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종말전야. 9. 운석.
9. 운석.
흔들리는 시선을 가누지 못하고 한건은 거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렇게 집으로 들어오기 직전까지도 뒤를 따르며 감시하던 두 놈은 지금 안중에 없다. 이야기 하다 갑자기 전화를 받고 가버린 윤지희도 마찬가지다.
중요한건 윤지희가 전해준 진실의 윤곽, 한건 자신이 받은 행운의 돌이다.
‘그게 운석이야.’
바둑돌 보다 조금 더 컸던 조약돌 같은 돌멩이, 그건 북극의 만년빙 속에 잠들어 있던 것이다. 언제인지 모를 옛적에 우주에서 날아온 거다.
그걸 최병철이 자신에게 보냈다. 연인을 만난 행운을 나누기 위해서다.
‘공격받았다……!’
윤지희가 이야기 한 게 사실이라면 운석이 원인이다. 한건 자신에게 보낸 것 말고 다른 것들이 있었던 거다. 더 크고 확실한 운석, 그것들은 북극의 모든 기지에서 가져간 거다. 그리고 난후에 그들은 다 사라졌다.
‘피바다가 된 기지만 남기고……!’
이게 무슨 일인지, 배경이 뭔지 감이 안 잡힌다. 원인은 확실히 운석이라고 생각되는데, 그게 어떻게 작용해 이런 결과를 만든 건지 모르겠다.
‘병철이가 행운을 느꼈듯이 다른 연구자들도 그랬을까? 그 기이한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을 규명하려다 이렇게 된 걸까?’
그랬을 수 있지만 그래서 어떻게 된 건지 짐작이 안 된다.
‘아니 그것보다는 병철이가 행운의 돌이라고 보낸 것부터가 아귀가 안 맞아.’
윤지희가 말한 북극의 상황정도까지 인지했다면 돌을 안 보냈을 거다. 그런데 최병철은 보냈다. 행운을 나눠주기 위해서다. 행운을 강력하게 감지했기에 그랬고 그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몰랐기에 그런 거다.
‘병철이가 보낸 조그만 돌, 그건 북극의 모든 기지들이 달려들어서 채취해갈 정도의 운석덩어리나 혹은 무더기와 별개로 발견한 것일 가능성……’
미간을 가득 좁히고 생각을 거듭한 한건은 한 가지 결론을 도출했다.
‘운석덩어리 하나가 아닌 거야, 무더기가 발견된 거야.’
그러니 북극의 모든 나라 기지에서 달려들어 채취해 간 거다. 덩어리 하나였다면 처음 발견한 나라의 기지가 독점권을 가졌을 거다. 그런데 북극 내 모든 기지가 피바다가 됐고 상주인원들은 행불, 다들 가져갔다.
‘북극에 기지를 운용하는 모든 나라에서 이 상항을 함구한 채 조사하고 있다는 건데, 그래야 할 일이라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심장을 조이듯 파고드는 불안과 불길한 예감에 한건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친구 최병철이 행방불명 상태라는 것이 숨을 부들거리게 한다.
‘삼 개월 전……’
7월, 폭염이 시작되던 즈음이다.
뉴스에선 연일 이상기후에 대해 떠들었다. 지구온난화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소리, 시베리아의 온도가 섭씨 30도를 넘었다고 했다.
거기서 일어난 산불은 재앙이라 했다.
‘만년빙이 녹아서 드러난 거다……’
윤지희의 말에 의하면 그렇다.
영구동토로 있던 북극이 녹아 그게 드러났다는 거다. 각국의 기지에서 연구진들이 달려들어 운석을 채취했다는 거다.
그런데 크게 특별할 것 없는 그 운석이 기이한 일을 만든 거다.
‘행운.’
그것이다. 윤지희의 말에 의하면 그게 정확히 뭔지 처음엔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그냥 기분 좋은 일이, 기묘한 일이 생긴다고들 여겼다는 거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그 기묘한 행운을 인지한 거다.
