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종말전야. 24. 아버지.
24. 아버지.
-경찰은 현재 이종수씨의 소재를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tv에 시선을 고정한 윤지희는 잡고 있는 커피 잔을 들지도 내리지도 못했다. 뉴스에 정신이 팔려서다. 아니 그보다는 운석의 존재를 감지해서다.
-씨마운틴그룹 심인구 회장에게 협박전화를 한 용의자가 이종수씨인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역삼동 저택부근에서 이종수씨의 모습이 포착……
윤지희는 떨리는 숨으로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씨마운틴리조트 화재사건……”
대한민국을 들썩인 참화였다.
아이 가진 부모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눈물을 흘리게 한 사건이었다.
생떼 같은 어린 목숨이 스물셋이나 희생된, 결코 일어나서난 안될 악마의 농간이었다.
그러나 악마는 없었다.
‘인간이 있었지. 악마보다 더한 인간이 저지른 사건이야.’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당시의 영상들을 떠올리며 윤지희는 뜨거워진 숨을 삼켰다. 화마가 어린 생명들을 먹어치우던 화재 당시의 영상, 모든 걸 태우고 잿더미만 남은 광경, 그곳에서 오열하던 부모들의 모습이다.
‘아이들 곁에 인솔교사들이 같이 있기만 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그런데 그들은 저희의 유희를 즐기기 위해 외부로 나가 술판을 벌였다. 화성시청의 공무원들이 제대로 일하기만 했어도, 씨마운틴리조트가 법을 지켜 영업하기만 했어도 안 생겼을 사건이다.
‘더러운 인간들이 만든 현세의 지옥……!’
그 일이 이렇게 다른 결과를 만들고 있다.
이종수라는 저 남자는 예림이라는 딸을 잃은 사람이다.
당시의 충격으로 아내마저 사망했다.
심장이 약했던 부인은 하나 밖에 없는 딸을 부르다가 남편의 손을 놓은 거다.
-이종수씨가 심인구회장 저택에 화재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어디 있냐며 유족들이 항의중입니다. 심인구회장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면서……
사건 당시에도 자주 뉴스에 나왔던 유족협회대표의 얼굴이 tv화면에 나왔다. 흥분과 분노로 붉어진 얼굴이다.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소리친다.
-법이 죄인을 단죄하지 못하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겁니다!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다는 거 모두가 압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외치는 헛소리라고요? 당신들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면 알거야!
마지막말엔 자제를 놓치고 만 유족대표, 카메라불빛은 난타하듯 명멸한다.
-이종수씨는 현재 일체의 연락에 불응하는 상태로…… 경찰은 핸드폰 위치추적을 통해 소재를 파악하려 하지만 폰이 꺼져 있는 것으로……
윤지희는 이종수가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장소를 떠올렸다.
‘남양주 화도.’
인질극을 벌이고 투신한 화성시청공무원, 그 현장에 있었을 것이다.
‘심인구회장이 무사한걸 알았다면 이동하겠지.’
일의 순서와 흐름은 역삼동이 시작이다.
심인구회장의 저택에 불을 지르고 남양주 화도로 이동한 거다.
그런데 공무원은 투신하게 만들었으니 성공인데 심회장은 아니다.
그가 무사하단 걸 안다면 못 견딜 거다.
‘운석의 힘을 이용해서 벌인 일이 분명해.’
이종수가 어떻게 운석을 손에 넣은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뉴스에 나오는 저런 사건을 일으키자면 그의 능력으론 안 된다. 저건 분명 괴이사건이다. 심회장저택의 화재는 모르지만 공무원의 투신은 비상식적 사건이다.
‘온전한 정신상태가 아니었어.’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거다. 그동안 죄책감에 시달리다 폭발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렇냐 하는 건 아니올시다다.
2년 전 사건 당시에도 뻔뻔하고 당당했다.
자신은 죄 지은 게 없다고 턱을 세운 인간이었다.
‘심인구 회장은 더 가증스러웠지.’
법원을 나서며 언론을 향해 고개 숙이던 그 늙은이 모습이 생생하다.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하고 피해보상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런데 그 눈알이 차갑게 번득이고 있었다.
그건 사죄의 눈이 아니었다.
‘그런데…… 복수라면 대상자가 더 있지 않나?’
더 있다.
한마음 어린이집 원장과 인솔교사 세 명과 운전사다.
그들은 현재 감옥에 있다.
손댈 수 없는 곳에 있는 그들을 제외한 복수인 거다.
“잡히지 말아요.”
윤지희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의 바람을 말했다. 그래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종수씨는 그룹의 행동팀과 청록원에게 추적당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잡힌다면 경찰보다 먼저 그들에게 잡힐 거다. 거의 그런 결과다.
‘한건처럼 하진 못해.’
