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종말전야. 8. 진실의 얼개.
8. 진실의 얼개.
운동복차림으로 집을 나서던 한건은 기묘한 느낌에 걸음을 멈췄다.
등골을 조이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분명히 누군가의 시선이다.
목숨을 건 작전을 수행하며 자연히 터득한 본능, 골목과 집 주변에 감시자가 있다.
‘누가? 왜?’
원천의 의문을 품고 한건은 허리를 좁혔다. 신발 끈을 다시 조이는 척하며 골목을 살폈다. 보안등이 비치는 골목길 바닥에 그림자가 어른댄다.
‘확실하네.’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일어선 한건은 천변 산책로로 내려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스트레칭을 하고 러닝을 시작했다. 그러며 주변을 예의 주시했다. 5킬로를 달리는 동안 수상한 남자들이 있음을 알았다.
‘야구 모자 쓴 놈, 삼선 운동복 입은 놈.’
유명 메이커 모자와 운동복을 착용한 두 놈이 따라 달리고 있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바로다.
예감과 본능은 저놈들이 원래 운동하던 사람들이 아니라고 한다.
뭔지 모를 이질적인 기운, 위험함을 풍기는 놈들이다.
‘뭐지?’
두 남자는 분명히 한건 자신을 감시하러 나타난 자들이다.
자고 일어났더니 난 데 없는 일이다. 이게 무슨 일인지 한건은 생각하고 곱씹었다.
자신과 같은 이에게 무슨 일일까? 그럴만한 일이랄 게 뭐가 있을까?
‘혹시?’
찾으라면 어젯밤 일이다.
삼화파이낸스를 손댄 일. 아직까진 추정에 불과하지만 그게 원인, 거기서 불거져 온 게 맞을 거다.
‘용철이파?’
이응삼이 두려움에 젖은 얼굴로 말한 이름이다. 수유리 유흥가를 중심으로 강북구 일대를 장악한 폭력조직이라고 했다. 신용철이란 이름의 조직 보스는 무섭고 잔인한 자라는 거다. 그자에게 걸리면 사라진다 했다.
‘행불이 된다……!’
여태 사라진 사람이 열 명도 넘는 다고 했다. 용철이파와 관련됐다가 흔적 없이 사라진 사람들, 경찰에서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신용철이란 인물을 주시하지만 손도 못 댄다는 거다. 겉으론 혐의가 없어서다.
‘합법적인 사업가.’
신용철은 그런 인물이고 용철이파는 그런 조직이다. 건설회사와 경비업체를 운영하면서 잘 나가는 거다. 하지만 뒤로는 더럽고 추악한 짓을 하고 있다. 삼화파이낸스 같은 곳을 통해 응삼이 같은 자들을 터는 거다.
‘수틀리면 사람을 해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고.’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며 큰 숨을 터트리듯 내쉰 한건은 달리던 몸을 멈췄다.
어느새 5킬로 반환점이다. 몸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뒤따라 달려오던 두 놈을 빠르고 면밀하게 스캔했다.
확실히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다.
‘이 놈들……’
복잡하고 무거운 숨을 삼키며 한건은 모르는 척 두 놈과 지나쳤다.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두 놈도 돌아서는 걸 느낀다.
등에 놈들 시선이 박히는 게 선연하다.
과연 저놈들이 용철이파인지, 어제일 때문인지 모르겠다.
‘날 이렇게 빨리 특정했다?’
이해가 잘 안 된다. 사무실 내 cctv는 일부러 놔뒀지만 건물을 나서면서는 다르다. 폰에 녹음을 했다. 그런데 그게 안 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금고문을 열 때처럼 요술방망이 같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거다.
‘그렇다고 해도 경찰이 찾아왔어야지?’
미간을 좁힌 한건은 빠른 걸음으로 온 길을 돌아가며 계속 생각했다.
‘이일이 뭐가 어떻게 된 거든, 저런 놈들이 달라붙었다는 게 당면문제고 핵심.’
