘그런데 이게 가능해? 여태 이런 일이 있기는 했어?’
대박을 친 다른 작가들의 글 중에 이런 사례가 있었는지 한건은 더듬어봤다. 솔직히 잘 모른다. 장르소설이라는 형태의 글을 쓰기 시작한 게 공모전 입상부터였으니 불과 이년이다. 솔직히 제대로 아는 게 거의 없다.
‘글 올린 지 두세 시간 만에 이렇게…… 이건 솔직히 비정상적이라고 봐야……’
좁힌 미간으로 생각하던 한건은 흠칫하며 눈동자를 응축했다.
‘설마……’
사이트창을 내린 한건은 원고를 띄웠다. 오늘 사만글자 가까이 쓴 새 원고, 미친 듯이 홀린 듯이 써내려간 미래무협환타지, 그 말미의 글을 봤다.
“대박난다.”
자신이 써넣은 글귀를 한건은 중얼거리듯 읽었다.
그 순간 봤다.
글귀가 꿈틀거렸다. 그래서 경직하며 숨을 멈췄다.
그런데 글귀는 그대로다.
착각한 거다. 하지만 지금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은 그런 게 아니다.
‘저렇게 써서 그대로 된 거라고?’
경직한 눈썹을 가늘게 떨던 한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무슨 미친 소리?”
부정하면서 한건은 ‘얘기천지’ 창을 다시 띄웠다.
그렇게 다시 놀랐다.
조회수는 미친 듯이 불어나고 있었다. 어느새 팔천에 육박하고 있다.
‘몇 분이나 지났다고!’
피부에 소름이 돋은 한건은 응축한 눈동자를 떨다가 다시 원고를 띄웠다.
대박난다고 쓴 원고 말미에 또 썼다.
평범하게, 자연스럽게 라고 썼다. 그리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약 3분 후 ‘얘기천지’를 띄웠다.
‘이!’
한건은 전신에 들어찬 경직을 겨우 숨으로 풀어냈다.
미친 듯이 올라가던 조회수가 잦아들었다. 만대를 넘겼지만 거기까지다.
터진 둑에서 쏟아지는 물처럼 변화하던 조회수가 평이하게 됐다. 급상승은 멈췄다.
“정말로 원고에 쓰는 대로 되는 거라고?”
가는 떨림으로 중얼거린 한건은 어두워진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참혹한 살상이 일어났던 천변 산책로, 가로등과 조명만이 비추는 가운데 소슬하다. 저곳에서 일어난 어제의 시간, 그게 우연이 아니란 걸 알았다.
“아니야, 설마, 정말로 그럴 리가…… 아직은 몰라……!”
강하게 고갤 흔들어 부정한 한건은 거실로 나갔다. 주방과 붙은 좁은 거실을 왔다갔다하며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다시 들어가 tv를 켰다.
원고가 사라진 모니터에 리모컨을 겨눈 한건은 뉴스를 틀었다.
-법원의 명도가 중지된 은혜아파트는 극렬분자들이 점거한 채 농성중입니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봉쇄중인 경찰은 불순세력이 배후조종을 하고 있다는 판단입니다. 입주자대표 유인건과 결탁한 극우세력이 이번 폭력사태를 진행 중이라는 판단입니다. 그들은 현재 아파트내부에서 지휘……
한건은 미간을 강하게 꿈틀거리며 차가운 음성을 냈다.
“세상에 피해를 주는 것들.”
은혜아파트는 복마전이다. 재건축보상금을 둘러싸고 저러고 있다.
저 아파트 때문에 해당지역의 재개발이 스톱상태다. 그런데 본질은 입주자대표다.
그 자가 저런 상황을 만들었다. 그는 제 이익을 위해 극우세력과 결탁했다. 되도 않는 정치적 선전구호를 외치고 그 프레임으로 주장을 펼쳤다.
‘저것들 때문에 사망한 가족은……!’
아파트가 봉쇄돼 안에 갇혀 있던 한 가족이 아사했다. 치매 걸린 팔순 노모에 뇌경색환자인 오십대 아들, 자폐환자인 이십대 딸, 굶어 죽었다.
차가운 눈으로 뉴스를 보던 한건은 원고를 띄웠다.
‘아파트내부의 극우인물이 불을 지르고 소총을 난사하여……’
원고를 써 내려간 한건은 마침표를 찍고 다시 뉴스를 띄웠다. 현장에서 생중계중인 상황, 기자가 아파트를 등지고 서서 열심히 말하고 있다.
