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64화 (164/200)

[외전] 종말전야. 14. 죽음.

14. 죽음.

“어서!”

윤지희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느리게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향한 종용, 아니 협박이다. 하지만 무생물인 엘리베이터가 알아들을 리 없다. 그냥 평소처럼 느릿하게 올라가며 숫자판의 숫자만 더해나갈 뿐이다.

‘5층!’

초조와 흥분을 삼키며 윤지희는 물음을 던졌다.

“현재 상황 보고해!”

리시버를 통해 비상계단으로 이동한 팀원들의 보고가 들어온다.

물러나던 두 놈을 처리했다는 보고다.

윤지희 자신 뒤로 들어온 팀원들은 옆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중이다.

적들도 이젠 상황을 인지했을 터다.

‘한건을 잡기 위해 이응삼을 노린 놈들.’

치밀하고 강력한 행동력을 가진 놈들이다.

오피스텔 관리실은 이미 정리했을 거다.

두 놈이 오피스텔 입구에서 대기한 이유가 있다. 다름 아닌 한건이다.

그와 연락이 이뤄진 거다.

한건은 오고 있거나 이미 왔다.

‘어떤 상황인지 모르지만 이응삼과 송미진을 먼저 확보해야……’

종 치는 소리가 윤지희를 현실로 끌어냈다.

9층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이 열리는 틈 사이로 불길한 예감이 확 밀려든다.

채 열리지 않은 문을 벌리며 달려 나갔다.

옆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에서 팀원들이 나온다.

‘901호!’

복도를 달리던 윤지희는 그 순간 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퍽퍽하는 소리, 가죽샌드백을 때린 것 것은 이건 분명이 소음기를 장착한 총격음이다.

* * *

이응삼에게 권총을 겨눈 두 놈을 향해 한건은 몸을 던졌다.

럭비선수가 충돌하듯, 탱크가 밀어버리듯이 두 놈을 한꺼번에 밀었다.

두발의 총성이 실내를 울린다.

소음기소리라 둔중한 울림, 그런데 비명이 들린다.

“크악!”

두 놈과 함께 구른 한건은 그 찰나에 친구 이응삼을 봤다.

리더놈의 손목에서 나온 칼날에 어깨를 찔렸다.

리더놈은 이응삼은 옆으로 돌리며 밀었다. 그 순간 잔인하게 번득이는 리더놈의 눈이 뭘 말하는지 알겠다.

“안 돼!”

필사적으로 외치며 한건은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늦었다.

리더 놈은 리모컨을 눌렀고, 이응삼의 목에선 불꽃이 피어났다.

그렇게 머리가 떠올랐다.

거의 동시에 리더놈이 외쳤다.

죽여, 하는 소리, 한건은 움직였다.

“으아아!”

리더놈을 향해 한건은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저 모가지를 뽑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친구 이응삼과 그 약혼녀 송미진의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등에 충격이 왔다. 화끈하고 섬뜩한 감각이.

* * *

두 번째로 들린 두발의 소음기 총성, 윤지희는 현관문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지금 상황은 주변정황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목격자가 생긴다면 그건 그것대로 처리하는 거다. 최우선의 일은 집 안의 장악이다.

“제압해!”

팀원들에게 외치며 윤지희는 뒤로 물러났다. 팀원들은 도어락이 부서진 현관문을 열었다. 하지만 내부에서 날아오는 총탄 때문에 비켜섰다. 벽에 붙어 손만을 안으로 향해 총격을 퍼부었다. 그 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 * *

천장을 보고 누운 한건은 알았다. 자신이 피 속에 누워 있다는 것을, 죽어간다는 것을.

‘이렇게 죽는 건가……’

전장에서도 피해 다닌 총탄을 맞았다. 무방비로 등에 두발을 맞았다. 감각이 없다. 그냥 허무하고 허탈하다. 흘려낸 피 속에 누워 죽어갈 뿐이다.

‘이게 운석의 플랜인가.’

갑자기 웃음이 새어나와 한건은 입가를 비틀었다.

웃음이 지어지지 않지만 웃었다.

차갑게 식어가고 굳어가는 몸의 최후를, 운석의 의지에 희롱당한 종국을 만끽했다.

그 마지막 눈길로 열린 창문 밖 밤하늘을 봤다.

꿈틀, 출렁거리는 어둠이 보인다. 그걸 본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런 개죽음을……!’

한건은 부들거렸다. 마지막 경련을 전신으로 냈다.

회광반조라고 하던가, 그 마지막 힘이 피어났다.

고개를 돌렸다. 친구 이응삼의 머리가 있다.

‘응삼아……!’

원통한 분노로 부릅뜬 눈이다.

한건 자신을 보고 있다.

