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종말전야. 19. 피와 죽음의 욕망.
19. 피와 죽음의 욕망.
어둠이 잠긴 수목원 앞을 지나가던 한건은 주변 지형을 다시 살폈다. 산을 넘어가는 도로가 예정되어 있다는 표시들이 곳곳에 있다. 그 외엔 수목원의 불빛만이 처량하다. 코로나로 인해 개장휴업상태인 처량함이다.
‘현재 시간이 7시.’
보통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산을 넘었다. 이제 7시니 여름 같으면 초저녁일 테지만 사방이 짙고 음울한 어둠으로 덮였다. 멀리 보이는 철마산의 그림자는 꽈리리봉 남쪽으로 보이는 천마산과는 또 다르다.
‘천마산, 철마산.’
새삼스레 산이름들이 왜 말과 관련이 있을까 생각하던 한건은 미간을 확 좁혔다. 수목원 지나 내려가는 마을길에 차들이 보여서다. 지둔리 마을회관을 비롯한 지형을 폰의 지도로 확인했다. 저 차들은 이질적이다.
‘현중.’
그들임을 한건은 직감했다.
새카만 색의 승합차 한 대와 역시 같은 컬러의 대형 suv, 윤지희의 팀이 온 거다.
저들만이 전부가 아닐 거다.
한건 자신이 산을 넘어 내려올 가능성 있는 다른 곳에도 저렇게 있을 거다.
‘날 이미 포착했구나.’
차에서 내리는 현중 팀원들을 보며 한건은 현실을 받아 들였다. 역시 윤지희도 있다. 져 여자는 한건 자신이 이곳으로 넘어올 것을 예측했다.
‘녹양역에서부터 추적해 왔어.’
역시 현중그룹의 능력은 대단하다. cctv가 먹통이 되거나 오작동을 일으키는 현상이 오히려 행적을 알려주는 꼴이라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복장도 바꿨다. 그렇지만 그 행로를 다 잡아낸 거다. 이젠 어쩔 도리가 없다.
‘잡히거나 잡거나.’
유성의 번득임 같은 눈빛을 순간적으로 흘려낸 한건은 멈췄던 걸음을 다시 냈다. 마을길을 향해, 현중그룹행동팀이 벌려선 곳으로 걸어갔다.
‘열 명.’
승합차의 여덟, suv에서 내린 두 명, 그리고 윤지희다.
팀원들은 전부 무기를 지녔다.
권총 따위가 아니다. 놀랍게도 k7 소음기관단총이다.
한건 자신에 대한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했다는 방증. 안 놓치겠단 거다.
“한건씨.”
윤지희의 목소리가 날아온 순간 한건은 걸음을 멈췄다. 때마침 바람이 불었다. 휘잉 하고 산에서 내려온 바람이 등을 치고 윤지희일행 쪽으로 불어갔다. 산은 이제 겨울을 준비하는 터라 한기를 품은 바람이다.
“협조해 주길 바랍니다.”
이어 나온 윤지희의 음성에 밴 단호한 의지를 한건은 분명히 느꼈다. 더는 좌고우면하지 않겠다는,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이제 끝낸다는 의지다. 그 결과를 내는 일에 한건 네가 저항한다면 죽이고 말겠다는 통첩이다.
“무슨 짓이든 할 기세로군.”
운석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이란 말을 한건은 차가운 미소로 흘려냈다.
미간을 옅게 찌푸리며 반응한 윤지희는 손에 쥔 권총에 소음기를 끼웠다.
“맞아요.”
당연히 그럴 거라는 대답, 윤지희의 눈동자는 서늘하게 빛났다.
“무서워서 오줌을 지리겠어.”
표정 없는 얼굴로 그 말을 낸 한건은 배낭을 내렸다.
그 움직임에 윤지희의 팀원들이 k7을 일제히 겨눴고 윤지희도 권총을 겨눴다.
그래야 할 존재가 한건이이서다.