한건은 특별한 남자다. 이종수씨와의 차이를 적으라면 a4용지를 가득 채울 정도가 될 거다. 보통사람에 불과한 이종수씨는 곧 잡힐 거다. 물론 그에게 운석이 있지만, 청록원이나 그룹의 목적은 오로지 운석뿐이다.
‘이종수씨의 목숨 같은 건 추호도 고려하지 않아.’
가슴속에 일어나는 비애와 분노로 윤지희는 고개를 숙였다. 거실 테이블 위에 잡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놨다. 식어가는 커피색이 유난히 검다.
‘아버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할머니 말에 의하면 아버지는 배를 타러 간다고 했다고 한다, 원양어선을 탄다고, 멀리가기 때문에 오랫동안 못 돌아올 거라고 했다는 거다.
윤지희 자신이 세 살 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 할머니와 살았다.
할머니가 윤지희 자신을 키웠다. 그렇지만 할머니도 끝내 세상을 하직했다.
중2의 그 겨울에 보육원으로 가야했던 운명이 정말 끔찍하다.
그곳에서 그룹의 동아줄을 잡지 못했으면 어땠을까.
“죽었겠지. 자식을 버린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커피 잔 안의 검은 빛을 노려보면서 윤지희는 중얼거렸다. 피식, 저절로 피어나는 자조와 자괴의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 다시 뉴스를 응시했다.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름은 같은데 왜 다른 거야.”
뉴스 화면에 든 이종수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과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딸과 아내를 잃은 아버지와 남편의 얼굴이다. 그 복수를 하려는 자다.
“제발, 잡히지 말아요.”
간절한 마음으로 진심을 말한 윤지희는 커피 잔을 들어 마셨다.
* * *
솜털이 곤두섬을 따라 가며 한건은 의문을 삼켰다. 마치 방향타를 돌린 것 같은 상황이다. 정확하게는 저쪽에서 보내는 신호를 받는 거다.
이종수라는 유족남자가 가진 운석이 한건 자신의 운석에게 보내는 거다.
‘이것도 선택인가.’
함인호가 말했었다. 자신의 운석이 적합자를 찾아온 거라고.
운석이 선택했다는 거다.
그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는 지금처럼 솜털이 곤두서는 것 같은 느낌이 없었다.
아니 그때는 10이었다면 지금은 100이 맞을 거다.
‘느낌의 강도가.’
이 현상은 운석끼리 서로를 감지해서가 아니다.
저편의 운석이 부르는 거다.
제 존재를 알려 찾아오게 하는 거다. 그렇게 결정해서 보내는 신호다.
그건 소지자인 이종수란 남자를 버린 다는 거다.
그래야 해서다.
‘생존의지.’
운석에게 그것이 있다.
함인호를 버리고 한건 자신을 택한 건 그래야 생존에 유리해서다.
한건 자신과 함인호를 어떻게 비교분석하고 결론을 내린 건지 모르지만 그거다.
모든 생물의 본능, 살기 위한 선택이다.
그러니 운석이 살아 있는 생물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망상이 아니다.
그것이 정확하게 뭔지 모른다.
운석, 돌의 형상이지만 라면에 녹았다.
이렇게 더 나은 숙주를 찾아서 신호를 보내고 이동한다.
무생물이 아닌 거다.
‘가만, 숙주?’
멈칫한 한건은 그 단어가 가진 뜻을 곱씹었다. 생각의 흐름 중에 튀어나온 거지만 그게 명확하다. 한건 자신은 운석이 선택한 숙주인 거다.
‘처음엔 무작위지만, 그렇게 들어간 숙주가 맘에 들지 않으면 이동한다? 그게 아니라 숙주로서의 자격을 상실할 것 같으면 다른 숙주를 택한다?’
어둠속에 멈춰 선 한건은 생각하고 생각했다.
함인호의 경우와 자신의 경우다.
경찰에게 쫓기던 함인호는 자포자기 상태였다.
한마디로 절망적인 상황, 숙주로서의 기능을 잃을 처지였던 거다.
그걸 본인도 알았다.
‘운석이 날 선택해 옮기려 한다는 걸.’
한건 자신과 만나 대면한 순간에 깨달은 것을 거다. 방향성 없이 운석이 시키는 본능대로 이동한 결과, 다른 운석의 소지자를 만나 깨달은 거다.
‘내 경우는……’
함인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록원이 보낸 킬러들의 손에 죽을 뻔했다.
그렇지만 운석은 다른 자에게 옮겨가지 않았다.
다른 점이라면 상대와 싸워 제압했다는 거다.
함인호도 한건 자신을 이겼으면 반대였을까?
‘내가 가진 운석이 함인호에게로?’
어둠을 노려보며 무거운 숨을 내쉬던 한건은 다시 움직였다.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아닌 거다. 이종수, 그 사람의 목숨이 위험하다.
청록원 놈들은 무조건 죽이려고 할 거다.
