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65화 (165/200)

[외전] 종말전야. 15. 그날 이후 토요일.

15. 그날 이후 토요일.

윤지희는 입술을 잘근 잘근 씹었다. 그렇지만 아픈 것도 모르겠다.

‘한건……!’

그가 마지막 종적을 보인 대로 넘어 다리 쪽으로 시선을 돌린 윤지희는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바로 쫓아 나왔지만 역시 그는 귀신같이 사라졌다. 머물렀던 자리에 남긴 건 시체, 친구 이응삼을 해친 놈들의 리더다.

‘머리를 뽑아서……!’

물속에 던져버린 머리를 찾았다.

그것뿐이었다. 거기서 더 할 일이 없어 서둘러 현장을 벗어났다.

이미 경찰이 출동한 상황, 오피스텔과 다리 밑은 이제 그들의 영역이다.

해야 할 일은 한건의 종적을 찾는 것이다.

‘cctv에도 안 잡히는 귀신.’

한건은 현재 그런 존재다. 운석의 힘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그가 움직이는 주변은 카메라들이 먹통이 된다.

현재까지 알아낸 원인은 강한 방해전파다. 운석은 그런 힘을, 아니 에너지를 발산한다.

추측 못할 괴이다.

‘운석을 소지한지 일주일……’

정확히 9일이 됐다.

한건이 택배를 받은 지난주 목요일부터 오늘 토요일까지, 그에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증거들을 봤다.

오피스텔 안에서 그는 총격을 손으로 막아냈다. 그냥 황당하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게……’

새삼 운석이란 존재와 그 힘이 만들어내는 현상이 황당무계해 윤지희는 허탈한 숨을 내쉬었다. 이젠 부정하거나 의심할 단계가 아닌데도 그렇다.

‘상식을 비웃으며 일어나는 결과들…… 어떤 일이 어디까지 가능한 걸까……’

가늠이 안 된다. 그래서 더 운석을 확보해야 하는 거다.

그것이 내는 힘을 확인하고 있다. 그룹에선 어떤 일이 있어도 확보하라는 명령이다.

하지만 운석을 노리는 적은 만만치 않다.

그들은 한발 빨리 움직이고 있다.

‘이런 정도의 정보력과 행동력이라면 역시, 청록원인가?’

그들일 거라고 확신이 든다. 제일그룹 같은 경쟁사에서 움직였다고 보기엔 여려가지 무리가 있다. 가장 큰 부분은 그들이 북극의 정보를 알기 힘들다는 거다. 물론 그들의 능력이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이번은 아니다.

‘정부에서 특급기밀로 봉인했어.’

그렇게 한 곳이 바로 해양수산부 머리 위의 청록원이다.

해양수산부도 일부관계자들만 진실을 알고 있을 거다. 그 외엔 청와대 같은 곳만 알 거다.

아니 그것도 모른다. 명확한 전체의 진실은 서로 감추는 중이니까.

‘북극에서 일이 생긴 각 나라들이……’

북극이사회(Arctic Council) 정회원국인 여덟 나라 (미국, 캐나다, 러시아,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와 옵서버 13개국(한국, 중국, 일본, 싱가폴, 네델란드, 독일, 스페인, 프랑스, 스위스, 폴란드, 이탈리아)은 알고 있다. 그러나 모두들 진실을 감춘 채 파고 있다.

‘우리 현중과 같이 내막을 알고 달려든 기업들이 분명히 있어.’

말하나 마나한 것이기에 윤지희는 입술을 다시 물었다. 그러나 현재 중요한 현안은 한건을 노리는 청록원이다. 그들은 정부기관이지만 특별하고 별스럽다. 그들이 무슨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런 기관을 만들고 운용한다는 것 자체가 괴상한 거야.’

처음엔 북극기지를 설치하고 그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들었다. 극지 자원을 둘러싼 각 나라들과의 치열한 첩보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그러던 것이 연관된 기업정보전등에 확보가 되면서 점점 커졌다.

‘국정원만큼이나 강력한 기관.’

외연은 그렇지 않지만 청록원은 그런 곳이다. 군과 국정원에서 베테랑요원들만 차출해 가는 곳이다. 그들이 이번 일에 뛰어든 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한건을 확보하기 위해 벌인 이 일은 선을 넘었다.

‘그들에게 선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아프게 입술을 물고 있던 유지히는 보고를 들었다.

“한건이 타고 이동해온 차량은 발견했습니다만, 인근 어디에서도 자취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경직한 얼굴로 보고하는 팀원의 시선을 외면하고 윤지희는 오피스텔을 바라봤다. 경찰이 출동해 폴리스라인을 설치한 저곳은 끔찍한 살상의 현장이다. 그룹수습팀에 속한 경찰내부자들이 스토리를 만들어 낼 거다.