지금 한건 자신은 집을 나왔다. 집이 무방비 상태다.
침투한다면 돈을 찾을 거다.
어젯밤 이응삼이 육억을 캐리어채로 가져가고 남은 돈 사억이다.
전술배낭에 넣어 옷장 안에 뒀는데, 가져가세요 한 거나 갔다.
‘저놈들이 용철이파라면 돈이 목적의 전부가 아니겠지만.’
빠르게 걸음을 내던 한건은 생각이 친구 이응삼에게 닿았다.
‘이런 제길!’
자신에게 저놈들이 찾아왔듯이 이응삼에게도 그랬을 수 있다.
‘응삼아!’
친구의 이름을 속으로 외치며 한건은 다시 뛰었다.
미친 듯이 뛰며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지만 이응삼은 안 받는다.
시간이 아직 6시가 안 되서라고, 약혼녀 송미진과 함께여서라고 생각되지만, 불안이 엄습한다.
-여보세요?
한건이 폰을 내리려고 할 때 쯤 이응삼이 받았다.
“새꺄! 왜 이렇게 늦게 받아!”
버럭 소리치며 몸을 멈춘 한건은 숨이 차는 것도 잊고 다급히 물었다.
“너 괜찮아? 무슨 일 없는 거지?”
-일? 무슨 일? 야 아직 6시도 안됐는데 사람 깨워서 무슨 소리야?
“됐고, 세수하고 뉴스 봐라.”
-뉴스?
“아니 지금 어딨냐? 미진씨 원룸이냐? 집 주변에 수상한 놈들 없나 살펴봐.”
-야, 무슨 일인데 그래?
답답함을 삼키며 한건은 핵심을 던졌다.
“삼화파이낸스 놈들을 누군가 죽였단 말이다!”
-뭐?
무슨 소린지 바로 못 알아듣고 어벙한 반응을 보였던 이응삼은 바로 깨달았다.
-죽어? 아니 죽였다니?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빨리 창문 밖이나 살펴봐. 눈에 띄게 하지 말고 커튼만 살짝 들면서 보란 말이다. 아 참, 거기 고층이지? 현관밖에 뭐 수상한 게 없는지 렌즈로 살펴봐. 어때? 수상한 놈들 보이냐? 감시하는 것 같은 놈들 안보여?”
-기, 기다려봐.
긴장과 초조함이 여실한 목소리로 대답한 이응삼이 움직이는 기척이 폰을 타고 넘어왔다. 그렇게 몇 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이응삼은 말했다.
-수상한 놈들은 안 보이는 것 같은데……
한건이 이응삼에게 다시 말하려는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시선을 든 한건은 미간을 옅게 좁히며 눈동자에 힘을 줬다.
어제 그 아가씨다.
여전히 화사한 미모의 미소로 인사하고 있다. 마스크로 가렸어도 빛나는 것 같은 미모다. 오늘도 민망스럽다고 할 레깅스와 운동복이다.
‘이 여자……’
주변을 지나가는 중년남자와 초로의 할아버지들이 눈길을 던진다. 하지만 아가씨는 역시 개의치 않는다. 그걸 즐기는 것처럼 생글 거린다.
“사귀자는 말 생각해 보셨어요?”
한건이 반응하기 전에 폰 너머 이응삼의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야? 뭐야? 여자 목소리 아냐? 너 지금 어디야?
한건은 다급하게 할 말을 던졌다.
“됐고, 집 주변 잘 살펴봐, 다시 전화할 테니까.”
통화를 끝내고 폰을 내린 한건은 아가씨를 응시했다. 그 시선이 꽤나 무거워 아가씨가 짐짓 반응한다.
“어머, 지금 그 시선이 뜨겁게 느껴지는 건 오버인가요?”
강흑성은 느릿하게 눈길을 돌렸다. 그렇게 뒤따르던 두 남자를 확인했다. 20미터 정도 떨어진 노변의 운동기구에 붙어 있다. 다른 사람들과 섞여 운동하는 척이다. 그들을 눈에 담고 한건은 아가씨를 다시 응시했다.
