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57화 (157/200)

[외전] 종말전야. 7. 내 피 같은 돈.

7. 내 피 같은 돈.

삼화파이낸스라는 그럴듯한 나무 간판, 기다란 문패 같은 걸 걸어놓은 사무실은 음침하다. 수유리유흥가의 옆 블록에 위치한 이 3층 건물 자체가 그렇다. 차에서 지켜본 결과 보도방사무실들이 운영되는 건물이다.

‘이런데서 급전을 융통해서 썼단 말이지?’

친구 이응삼은 긴급자금을 이곳에서 빌려 썼다는 거다.

사채사무실이지만 법정이자보다 조금 더 높게 받을 뿐이라, 계속해서 거래했기에 믿었다는 거다.

그 신용과 경험이 덫이었던 거다. 이놈들이 응삼이를 털었다.

‘멍청한 새끼.’

이응삼을 욕하며 한건은 걸음을 내디뎠다. 삼화파이낸스 사무실 문을 노려보면서, 안쪽의 불빛으로 불투명 유리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보면서다. 저 안의 놈들에 대한 분노보다도 아이처럼 당한 이응삼이 밉다.

‘그렇게 야무지지 못해서 무슨 사업을 해?’

중고등학교시절부터 이응삼은 그랬다. 그래도 대학졸업하고 나름 사업을 잘 운영했다. 그게 이응삼의 인간성이 좋아서라고 최병철은 말했었다.

‘판촉물사업이란 게 정확히 뭐야? 잡다한 기념물품을 필요한 곳에 공급하고 돈 버는 거잖아? 그러면 그거만 하면 됐지 왜 다른 욕심을 부렸어?’

새삼 이응삼에 대한 감정이 차올라 한건은 걸음을 멈추고 깊은 숨을 들이 내쉬었다.

그 순간 삼화파이낸스 사무실 문이 열렸다.

나오던 남자가 한건을 보고 흠칫한다.

시간이 10시가 넘었으니 손님은 아니다.

“뭡니까?”

뭐야! 라고 하려다 나름 생각하고 나온 사채사무실 직원의 반응, 한건 역시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당황했지만 작전수행시의 눈으로 대답했다.

“내 피 같은 돈 찾으러 왔다.”

확실하고 분명한 적의, 사무실 문을 나서던 건장한 남자, 삼화파이낸스의 직원이자 어깨가 분명한 놈은 인상을 확 썼다. 동시에 주먹을 지른다.

“이 새끼가! 무슨 개소리야!”

안면으로 들어오는 어깨의 주먹을 한건은 가볍게 피했다.

피한 순간 이미 어깨의 가슴 안쪽, 오른팔 엘보를 어퍼컷으로 올려쳤다.

쩍 하는 느낌으로 놈이 쓰러진다.

그 순간 카드를 치던 사무실 안쪽놈들이 달려든다.

“사무실 안에 있던 놈들 전부 설사를 시작한다.”

폰에 대고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한건은 말했다. 아니 녹음했다. 그 결과가 바로 나타났다. 쇠파이프를 들고 달려들던 네놈이 주저앉았다.

“으헉!”

“악! 배야!”

“헉 내 배!”

사지를 꼬며 바짓가랑이를 적신 채 설사를 흘려내는 놈들.

한건은 차가운 눈으로 바라봤다. 이내 움직여 쓰러뜨린 놈을 안으로 끌었다.

사무실 문을 닫으며 건물 3층 복도를 주시했다.

아무런 동정이 안 보인다.

설사와 복통에 고통스러워하는 놈들에게로 한건은 다가갔다.

물음을 던질까 하다가 사무실을 뒤졌다.

수기로 작성한 사채장부를 찾아냈다. 안쪽의 별도 사무실에서다.

대표실, 이 방주인이 응삼이를 털어먹은 놈이다.

‘이런 놈 말을 듣고 혹한 놈이 바보지.’