녹양역 오피스텔에서 만든 결과는 상상초월이다.
“무거워서 말이지.”
현금 사억이 든 배낭, 그걸 바닥에 내린 한건은 다시 윤지희의 눈을 응시했다. 긴장한 그녀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뜻밖의 말을 꺼냈다.
“함인호를 만났다.”
윤지희는 미간을 경직했다.
이미 파악한 내용, 그러나 한건이 말하는 건 다르다.
둘이 조우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함인호는 자살했다.
현재까지 경찰이 현장에서 파악한 내용, 3팀이 확인한 내용이 그렇다.
“그자도 운석을 가졌더군.”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한건은 무미건조한 음성을 이어냈다.
“싸웠어. 날 죽이려고 하니까 나도 죽였지. 그런데 안 죽어. 안면과 머리통을 부숴버렸는데도 다시 살아나더란 말이지. 맞아, 운석 때문이지.”
윤지희는 뜨거운 침을 삼켰다.
녹양역 오피스텔에서 한건이 어떻게 도주했는지 생생히 떠오른다.
총을 맞고 사망했어야 할 사람이 한건이다.
그런데 안 죽었다.
죽이려던 놈들을 다 죽이고 9층에서 뛰어내렸다.
“한성병원에 불을 질러 사람들을 해치고 집에선 아내를 죽였지.”
다시 이어 나온 한건의 이야기, 함인호의 범행이다.
“그게 운석 때문이라는 건 토론할 주제가 아닐 거야. 운석, 그게 뭔지 모르지만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그래서 너희가 이렇게 달려드는 거고.”
그렇다, 운석이 가진 힘이 정확히 뭐고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그것을 확보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가지려는 거다.
“너희도 운석이 뭔지 모르지. 알고 있는 건 단편적이야. 현재까지 알아낸 것은 행운 뒤의 변질로 인한 소지자의 폭력이야. 나와 함인호처럼. 거기에 더해서 확인하게 된 건 총을 맞고도 안 죽는 비상식의 결과지.”
한건은 미간을 미세하게 좁히며 뒷말을 뱉었다.
“정확하겐 정상을 벗어난 육체능력이지.”
윤지희의 눈동자가 빛나는 걸 응시하며 한건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또 바람이 불었다. 한건을 지나온 바람, 윤지희와 팀원들을 스친다.
“당신의 변화를 알지만 현명하게 판단해야 할 거예요.”
경고를 던지는 윤지희, 그녀와 팀원들의 경고가 단순한 경고가 아님을 한건은 인정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강력하고 특별한 총탄을 퍼부을 거다.
“함인호의 운석을 가졌나요?”
윤지희는 물음을 던졌다. 총구를 한건의 가슴에 겨눈 채로다. 경찰에서 함인호의 시신을 수습한 직후 3팀이 확인했다. 운석은 발견되지 않았다.
애초에 짐작한 대로 한건이 가진 거다. 그래서 더 불안한 예감이다.
‘두개의 운석.’
괴이 사건을 만든 원인, 그 둘이 만났다. 이로 인한 결과를 가늠키 힘들다. 어서 빨리 확보해야 한다. 이렇게 말을 주고받는 짓도 걷어내야 한다.
“한건씨, 운석을 내놓고 협조하세요.”
성큼 걸음을 내며 윤지희는 압박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바로 사살해 버리겠다는 듯이다. 열 명의 팀원들도 단호한 눈을 빛낸다.
“함인호가 한 말이 있다.”
태연한 목소리로 한건은 다시 입을 열었다. 미간 찌푸리는 윤지희와 일명의 팀원들과 총구는 안중에 없는 듯이, 너희 맘대로 해라 하는 반응이다.
“운석이 자신을 나에게로 데려왔다고 하더군.”
두 손으로 잡은 권총에 힘을 주던 윤지희는 미간을 확 좁혔다.
‘데려와?’
한건은 계속 목소리를 이어냈다.
“더 나은 적합자를 찾아서 찾아온 거란 거지. 자신은 버려진 거고.”
