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종말전야. 10. 또 다른 손.
10. 또 다른 손.
아래층 주인집의 동정을 살피며 시간을 흘려보낸 한건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계단을 내려가 골목길을 살피며 차로 다가갔다.
골목어귀에 정물처럼 서 있던 차창엔 구멍이 났다.
아침부터 뒤따르던 두 남자는 죽었다.
‘정확하게 머릴 쐈구나.’
운전석의 남자는 헤드레스트에 머릴 기대고 자는 것처럼 보인다. 조수석의 남자는 앞으로 상체를 숙인 모습이다. 골목 밖에서 들어온 암살자는 태연하게 걸어와서, 두 사람의 시선이 꽂힐 때에 총을 발사한 거다.
‘이 위치가 보안등과 거리가 있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골목을 들고나는 사람들이 발견하는 건 시간문제다.
그런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한건 자신이 처한 이 상황, 이제부터 대응이 중요하다.
현중그룹 행동팀이 공격당했다.
한건 자신을 노렸다.
이게 팩트다.
‘운석에 대한 정보를 아는 자들이 또 있다는 소리.’
정부는 아니다. 정부라면 이렇게 행동하진 않을 거다.
‘아니 지금쯤이면 알려나?’
북극기지를 운영하던 각 나라들도 같은 상황일 터, 정보공유나 공동조사 등을 했거나 진행 중일 거다. 현중그룹이 빨랐지만 그게 맞을 거다.
‘나에 대해서도?’
그렇다 해도 정부가 이렇게 사람부터 죽이는 행동으로 나서진 않을 거다.
이건 그럴만한 자들이 하는 거다.
강력한 동기와 힘을 가진 자들이다.
현중그룹을 공격할만한 자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동급의 세력이다.
‘정보력과 행동력을 갖춘.’
어금니를 물었다 푼 한건은 집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현관문을 닫고 들어가 결박해 놓은 암살자 놈의 몸을 뒤졌다. 권총 한정과 여분의 탄창과 폰이 가진 전부다. 폰을 들여다봤지만 수신된 번호 하나가 달랑 있다.
‘대포폰.’
한건 자신을 노린 이일을 시작하며, 이일에만 사용한 폰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현중그룹 행동팀의 뒤를 밟아 방아쇠를 당긴 것일 거다. 한건 자신에 대한 정보, 즉 노리던 물건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다 찾은 거다.
‘그래서 무리하게 한 것일 수도.’
물건의 위치를 확인했으니 우선 확보하려 한 거다. 아침부터 윤지희를 만났으니 그 시간동안 이놈들은 한건 자신에 대해 조사했을 거다. 북극기지에 친구 최병철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터, 인지하자마자 행동했다.
‘다 추정뿐이지만, 어쨌든 결과는 분명해.’
한건 자신을 노린 일, 더 정확하게는 행운의 돌이라고 착각한 운석을 노린 거다.
이들이 누구든 사람을 죽였다.
원하는 걸 가지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한다는 거다.
위험한 이 일에서 벗어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녹음해?’
요술방망이처럼 결과를 만든 게 지금 속에 있다. 자신을 노리고 달려드는 모든 인물들이 설사병을 일으키라고 쓰거나 녹음하면 쉽게 해결된다. 아니 원천의 해결은 아니니까 근본적인 망각을 쓰면 하면 안 될까?
‘해 보는 거야.’
새삼 황당함을 삼키며 한건은 폰에 녹음했다.
“북극에서 온 운석에 관해 아는 자들 전부 이 일을 망각한다.”
녹음한 내용을 재생해 듣던 한건은 폰의 울음에 흠칫했다. 윤지희다.
“예……”
-한건씨? 괜찮은 건가요? 거의 다 왔어요! 5분정도면 도착이에요!
한건은 미간을 찡그렸다.
윤지희는 진행 중이다. 5분후면 도착한다고 한다.
그렇다는 건 지금 막 녹음한 게 효과가 없다는 거다.
이건 왜 이럴까?
아직 시간이 충분하게 안 지나선가? 다리처럼 하루정도 걸리는 건가?
“한 가지 묻겠습니다.”
숨을 크게 들이 마신 사이를 두고 한건은 물음을 냈다.
“운석의 일으키는 기이한 일들, 그게 효과가 어느 정도인 겁니까?”
-운석의 효과요?
물음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는 듯 되물음을 던졌던 윤지희는 대답했다.
-현재까지 조사된 바에 의하면 소지자의 의지를 실현해 주는 걸로 돼 있어요. 소유하고 싶은 재화라든지 해치고 싶은 대상에 대한 제재나 응징이라든지요.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아무튼 그 부분은 이미 말씀드렸죠. 그런데 그런 일이 반복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변질돼요.
변질이라는 말에 한건은 숨을 멈췄고 윤지희는 이어 말했다.