친구 이응삼이 그랬다. 중국에서 들여올 물품대금 때문에 자금을 쓰러 왔더니 권하더라는 거다. 코인에 투자하면 떼돈을 번다고, 대표라는 놈이 제 투자포트폴리오와 수익률을 보여줬다는 거다. 거기 넘어간 거다.

‘너도 나도 코인에 정신없는 세상이니까.’

이응삼도 그렇게 그 늪에 빠진 거다. 뼈 빠지게 일하지만 버는 돈이 없어서다.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경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상황을 만들었다. 개미지옥 같은 이 현실로부터 벗어나고픈 욕망이 충동한 거다.

‘그렇게 투자했는데 거래소가 문 닫고 사라지고 코인은 쓰레기가 됐고.’

처음부터 작전이었던 거다.

코인거래소와 이곳 삼화파이낸스 대표놈이 꾸민 사기다.

잡코인을 만들어 띄우고 투자자를 유인해 돈을 끌어 모은 뒤 튀는 수법이다.

요사이 뉴스를 통해 나오는 전형적인 범죄인 거다.

‘누굴 탓하겠냐. 이제 찾으면 되는 거야.’

주먹을 쥐었다가 편 한건은 대표실 내부를 세밀하게 뒤지기 시작했다.

이응삼을 비롯해 투자사기를 당한 사람들이 들이닥쳐서 나타나지 않는 다는 놈, 이 사무실 내부에 분명히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게 있을 것이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소용없겠지. 하지만 나는 내 돈을 찾고 말 거다.’

이응삼도 그렇고 사기당한 이들은 당연히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사라진 대표놈을 수배하는 것 외엔 달리 할게 없는 거다. 금융업으로 정식인가 받은 놈들이라, 법정이자보다 조금 더 받은 부분만 문제될 뿐이다.

그마저도 통상의 인정범위를 넘지 않는 수준이어서 크게 문제될 게 아닌 거다. 그렇기에 이응삼은 속앓이를 하며 이곳 주변만 맴돈 거다. 전국을 돌며 대표 놈을 찾으러 다녔지만 허사였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 놈이 꼬리를 보일 리가 없지.’

그래도 이응삼은 그렇게 헤매 다녔다. 강원도로 남해로 전라도로, 대표 놈이 숨어 있을 만한 관광지 등을 중심으로 훑고 다닌 거다. 그 일마저 지쳐서 이곳 사무실 주변을 배회할 때 한건 자신이 나타나게 한 거다.

‘응?’

대표 놈 책상을 뒤지던 한건은 바닥이 이상한 걸 느꼈다.

커다란 원목 책상 안쪽, 다리를 넣는 곳이다.

카펫이 깔린 바닥이 빈 것 같은 느낌이다.

‘혹시?’

카펫위로 손을 댄 한건은 이음매를 찾아냈다. 힘주어 잡아 뜯었다.

양면 테입으로 붙여놓은 카펫이 정사각형 모양으로 뜯겨 나왔다. 그 바닥에 강철로 된 금고가 있었다. 대표 놈만이 아는 금고, 여기 뭔가 있다.

‘빙고.’

눈동자를 빛낸 한건은 금고로 손을 뻗다 미간을 찌푸렸다. 비밀번호와 지문인식잠금장치가 돼 있는 금고다. 이걸 열자면 대표 놈이 있어야 한다.

‘이거……’

찌푸린 미간과 눈썹을 꿈틀거리던 한건은 폰을 꺼냈다. 후하고 큰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지금 하려는 게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말했다.

“금고의 지문인식과 비밀번호 잠금장치가 오작동을 일으켜서 금고 문이 열린다.”

녹음을 한 한건은 키패드에 손을 대고 아무 번호나 눌렀다.

지문인식기에도 손을 댔다. 즉시 결과가 났다.

키패드의 번호판 숫자들이 미친 듯이 번쩍거린다. 마치 누군가 쉬지 않고 눌러대듯이다. 그리고 열렸다.