‘병철이가 나에게 돌을 보내고 나서.’
행운의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안 거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운석, 기지 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행운이 전부 운석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는 반전이 일어난 거다. 운석을 차지하려는 싸움이다.
‘3개월째가 거의 다돼서야 현중그룹에서도 상황을 인지했고.’
해동기지의 경비대장이 보낸 보고서를 통해서다. 운석을 발견한 때부터 기록한 그의 일지와 영상들이다. 날이 갈수록 기묘하고 놀라웠던 일들, 그러나 결국엔 유혈극으로 변한 결과, 그 역시 마지막엔 사라졌다.
“병철아……!”
최병철의 이름을 이 악문 숨으로 부르며 고개 숙인 한건은 휘뜩 고개를 들었다.
‘그건……!’
라면으로 먹은 행운의 돌, 운석의 정체를 이제 알았다.
그건 행운이 아니다.
뭔지 알 수 없는 거다. 그런 걸 먹었고 그 힘에 의지해 행동했다.
‘삼 개월째에, 시간이 흘러서 결국 서로가 서로를 공격했다는 건……’
기묘한 소름이 돋는다. 처음엔 원하는 걸 주며 속이다가 나중에 본색을 드러내고 목을 물어뜯는 것 같아서다. 그렇다고 생각하니 더 소름끼친다.
‘돌은 맞는 거야?’
돌이 아니라 무슨 괴물 같다. 아니 라면에 녹았으니 돌이 아닌 거다.
‘내가 정말 뭘 먹은 거야?’
피부에 돋는 소름을 억지로 털어내며 한건은 윤지희를 다시 떠올렸다. 왜 자신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협조를 구하는지 이야기 하던 그녀의 눈이다.
‘불필요한 희생을 더는 내지 않기 위해서……’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한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에, 특수임무를 수행하던 군인이었다는 걸 알고 인정하기에 그렇다는 거다. 그런데 애매하고 부족한 소리다. 밖의 저런 놈들을 부리는 거면 그냥 하면 된다.
‘잠이 들었을 때 수면가스를 주입한다든지,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은 건 목표물을 무사히, 수월하게 확보하려는 거다. 한건 자신이란 존재가 어떻게 반응할지, 그 위험부담을 줄이려는 거다.
‘불구였던 다리가 정상이 됐으니…… 운석으로 인한 위험부담을……’
그래서 이른 아침 운동하는데 미모를 자랑하며 접근해서 사귀자는 황당한 소릴 했다는 건데, 오늘 내놓은 것들은 그것도 아니었던 거다. 용철이파를 마무리 하고 그 증거를 한건 자신에게 씌우는 수작, 협박이었다.
‘거기 있던 다섯 놈을 살해한건 저놈들이야.’
바깥에서 한건 자신을 감시하는 두 놈, 저들의 작품이다.
현중그룹 전략기획실 산하에서 움직이는 행동팀이 있는 거다.
원한살인이라고 여길 만큼 잔인하게 난도질한 살인이다.
그걸 한건 자신의 짓으로 꾸미는 거다.
‘사무실내 cctv를 그대로 둔 게 실수였어.’
그걸 저들이 확보했다.
물론 그걸 해결했어도 다른 걸로 올가미를 씌웠을 테지만 실수한 거다.
저들은 어젯밤 행동 시에 착용했던 복장을 확보했다.
오는 길에 도봉동 주택가 헌옷 수거함에 버린 건데 가져왔다.
‘그런 걸 내밀면서 협조라는 말은 안하지.’
미간에 거친 힘을 실으며 한건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렇게 떠올리는 윤지희, 그녀의 얼굴과 눈동자엔 뭔가 더 있었다. 다 말하지 않은 뭔가다.
그건 북극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건 자신을 보는 눈이 뭔가 달랐다.
‘그런 눈빛은…… 동정인가?’
