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61화 (161/200)

[외전] 종말전야. 11. 심야 속으로.

11. 심야 속으로.

송추방향으로 차를 달리던 한건은 수도권순환고속도로 올라탔다. 하지만 양주영업소에 이르러 멈췄다. 여기서 광역버스를 탈 수 있기 때문이고, 킬러의 차를 계속 이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확인을 해야 하는 거다.

가장 우측 화물차들이 지나가는 하이패스 구간으로 빠져나간 한건은 화물차들이 줄지어 있는 노변 맨 앞에 차를 멈췄다. 칼날같이 예리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고 차에서 내렸다, 대형컨테이너 차 뒤로 몸을 숨겼다.

‘저 차에 문제가 있다면 드러나겠지.’

육안으로 찾아내지 못할 곳에 위치발신기 같은 게 있다면 찾아올 거다.

한건 자신을 죽이고 운석을 가져가려 한 놈들이다.

이곳은 일산방향으로 가는 광역버스가 서는 정류장이 있는 곳, 그걸 탄 걸로 판단할 거다.

‘아닐 수도 있지만.’

일단은 차를 버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걸로 판단내릴 공산이 크다.

놈들이 나타나 그렇게 움직인다면 한건 자신은 역으로 움직이는 거다. 뒤쪽의 펜스 넘어 비탈을 내려가는 거다. 숲을 지나면 길이 나올 거다.

‘만일 틀어지면……!’

어금니에 힘을 몰았다 푼 한건은 점퍼 안의 권총을 잡았다.

현중그룹행동팀의 두 남자를 살해한, 한건 자신도 그렇게 만들려던 무기다.

이걸 사용할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래야 할 상황이 오면 주저 없어야 한다.

‘냉정하게, 침착하게.’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듯 마음속으로 말하며 한건은 고속도로를 살폈다.

* * *

“영상을 찾았습니다.”

팀원이 내미는 태블릿을 받아든 윤지희는 차가워진 숨을 흘려냈다.

이젠 가을이 깊어 가는지 밤공기가 차갑다.

곧 11월이니 당연하다 하겠지만, 10월 말에 들이친 이상한파라고 뉴스에서 말하는 걸 본 것도 같다.

“한건의 집에서 다음 블록입니다. 아파트공사장펜스 앞에 주차돼 있던 승용차를 탔습니다. 한건에겐 차가 없었으니 히트맨의 차로 판단합니다.”

이어지는 팀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윤지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동경로는?”

“송추방향입니다. 서울고속도로 송추IC로 들어갔습니다.”

윤지희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봤다.

차는 이미 그쪽으로 이동 중이다.

한건의 집을 중심으로 돌며 종적을 추적함과 동시에 영상을 해킹한 결과다. 지역관제센터와 교통관제센터는 해킹당한 것도 모를 거다.

“히트맨은 어떤 상태야?”

뒤따르는 승합차에 타고 있는 놈에 대해 윤지희는 물었다. 조수석의 팀원은 즉시 폰을 잡고 통화를 했다. 다시 돌아보며 하는 말은 예상한 거다.

“하청업자랍니다.”

윤지희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하청업자, 내용을 모르는 놈이다. 알 필요도 없는 놈, 돈을 받고 일하는 놈이다.

그렇지만 실력이 있는 놈이기에 선택된 거다.

저놈이 원청업자에 대해 내줄 정보는 없다고 봐야 한다.

‘누구냐?’

한건을 노린 것이 누구인지, 자신들 현중그룹의 행사에 끼어든 세력이 어디인지 윤지희는 곱씹어 더듬었다. 정보력에 있어서 최고라는 제일그룹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북극기지를 운용하는 일에 촉각을 세웠었다.

‘우리 현중에게 뒤질까봐, 지들이 앞서나가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놈들.’

그런데 그들이라고 판단하기엔 무리한 점이 있다.

북극의 일은 극비중의 극비다.