소리치고 있다.

죽이라고, 저것들을 다 죽이라고, 원수를 갚아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으어어어!’

한건은 미친 듯이 경련했다. 마치 간질병환자 같은 격한 몸부림을 일으켰다. 그러는 와중에 놈들을 봤다. 친구 이응삼과 송미진을 죽인 리더 놈과 부하 두 놈, 현관문밖에 온 현중그롭 놈들과 총질을 하는 중이다.

‘죽인다! 죽인다아!’

격렬하게 몸부림을 일으키던 한건은 한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몸에 무지개빛이, 아니 오로라광이 퍼졌다.

찰나의 일이라 그랬는지도 모를 현상, 그 끝에 몸을 일으켰다. 등 돌린 세 놈을 응시하며 무릎을 세웠다.

“한건입니다!”

현관 밖에서 외치는 소리를 한건은 들었다.

그 소리가 현관을 향해 총질하던 놈들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밖에서 쏴댄 총탄들이 팔다리를 스쳐가는 순간이다.

리더놈이 경악하며 눈을 치뜨는 순간 한건은 움직였다.

* * *

‘한건!’

윤지희는 숨을 경직했다.

안으로 총을 쏘던 팀원이 한건을 봤다.

역시 그가 와 있었다.

저놈들이 이응삼과 송미진이란 약혼녀를 인질로 잡고 오게 한 거다.

어떤 정황인지 모르지만 총성으로 보건데 좋지 않았다.

“한건을 확보해!”

생사불명이라는 명령을 이미 내린 터, 윤지희는 입술을 악물었다.

이젠 머뭇거릴 일이 아닌 거다. 어떻게 하든 한건이 가진 운석을 확보해야 한다.

한건은 친구 때문에 운석을 가져왔다. 어떠하든 저 안에 있는 거다.

‘깨끗하게 해결하고 돌아가는 거야!’

아프게 입술을 물었다 푼 윤지희는 마지막 명령을 외쳤다.

“섬광탄!”

현관 벽에 붙은 팀원 하나가 섬광탄을 손에 쥐었다. 비살상수류탄의 일종, 건물 등의 내부에 있는 자들에게 터트려 눈과 귀의 기능을 일시 제압한다. 그사이에 침투해 들어가 표적들을 제거하고 목표를 확보하는 거다,

팀원이 섬광탄을 투척하려는 순간 윤지희는 비명을 들었다. 처절한 비명을.

* * *

리더놈을 향해 한건은 걸음을 냈다.

경악으로 눈을 치뜬 놈이 권총을 겨누는 것과 동시다.

놈이 방아쇠를 당기는 찰나에 옆으로 비켜섰다.

총탄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에 리더놈의 권총과 손목을 잡았다.

믿을 수 없는 거짓을 본 것 같은 눈의 리더놈, 손목을 꺾으며 휘돌렸다. 보릿자루를 돌린 것처럼 휙 떠오른 놈은 벽으로 회전하며 처박혔다.

그 찰나에 다른 두 놈이 권총을 발사했다. 하지만 한건은 손으로 받았다.

퍽퍽퍽퍽, 손바닥에 박히는 강한 충격을 인지하며 한건은 전진했다.

자세를 낮춰 팽이처럼 휘돌며 두 놈 사이로 들어갔다.

회오리처럼 일어서며 팔꿈치를 후렸다.

두 놈의 겨드랑이를 강타했다.

피와 살이 흩어진다.

“크아악!”

고통과 충격으로 한 놈이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다른 한 놈은 그럴 수가 없다. 한건이 목을 잡아서다.

놈은 나이프를 빼 휘두르지만 그것도 잡혔다.

한건은 그 팔을 비틀어 꺾었다. 그리곤 닭다리처럼 뽑아냈다.

경직했다 부들거리는 놈, 모가지를 틀어쥔 놈을 한건은 돌렸다.

그 순간에 총을 쏜 다른 놈을 향해서다.

동료의 총격을 받은 놈은 늘어졌고, 그 몸뚱이를 총 쏜 놈에게 던졌다.

놈이 피하는 순간 밀어차기를 찼다.

뒷발로 앞발의 뒤꿈치를 밀어주듯이 나가는 움직임의 발차기.

피하던 놈의 복부를 강타했다.

그대로 뚫었다. 몸통도 뚫고 벽도 뚫었다.

경직하다 늘어지는 최후, 그 몸으로부터 한건은 발을 뽑았다. 그리고 말했다.

“죽는 게 그런 거다.”

몸을 돌린 한건은 팔과 허리가 부러져 몸을 못 가누고 있는 리더놈에게 다가갔다.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일으켜 세웠다.

고통으로 경련하는 놈과 눈을 맞췄다. 그 순간 현관으로 그들이 들어왔다.