-소지자가 원하는 의지 중에서 폭력적인 일에만 반응하고 결과를 내는 거죠. 즉, 해치고 싶은 사람이나 파괴하고 싶은 대상, 그런 경우에만 효과를 내는 거예요. 그게 정확하게 언제 그렇게 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폭력이 거듭된 경우에 그렇게 된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운석이 소지자를 그렇게 만든다고 봐요.
거기까지 말한 윤지희는 한건에게 다급히 물음을 이어냈다.
-한건씨에게 무슨 변화가 생긴 건가요? 로또에 당첨된 건 이미 알고 있어요. 그런 행운은 이제 안 되는 거죠? 아니 그보다 지금 상황은 어때요?
다급히 침 삼키는 기척을 내며 윤지희는 거듭 물었다.
-피한 건가요? 지금 통화가 가능한 상황인걸로 봐선 무사한 것 같은데, 팀원들이……
한건은 그대로 통화를 끝냈다.
‘변질 된다……’
폰을 잡은 손을 늘어뜨린 채 한건은 생각하고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정해야 한다. 잡아 놓은 암살자 놈을 족쳐서 적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야 할지, 이대로 윤지희가 오기를 기다려야 할지다.
‘아니야, 나는 내가 보호한다.’
결론을 낸 한건은 빠르게 행동했다. 옷장 안의 전술 배낭을 꺼내고 옷가지를 챙겼다. 배낭엔 현금 사억이 들어 있는 터라 묵직하다. 위아래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 넣고 등에 멨다. 그렇게 집을 나서다 돌아봤다.
‘저놈은……’
윤지희가 곧 도착할 테니 그들이 처리할 거다. 한건 자신이 손을 댈 여건이 아니다. 현중그룹에서 저놈의 배후를 알아낸다면 한건 자신도 알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든 안 되든, 지금은 집을 떠나 숨는 게 최선이다.
‘간다.’
현관문을 밀고 나선 한건은 계단을 내려갔다. 골목을 벗어나며 두 남자가 죽어 있는 차를 힐긋 돌아봤다. 윤지희가 오면 저들도 처리될 거다.
‘킬러 놈이 타고 온 차가……’
놈의 주머니에서 찾은 리모컨을 한건은 계속 눌렀다. 다음 블록이 시작되는 곳, 대형아파트공사장의 펜스 앞에서 차 한 대가 반응했다. 앞뒤로 죽 주차된 차량들 속에서 반짝이는 차는 평범한 회색 k5 승용차다.
‘이 차에 위치발신기 같은 게 있다면……’
그래도 지금은 빨리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윤지희가 다른 행동팀원들을 대동하고 곧 나타날 것이다. 그 안에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그들도 암살자와 마찬가지다. 그들이 원하는 건 행운의 돌, 라면과 먹은 운석이다.
‘먹었다는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윤지희의 얼굴을 떠올리며 한건은 차를 출발했다.
* * *
“하아.”
한숨을 내쉰 윤지희는 모자 아래로 흘러내린 머리를 다시 쓸어 올려 넣었다. 팀원들이 끌고 나가는 히트맨을 보다 집안을 돌아봤다. 한건이 사라진 집, 방두개짜리 다세대 주택 이층의 내부전경은 쓸쓸하게 소리친다.
‘그래, 이 집은 이제 주인이 떠나고 없지. 알아.’
소리 없이 귀를 파고드는 집의 외침에 대답하듯 윤지희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자신이 올 걸 알면서도 떠난, 그래서 사라진 한건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그는 윤지희 자신과 현중그룹을 같은 대상으로 보는 거다.
‘총을 가지고 침입한 히트맨과…… 다를 게 없지.’
그가 가진 운석, 그것이 목표다.
그걸 확보하기 위해 접근했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걸 한건은 알고 있다.
운석과 북극에 대해 말해서가 아니어도 한건은 안다.
그가 처한 현실의 크기와 중대성을 깨달은 거다.
‘바보가 아니래도 그렇겠지. 더군다나 그는 남다른 사람이니까.’
나라의 밀명을 받고 전장으로 간 군인이었다. 세상이 모르는 비밀이다. 그 임무가 처음엔 아프가니스턴의 미군특작부대 후방지원이었지만, 특작부대가 적의 함정에 빠져 위기에 처하자 한건의 부대가 나서 구한 거다.
그 다음부터는 미군의 요청에 의해 한건의 부대가 임무를 수행했다. 그렇지만 탈레반의 교묘한 함정과 반격에 빠져 목숨만 건져 돌아온 거다. 그 땅은, 아프가니스탄은 결국 미군철수로 탈레반정부가 통치하고 있다.
‘현장을 수습할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다시 현실에 집중하며 윤지희는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최대한 빨리 온다고 했는데도 시간은 어느새 10시 반이 넘었다.
골목길 어귀의 팀원들은 다른 사람들 눈에 발견되지 않았다.
어둠이 은폐에 도움을 준 거다.
‘눈만 뜨면 강력사건들이 빈발하는 세상.’
그런 영향으로 사람들의 행동이 줄어들었다. 물론 코로나시국이라는 초유의 사태도 한몫했다. 그런저런 영향으로 이른 어둠이 드리운 골목길엔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차를 보지 않았다.