그놈들에게 죽도록 두는 건 아니다.
‘얼마나 더 당해야 하는 건데?’
가슴속 깊고 깊은 밑바닥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한건은 치를 떨었다.
내 일이 아니니 상관말자고 등 돌리던 생각은 밀어냈다.
운석 때문이 아니라 근원의 분노다.
잠재우고 억눌렀던 분노, 당한 자만 아는 거다.
‘아버지, 어머니……!’
그분들은 돌아가시고도 죄인이 됐었다.
두 분의 실화에 의한 화재사건으로 결론이 난 거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세 들어 살던 주택의 전기배선이 워낙 낡아 불안불안하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셨었다.
그건 묻혔다.
‘개새끼들……!’
그런 조사는 전혀 하지 않았다.
소방서도 경찰도 쉽고 명쾌한 결론을 택했다.
집주인의 주장대로 세입자의 실화에 의한 화재인 거다.
목이 터지도록 소리치고 항변했지만, 고2짜리 남학생의 울분에 불과했던 일이다.
그런 일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이종수라는 저 남자가 당하고 겪은 일이 그렇다.
불법과 결탁한 부정과 비리가 애꿎은 목숨들을 빼앗고 있는 거다.
그게 잘못됐다고 소리쳐도 돌아오는 건 분노와 절망의 나락이다.
‘응?’
분노로 이글거리는 가슴에 한건은 얼음물을 끼얹었다.
드디어 찾았다.
흥선대원군왕릉원과 모란터널이 지나가는 자동차전용도로의 산자락 사이다.
외진 길 저편 어둠속, 부도난 공장 건물에 불빛이 순간 보였다.
‘거기 구나.’
공장으로 이어진 시멘트도로를 따라 한건은 소리 없이 달려갔다.
유치권행사라는 팻말과 현수막이 여기저기 보인다. 어둠 속인데도 잘 보인다.
애초에 cctv같은 건 없는 곳이다.
빠르게 움직여 공장 옆 벽에 붙었다.
‘이런……!’
창틀만 붙어 있는 창문으로 한건은 내부 상황을 봤다.
청록원의 두 놈이 권총을 쥐고 서 있고, 그들의 앞쪽에 이종수가 주저앉아 있다.
피가 흘러나오는 복부를 움켜쥐고 뒤로 물러난다. 그렇지만 벽에 가로막혔다.
“운석 가지고 뭘 할 수 있는 거야?”
한 놈이 다른 놈에게 물음을 던진다. 사냥감을 잡았으니 심각함이 전혀 없는 목소리다. 자신들이 확보하려는 운석의 본질이 뭔지의 궁금함이다.
“알면 뭐하게? 저 치처럼 해보게?”
“못할 건 뭐야? 황당하잖아? 아니 신기하잖아? 도대체 뭘 어떻게 해서 그렇게 한 건데? 함인호 같은 놈은 총을 맞고도 멀쩡하게 도망쳤잖아?”
“뭐 그건, 아무튼 그러니까 저놈도 방심하면 안 돼.”
“제길 방심은 무슨, 저 꼬라지를 보라고, 저러고 살 것 같아?”
“하긴, 함인호하고는 다른데? 이건 또 뭔지 모르겠네.”
“그러게 말이야, 총탄을 맞고도 죽지 않을 거라고, 조심하라고 했는데 말이지.”
“어쨌든 이제 회수하면 끝나는 거야. 하, 빨리 마무리하고 좀 쉬자.”
“정말로 아무생각이 없어?”
“무슨 생각? 뭐? 운석? 아 이 친구 정말 큰일 날 소리 하고 있네?”
“뭐가 큰일 날 소리야? 운석이 황당한 일을 만든다는 걸 확실히 알잖아?”
“그래서? 운석을 차지하겠다는 거야?”
“안될 거 없잖아?”
“아 정말!”
청록원 두 놈의 목소리가 높아지던 그 순간 한건은 움직였다. 창턱을 잡고 바람처럼 넘어갔다. 그 순간 벽에 기댄 이종수와 눈이 마주쳤다.
이종수의 눈이 커지는 걸 인지한 청록원 두 놈이 고갤 돌릴 때, 한건은 바닥을 차고 점프했다. 두 놈의 머리높이까지 치솟으며 니킥을 날렸다.
뻑, 한번이면서 두 번인 소리.
박살나는 두 놈의 머리를 넘어간 한건은 가볍게 착지했다.
슬로우모션처럼 두 놈이 쓰러지며 먼지를 일으켰다.
영문도 모르고 즉사한 두 놈, 자신이 죽인 청록원 놈들을 응시하던 한건은 이종수를 돌아봤다. 고통스러운 얼굴의 그는 피 묻은 손을 내밀었다.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이종수의 손이 열어 보여주는 것, 회색빛 돌의 운석을 한건은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