띠리링, 하는 소리를 비명처럼 낸 금고가 입을 벌렸다.

금속 문을 올린 한건은 현금다발을 확인했다. 오만원권 낡은 지폐다발들이다.

한 다발에 백장 오백만원, 다 세보니 이백다발이다.

10억이란 거금이 들어 있다.

‘됐어.’

벌떡 일어선 한건은 주변을 돌아보다 바깥사무실로 나갔다. 설사와 복통으로 부들거리며 늘어진 놈들은 거의 인사불성이다. 사무실 구석의 캐비닛에서 가방을 찾아냈다. 커다란 여행용 캐리어다. 거기 돈을 담았다.

‘됐네.’

돈을 채운 캐리어를 밀고 돌아선 한건은 삼화파이낸스를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런다고 해도 모자와 마스크로 가린 얼굴을 알아보긴 힘들다. 건물 cctv는 그대로 두는 게 낫다.

‘누가 돈을 강탈해 간 건지 더 혼란스럽게.’

건물 현관을 나간 한건은 캐리어를 밀고 이응삼이 차를 댄 골목으로 향했다. 혹시 모를 이 골목의 카메라와 대로로 나갈 때를 대비해 녹음했다.

“주변 카메라들이 원인 모를 먹통이 된다.”

지금 이건 또 될지 안 될지 모른다, 하지만 될 거라고 확신한다.

‘하, 이거 완전히 뭐, 도깨비방방이네.’

직전에 금고를 연 일도 됐다. 여태 일어난, 아니 한건 자신이 기록해서 만든 일이 다 됐다. 친구 이응삼도 나타나라고 하자 짠하고 나타났다.

기록하고 녹음하면 이뤄지는 이 상황이 아직도 이해 안 되지만, 요술방망이를 휘두르는 것 같은 황당함이지만, 여기엔 모호한 규칙이 있다.

‘폭력적인, 그런 일의 범주에서는 확실하게 작동하는 것 같아.’

명확하게 어떤 규칙인지 알 수 없으면서도 느껴지는 규칙, 그 의미를 삼키며 한건은 이응삼의 차로 빠르게 걸어갔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이응삼이 차 밖으로 나왔다. 손짓하자 이응삼은 다시 차에 타고 시동을 건다.

뒷자리에 캐리어를 넣고 조수석에 앉은 한건은 짧고 분명 말했다.

“가자.”

이응삼의 낡은 쏘렌토는 골목을 차고 나갔다.

* * *

황당한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이응삼은 캐리어 안의 현금다발을 다시 보며 눈 밑을 떨었다. 친구 한건이 돈을 찾으러 간다고 했을 때 말렸다.

삼화파이낸스 놈들이 용철이파와 연관돼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기 당한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자칫하면 용철이파 조폭들에게 신세를 망칠 수 있다.

신세야 이미 망쳤지만, 가족들도 위험해지는 거다.

그런데 한건은 행동했다.

특전사 내에서도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최정예부대출신이지만 그건 과거 얘기다.

그런데 해 냈다.

혼자서 삼화파이낸스 사무실로 쳐들어가서 돈을 가지고 나왔다.

뒷일도 걱정 말라 한다.

“건아……”

가늘게 떨리는 음성으로 친구 한건을 부른 이응삼은 단호한 반응에 움찔했다.

“잘 들어 새꺄.”

한건의 눈이 무섭다. 정말로 화가 난거다. 당연한 일이다. 군대에서 받은 목숨 값을 빌려줬는데 그걸 코인사기로 날려버렸으니 패주고 싶을 거다.

“이제 사업하니 뭐니 나대지 말고 장사 해.”

한건은 눈에 더 힘을 주며 이응삼에게 경고 아닌 경고를 던졌다.

“너 같이 흐리멍텅한 놈은 사업 같은 건 하면 안 돼.”

움찔하는 이응삼을 보며 옅은 한숨을 쉰 한건은 눈의 힘을 풀었다.

