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73화 (173/200)

[외전] 종말전야. 23. 복수.

23. 복수.

-심인구회장은 자택에서 빠져나온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저택내부에서 외부로 이어지는 출구가, 즉 비밀통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곳을 통해 심회장은 탈출했지만 가족들은 안타깝게도 화마에……

이어지는 뉴스보도에 현인규는 미간을 꿈틀 세웠다.

-심회장은 현재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내용으로는 화재가 방화라는, 즉 범행이라는 것입니다. 심회장에게 복수를 하겠다면서 전화를 걸어온 인물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경찰은 현재 조사를……

모니터가 흘려내는 뉴스를 뚫어지게 응시하던 현인규는 폰을 들었다.

“나다, 심인구회장사건에 대해 알아봐라.”

4팀장에게 지시를 내린 후 바로 폰을 내린 현인규는 거듭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하루 종일 이러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럽고 못마땅하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 어쩔 도리가 없다. 한건의 꼬리를 잡아야만 한다.

‘청록원 새끼들……!’

그것들은 이제 서슴없이 공격을 해오고 있다.

그만큼 화가 났고 다급하다는 거다.

놈들도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 못했을 터다.

번번이 목표를 놓쳤다.

한건이 아무리 특수군 출신이라지만 당황 안 할 수 없는 결과다.

‘정부와 청와대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좁힌 미간에 깊은 골을 그린 채 현인규는 생각했다.

결론은 눈 뜬 장님이란 거다. 권력이란 것의 속성이 그렇다.

정보와 힘은 소수의 핵심인물들만이 틀어쥔다.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그들이야말로 진짜 권력자다.

‘북극사태를 인지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 역시 대동소이하겠지.’

해당 국가들이 참여하는 북극조사단이 꾸려지고 있지만 시원한 결과가 나오진 않을 거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힐 테고, 그 안에서도 핵심권력의 힘들이 작용할 테니 그렇다. 해결이 목표라면 완전공개를 해야 한다.

‘그런 일은 안 일어나.’

이 일은 그런 일이다. 그러니 현중은 국가적인 사건에 뛰어든 것이다.

청록원은 국가기관이다. 그들과 싸웠고 경고와 협박을 받았다.

그렇지만 물러날 수 없다. 해동기지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이건 미래의 문제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국가 따위는……’

귀를 파고드는 소리에 현인규는 상념에서 벗어나 뉴스를 응시했다.

-협박전화를 해온 용의자는 씨마운틴참사의 유족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23명의 어린이가 불속에서 참변을 당한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국가와 기업을 향한 유족들의 울음이 아직도 생생한……

날선 눈빛을 흘려내며 현인규는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복수……”

그것이다. 그렇게 짐작된다.

심인구회장에서 협박전화를 했다는 인물은 분명히 뉴스보도처럼 유족일 것이다.

그런데 심회장의 저택에 저렇게 불을 지르는 복수는 아무나 할 수 없다.

저곳은 역삼동, 경비들이 지킨다.

‘불을 지를 수 있는 능력, 힘이 있어야 가능해.’

그건 바로 운석과 같은 힘이다. 그것이 예감됐기에 4팀장에게 지시한 거다. 부연해 지시하지 않아도 4팀장은 알아서 배경을 파악할 것이다.

경찰이 수사 중이라면 유족 중에 누군가 특정될 터, 그를 확보함이다.

‘한건처럼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해……!’

어금니를 물었다 풀며 현인규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물론 심인구회장의 저 사건이 운석으로 인한 괴이사건이란 전제하에.’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별로다. 유족의 누군가가 운석을 소지했을 가능성, 희박하다. 하지만 어떤 경로로든 그랬을 확률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함인호 일로 운석은 이미 북극사태 이전에 퍼졌다는 걸 확인한 마당이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남양주시 화도읍 소재 아파트에서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해당 아파트주민들이 촬영한 영상입니다. 13층 베란다에서 소리치는 저 남자는 부인을 흉기로 위협하며 소리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놀람을 주고 있습니다. 남자는 씨마운틴참사의……

공무원이다.

화성시청에서 씨마운틴리조트 인허가를 비롯해 관리업무를 담당하던 부서의 과장이다.

2년 전 사건 당시에도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렇지만 실무자가 저지른 비리라는 것으로 책임을 면했다.

-나는 살인자다!

남자, 화성시청과장이었던 공무원의 육성이 뉴스화면을 통해 나온다.

-어린애들을 스물셋이나 불태워 죽인 살인마다! 그래 맞아! 나는 씨마운틴 심인구회장에게 뇌물을 받아먹은 개새끼다! 나만 그런 게 아니야! 화성 시의회 의원놈들! 의장새끼도 그랬어! 우리가 애들을 죽인 거다!

눈동자에 힘을 실은 채로 현인규는 사건내용을 떠올렸다.

