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종말전야. 3. 행운이거나 아니거나.
3. 행운이거나 아니거나.
-유인건 대표의 죽음은 충격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모니터 앞에 앉은 한건은 무거운 숨을 내쉬며 뉴스를 봤다.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사건, 은혜아파트 화재총격사건은 밤새도록 세상을 달구고 있다.
저 사건을 만든 게 한건 자신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못 믿겠다.
‘내가 자판을 두들겨서 그랬다는 게……!’
그게 의심스러워서, 믿을 수가 없어서 시험한 일이 저 일이다. 그런데 그대로 이뤄졌다.
-최상천은 극우무력주의자로 경찰에서 감시하던 요주의 인물이었습니다.
앵커가 심각한 얼굴로 말한 인물, 최상천이란 자가 어제 사건을 일으켰다. 아파트내부에서 폭발물을 터트려 화재를 일으키고 사람들에게 총질을 했다. 그가 어떻게 잠입해 그런 일을 벌인 건지 경찰은 조사 중이다.
-최상천이 사용한 폭발물은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 급조, 사제폭발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난사한 소총은 미군이 사용하는 M4A1으로 밝혀졌습니다. 최상천이 총기를 구한 경로 또한 경찰이 추적중……
찌푸리듯 좁힌 미간으로 뉴스를 보던 한건은 리모컨을 눌렀다.
“후우.”
깊고 무거운 숨을 내쉬며 의자를 민 한건은 어제부터 보고 또 본 뉴스내용은 외울 정도다. 더 극렬한 투쟁을 외치던 최상천이 은혜아파트 유인건 대표를 비롯한 지휘부에 불만을 품었다는 것, 총기를 난사했다는 거다.
‘그건 그거고 나한테 생긴 이 일은……’
저절로 눈길이 가는 창밖의 천변 산책로, 저곳에서 벌어진 이틀 전 묻지 마 살인을 떠올리며 한건은 눈을 감았다. 글을 쓰는 대로 현실이 이뤄진다니,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 현실이 생각할수록 황당하다.
‘병천이가 보내준 그 돌, 행운의 돌을 정말로 내가 먹은 거야?’
정황상 그렇다.
집 안엔 아무리 뒤져도 돌이 없다. 고양이에게 던진 후 사라진 거다.
고양이가 돌을 맞은 그 순간 렌지 위엔 라면이 끓고 있었다.
고양이가 맞고 반응하는 순간 돌이 라면냄비 속으로 들어간 게 맞다.
‘그러면 밑에 가라앉아 있었어야지.’
돌이니까.
그런데 없었다.
라면 국물까지 다 마셨는데 조약돌 같은 건 없었다.
‘그렇다는 건 애초에 안 들어갔거나, 들어갔는데 돌이 녹았다는 거.’
끓는 라면국물 속에서 녹았다면 그건 돌이 아니다.
그게 뭐든 그 본질을 먹은 거다.
물론 추정처럼 들어갔다는 전제하이지만, 거의 확실하다.
‘결론이 그래.’
집 안 어디에서도 행운의 돌을 찾지 못했으니까, 라면 냄비 속에 돌은 없었으니까. 추정조차도 황당하지만 그렇게 귀납이 되는 현실인 거다.
“하우야.”
답답함을 토하듯 허공에 대고 큰 숨을 뱉어낸 한건은 거실 냉장고로 갔다. 편의점에서 사다놓은 캔맥주를 하나 잡았다. 그러다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술에 의지해서 해결할 일이 아닌 거다. 게다가 어제 한캔을 마셨다.
냉장고에 다시 맥주캔을 넣은 한건은 허공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한 번 더, 한번만 더 시험해 보는 거야.’
방으로 들어간 한건은 꺼져 있는 pc를 노려보다 전원을 켰다.
한글을 띄우고 자판에 손을 올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정말로 이렇게 쓰면 되는 지,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는 거다. 가슴이 터질 듯이 두근거린다.
‘조영철은 수감된 독방에서 자해를 시작했다. 제 손으로 눈알을 뽑고 숨겨둔 예기로 혀를 잘라낸 후에 생식기를 절단하고 할복하며 전신을 난자……’
극악무도한 연쇄 살인마를 대상으로 한 글을 써내려간 한건은 마침표를 찍었다.
그 순간 봤다.
손끝의, 마침표를 찍는 자판에 어린 무지개빛을.
‘어?’
눈썹을 세운 한건은 당황했다. 무지개빛이 정말로 있었던 건지 찰나에 사라져서다. 너무 창졸간에 일어난 일이라 진짜 본건지도 의심스럽다.
‘이거……’
세운 눈썹을 꿈틀거리던 한건은 그때까지 들고 있던 두 손을 내렸다.
잘못 봤건 제대로 봤건 지금 중요한건 결과다.
바로 핸드폰을 잡았다. 그리고 경직했다. 숨을 멈췄다.
sns에 영상이 떴다. 조영철의 실시간 자해영상이다.