‘블랙박스영상을 보면……’
한건은 차를 살펴봤다. 그리곤 영상에서 사라졌다. 그렇지만 잠시 후에 배낭을 메고 떠나가는 모습이 잡혔다. 윤지희 자신과 통화를 하고나서다.
‘내 첫 번째 전화를 받고 상황을 인지했어. 그 다음에 히트맨을 처리했고. 그리고 나선 두 번째 통화를 하고 난 후에…… 떠나기로 결정했고.’
입술을 잘근 물었다 푼 윤지희는 현관 앞에 있는 스프레이 통과 라이터를 응시했다. 한건이 히트맨을 처리한 수단이다. 저걸로 불길을 뿜은 후에 일격은 안겨 제압했다. 확실히 특별한 사람이다. 그런데 불구였다.
‘그의 다리는 확실히 운석의 영향.’
전장에서 다리를 다쳐 돌아온 사람이다. 하지만 이젠 정상이 됐다.
그랬기에 이런 결과를 만든 거다.
그렇게 만든 원인, 운석에 관한 내용은 황당하고 놀랍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지만 결과를 보는 것은 또 다르다.
“후아.”
가슴속의 것을 한꺼번에 숨으로 뱉어낸 윤지희에게 팀원이 보고했다.
“pc를 보셔야겠습니다.”
방으로 들어간 윤지희는 팀원이 켜놓고 확인하던 pc를 살폈다.
한글창이다. 웹소설을 연재한다더니 소설을 작성하던 파일이다.
그런데 다른 것도 있다. 짧고 명료하며 단호한 문장들, 여태 일어난 사건들 결론이다.
‘한건, 당신이 한 거군요……!’
천변 살인사건 범인의 최후, 은혜아파트 사건, 조용철의 자살, 모두 한건이 한 거다. 이렇게 글로 써서 의지를 발현했다. 그게 이뤄진 사건들이다.
‘당신은……’
한글파일 안 글들을 보며 윤지희는 한건의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강건한 얼굴과 흔들림 없는 눈동자, 그가 품고 있는 의지와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다.
그를 그냥 처리하라고 명령하지 않은 건 무슨 이유였을까.
‘호기심이었지만……’
국가가 세상 몰래 전장으로 보낸 군인, 불구가 되어 돌아온 남자.
그에게 북극의 운석이 있는 거다.
과연 어떠한 일일지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 확인하고 있다.
한건은 한글 파일에 의지를 써서 실현했다.
“pc 수거해.”
팀원에게 명령하며 윤지희는 일어섰다. 돌아서며 의문을 씹고 생각했다. 한건이 가진 운석은 과연 어떠한 일들을 더 할 수 있는지, 한글파일에 쓴 것처럼 저런 일들을 계속 만들 수 있는지, 변질되고 있는 지다.
‘변질된다면 어떻게?’
알 수 없다. 엄밀히 아는 게 없다.
해동기지의 경비대장이 보낸 자료를 바탕으로 인지하고 추정하는 거다.
이젠 한건이 만들어낸 일들로 더 명확해졌다.
한건에게 말한 것처럼 소지자의 의지를 실행한다.
램프의 지니다.
‘로또까지 당첨됐으니 도깨비방망이지.’
현관을 나서던 윤지희는 걸음을 멈췄다.
‘로또당첨금은 이제 헛것이 됐어.’
한건의 통장에 든 이십억, 그건 한건이 쓸 수 없다.
쓰려고 하면 위치가 드러날 것이란 걸 그가 모를 리 없다.
그림의 떡이 돼버린 이십억, 그걸 생각하면 화가 나는 정도가 아닐 거다.
그러니 이건 마치 희롱 같다.
‘운석의 희롱.’
좋은 걸 주고 바로 나쁜 것을 안겨준 결과다.
물론 이 상황을 운석이 꾸민 거라곤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그렇다.
운석이란 것이, 그 힘이 지금 이런 현실을 만든 거다.
인간들의 탐욕을 끌어들인 거다.
‘그룹에서 원하는 건 운석, 한건이란 사람은 하등 고려의 대상이 아니야.’
그게 냉엄한 현실이다. 한건도 그걸 아는 거다. 그래서 도망친 거다.
‘정부에서도 거의 알아낸 것 같은데.’
다시 걸음을 내며 계단을 내려간 윤지희는 이층을 돌아봤다.
‘한건, 당신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흔들리는 시선에 다시 힘을 실은 윤지희는 돌아서 대기 중인 차로 향했다. 골목을 벗어나며 보니 팀원들이 사살된 차는 이미 치웠다. 그 자리에 서서 주변을 돌아봤다. 보안카메라들이 보인다. 결과는 시간문제다.
‘정부보다 먼저, 히트맨을 보낸 쪽보다 먼저.’
도로로 나간 윤지희는 차에 올랐다. 그 뒤로 한건의 집에서 나온 팀원들이 탑승했고, 세대의 차량은 심야로 이어지는 도로를 달려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