좁힌 미간을 펴지 못한 채 윤지희는 한건이 한 말의 의미를 더듬었다.
‘더 나은 적합자를 찾아?’
의미가 깨달아 지는 순간인데 한건이 결정을 내렸다.
“무리한 짓을 하다 피보고 싶지 않아.”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한건은 두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보고 눈동자를 미약하게 흔든 윤지희는 손짓했고, 팀원들이 바로 움직여 결박했다.
“이런, 단단히 준비했군.”
몸에 감기는 쇠줄, 와이어의 장력을 느끼며 한건은 피식 웃었다. 친친 감고 조임장치까지 완벽하다. 곰과 고릴라라고 해도 꼼짝없을 결박이다.
“복귀한다.”
윤지희는 무전기에 대고 지시했다. 다른 곳에 대기하던 팀원들에게의 명령이다.
목표했던 한건을 확보했으니 이젠 안심이다.
소란스러웠던 사건들은 잘 덮일 거다.
남은 일은 운석의 본질을 밝혀내는 일이다.
‘후.’
소리 없는 숨을 크게 내쉰 윤지희는 suv에 올랐다. 승합차에 한건을 태우고 오르는 팀원들을 보고서다. 한건의 돈이 든 배낭은 그의 발아래 뒀다.
‘저 돈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는 건데……’
이제 한건의 운명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한 윤지희는 고개를 털어내듯 흔들었다. 쓸데없는 생각, 더는 일과 관련 없는 사념을 품지 않아야 한다.
“출발해.”
지시를 던진 윤지희는 좌석에 몸을 깊이 묻었다.
새삼스레 밀려오는 피곤이 정말 무겁다. 그런데 한 가지 실수한 것을 깨달았다.
한건에게서 운석을 회수하지 않은 상태인 거다.
한건을 확보했단 것에 흥분해서다.
‘운석을……’
좌석에 묻었던 상체를 세우던 윤지희는 순간 닥쳐온 충격에 머릴 틀었다.
뭔가에 때려 맞은 것처럼 머리가 돌아간다.
그렇기는 운전석의 팀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머리가 돌아가는 게 아니라 부서져 흩어지는 거다.
‘뭐……’
차가 길옆 배수로에 처박히고 나서야 윤지희는 알았다.
자신의 머리가 돌아간 이유다, 턱이 사라졌다.
안전벨트에 걸린 몸은 흔들리고 있다.
그 흔들림을 따라 피와 살점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이건 죽는 거다.
‘할머니……’
그리운 할머니의 미소를 떠올리며 윤지희는 봤다. 어둠속에서 튀어나온 그림자들이다. 그들이 뒤따르던 승합차에 미친 듯이 총질을 하고 있다.
* * *
“함인호를 한건이 죽인 게 아니다?”
폰을 귀에 댄 현인규는 3팀장의 보고를 들으며 미간을 꿈틀거렸다.
“스스로 목을 그었다?”
천마산 등산로인근 폐건물 안에서 그랬다는 거다.
이결과를 듣기 전에 들은 것은 정기수라는 인물로부터 운석이 함인호에게 간 과정이다.
정기수는 다산가지에서 근무했었다.
그가 돌아온 것은 일 년이 조금 넘었다.
최소한 일 년 이전부터 운석은 세상에 퍼졌다는 결과다.
특이점은 정기수가 자살했다는 거다.
그의 일지를 이미 전송받아 살펴봤지만, 운석은 역시 행운을 주고 그 뒤에 변질했다.
정기수는 그 변화를 두려워했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자살, 타인에게 해를 끼칠 것을 두려워해서, 그 욕구를 이기지 못할 것을 알아서 한 선택이다.
그런데 함인호의 자살은 경우가 다르다.
그는 이미 타인들을 해쳤다. 그리고 한건과 조우한 거다.
“한건과 함인호가 만난 게 우연이라고 보나?”
