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종말전야. 18. 인력(引力).
18. 인력(引力).
노원구 관내의 모든 카메라 영상을 뒤진 결과 한건으로 의심되는 남자는 상계역에 자전거를 버렸다. 그가 타고 이동한 자전거를 확인했다. 이후의 행적은 불암산을 넘어가는 거였다. 그곳에서 다시 진건으로 향했다.
“도로를 따라 계속 이동했습니다.”
팀원의 말처럼 한건 추정 남자는 383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갔다. 오남리방향이다. 이젠 그곳의 영상을 뒤져야 한다. 그런데 기묘한 느낌이다.
‘한성병원 사건이 일어난 곳.’
이게 우연인지 아닌지 모른다. 그렇지만 운석을 소지한 자가 그곳으로 향했고, 역시 운석소지자로 추정되는 자의 괴이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아니, 아직은 이자가 한건인지도 확실치 않아.’
그렇게 마음에 부정을 넣어보지만 확신은 이미 기울었다. 한건이 아니라면 저렇게 행동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바람막이레인코트 같은 걸 걸친 저 남자가 중랑천에서 이동해온 경로와 저 도보는 정상적이지 않다.
‘종주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종주 길도 아닌 곳을.’
입술을 물었다 놓으며 윤지희는 명령했다.
“오남리로 이동한다. 영상 확보하고, 3팀에 연락해서 현황파악 해 봐.”
피곤한 숨을 내쉰 윤지희는 헤드레스트에 머릴 기댔다. 어둠이 내려앉는 도로를 보노라니, 획획 지나가는 차창 밖을 보노라니 더 피곤이 온다.
‘할머니, 나 잘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그리운 할머니를 떠올리던 윤지희는 팀원의 보고 목소리에 머릴 세웠다.
“함인호가 천마산 방향으로 도주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합니다.”
“천마산?”
“예, 함인호가 출근 전에 아내를 살해했습니다. 결과를 확인한 상황이랍니다.”
미간을 확 찌푸린 윤지희는 분노를 가까스로 참았다.
‘개새끼……!’
함인호를 향한 분노,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밀어내기가 힘들다.
제 아내를 해친 짐승이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뤘다면 그 책임을 져야 한다.
가족을 돌봐야 할 가장이다.
그런데 책임을 망각하고 오히려 해쳤다.
그런 놈들을 죽여야 한다. 법이고 나발이고 죽여야 한다.
‘할머니……!’
그리운 할머니의 얼굴을 다시 떠올린 윤지희는 힘겹게 감정을 다스렸다. 마음 같아선 함인호란 놈을 맡고 싶지만, 그래서 죽여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어떻든 그놈도 이젠 끝장이 날 거다. 3팀이 해결할 거다.
그런데 함인호란 인간이 그렇게 된 것은 원인이 분명히 따로 있다.
‘운석 때문에……’
변질이다. 함인호가 운석을 소지한 자가 맞다면 그 힘에 의해 현재상태가 된 거다. 그런데 함인호가 어떻게 운석을 소지하게 된 건지 모르겠다.
‘갑툭튀로 튀어나온 놈…… 그룹의 예상대로 운석은 이미 퍼져 있는 거야. 무더기로 발견된 곳만이 아니라 개별적인 케이스들이 존재하는 거지.’
북극에서, 그곳으로부터 운석은 세상으로 퍼진 거다.
한건에게 택배로 왔듯이, 유사하고 다른 다양한 형태로 흘러나왔다.
영구동토가 녹아 드러난 운석무더기 외에 이미 그랬던 거다.
한건에게 온 것도 그런 경우다.
“함인호의 차에서 일지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3팀과 통화한 팀원의 목소리에 윤지희는 다시 시선을 들었다.
“정기수라는 인물의 일지인데, 북극 다산가기에서 근무하고 돌아온 의사입니다.”
이어지는 팀원의 이야기.
3팀이 확보하고 기획실에서 알아낸 정보를 들으며 윤지희는 전후를 파악했다.