그랬을 수 있다. 그래서 애초엔 빠르고 단호하게 해결하려 했는데 머뭇거린 건지 모른다. 그러다 상황이 더 쉽지 않게 진전하자 나선 거다.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해주고 협조를 바란다며 살 기회를 준 거다.
‘동정이든 뭐든, 저들의 목적은 내게서 운석을 회수하는 거야. 즉각적으로 칼을 찌르지 않고 있을 뿐인 상황, 날 옭아맬 덫은 이미 만들어 뒀어.’
그러니 현재 상황은 부비트랩이 설치된 건물에 발을 들인 거나 같다.
‘이건……’
현재 상황을 음미하며 한건은 강렬한 눈빛을 흘려냈다. 전장에 있을 때처럼, 냉정하고 침착하게 눈앞의 일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생각했다.
‘날 엮으려고, 흔적을 마무리 하려고 살인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자들.’
현중그룹 전략기획실, 윤지희와 그 무리는 그런 자들이다. 여태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할 자들인 거다. 저들이 한건 자신의 멱을 잡고 있다.
‘방법을 찾자. 나에게 생긴 일, 이제 어떻게 하는 게 맞는지.’
눈을 감고 명상하듯 평좌로 앉은 한건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 * *
‘12시.’
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한건은 묵은지를 냄비에 썰어 넣었다. 살짝 볶아둔 돼지고기와 어우러져 맛있는 냄새를 확 풍긴다. 없던 식욕이 곤두서게 하는 냄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다고, 먹어야 뭐든지 하는 거다.
‘저놈들……’
주방 쪽창으로 밖을 보며 한건은 어금니를 지그시 물었다.
골목길 어귀에 차를 댄 두 놈은 여전히 그대로다.
돼지고기를 사러 나갈 때 차에서 내리더니 마트까지 따라왔다. 차가운 눈은 도망가면 죽인다는 거였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자유니까 놔둔다.’
꿈틀거리는 눈썹을 제어하며 한건은 김치찌개를 저었다.
‘윤지희.’
그녀는 아침이후로 연락이 없다. 카페에서 전화를 받고 급하게 가면서 한 말은 집에서 기다려 달라는 거였다. 이건 감금과 감시가 맞지만 말은 그랬다. 그녀로선 진실을 이야기했으니 확실하게 맺음 해야 할 거다.
‘예상 못한 다급한 일이 생긴 것 같았는데.’
전화 받는 표정과 눈빛이 그랬다. 그게 뭔지 저들의 사정이 뭔지 알바 아니지만, 한건 자신에게 닥친 일과 연관된 게 맞을 것이기에 궁금하다.
‘윤지희와 저놈들이 현재 하는 일이 그거니까.’
강한 안광을 흘려내며 냄비 뚜껑을 덮던 한건은 문득 미간을 좁혔다.
‘현중그룹에서만 이걸 알고 있는 거야?’
북극에 원래 있던 기지는 다산기지다. 정부기관이다. 그곳에도 같은 일이 생긴 건데, 당연히 정부에서도 인지하고 있는 게 맞다. 윤지희가 그 부분에 대해선 정확히 말 안했지만, 북극상황은 각 나라들도 다 아는 거다.
‘초유의 엄청난 사건.’
그러니 전후배경을 파악했다면 정부에서도 한건 자신을 찾아왔어야 한다.
‘행운의 돌, 병철이가 보낸 운석을 쫓아서.’
그런데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정부에선 병철이가 한건 자신에게 돌을 보낸 걸 모르고 있다고 봐야 한다. 현중그룹만 나타난 건 그들만 안다는 거다. 해동기지의 경비대장이 보냈다는 보고자료를 현중만 안다는 거다.
‘그들의 연구소나 마찬가지니까.’
삼 개월 전부터 연구소 밖으로 나간 우편물과 택배 등, 모든 걸 추적했다고 했다. 그래놓고 그 흔적을 지우고 정부엔 안 알린 게 맞을 거다.