“이젠 정말로 냉정하게 널 평가해라. 다른 일을 해, 네가 잘 할 수 있는 일.”

이응삼은 슬그머니 시선을 들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고깃집 같은 거?”

한건은 기억해 냈다. 애초에 이응삼이 하려고 하던 일이 그것이란 거다. 그래서 준비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판촉물사업이란 걸 하게 됐다.

“그래, 너 고기 선별 잘하고 잘 구우니까 고깃집 해. 그것도 사업이야.”

외삼촌댁이 정육점을 해서 이응삼은 틈만 나면 알바를 했었다.

“그, 그럴까? 하지만 나는 이제……”

“이돈 써.”

한건은 캐리어의 돈을 가리켰다. 이응삼은 눈을 크게 뜨고 경직했다.

“이, 이 돈을? 건아?”

놀람과 당황의 이응삼을 똑바로 응시하고 한건은 말했다.

“10억이다. 이중에 내 돈 4억은 원래 내거니까 안 된다. 그건 정말로 내 피 같은 목숨 값이야. 그걸 너한테 빌려준 건 네가 내 목숨 같은 친구여서다.”

이응삼은 눈가를 경련했다.

‘피 같은 목숨 값……!’

안다. 그래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죽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한건은 이응삼 자신이 목숨 같은 친구라고 말했다.

그런 소리를 들을 자격이 없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부랄친구였지만, 한건에게 해 준 게 없다.

“건아……!”

눈물을 흘리는 이응삼에게 한건은 완전히 풀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 집 그렇게 되고 나서…… 너하고 병철이가 아니었으면 난 못 버텼을 거다.”

“건아……”

“4억 뺀 나머지 6억으로 장사해라. 고깃집 차려. 그 방면은 네가 잘 아니까 실패할 일은 없을 거다. 크게 할 생각 말고 작게 시작해서 크게 이뤄. 미진씨하고 결혼도 해야 할 거 아니냐? 참, 너 미진씨한테 연락은 하냐?”

이응삼문제로 전화하는 것 같아 한건 자신도 연락을 자제해 왔다. 송미진도 그런 문제가 있으니 미안하고 안타까워 연락을 안 주던 상황이다.

“어 그게……”

“이 새끼, 연락 안했구나?”

그간의 사정과 이응삼과 송미진의 심정을 짐작하며 한건은 말했다.

“너 같은 새끼를 선택한 착한 여자다. 울리지 말고 행복하게 해줘라.”

이응삼은 뜨거운 눈물을 흘려냈다.

“그래, 그래야지……!”

* * *

새벽 4시 알람이 울리는 소리에 한건은 잠에서 깼다. 자정이 돼서 돌아간 이응삼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난다. 약혼녀 송미진에게 전화하더니 미안해 사랑해를 연발한 놈은 결국 한건 자신을 두고 여자에게 갔다.

“체, 치사한 새끼.”

가볍게 욕 아닌 욕을 하며 한건은 이불을 갰다. 이응삼과 한잔 하는 건 이제 기회가 얼마든지 있으니 라는 생각으로, 방 한쪽의 캐리어를 돌아봤다.

저 안에 든 4억, 피 같은 목숨 값에 이어 떠오르는 건 어제일이다.

‘녹음 한 대로 결과가 이뤄졌겠지?’

만약의 경우엔 각오하고 한 거지만 뒤탈이 없어야 할 텐데 하며, 결과를 반신반의 하는 심정으로 한건은 pc를 켰다. tv수신카드가 내장돼 있어 텔레비전이 필요 없다. 뉴스채널을 띄우니 밤사이 사건 사고가 나온다.

-어젯밤 강북구 수유동 소재의 한 건물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삼화파이낸스란 상호로 사채업을 하던 일당이 살해된 사건입니다. 사무실 내에 있던 직원 다섯 명이 흉기로 난자된 잔혹한 살인으로 용의자는……

한건은 눈을 부릅뜨고 숨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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