정부에서도 다급히 조사팀을 보내 진행 중인 일이다.

그건 북극기지를 운용하던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그걸 알기가 힘들다.

‘정부인 건가?’

극지기지의 주무부처는 해양수산부다. 하지만 실질적인 관여를 하는 곳이 따로 있다.

청록원이란 괴이한 이름을 가진 연구기관이다.

그곳은 모양만 연구기관이지 비밀 정보기관이다. 그들은 국정원도 뺨때릴 자들이다.

‘청록원이라기엔……’

괴이하고 신비하긴 해도 그곳은 정부기관이다.

그들이 이렇게 행동할 이유가 없다. 아니 없다고 단정하기엔 그렇지만 개연성이 부족하다.

그러니 다른 손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손이라면 역시 내막을 아는 쪽이다.

‘다른 나라.’

미국이나 러시아, 혹은 일본이나 중국이다. 그들은 북극에서 벌어진 일의 내막을 파악했을 거다. 그들의 정보력이라면 현중그룹에서 훑어 알아낸 것을 아는 건 시간문제, 그렇게 뻗어 나온 손인 걸지도 모를 일이다.

‘한건, 당신이 특별한 사람인걸 알지만 이건 절벽이에요.’

배낭 하나 메고 도주를 택한 한건, 그를 둘러싼 절망을 윤지희는 안타까운 숨으로 삼켰다. 그렇게 한건에 대한 감정을 수습하고 중심을 잡았다.

“한건을 절대로 놓치면 안 된다. 우리가 먼저 확보해야 해.”

윤지희의 차가운 명령 속에 세대의 차량은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 * *

톨게이트를 막 지나온 차량 두 대가 멈춰 섰다. 검정색의 suv, 하차한 인원은 여섯이다. 세워놓은 k5를 향해 빠르고 은밀하게 다가간다. 거리를 두고 서서 점퍼 주머니 안에 손을 넣은 채로 차를 살피다 문을 연다.

‘너희구나.’

컨테이너 차량 밑에 엎드려서 한건은 그들을 주시했다. 옷 속으로 감추듯 넣은 손에는 다들 권총을 잡고 있을 것이 확실하다. 어두운데다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알아보긴 힘들지만, 외형으로 봐선 전문가들이다.

‘저놈들이 서로를 향해 총을 쏴버리는……’

이 순간 치미는 분노와 살기로 한건은 그런 상상을 했다. 그래놓고 흠칫했다. 아무리 자신을 노린 놈들이지만, 죽이는 걸 서슴지 않을 놈들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한건 자신이 사람을 마구 해치는 상상은 처음이다.

‘이거……’

직접 손을 써서 해치는 게 아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의지다.

그런 방법이 있다. 글을 쓰거나 녹음하면 된다.

지금 치민 살인의 상상은 그거다.

그렇게 하라고 속에서 튀어나온 거다.

그런데 지금은 방법이 없다.

‘폰을 켜는 순간 위치가 포착될 거야.’

그게 현실적인 문제, 의문은 다른 거다.

되냐는 거다.

녹음하거나 글로 써서 이뤄지냐는 거다.

망각을 의도했지만 되지 않았다. 분명 안됐다.

시간이 지나도 안 될 걸로 판단된다. 그게 안 된 건 무슨 구분인 걸까?

사안이 달라서, 의지의 크기와 종류가 달라서였을까?

그런 걸 운석이 구분하고 판단한다는 건가?

윤지희의 말에 의하면 폭력적인 일의 중첩 후에 변질된다고 했다.

한건 자신이 한일도 폭력적인, 분명히 그랬다.

‘변질은 이미 된 거라고 봐야 맞아.’

그 변질이, 운석이 구분을 하는 게 맞다는 예감이다. 더 이상은 행운이 아니라 폭력을 위해 의지가 발현되고 이뤄지는 구분인 거다. 핵심 결과가 운석이 원하는 것이며 행운과도 같은 과정이나 결과가 생기는 거다.