역시 함인호는 운석소지자다.
다산기지에게 돌아온 정기수라는 선배에게서 운석을 취했다.
정기수는 자살했다.
‘그런데 정기수는 아무도 안 죽였다? 이건 또 특이한 사례인데?’
일지의 내용에 정기수가 운석으로 인한 자신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크고 작은 행운을 주었지만 폭력적으로 변하게 만드는, 그게 운석 때문이란 것, 그 과정을 일지에 상세히 기록했다.
“일지 원본은 경찰에서 가져갔지만 카피를 완벽하게 했다고 합니다.”
원본은 필경 청록원에서 감출 거다. 필연이니 그건 그렇다 치고 정기수란 인물이 그렇게 한 전후배경을 음미하며 윤지희는 속생각을 삼켰다.
‘정기수란 자는 운석의 괴이한 힘에 정복당하지 않았다는 건데……’
아직까지 내용 전체를 자세히 다 알지 못하지만 정기수는 그렇게 한 거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운석을 함인호에게 넘겼다. 아니 그 부분은 확실치 않다. 함인호가 어떻게 손에 넣은 건지는 아직 모른다.
‘운석의 위험을 깨닫고 자살한 자가 그걸 누군가에게 넘겨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그렇지만 운석을 처리하지도 못했고, 목숨을 끊는 게 최선……’
추정이지만 함인호는 넘겨받은 게 아니라 훔쳤거나 우연히 발견한 경우일 거다.
정기수의 사무실에서든 어디서든 유품을 정리하다 그런 거다.
일지를 보고 괴이했겠지만 호기심이 더했을 터, 운석이 그렇게 만든다.
‘어쩌면, 운석이 대상을 선택하는 건지도 몰라.’
곧 오남리에 접어든다는 팀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윤지희는 다시 창밖을 응시했다. 한건, 저 어둠 밖 어딘가에 있을 그의 얼굴을 더듬었다.
* * *
쿠크리의 날이 무섭고 빠르게 난자해 온다. 그 궤적을 깊고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보며 회피기동을 하던 한건은 한순간 유성 같은 번득임을 냈다. 응축해 있던 눈동자로 발산한 그 빛처럼 함인호에게 쇄도했다.
전광석화, 쿠크리의 날을 피해 탱크처럼 돌진해 나간 한건은 함인호의 허릴 잡았다.
밀고 나가며 우로 돌아가는 힘으로 함인호를 들었다.
공중으로 띄운 그 몸을, 함인호를 머리부터 바닥에 박았다.
쩍하는 소리가 났다.
경련하는 함인호, 그 몸에서 떨어져 나오지 않고 한건은 엘보를 후려쳤다. 목이 부러지고 두개골이 부서진 함인호의 얼굴을 연속해서 가격했다.
피곤죽이 된 함인호가 경련조차 내지 못할 때 한건은 움직임을 멈췄다.
“후우.”
뒤늦게 숨을 내쉰 한건은 물러나 함인호를 응시했다.
흘러나온 피 속에 늘어져 있는 형상, 죽었다. 아니 죽였다.
그런데 역시 그런 건 아니다.
“크으……”
함인호는 다시 움직인다. 부들거리면서 파괴된 얼굴이 복원되고 있다. 부러진 목과 수박처럼 터진 두개골도 그렇다. 그 모습을 보며 한건은 쿠크리를 잡았다. 저 모가지를 잘라야 끝이 날거라는 판단, 칼을 세웠다.
“널…… 선택한 거야……”
함인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그 한마디에 한건은 내던 걸음을 멈췄다. 어느새 거의 복원이 이뤄진 함인호는 기괴한 미소를 지어내며 말한다.
“내가 가진 운석…… 그 악마가 널 택해 날 끌고 온 거란 말이다……”
한건은 미간을 깊게 좁혔고 함인호는 계속 말했다.