“정체가 뭡니까?”
툭 튀어나온 한건의 물음, 그러나 단호한 의지가 들었고 강렬한 힘이 이글거리는 눈동자다. 그 눈을 말없이 바라보던 아가씨는 생긋 웃는다.
“커피 한잔 마시면서 얘기해요.”
* * *
역시 순수한 감정에서 한 말이 아니었다.
카페에 마주 앉아 있는 정체모를 이 아가씨는 수상한 두 남자와 일행이다.
한패라고 하는 게 지금 시점에선 표현이 더 알맞을 거다.
핵심은 이들의 목적과 진실한 정체다.
“이른 출근하는 사람들 상대로 커피 파는 것도 좋겠어요, 그죠?”
유리창 너머로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듯 바라보며 아가씨는 커피를 마신다. 마스크를 벗은 미모의 그 얼굴을 무겁게 바라보던 한건은 도로변의 suv로 시선을 돌렸다. 산책로에서 뒤따르던 두 남자가 타고 있는 차다.
‘용철이파는 아니야.’
비상등을 켜고 있는 차량을 응시하며 한건은 커피를 음미했다.
‘이 여자가 접근한 건 삼화파이낸스를 손대기 전.’
어제 이른 아침 천변산책로에서다, 도발적인 운동복차림으로 사귀자고 말해 황당함을 준 여자다. 그때의 그 도발적인 미소로 지금 마주 앉았다.
‘의도적으로 접근 한 건데……’
이들이 누군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러는 건지 도통 짐작이 안 된다. 마주 앉은 여자와 두남자의 행동으로 짐작되는 건 조직이다. 군대와 같은 조직, 상명하복으로 움직이는, 군에 십년을 넘게 있었기에 잘 안다.
‘나 같은 놈에게 무슨 볼일이……’
한건 자신은 부상으로 전역한 별 볼일 없는 인물이다. 엄밀히, 냉정하게 그렇다. 그러한 인물에게 이런 여자가 이렇게 접근할 일이 무엇인가.
‘어떤 조직에서……’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한건에게 여자의 목소리가 건너왔다.
“우린 현중그룹 사람들이에요.”
커피잔을 내린 여자는 명함을 테이블에 놓고 슥 내민다.
‘현중그룹 전략기획실.’
윤지희 팀장이란 이름이 선명하게 박힌 명함을 한건은 조심스레 잡았다.
“현중…… 그룹?”
미간 좁히는 한건에게 여자, 윤지희는 생긋한 미소로 다시 입을 열었다.
“한건 씨에게 웃기는 여자로 보여서 창피하긴 하네요.”
하나도 창피한 얼굴이 아닌 미소로 윤지희는 목소리를 이어냈다.
“그래요. 한건씨에게 의도가 있어서 접근했어요. 육일 전부터 지켜봤죠.”
육일 전 부터란 말에 한건은 자신도 모르게 눈에 힘을 줬다.
‘육일 전, 10월 21일, 지난주목요일, 택배가 온 날……!’
이 순간 전신에 들어차는 예감은 확신의 결론으로 물결친다. 한건 자신에게 행운이 찾아온 날, 북극에서 최병철이 행운의 돌을 보내온 날이다.
“눈을 보니 짐작하시네요. 맞아요. 한건씨가 택배를 받은 날이에요.”
다시 입을 연 윤지희는 깊게 반짝이는 눈빛으로 뒷말을 이어냈다.
“한건씨의 친구 최병철씨가 북극연구소에서 보낸 택배, 그것의 소재를 알고 추적하고 한건씨까지 특정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최병철씨가 택배를 보냈다는 기록이 없었거든요. 그 일이 일어나서 다 사라졌죠.”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이야길 듣던 한건은 미간을 꿈틀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
한건의 힘이 실리는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윤지희는 다시 말했다.