‘뇌피셜.’

확실한건 없다. 아는 것도 없다. 짐작과 추정뿐이다.

그러니 뇌피셜일뿐, 이순간의 사념을 밀어낸 한건은 놈들을 주시했다.

여섯 명의 사내, 모여서 수군거린다.

그런데 때맞춰 광역버스가 도착했다.

일산행 막차다.

버스를 본 사내들은 바로 움직인다. 서둘러 차로 돌아간다. 버스가 가는 일산행을 결정한 거다. 앞서간 버스에서 영상을 찾아 추적할 것이다.

그런데 가야할 놈들이 주춤거린다. 한 놈이 컨테이너 차량 뒤로 돌아온다.

‘이런.’

오줌을 갈긴다. 급했던 모양이다. 그게 튄다.

한건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굴렸다. 그런데 그 순간 바닥에서 소리가 났다.

등에 눌린 병뚜껑이다.

소주병 뚜껑, 여기 차를 댄 트럭운전사 누군가 먹고 버린 거다.

‘이!’

한건은 오줌 누던 놈의 움직임을 본 순간 몸을 휘돌렸다.

다리를 수평으로 쓸어 찼다.

주춤하며 소리에 반응하던 놈, 트럭아래를 살피려던 놈의 발목을 강타했다.

어차피 발각을 피할 수 없는 상황, 선제공격이다.

휙, 균형을 잃고 넘어간 놈에게 한건은 튀어나갔다.

권총을 빼 겨누는 놈의 움직임과 동시에 삼단봉을 펼쳐 후려쳤다.

악, 소리를 내는 놈의 안면에 무릎을 박았다.

놈이 떨군 권총, 소음기 달린 그것을 잡고 뛰었다.

“저기다!”

뒤에서 들리는 소릴 떠밀어 주는 힘으로 받으며 한건은 펜스를 넘어갔다.

* * *

양주IC에서 마주치게 된 상황이 행운이라고 할지 아닐지 모르겠다. 한건이 타고 도주한 K5를 찾았다. 그런데 다른 차량 두 대가 더 있다. 차 안엔 손목이 부러지고 안면이 부서진 놈 하나가 인사불성으로 누워 있다.

“펜스 넘어 비탈로 도주하고 추적해간 걸로 판단합니다.”

팀원의 보고에 눈동자를 차갑게 빛낸 윤지희는 명령했다.

“쫓아, 한건을 노리는 놈들은 제거하고 한건을 확보한다. 아니 한건도 저항하면 해결해.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운석이다. 그것만 확보하면 돼.”

단호한 윤지희의 명령에 따라 현중그롭행동팀원들은 움직였다. 한건과 정체모를 사내들이 넘어간 펜스를 넘어 비탈로 미끄러졌다. 그들이 스며들 듯 사라진 숲과 어둠을 응시하며 윤지희는 흡연의 충동을 느꼈다.

‘힘들게 끊었는데 이런 때는 정말 참기 힘들어.’

긴장과 흥분을 삼키며 윤지희는 어둠을 노려봤다.

* * *

배낭 때문에 더 빠르게 이동하는 게 힘들다. 하지만 한건은 한순간도 멈칫거리지 않았다. 비호처럼 움직여 공릉천을 넘어갔다. 물이 얕은 공릉천이 질러대는 첨벙소리가 추적자들에게는 손짓이 되지만 어쩔 수 없다.

‘개자식들!’

현재 상황이 그렇다.

쫓아오는 놈들이 누군지 모르지만 전문가들이다.

죽이러온 놈과 같은 부류다. 저놈들 이목에 들어 있는 상황, 이대로는 잡힌다.

그건 곧 죽음이다.

저놈들이 원하는 건 운석, 오직 그것뿐이다.

‘내가 라면하고 먹었다는 걸 알면……!’