컨테이너를 쌓아 숙박시설을 만든 씨마운틴리조트, 그곳에 유치원생들 수백 명이 투숙했다.

밤사이 불이 났고 불법구조물은 도화선처럼 불이 번져 불탔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함께 투숙한 어른들의 빠른 대응으로 아이들 대부분이 대피했다는 거다. 그렇지만 한마음 어린이집은 그렇질 못했다.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할 인솔교사들이 밖에 나가 술판을 벌인 결과였다.

-나는 이제 내 죄의 대가를 치를 거다! 나 때문에 희생된 아이들을 찾아가 용서를 빌 거야!

흉기를 휘두르며 소리치는 남자의 모습은 그렇게 화면에서 사라졌다.

-현재 경찰특공대가 작전을 준비 중인 것으로……

현인규는 이제 거의 확신했다.

“복수야……!”

* * *

순두부찌개로 만족한 저녁식사를 마친 한건은 식당을 나서다 멈칫했다. 경찰차와 소방차를 비롯한 차량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가서다.

바로 인근의 아파트단지 안으로 들어간다. 무슨 일인지 큰 일이 난 거다.

‘뭐야?’

기묘한 예감이 곤두서는 걸 느끼며 한건은 아파트로 걸음을 옮겼다. 아파트 주민들과 인근 주민들이 몰려들어 웅성거리고 있다. 그 이유가 보인다.

‘저!’

아파트고층에서 누군가 칼을 휘두르면서 소리치고 있다.

여자를 인질로 잡고 있다.

옆에서 주민들이 웅성거리는 소릴 들으니 부인이라고 한다.

‘뭐? 씨마운틴리조트?’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들, 내용은 그거다.

13층 베란다에서 제 부인을 인질로 잡고 소리치는 저 남자는 그 사건의 관련자다.

다름 아닌 화성시청의 담담부서과장이었다.

그렇지만 그때 처벌을 받지 않은 사람이다.

‘진실을 소리치고 있어……!’

남자는 허공을 향해, 아니 몰려든 사람들과 경찰을 향해 외치고 있다.

자신이 지은 죄를 고해하는 중이다.

씨마운틴리조트 심인구회장에게 뇌물을 받고 인허가와 사후관리를 무시한, 비리를 저지른 걸 고백한다.

그런데 저 남자가 왜 갑자기 저러는 지 알 수 없다.

2년 전 사건, 자신은 무혐의로 사건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왜 지금 저렇게 외쳐 알리는 걸까?

그동안 죄책감에 시달리다 더는 참지 못해선가? 아니, 그건 아닐 거다.

‘저렇게 하도록 만든 힘이 있는 거야.’

확신에 가까운 예감을 삼키며 한건은 낮에 본 사건뉴스를 떠올렸다.

다름 아닌 심인구회장 저택 화재사건이다.

그 일이 일어나고 지금 이 일이 일어났다.

이건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누군가 저들에게 꾸민 일이다.

‘복수?’

그 단어를 떠올리고 속으로 말한 한건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씨마운틴사건 관계자들을 향한 적의와 분노, 그리고 불같은 살의다.

운석의 의지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이다.

이젠 그렇다는 걸 확실히 알기에 다스렸다.

‘유족중의 누군가가……’

복수하는 거다.

법으로 단죄하지 못한 죄인들을 응징하려는 거다.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화마에 먹혀버린 아이들, 꽃 같은 그 웃음을 사진으로만 남긴, 부모들의 가슴에 묻혀버린 아이들, 그 목숨 값을 받으려는 거다.

‘어떻게 저렇게 만든 걸까?’

계속해서 소리 지르는 남자, 13층의 복수대상자를 보며 한건은 강한 의문을 품었다.

저렇게 스스로 자백하게 만든 것은, 저건 정신에 영향을 미친 거다.

운석으로 저런 일도 가능할 줄은 몰랐다. 과연 어떤 방법일까.

갑자기 웅성대는 반응에 한건은 반사적으로 고갤 들었다.

몰려든 사람들이 위를 보며 경직해 있다.

옥상에서 경찰특공대가 내려오고 있어서다. 정말 번개처럼 베란다로 들어간다. 남자와 얽혀 베란다를 구르고 있다.

‘저!’

다른 사람들처럼 한건은 경악스러운 반응으로 눈을 치떴다.

남자가 특공대원을 떼어내고 베란다에 매달렸다. 특공대원이 잡으려 하지만 칼을 휘두른다.

한손으로 매달린 위태로운 모습, 마지막 외침을 터트린다.

“죄지은 놈은 죽는 거야!”

남자는 손을 놓았다.

추락한다.

그런데 칼로 에어매트를 찢으며 떨어졌다.

참혹한 소리가 아파트 단지를 울렸다.

소방관과 경찰들이 달려갔다. 사람들 시선을 차단하며 모포를 덮는다.