“북극연구소에서 외부로 보낸 것들, 택배를 비롯한 모든 루트를 파악해야 했어요. 무려 삼개월전의 것부터였죠, 그렇게 한건씨에게 온 거예요.”
서늘한 별처럼 눈동자를 반짝이는 윤지희, 붉은 입술에서 핵심이 나왔다.
“최병철씨가 보낸 물건이 뭔가요? 우리가 짐작하는 그게 맞다면, 한건씨를 찾아온 건 감사하게도 헛수고가 아닐 거예요. 우린 그게 필요해요.”
확연하게 눈썹을 꿈틀거린 한건은 되물음을 던졌다.
“그 일이란 게 뭡니까?”
예감, 강렬하고 불길한 예감이 요동치고 있다. 아프카니스탄에서 총탄의 폭풍우를 헤쳐 나가던 순간처럼 솜털이 곤두선다. 이걸 알아야 한다.
“북극연구소는 안전한 겁니까? 내 친구 병철이는 안전한 겁니까?”
거듭 물음을 던지며 한건은 커피잔을 움켜쥐었다.
퍽, 하고 머그잔이 부서졌다.
윤지희는 카페 안을 살피며 당황했지만 한건은 다시 격하게 물었다.
“말해요!”
버럭 소리친 한건, 그 행동에 놀란 카페 주인과 알바아가씨,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던 젊은 여자 둘이 돌아본다. 차에선 두 남자가 바로 나온다.
“괜찮아.”
남자들에게 하는 말이 분명한 중얼거림을 내며 윤지희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역시 차에 탄 남자들은 이쪽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거다.
차에서 내린 두 남자는 한건을 무섭게 응시하다 다시 차에 올랐다.
냅킨으로 테이블에 흐른 커피를 닦고 머그잔 파편을 수습한 윤지희는 말했다.
“북극연구소, 해동기지는 폐쇄됐어요.”
한건은 눈을 치뜨며 숨을 멈췄다. 그런 한건의 눈을 명확하게 응시하며 윤지희는 뒷말을 이어냈다.
“우리 현중그룹에서 거의 전부를 후원한 해동기지, 그곳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그 곳에 상주하던 연구원들과 대원들 전부, 행방불명상태입니다.”
한건은 경직한 숨을 부들거리며 눈썹과 안면을 떨었다.
‘폐쇄? 행방불명?’
해동기지의 상주인원이 삼백 명이라고 최병철이 말했었다. 그 인원이 전부 행불이 됐다는 거다. 이게 무슨 소린지 이해하기 힘들다.
“해동기지 만이 아니에요. 기왕에 거점을 확보하고 있던 다산기지도 마찬가지예요. 거기만이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와 중국, 모든 기지가 같아요.”
한건은 힘겹게 숨을 내쉬며 힘겨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니까, 해동기지와 다산기지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연구기지들도 같은 일이란 소린데, 알아들을 수 있게 더 자세하고 명확하게 얘기를……”
“공격 받았어요.”
한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지희는 답을 던졌고, 한건은 눈동자를 응축했다.
“공격……!”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게 강렬한 반응, 한건의 눈동자가 그러함을 윤지희는 깨달았다.
‘나라의 특명을 받고 비밀리에 전장을 누빈 군인.’
저 눈은 그래서라고 생각된다. 강인하고 의지가 투철한 남자. 하지만 불구자가 돼 전역한 사내, 그 다리가 멀쩡하다. 그게 이렇게 찾아온 이유다.
아니 찾아온 이유의 증거다. 이 남자는 확실하게 물건을 가지고 있다.
“해동기지를 비롯한 북극의 모든 기지들이 피바다였어요.”
힘 실은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연 윤지희는 결론을 말했다.
“그렇게 된 원인이 있어요. 만년빙이 녹은 자리에서 발견된 운석이죠. 그걸 모든 기지에서 채취해 갔어요. 그 후로 기이한 일들이 생겨났죠.”
미간을 꿈틀거리며 한건은 윤지희의 이야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