기묘한 쾌감을 삼키며 한건은 미친 듯이 달렸다. 그런데 이상하다, 현금 사억이 든 배낭을 메고 달리는 데도 전혀 힘들지 않다. 이정도면 숨이 턱까지 차고 몸이 쳐져야 하는데 발동거린 스포츠카처럼 뛰고 있다.

‘뭐지?’

공릉천을 넘어 폐로가 된 철길을 향해 달리며 한건은 짐작을 삼켰다.

‘운석.’

그것으로 인한 변화라는 것이다. 다리를 정상으로 돌려준 운석, 그것이 가진 힘의 영향이든 그것의 의지이든, 지금 달리는 몸의 상태는 최상이다. 쫓아오는 놈들에게 거리를 주지 않고 있다. 그런데 총격은 아니다.

‘저 새끼들!’

퍽퍽 하고 울리는 소리로 날아오는 총탄을 피해 한건은 몸을 숙이고 달렸다. 하지만 이대로는 무리, 철길을 넘어가 몸을 돌려 권총을 발사했다.

퍽 퍽.

어둠속의 귀신들처럼 달려오던 놈들 중 한 놈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다른 놈들이 급하게 엄폐하는 모습을 보며 한건은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런데 또 다른 자들을 보고 멈칫했다. 공격자들의 뒤로부터 온 자들이다.

‘현중그룹.’

그들임을 확신하며 한건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 순간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살기에 잠식됐다.

총격전을 벌이는 저들이 원하는 건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건 자신을 죽여서라도 가지려는 운석이다.

현중놈들이 온다.

‘그래, 와라!’

섬뜩하도록 강한 눈빛을 뿜어낸 한건은 다시 달렸다. 추격자놈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놈들 외에 세 놈이 쫓아온다. 저놈들도 총질을 해댄다.

이젠 한건 자신을 고려할 계제가 아니란 거다. 윤지희가 내린 결론이다.

‘이에는 이다!’

목표로 삼은 창고로 한건은 야생맹수처럼 달렸다.

농협마크가 거의 사라진 큰 창고, 수확한 쌀 같은 것들을 보관하던 용도인 것 같다.

창고 뒤로 돌아갔다.

배낭을 던지면서 벽에 붙었다. 그렇게 숫자를 세며 기다렸다.

‘하나, 둘…… 다섯, 여섯, 일곱……’

귓가에 닥쳐와 다급히 멈추는 기척에 반응하며 한건은 벽을 돌아나갔다. 달려온 몸을 채 멈추지 못한 현중그룹의 놈, 가슴에 총탄을 안겼다.

퍽퍽.

바로 총을 겨누고 발사하는 두 놈을 향해 쓰러지는 놈을 잡고 나갔다.

동료의 총격을 받고 움찔거리는 놈, 그 몸을 밀어 한 놈의 균형을 무너뜨린 한건은 다른 한 놈에게 몸을 던졌다. 허리를 태클로 잡아 돌렸다.

휘릭 돌아간 놈은 머리를 박고 목이 부러졌다.

그 순간 총격이 왔다.

목이 부러져 경련하는 놈을 방패삼아 총탄을 받은 한건은 엎드린 채 권총을 발사했다. 총 쏘는 놈의 미간에서 터지는 피 꽃을 보며 전율을 삼켰다.

한건은 일어섰다.

쫓아온 세 놈을 처리한 결과를 눈에 담았다.

삽시간에 세 사람을 죽인 거다.

전장이 아닌 곳에서, 대한민국에서 살인했다.

그런데 아무 죄책감이나 두려움이 없다. 설명하기 힘든 전율과 쾌감뿐이다.

칼날 같은 눈빛을 흘리며 죽인 자들을 바라보던 한건은 돌아섰다.

창고 뒤 던져둔 배낭을 다시 멨다.

철길너머의 총격섬광을 바라봤다.

저들의 싸움은 결과가 어떨지 모르겠다. 어떠하든 지금은 이곳을 벗어날 때다.

어둠 속을 달리는 맹수처럼 한건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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