남자는 앰뷸런스에 실렸다.

사람들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앰뷸런스는 빠르게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그렇지만 사건의 충격은 아직 진행 중, 사람들을 해산시키려 경찰들은 분주하다. 그 속에서 한건은 몸을 돌렸다. 그러다 그놈들을 발견했다.

‘청록원.’

분명 그놈들이다. 눈빛과 움직임이 다르다. 현중그룹의 행동팀 역시도 저런 놈들이지만 빛깔이랄까 기세랄까, 그런 것이 조금 다르다. 날선 칼날 같은 눈빛을 흘려내는 저놈들은 분명 점퍼 안에는 총기를 지녔다.

‘저놈들이 이곳에서 얼쩡거릴 이유라면.’

한건 자신 때문이고, 지금 사건에 대해 인지했음이다.

운석이 개입된 사건이란 감을 잡은 거다.

‘내가 도주 가능한 범위를 다 훑고 있겠지.’

한건 자신의 일역시도 저들의 등장원인, 현재 일어난 사건보다 핵심이다.

저놈들은 저렇게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고 있다.

현중 역시 마찬가지일 터다.

저놈들이 현중과 다른 점은 군대의 냄새가 조금 더 나는 거다.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오랜 군 생활을 한 자신만이 느끼는 감을 삼키며 한건을 걸음을 냈다.

공교롭게도 두 놈이 마주 걸어온다. 태연하게 스쳐지나갔다. 그런데 놈들이 서늘한 눈빛으로 돌아본다. 멈춰 서서 마스크를 내리고 코를 풀었다.

“아 쓰바, 코로나에 걸렸나?”

에취하며 재채기까지 하자 두 놈은 재수 없는 걸 본 얼굴로 바로 멀어져 간다. 완전히 다른 얼굴인데다가 코로나에 걸렸을지 모른 인물인 거다.

“잘 가라.”

차가운 미소를 흘려내고 마스크를 쓴 한건은 코푼 손수건을 분리수거장 안의 종량제 봉투 안에 쑤셔 넣고 아파트를 나왔다.

* * *

현관문을 잠그고 안전고리까지 건 한건은 시간을 확인했다.

9시가 넘어가고 있다.

저녁식사 후의 갑작스러운 사건, 어떻게 진행 중인지 알기 위해 폰을 잡았다.

인방에 펼쳐놓은 침낭위에 앉아 뉴스를 검색했다.

[심인구회장 극적으로 화재에서 탈출.]

눈썹을 세운 한건은 해당 기사와 다른 기사들을 빠르게 읽었다. 그렇게 상황을 파악했다. 심회장은 저택의 비상통로로 빠져나왔다. 하지만 가족들은 불속에서 사망했다. 경찰에 보복범행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협박전화.’

누군가 했다는 거다, 유족중의 누군가다. 그 누군가가 운석을 소지한 자가 맞을 거다. 그는 심회장과 화성시청 과장이었던 남자에게 복수했다.

그런데 심회장은 살았다. 투신한 그 남자가 죽었는지도 확실치 않다.

‘13층에서 떨어져 살았으면 죽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지만.’

복수의 결론이 그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심회장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무사히 빠져나와 경찰의 보호 속에 있다.

이 결과는 무얼 말하는가.

분명 차이점이 존재한다. 확연한 차이다.

무엇이 그렇게 한 건가.

‘투신한 남자는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어.’

그렇게 만든 게 운석이라면, 심회장은 왜 그렇게 못한 것인가가 의문이다.

‘응?’

솜털이 곤두서는 것 같은 느낌, 한건은 일어서서 창으로 갔다.

거실의 불을 끄고 바깥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창밖에, 빌라 앞을 빠르게 걸어가는 남자가 보인다. 그런데 그 뒤로 두 놈이 따라간다.

저놈들을 안다.

‘청록원 놈들.’

집에 들어오기 전 아파트 단지 안에서 마주친 놈들이다. 기민한 움직임으로 앞서간 남자를 따라간다. 분명한 목적과 의지가 엿보이는 걸음이다.

‘앞서간 남자가 목표.’

그가 누군지 모르지만 저놈들이 따라간다는 걸로 짐작이 된다.

‘복수를 하고 있는 유족중의 누군가……’

유족들의 상태를 빠르게 확인한 놈들은 저 남자를 특정한 거다.

거주지에 없고 이 현장에 모습을 보인 인물이다.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거실창에서 돌아서려던 한건은 움찔거리는 몸의 느낌을 확연히 인지했다.

방금 전의 느낌처럼 솜털이 곤두선다.

이 느낌과 예감은 다른 운석 때문, 그것을 느껴서라가 아니라 충동이다.

운석을 확보하려는 본능이다.

‘나는…… 이건……’

불 꺼진 거실에 서서 한건은 갈등하며 멈칫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