‘금전관계로 인한 살인……’

한건을 살인자로 만드는 스토리다. 군대의 특수임무군인 출신인 한건이 생명수당으로 받은 돈을 친구 이응삼이 빌려가 사기를 당했고, 삼화파이낸스를 털어 다시 찾았지만 분배를 두고 다툼, 결국 살인에 이른 거다.

‘가장 그럴듯한 스토리.’

증거는 집 안에 있다. 이응삼이 가져간 현금 육억이 있는 거다.

집 안에 죽어 있는 놈들은 삼화파이낸스 사장 놈이 부린 청부업자들이다.

정확하게는 그 배후에 있는 용철이파가 움직인 거다.

그렇게 그리는 그림이다.

‘청록원에서도 싫다하지 않겠지.’

저희가 부린 놈들이 거듭 실패했다. 화는 나겠지만 이쪽에서 적당히 덮어주는 거니 나쁠 게 없다. 이 메시지가 어떻게 전해질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운석을 확보하는 일에 공조하자고 하진 않겠지만.’

현중 입장에서도 청록원 측에서도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운석은 온전히 확보해야하는 거지 나눌게 아니다.

어쨌든 한건은 이제 살인자가 됐다.

수배가 내려질 거다. 그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을 좁히며 잡는 거다.

“한건, 당신이 어디로 갈수 있을까……”

새벽어둠을 바라보며 중얼거림을 흘려낸 윤지희는 돌아서며 명령했다.

“한건이 갈만한 장소, 접촉할 만한 모든 인물을 파악해.”

* * *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한건은 의정부를 벗어났다. 이제 시간은 새벽 3시, 그런데도 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 속에 끼었다.

‘난 포착되지 않아.’

확신을 삼키며 한건은 등에 멘 배낭의 무게를 새삼 느꼈다. 다리 밑을 벗어나 녹양역으로 가 화장실에서 피를 씻고 배낭을 찾아 나왔다. 배낭 바닥에 넣어둔 바람막이 야상을 걸치고 자전거 보관대의 자전거를 뺐다.

허술하기 그지없는 안전고리는 비틀어 버리니 그냥 부서졌다. 그런 걸 채워놓지 않아도 훔쳐가지 않을 저가의 자전거다. 주인에게는 미안하지만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오래도록 손이 닿지 않아 연신 삐걱거린다.

‘총을 맞고 죽지 않았어.’

힘차게 페달을 밟아 새벽을 달리며 한건은 생각했다.

오피스텔 안에서 등에 두발의 총탄을 맞았다.

엄청난 피를 흘렸다. 분명 간동맥을 건드린 거다. 그럼 죽어야 하다.

그런데 죽지 않고 일어났다. 놈들을 죽였다.

‘손바닥으로 총탄을 막아냈고.’

두 놈이 쏴대는 총알을 두 손 바닥으로 막아냈다. 무슨 슈퍼히어로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이다. 황당하지만 황당하지 않은 게 지금 현실이다.

운석의 힘은 한건 자신을 살려냈고 총탄을 피하고 막아내도록 했다.

‘리더 놈이 총을 쏠 때, 그 찰나와 방향을 정확히 인지했어.’

분명히 그렇게 했다. 리더 놈의 눈알이 움직이는 순간, 살의로 빛을 내는 그 찰나, 놈의 손가락 움직임과 숨소리, 모든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느낌대로 몸을 옆으로 이동했고 그 한걸음으로 총탄을 피했다.

‘응삼아……!’

친구 이응삼의 최후를 떠올린 한건은 하마터면 자전거와 같이 넘어질 뻔했다.

머리가 분리돼 죽음을 맞은 최후.

약혼녀 송미진과 그의 눈은 감기지 않았다. 원통한 분노와 죽음의 두려움으로 경직돼 부릅떠 있었다.

‘죽인다……! 너희 전부다 죽이고 말 거다……!’

치 떨리는 분노를 삼키며 한건은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았다.

* * *

중랑천자전거 길을 따라 달리다 나간 길엔 노원구청과 노원역이 있었다. 새벽길을 내쳐 달려 상계역에까지 이르렀다. 교각아래 자전거 보관대에 자전거를 두고 돌아섰다. 이제부턴 치밀하고 냉철하게 행동해야 한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뭘 하려는 지 의도하지 못하게.’

그런 일환으로 중간에 자전거도로를 빠져나와 여기까지 왔다. 생소한 곳이다. 상계역도 알고 이지역도 알지만 용무를 보러 왔다든가 놀러 왔다든가 한 적이 없다. 어디든 그런 곳으로 이동하고 스며들어야 한다.

‘우선 외형부터.’

얇은 바람막이 야상, 레인코트 같은 걸 걸치고 그 안에 배낭을 멘 한건의 모습은 산행하는 사람의 것이다. 인근의 불암산과 수락산에 오르는 사람들과 같다. 맞춤하게도 그런 이들이 부지런하게 나와 움직이고 있다.