딱히 3팀장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3팀장이 그런 판단을 하고 대답을 할 위치가 아니기에 현인규는 다른 물음을 던졌다.
“경찰과의 협조는 부드럽게 이뤄지고 있겠지?”
그렇다는 대답을 들은 현인규는 곧바로 경계를 말했다.
“청록원의 움직임이 있을 거야.”
3팀장은 유의하고 있다는 대답 직후 현재 상황을 알렸다.
“한건을 잡았다고? 그래, 어서 1팀과 합류해.”
폰을 내린 현인규는 창밖의 강남대로를 내려다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제 한숨 쉬어도 되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떠오르는 건 의문이다.
‘함인호는 왜 자살한 걸까? 한건과 만난 건 말 그대로 조우인가?’
미간을 꿈틀거리며 생각에 빠진 현인규를 창밖의 어둠은 고요히 지켜봤다.
그런데 이상한 기시감이 든다.
어디선가 자신처럼 이렇게 창밖의 강남대로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현인규자신과 같은 지위와 신분의 존재가 느껴지는 기시감이다.
‘피곤하니 별 생각이 다 드는 군.’
예감이라고 할 느낌을 털어내고 현인규는 창에서 돌아섰다.
* * *
배수로에 처박힌 suv의 후미를 추돌하며 승합차는 멈췄다. 그 순간 좌우에서 날아든 총탄 세례를 한건은 고스란히 받았다. 승합차에 탄 열 명의 현증팀원들은 춤추는 허수아비 인형처럼 총탄의 비속에서 죽어갔다.
‘크으……!’
형용할 수 없는 고통, 죽음의 감각 속에서 한건은 꿈틀거렸다. 몸에 박힌 총탄을 밀어냈다. 총알비가 끊어주지 않아도 끊을 수 있었지만 와이어는 끊어졌다. 몸에서 떨어져나가는 그것과 같이 피 묻은 총탄을 떨궜다.
‘청록원……!’
그놈들의 기습임은 두말할 필요 없다. 현중의 움직임을 주시하다가 때린 거다.
현중은 청록원을 주의한다고 했지만 당했다.
중요한 건 청록원의 이 행위다.
한건 자신의 생사는 안중에 없다.
운석확보가 최우선이다.
‘개새끼들!’
치 떨리는 분노 속에서 한간은 부들거렸다. 그렇게 총탄으로 벌집이 된 몸은 복원됐다. 피투성이지만 정상이 됐다. 그 순간 놈들이 다가왔다. 신속하게 확인사격을 하며 현중팀원들을 다시 죽인다. 그때 일어섰다.
“뭐!”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의 반응을 내며 총을 쏘는 놈, 스키모자 같은 걸로 얼굴을 가린 놈에게 한건은 터져나갔다. 인간 포환처럼 차 밖으로 튕겨나갔다. 잔뜩 눌렸던 스프링이 펴진 것처럼, 탄환처럼 날아 머릴 박았다.
뻑, 하는 충격으로 뒤로 넘어가는 놈은 하늘로 총질을 했다.
소음기 달린 소총은 둔중한 울음으로 어둠에 파문을 만들었다.
그 순간 한건은 땅을 굴러 일어났다.
놀란 눈을 돌리는 또 다른 놈에게 달려가 무릎을 찍었다.
가슴을 맞고 물러나는 놈의 머릴 잡은 한건은 바닥을 차며 타넘었다.
전신을 비틀며 잡은 머리도 비틀었다.
부드득 소리로 머리가 떨어졌다.
그 머릴 세 번째 놈에게 던졌다. 겨누던 총을 맞은 놈에게 회전하며 뒷차기를 박았다.
쾅, 승합차에 박힐 듯이 차체를 우그러뜨린 놈에게서 한건은 소총을 낚아챘다.
그야말로 삽시간의 상황.
반대편에서 돌아오는 놈들에게 마주 달려가며 총을 쐈다.
정확히 세 방, 세 놈은 머리에서 피를 뿜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