“내 손에 운석이 들어오고 난후에 많이 생각했지…… 수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
함인호의 눈동자엔 추측 못할 무게가 출렁거렸다.
“정기수선배처럼 행운을 주는 건지는 의문의 대상이 아니었어…… 나도 그렇게 원하던 과장이 됐으니까…… 원장 조카딸과 결혼도 했으니까……”
함인호의 입에선 툴툴거리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수익률이 미쳤었지…… 주식은 몇곱절로 올랐고 코인도 그랬어……”
웃음을 풀어내던 함인호의 얼굴에 차가운 경직이 들어찼다.
“그게 다 미끼였던 거지…… 잡아먹기 전에 사료를 듬뿍 주는…… 그런 줄도 모르고 신나게 받아먹은 나는 돼지였던 거고…… 결국엔 파멸이야……”
흔들리던 눈을 든 함인호는 한건을 똑바로 응시했다.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 시간이 약 30초가 흘러갔을 때 다시 입을 열었다.
“운석은 대상을 선택한다. 난 선택 당했고 이제 버려지는 거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함인호는 뭔가를 꺼냈다.
바둑돌만한 회색빛의 돌멩이, 운석이다. 그것을 손바닥에 올리고 한건을 향해 내밀었다.
“이젠 안다. 이것은 너라는 존재를 느끼고 이곳으로 온 거야.”
명료해진 목소리로 함인호는 계속 이야기 했다.
“이것들은 필요하면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어딘가에 있을 다른 운석을 감지하고 찾아내는 거지, 서로 끌어당기는 거야. 이젠 날 버리고 널 선택하는 거지. 필요에 의해서, 더 나은 적합자를 찾아서. 이건 악마다.”
함인호는 운석을 던졌다. 한건은 반사적으로 그걸 받았다.
“윽!”
휘청거리며 한건은 손을 움켜잡았다.
운석을 받은 순간 일어난 격통, 불로 지지는 것 같은 감각이 피어나는 오른손을 화급히 폈다.
그렇게 괴사를 봤다. 운석이 손바닥을 파고든다.
삽시간에 스며들어 사라져 버렸다.
“내 말이 맞지?”
함인호는 일어섰다. 이제 증거를 봤으니 여한이 없다는 미소를 물고서다. 한건이 주춤거리며 물러난 자리에 떨어진 쿠크리를 잡는다. 눈을 빛내며 허릴 세우는 한건을 보며 여전히 미소 짓는다. 그런데 슬픈 미소다.
“난 아내를 죽였어. 사람들을 죽였지.”
함인호는 쿠크리를 들어 제 목에 대고 그었다.
* * *
경찰이 먼저 움직였다. 함인호가 도주한 방향을 정확히 포착하고 추적했다. 그게 당연한 것이 함인호는 흉기를 든 모습으로 대로를 달려 도주했다. 그가 올라간 천마산으로 무장경찰들이 떼 지어 달려간 상황이다.
‘한건의 종적도 천마산인데.’
팔현계곡 입구를 바라보며 윤지희는 난감함을 씹었다.
확신하고 있는 그 남자의 종적은 이곳이다. 그런데 경찰이 봉쇄라인을 만들어 여기까지다.
저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건 현재 상황이 너무 드러났기 때문이다.
‘언론도 달려온 마당.’
기자들의 눈에 안 띠게 행동 할 수가 없다. 그러니 현재 상황이 답답하다. 한건은 천마산 안에 있는데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런데다 함인호도 저 안에 있다. 이 흐름이 기묘하면서도 확신이 드는 건 운석의 힘이다.
‘여기서가 아닌 이 다음을 대비하는 게 맞아.’
한건이든 함인호든 맥없이 경찰에 잡히지 않을 거다. 함인호는 몰라도 한건은 분명히 이곳을 벗어날 거다. 그가 움직일 방향으로 질러가는 거다.
‘천마산 넘어.’