그런데 정부에서도 이 상황을 안다면 누가 어느 정도나 알고 있는 걸까?
‘다른 나라들의 대응은?’
갑자기 사안의 크기가 거대해지는 걸 느끼며 한건은 흠칫했다.
‘이거 정말……!’
힘주어 물었던 이를 풀며 한숨 쉰 한건은 찌개를 밥상위에 올리고 식사를 했다. 묵은지찌개는 맛있었지만 제대로 맛을 못 느끼는 점심식사였다.
* * *
저녁식사를 마치고 설거지까지 끝낸 한건은 냉장고 안 맥주 한캔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쳤다. 머리가 복잡하고 생각이 너무 많아 한캔만 하면 어떨까 생각을 잘라냈다. 그럴 일이 아닌 거다. 이미 다섯 명이 죽었다.
‘아니, 내가 한글창에 써서 만든 결과까지 합치면……’
후우하고 깊은 숨을 내쉰 한건은 폰이 우는 소리에 흠칫했다. 모르는 번호다. 그런데 윤지희의 전화일거란 예감이 든다. 그럴 시간이 됐다.
“여보세요.”
-한건씨 어서 집에서 나오세요! 피해요!
다급한 윤지희의 목소리, 피하라는 경고에 한건은 눈썹을 확 세웠다.
무슨 소리냐고 묻지 않고 벌떡 일어섰다.
불을 꺼놓은 거실을 가로질러 주방쪽창에 붙어 밖을 봤다.
골목어귀의 차, 거기서 떨어지는 그림자가 있다.
-한건씨 듣고 있나요? 우리 팀원들이 연락이 안돼요! 어서 피해요!
곤두세운 눈썹을 느릿하게 가라앉힌 한건은 폰을 껐다.
아랫배가 불룩하도록 깊고 큰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방으로 들어가 옷장 안의 전술배낭을 열었다.
카바나이프와 삼단봉을 꺼냈다.
양손에 쥐고 돌아섰다.
‘피하긴 늦었어.’
주방 옆 현관문을 노려보며 한건은 방의 불을 껐다.
이미 꺼놓았던 거실과 더불어 집안은 완전한 적막과 어둠에 갇혔다.
그 속에서 숫자를 세며 기다렸다.
현관 옆 벽에 붙어 서서 숨을 멈추고 객이 오기를 기다렸다.
‘불청객.’
누군지 모를 인물, 바깥에서 감시하던 현중그룹 행동팀의 둘을 처리했다. 혼자다. 총기를 가졌을 확률이 높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꼭 그렇지 많은 않지.’
나이프와 삼단봉을 겨드랑이에 낀 한건은 현관 옆 작은 선반에 둔 해충 스프레이와 라이터를 잡았다.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다시 숨을 멈췄다.
어차피 출입구는 문뿐이다. 방범창을 댄 이층창문은 절대 아닐 거다.
‘총을 가졌다면 더욱.’
벽에 귀를 댄 한건은 소리 없는 기척을 감지했다.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밟는 기척이다.
고양이 같은 그 걸음은 정확히 현관 앞에서 멈췄다.
‘불이 꺼진 게 찜찜하지만 크게 고려할 상황이 아니겠지.’
짐작을 삼키던 그 순간 문손잡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잠금장치를 총격으로 파괴한 순간이다.
문이 벌컥 열리며 시커먼 그림자가 들어온다.
그 찰나에 한건은 스프레이를 뿌리며 라이터를 켰다. 불이 확 날아갔다.
“억!”
놀란 침입자 놈이 권총든 손을 들어 얼굴을 막을 때 한건은 훅킥을 날렸다. 벼락같은 궤적을 그린 발차기는 정확하게 놈의 안면을 강타했다.
줄 끊어진 인형처럼 허물어진 놈을 한건은 집안으로 끌어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