‘진짜로…… 또 됐어……!’
경악스러운 숨을 삼키며 한건은 폰을 내렸다.
* * *
즉석 밥에 된장찌개로 점심식사를 마친 후 한건은 뉴스를 다시 틀었다. 은혜아파트 사건 뒤로 터진 조영철 사건으로 완전히 팥죽단지가 됐다.
-조용철은 신임교도관으로 하여금 자신의 자해광경을 촬영하도록 했습니다. 그 끔찍한 광경을 sns에 생중계한 신임교도관은 현재 조사를 받고 있으며, 마땅히 죽어야 할 살인마가 아직도 살아있는 게 이 나라라며……
뉴스에 시선을 박은 채 한건은 사건의 속을 곱씹었다.
자신이 쓴 내용대로가 맞다. 그렇지만 저러한 주장과 신념들까지는 쓰지 않았다.
신임교도관은 조용철 같은 자는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다.
저런 자에게 조용철이 제 자살행위를 촬영하도록 한 정황에 대해선 알 수가 없다.
‘쓰지 않은 부분은 알아서 아귀가 맞춰지는 것 같은데.’
어쨌든 이젠 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건 자신이 쓰는 대로 이뤄진다. pc에 소설을 쓰듯이 이손으로 쓰는 대로다.
이게 그냥 허망한 느낌이다.
뭐라고 판단할 수가 없는, 행운인지 아닌 건지 모를 일이 생겼다.
“이제 어째야 하냐……”
최병철에게 연락해서 물어봐야 한다. 뭘 보낸 거냐고.
그런데 그놈에게 연락하기가 쉽지 않다.
원체 별종이라서 sns도 안한다. 메일도 마찬가지다.
북극연구소의 보안을 이유로 통제되고 있다. 그놈이 연락해야 한다.
“하, 이거 참……”
한숨을 거듭해서 내쉰 한건은 ‘얘기천지’ 창을 띄웠다. 새벽에 써서 올린 오늘 연재분은 역시 일위에 올라갔다. 누군가 깨워서 자판을 두들기게 만든 것 같은 새벽이었다. 이틀간의 사건을 잊고 연재분을 써내려갔다.
‘가만, 이 글도 내 손으로 쓴 건데……’
새로 시작한 소설, 미래무협환타지, 이것도 한건 자신이 쓴 글이다. 그러니 이소설대로 현실에서 이뤄져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건 아니다.
원고 말미에 쓴 ‘대박난다’ 는 글귀대로만 이뤄졌다. 그 구분은 뭔가.
‘소설이니까? 내가 원하는 의지가 대박난다에만 있으니까?’
깊게 좁힌 미간으로 생각을 거듭하던 한건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걸 누구에게 알려야 하는 거야?”
현실로 집중하며 한건은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다.
글을 쓰는 대로 현실에서 이뤄진다니, 엄청난 일인 거다. 아무도 믿지 않을 일이다.
그런데 믿는다면 그것도 문제다.
정부 같은데서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어.’
찌푸린 미간을 꿈틀거리며 생각하던 한건은 어금니를 물고 결론을 내렸다.
‘말해선 안 돼.’
그렇다, 누구에게 알릴 일이 아닌 거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이렇게 됐다. 어느 날 갑자기 눈뜨고 일어나니 이런 거다. 느닷없이 생긴 것처럼 느닷없이 사라질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
‘좋아?’
눈썹을 꿈틀 세운 한건은 이 순간에 드는 다른 생각을 어금니에 물었다.
‘이게 정말 행운이라면……’
글을 쓰는 대로 이뤄진다. 행운을 쓰면 이뤄지는 거다. 한건 자신에게 좋고 누구나 행운이라고 여길 만한 일, 가령 로또 당첨 같은 일이다.
‘그런 것도 되겠지?’
아직 모른다. 지난 이틀간 일어났던 일은 살인과 폭력이었다. 물론 한건 자신이 그렇게 썼기 때문이지만, 지금 바라는 일은 안 될 수도 있다.
해 봐야 아는 거다. 해 보면 된다. 마침 오늘은 10월 23일 토요일이다.
‘나가서 로또 한줄 사는 거야.’
결심을 굳힌 한건은 옷을 갈아입었다.
* * *
다세대들이 밀집한 동네 골목길을 나가며 한건은 아래쪽을 봤다, 중랑천이 흘러가는 방향, 바로 다음 블록에 거대한 아파트단지가 공사 중이다.
집값이 미쳐 날뛰는 세상, 저 아파트 분양가는 얼마나 할지 궁금하다. 하락세라곤 하지만 올라갈 땐 십억 올라가고 내려올 땐 이삼억, 그거가지고 폭락이니 뭐니 떠드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강남 같은 데는 로또 당첨이 되도 그 돈 가지고 아파트 한 채 사기 힘들어.’