그 상황을 주시했다.
과연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숨죽이고 바라봤다.
쾅, 폭발이 일어났다.
붉은 화염이 한동짜리 도심의 아파트 밖으로 퍼져 나온다.
창졸간에 생긴 그 변화에 기자는 물론 카메라도 경악했다.
기자는 주저앉았고 화면은 흔들린다.
그 상황을 보면서 한건은 숨을 멈췄다. 소름을 삼켰다.
‘정말로……!’
증거와 답은 이어 나왔다.
총소리가 들린다.
무섭게 불이 번지는 아파트내부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아파트 밖으로 사람들이 살기위해 뛰어나온다.
주민들은 남아 있지 않던 곳, 살기 위해 튀어나오는 자들은 입주자협회관계자들, 극렬주의자들이다. 법원의 명도를 방해하고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이들이다. 하나같이 피를 뿜으며 쓰러진다. 총에 맞아서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아 저기 유인건 대표가 나옵니다!
기함한 가운데 상황을 전하는 기자의 가리킴을 따라 카메라가 영상을 잡았다.
은혜아파트입주자협회대표 유인건, 그가 비대한 몸을 흔들며 뛰어나왔다, 불에 그슬린 모습, 살기위해 사력을 하다는 모습이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탕, 총격음과 함께 유인건 대표의 머리가 박살났다.
그 충격적인 광경이 뉴스를 탔다.
생중계됐다. 화면은 즉시 꺼졌고 스튜디오로 돌아갔다.
“하……”
소름과 함께 숨을 삼킨 한건은 눈을 감았다.
* * *
‘이유가, 원인이 있을 거야……!’
자정을 넘어 새벽 두시가 됐지만 한건은 잠을 자지 못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원고에 쓴 대로 현실에서 이뤄지는, 믿기 힘든 거짓 같은 이 일이 뭔지다, 원인이 무엇인지다.
‘pc에 마법이 걸려서? 귀신이 씌워서?’
환타지소설 같은 원인을 생각하며 한건은 pc를 노려봤다.
변한 건 없다.
물론 변한 게 있어도 변하지 않은 걸로 보일 테지만, 늘 쓰던 그대로다.
변한 건 내용이다.
‘얘기천지’ 에 올린 소설은 어느새 일위를 하고 있다.
유료를 제외한 무료소설 중에 베스트 1위다. 글 올린 지 하루도 안돼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독자들이 반응하고 있다. 이 상황을 만들었다.
‘내가.’
분명히 그렇다, 원고에 써서 이뤄진 일이다.
추가로 써서 속도를 조절했으니 이정도니 안 그랬으면 어땠을지 모르겠다.
이제 5회 분량, 올린 지 하루 만에 일어날 일은 절대 아니다.
이젠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제 사건도, 조회수 폭발도, 은혜아파트도……’
모두 한건 자신이 바라는 대로, 원고에 쓴 대로 이뤄졌다.
정말로 귀신이 씌웠거나 그 비슷한 일이 생긴 거다.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알 수가 없다.
한건 자신을 중심으로 아무리 훑어봐도 변한 건 없다.
‘이런 괴이한 일이 행운인지 불행인지……’
한건은 흠칫하며 안면을 경직했다.
‘행운? 행운의 돌?’
변한 건 그거다.
북극에서 친구 최병철이 행운의 돌을 보냈다.
오직 그것만이 어제 오늘 한건 자신의 일상에서 일어난 변화다.
그런데 그 돌을 아직 못 찾았다. 차돌박이를 노리던 고양이에게 던졌는데 없어졌다.
‘그게 어딨지?’
한건은 주방으로 갔다.
어제 사건으로부터 시작한 충격과 놀람으로 신경 쓰지 못한 행운의 돌, 아무리 찾아도 없다.
집안에 있어야 하는데 없다.
누가 가져간 게 아니라면 있어야 한다. 고양이가 먹어서 없어졌든지.
‘먹어?’
멈칫하며 선 한건은 어제 그 순간을 떠올렸다. 자신이 고양이에게 행운의 돌을 던진 때, 그리고 난 후에 먹은 라면, 찾아도 보이지 않는 행운의 돌, 그렇게 이어지고 유추되는 합리적인 결론, 거실에 주저앉았다.
“이게 무슨……”
한건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밖에선 고양이가 울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