윤지희가 소리친다.

“한건!”

느릿하게 눈을 돌린 한건은 윤지희를 응시했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너희도 죽일 거다.”

한건은 창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한건!”

격렬하게 소리친 윤지희는 창문 밖으로 머릴 내고 봤다. 머리를 움켜잡은 놈을 물건처럼 가지고 9층에서 뛰어내린 한건, 그가 뛰어가고 있다.

‘미친!’

눈으로 보고 있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바로 지금 이 자리, 창문 앞에 한건은 서 있었다. 성인남자를 한 손으로 잡고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어떻게 저런 움직임이……!’

스피드가 엄청났다.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그건 그렇다 치지만 이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멀쩡하게 달려가는 게?

어둠 속으로 사라진 한건을 응시하는 윤지희에게 팀원이 다급히 보고한다.

“경찰에 신고가 들어갔습니다.”

입술을 아프게 문 윤지희는 뜨거워진 숨을 길게 내쉬었다.

임무는 실패했다. 그렇지만 이젠 수습에 들어가야 한다.

이정도 난리를 쳤는데 신고가 안 들어갈리 없다. 각오하고 행동한 거다.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

“수습팀에 연락 해.”

901호를 나서던 윤지희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봤다.

피바다다, 이응삼과 송미진은 머리가 몸에서 분리돼 있다.

저 광경이 떠오르게 하는 건 북극 해동기지다. 물론 그곳엔 시체도 그 누구도 없었지만, 피바다였다.

‘우린 뭘 쫓고 있는 걸까……’

흔들리던 눈동자를 돌린 윤지희는 다시 단호한 걸음을 냈다.

* * *

녹양역 대로 건너편 의류타운을 지나쳐 달린 한건은 중랑천이 흐르는 다리 아래로 내려갔다. 인적 없이 시커먼 어둠만이 가득한 곳, 리더 놈을 바닥에 던졌다. 엄청난 고통으로 신음조차 못내는 놈의 다리를 잡았다.

“이제부터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라.”

그렇게만 말하고 한건은 리더놈의 신발을 벗겨 입에 쑤셔 박았다. 이빨이 부러지고 입술이 찢어졌지만 욱여넣었다. 그리곤 엄지발가락을 뽑았다.

괴상한 신음으로 몸을 경직하는 리더놈, 두 번째 발가락을 잡자 눈을 치뜬다. 하지만 한건은 그것도 뽑았다. 세 번째도 네 번째도 뽑아 던졌다.

“네놈들 정체가 뭐냐.”

잡았던 다릴 놓고 한건은 신발을 빼며 물었다.

부러진 이빨과 피를 한가득 흘려낸 리더놈은 공포로 눈동자를 부들거렸다.

눈앞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어서다.

총을 맞고 죽었어야 할 자가 9층에서 뛰어내려 달렸다.

“아직 말하기 싫은 모양이구나.”

한건이 신발을 잡자 리더 놈은 격하게 반응했다.

“처, 청록원이다!”

한건은 미간을 좁혔다.

“청록원?”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게 뭔지 자세히 말해.”

한건의 기이하게 고요한 눈과 손에 잡은 신발을 보며 리더놈은 입술을 부들거리며 말했다.

“청록원은……”

북극의 바다처럼 깊게 가라앉은 눈을 번득이며 한건은 들었다. 청록원이 뭔지,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한건 자신을 노리는 이유가 뭔지 깨달았다.

‘운석.’

정해진 결과지만 그것을 확보하려고다. 그것이 국익을 위해서인지 다른 의도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건 친구 이응삼을 죽였고 한건 자신도 죽이려 했다는 거다. 그런 것이 국익에 부합하는 일로는 생각 안 된다.

“너희는 청록원 소속은 아니란 거지?”

“그, 그렇습니다. 필요하면 저 같은 업자들을 불러서 부립니다. 그래도 저희 같은 경우는 청록원 바로 밑의 일군업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눈과 목소리를 떨고 있는 리더놈, 이응삼과 송미진을 살해할 때의 당당함은 없다. 승자와 포식자로로서의 잔인한 미소를 잃고 겁에 질려 있다.

“살고 싶으냐?”

나직하게 던진 한건의 물음에 리더놈은 바로 반응한다.

“사, 살려만 주신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이빨이 부러져 발음이 새는 소리로 간절하게 애원하는 리더놈, 그 눈을 응시하던 한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입으로 내는 말은 다르다.

“죽일 거다.”

한건은 리더놈의 머릴 잡았다.

그대로 비틀었다.

부드득 하는 소리가 어둠을 흔드는 순간 뽑아냈다.

그 머리통을 다리 밑에 흐르는 물로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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