‘응?’

상계역 상가를 돌아가던 한건은 길 건너편 유휴지 같은 곳에 지어진 창고를 봤다.

구제 의류를 파는 창고형 매장이다. 24시간 영업이라고 써 놨다.

상계역 인근이면 땅값이 대단할 텐데, 뭘 짓기 전에 임대한 것 같다.

‘잘 됐어.’

횡단보도에 파란 불이 들어오길 기다린 한건은 길을 건너갔다.

주차장을 지나 매장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더러 보인다.

카운터에는 젊은 여직원 하나만 앉아 하품을 하고 있다. 바구니를 들고 느릿하게 걸었다.

‘cctv에는 확실히 포착 안 된다고는 하지만……’

그자체가 황당한 일이지만 어떻든 그렇다. 그런데 직접 마주치는 사람들 눈도 그러냐 하는 건 다른 문제다. 한건 자신을 보고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거다. 복장을 바꿔야 한다. 이 부분도 된다면 좋겠지만 모른다.

‘날 본 사람들이 기억 못하거나 아예 못 알아보는.’

기록해보지 않아서 결과를 모르지만 안 될 걸로 예감이 든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투명인간이나 같다. 무슨 짓이든 하고 다닐 수 있다. 그렇지만 운석의 의지는 그렇게 발현되지 않음을 느낀다.

‘황당한 것과 허무맹랑한 것의 차이.’

그런 것이 아닐까, 그 기준조차도 웃기고 말이 안 되는 거군 하며 한건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밑져야 본적이지 하고 수첩을 꺼내 적었다.

‘나 한건은 투명인간처럼 사람들 눈에 포착되지 않는다. 아니 날 본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마침표를 찍은 한건은 눈에 힘을 주고 응시했다. 하지만 손끝에나 펜 끝에 빛은 안 보인다. 무지개빛 같기도 하고 극광같기도 한 빛이 없다.

‘역시……’

수첩과 펜을 내리던 한건은 카운터 아가씨의 시선을 느꼈다.

매대 앞에서 옷은 안 고르고 딴짓을 하고 있어서다.

도난을 대비해 들고나는 손님들을 매의 눈으로 살피는 거다.

저 시선은 확실히 한건 자신을 보고 있다.

‘옷이나 고르자.’

바구니를 다시 든 한건은 필요한 옷과 신발과 모자까지 두루두루 담아 나갔다.

* * *

불암산 등산로 입구의 아파트단지 앞 상가에서 이른 아침을 먹은 한건은 다른 등산객들과 같은 행색으로 태연하게 움직였다. 등산객들이 늘 붐비는 곳이라선지 활기에 차 있다. 코로나불경기란 말은 여긴 제외다.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등산스틱도 하나 사고 물병도 사서 배낭에 매단 한건은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커피전문점이 아니라 등산객들을 상대하는 휴게소 같은 느낌의 매장이다. 아메리카노를 사서 자리에 앉았다.

-의정부시 녹양역 인근 오피스텔에서 일어난 참혹한 살인사건은……

매장 전면에 매달린 tv를 보고 한건은 눈동자를 경직했다.

뉴스가 나오고 있다.

한건 자신이 있었던, 그 현장의 살인사건에 대해 보도 하고 있다.

-피살자 송미진씨와 이응삼씨는 약혼한 사이로서 살인용의자 한건과 친분이 두터운 관계였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건은 금전관계로 갈등……

커피 잔을 들던 한건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내가 살인용의자!’

전후가 확연하게 그려진다. 한눈에 보인다. 현중그룹이든 이응삼과 송미진을 해친 놈들이든 저렇게 꾸민 거다. 한건 자신을 옭아매기 위해서다.

‘죽일 것들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기 힘들어 한건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보일 것이기에 바로 고개를 들고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한건 자신의 얼굴 사진이 떴다. 공개수배자로 즉각 띄운 거다.

‘내 얼굴을 정확하게 본 사람은……’

없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계속 착용했고 지금은 이렇게 등산용벙거지를 쓰고 있다. 구제의류를 사서 복장도 싹 바꿨다. 녹양역을 벗어날 때 바람막이 야상을 걸쳤었다. 그 모습을 포착해 기억할 이는 없다.

‘수배자를 만들어서 잡겠다? 너희 뜻대로 되진 않을 거다……!’

분노를 커피와 함께 삼키며 한건은 일어섰다. 매장 밖으로 나가며 산을 봤다. 아파트단지 뒤로 커다랗게 존재하는 산, 저 산을 넘어가야겠다.

레인커버 씌운 배낭을 고쳐 메고 스틱으로 땅을 찍으며, 한건은 걸음을 냈다. 오연한 자태로 세상을 굽어보고 있는 산, 불암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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