비정상의 세상이다. 남의나라를 예로 들면서 뉴욕이니 홍콩이니 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사람이 살 의욕을 짓밟는 거다.
‘결혼안하고 애 안 낳는 다고 난린데, 집값만 정상이면 다 해결 돼.’
그런데도 못하고 있다, 안하고 있다.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일인데 그렇다.
힘 가진 것들이 틀어진 세상, 제 재산 깎아먹을 짓을 왜 하겠나.
언제나 그렇듯 시늉만 하면서 교묘히 집값을 올리는 데만 혈안인 거다.
‘한번 대차게 뒤집어져야……’
부질없다는 걸 알면서도 하는 상상을 또 하며 한건은 걸어갔다.
불편한 걸음으로 찾아가는 곳은 동네어귀, 한블럭을 걸어가면 나오는 편의점이다. 스물쯤의 아가씨가 알바 하는 곳, 늘 가는 곳이라 인사하는 곳이다.
‘로또 한 줄만 사면 이상하게 보려나.’
한줄, 천원어치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없을 거다. 쪼잔한 놈으로 볼지 모르겠다. 하지만 상관없다. 여태 남의 눈을 신경 쓰면서 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편의점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며 한건은 인사했다. 그러며 본 광경은 예상치 못한 거다. 알바아가씨의 뒤에 선 젊은 놈이 목에 칼을 대고 있다.
‘강도!’
그거다, 알바아가씨는 사색이 돼서 돈통의 돈을 꺼내는 중이다.
그 순간에 한건 자신이 들어왔다.
시절이 그래서 마스크를 쓴 강도놈은 눈알을 퍼렇게 빛낸다.
아가씨를 끌고 계산대를 나와 문으로 가며 소리친다.
“움직이지 마 새꺄!”
한건 자신을 향한 협박, 한건은 피가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아프카니스탄에서 군사작전을 수행하던 자신이다. 저런 놈쯤은 문제없다.
그런데 그건 몸이 성할 때의 이야기다.
지금 이 몸은 왼다리를 저는 불구자다.
“아가씨 놔줘!”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내며 한건은 소리쳤다. 멀쩡하지 않은 몸이란 걸 의식하는 가운데서도 나온 본능적인 반응, 폭력을 대하는 찐 본능이다.
“뭐야 이 새끼? 병신이냐?”
절름거리는 한건의 움직임을 본 강도놈이 비웃음을 터트렸다.
잔인한 눈빛을 흘려낸 놈은 아가씨를 매대로 확 밀어버리고 달려온다.
밀어차기로 발길질을 한다.
한건은 피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놈이 또 달려든다.
“병신새끼가 소리치고 지랄이야!”
한건의 기세에 움찔했던 걸 분풀이 하듯 강도놈은 마구 짓밟았다.
그 발길질을 두 팔 들어 방어하던 한건은 한순간 다릴 잡았다.
몸을 돌려 구르며 힐훅을 걸었다.
부득 소리가 나면서 강도놈의 다리가 부러졌다.
“으악!”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강도놈, 그 얼굴에 한건은 주먹을 꽂았다.
* * *
저녁노을도 사라진 창밖을 본 한건은 저녁식사를 차려 먹었다. 된장찌개 남은 것에다 즉석 밥을 비벼서 맛있게 먹었다. 설거지를 하면서 낮의 일을 떠올렸다. 편의점 강도를 제압하던 순간, 하마터면 위험할 뻔했다.
‘그래도 아직 나 한건은 안 죽었어.’
미소를 피워 물고 콧노래를 한 한건은 수건에 손을 닦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제 잠시 후면 로또 당첨시간이다.
자동으로 한 줄만 사온 이번호를 쓰고 일등당첨이라고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당첨금이 대충 얼마나 될까?’
관심을 안 가져서 잘 모르겠다. 조서를 꾸미던 경찰이 편의점엔 왜 갔냐고 물었을 때 로또 사러 갔다고 대답했더니 웃었다. 그러며 하는 말이 요즘은 일등도 여러 명이라 나눠가져서 로또가 로또가 아니라 했다.
‘지금의 나한테는 뭐든 로또야.’
피식 미소를 흘려낸 한건은 어둠이 내린 창밖을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로또추첨방송이 끝나길 기다렸다. 마침내 시간이 됐다.
‘어디……’
pc를 켜고 당첨번호를 찾아 맞춰보던 한건은 안면을 떨었다.
“이게…… 됐네.”
손에 든 로또용지를 가늘게 떨며 한건은 친구들 이름을 불렀다.
“병철아 고맙다. 그리고 응삼아. 돈 안 갚아도 되니까 그냥 얼굴 내밀어라.”
절로 흘러나오는 미소, 웃음을 물고 한건은 냉장고의 맥주를 꺼내 마셨다. 한 달에 한번이라는 음주 원칙, 이런 날은 이렇게 하는 게 맞다.
한건의 웃음소리가 퍼지는 가운데 토요일 밤은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