불암산을 넘어갔듯이 그는 천마산도 넘어갈 거다. 아직 산천제를 포위하고 봉쇄한건 아니다. 주요 등산로를 막기는 하겠지만 소용없을 거다.
‘산을 넘어가면 어디지?’
지도를 띄운 윤지희는 지형을 살피고 지역을 눈에 넣었다. 가곡리 운수리 입석리, 더 뒤로 올라가면 수동리다. 저곳 어딘가로 내려 올 거다.
“천마산 너머로 이동한다.”
단호한 윤지희의 명령을 따라 다섯 대의 차량은 다시 이동했다.
* * *
흔적을 지우는 건 의미 없다. 파묻은 옷도 발견될 거다. 불태운다든지 하는 짓은 이제 할 수도 없고 부질없다.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는 게 최우선으로 할 일이다. 그런데 조그만 긴장도 없다. 흥분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 거지?’
배낭을 지고 돌아서던 한건은 문득 함인호를 다시 돌아봤다.
스스로 목을 갈라 죽음에 이른 저자의 말이 떠오른다.
운석이 이곳으로 이끌었다는 말, 적합자를 찾아 왔다는 이야기 위로 저 최후를 만든 힘이 느껴진다.
‘함인호가 가겼던 운석이 날 선택했고, 함인호는 버렸다……’
꿈틀거리는 미간에 힘을 준 한건은 오른 손바닥을 펴서 응시했다.
함인호가 던진 운석을 받은 손, 운석이 스며든 손이다.
아무 변화가 없다. 그렇지만 느낀다. 내부로 파고든 운석의 힘과 의지가 꿈틀거리고 있다.
‘피를 원해.’
손바닥을 쥐어 주먹을 만든 한건은 핏줄이 도드라지는 것도 모르게 부들거렸다.
‘이!’
미치겠다.
이 순간 치밀어 오르는 피와 폭력에의 욕구를 풀지 못하면 죽을 것만 같다.
대상이 있어서 화산을 터트리듯 터트리고 싶다.
그 대상, 있다.
산 계곡 입구로부터 경찰들이 오고 있다. 라이트 빛이 날아온다.
‘아니야! 안 해!’
으드득 소리 나게 이를 갈며 고개를 든 한건은 화산 같은 운석의 힘과 의지를 밀어냈다. 다시 몸을 돌려 폐건물을 달려 나갔다. 어느새 지척으로 다가온 경찰들의 라이트를 피해 산을 차고 올랐다. 비호처럼 달렸다.
* * *
짙은 어둠과 산 그림자를 보며 윤지희는 지도를 다시 확인했다.
철마산 주봉과 꽈라리봉 사이를 넘어올 것이 거의 확실하다.
팔현리에서부터 올라가는 방향이고, 높은 산줄기 사이를 택해 이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둔리.’
현재 위치다. 온수리에서 끊어진 98번 도로로부터 이어진 샛길을 타고 들어왔다. 분명 임도를 타고 저 앞에 있다는 수목원을 지나 올 것이다.
물론 다른 곳으로 갔을 수도 있다. 그곳엔 다른 팀원들이 대기 중이다.
‘3팀도 합류하기로 했으니까.’
조금 전 들은 이야기다. 경찰이 함인호의 사체를 찾았다는 거다. 본격적으로 등산로로 이어지는 길에서 들어간 외진 숲속의 폐건물에서다. 함인호는 지녔던 쿠크리로 제 목을 갈랐다. 그런데 거기 한건도 있었다.
‘누군가와 격투를 벌인 흔적.’
함인호와 한건은 그곳에서 조우한 거다. 이 결과를 지금 재단하고 이해하려는 짓은 부질없다. 그렇게 이뤄진 결과와 현재가 중요하다. 한건은 함인호의 죽음을 떠나서 이동했다. 그가 함인호의 운석을 가졌을 것이다.
‘한건……!’
뜨거운 숨을 삼키던 윤지희는 팀원의 목소리에 흠칫하며 눈을 키웠다.
“열화상카메라에 누군가 포착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