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75화 (175/200)

[외전] 종말전야. 25. 선택.

25. 선택.

“병원은?”

차창 밖에 고요하게 내려앉은 어둠을 노려보며 최강호는 물음을 던졌다. 통화를 끝낸 뒷자리의 팀원은 보고하기도 전에 날아온 물음에 답한다.

“윤기훈은 사망에 준하는 상태라고 합니다. 투신 결과로 전신골절이 손을 쓰기 힘든 결과랍니다. 특히 두부파손이 심해서 정상으로 돌아올 수 없는……”

고요한 바다와 같은 어둠을 응시하며 최강호는 팀원의 보고 목소리를 들었다.

영상을 떠올렸다. 윤기훈이 13층에서 떨어지던 광경이다.

손에 쥔 칼로 에어매트를 가르고 떨어졌다. 허리가 접히던 영상이 돌고 있다.

‘사람들의 잔인성은 본래적인 걸까?’

투신 영상을 찍어 sns에 올리고 공유하며 좋아요를 연발하는 사람들.

잔인하기 그지없다.

남의 불행은 그저 좋은 구경거리일 뿐인 거다.

아무리 요즘 세태가 비정 그 자체라지만, 그렇지 않고 훈훈한 일도 있음이다.

‘익명으로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거액을 내놓는 사람들, 사고 난 차에서 다친 사람들을 힘 합쳐 구해내는 시민들, 강도나 도둑과 맞서 싸워 이웃을 구하는 이들,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러니 이 세상이 완전히 망가진 지옥은 아니다. 그렇지만 오늘 같은 일은 궤가 다르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군중심리 속에 즉각 촬영했다.

폰을 가진 이들은 거의 그랬다. 그렇게 수십 개의 영상들이 도는 중이다.

‘세상에 불구경만큼 좋은 게 없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야.’

인간의 천성은 선한 걸까 악한 걸까, 새삼 그 의문이 들었지만 최강호는 다시 현안에 의식을 집중했다. 이종수가 벌인 일, 배경과 그의 소재다.

‘윤기훈에게는 어떻게 한 걸까?’

역삼동 심인구회장 저택에 화재를 일으키고 바로 이곳 남양주화도로 이동해 왔다. 화재현장에서 심인구회장이 불에 타죽는 걸 직접 지켜봤다면 제일 좋았을 테지만, 그럴 순 없었으니 뉴스를 통해 알면 되는 일이다.

‘그래서 윤기훈에게 바로 와서 일을 벌인 건데……’

추정, 그렇지만 확신하는 흐름이다.

그런데 심인구 회장과 윤기훈의 사례는 많이 다르다.

윤기훈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투신했다.

심회장에겐 왜 그렇게 못한 걸까? 그는 화재를 빠져나와 현재 경찰보호하게 있다.

‘심회장이 무사하다는 걸 지금쯤은 알 텐데?’

이종수 입장에선 천불이 나는 일이다. 심회장을 다시 죽이려고 할 거다.

그렇지만 우선 이곳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다. 아파트 주변에서 포착한 그의 모습은 그가 아직 이곳에 있음이다. 그런데 놈들이 붙은 것 같다.

‘청록원새끼들.’

그들도 현증 그룹 자신들처럼 이 지역의 cctv를 다 훑어 봤을 거다. 그렇게 이종수의 위치를 좁히고 찾은 거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cctv영상에 보면 청록원이 확실한 두 놈이 이종수의 뒤를 쫓아갔다. 10분 전이다.

“아직이냐?”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며 최강호는 물었다. 어디든 이종수와 청록원 놈들의 모습이 다시 잡히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중이다. 무작정 움직이는 것보다는 그게 현명해서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제는 바닥훑기를 해야겠다.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팀원이 보고 있는 노트북장비에 뜬 cctv영상을 응시한 최강호는 지시했다.

“마지막 포착장소에서 이동 가능한 경로로 훑어간다.”

어둠 속에 멈춰 서 있던 승합차는 조용한 울음으로 시동을 걸고 떠나갔다.

* * *

“부탁하나만 들어 주십시오……!”

피에 절은 운석을 내밀며 이종수는 간절하게 말한다.

그 눈을 바라보며 한건은 당혹감을 삼키는 동시에 분노에 사로잡혔다.

한건 자신의 본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분노와 운석이 불러일으키는 분노가 합해졌다.

‘저렇게……!’

이종수는 죽어가고 있다. 병원으로 데려간다고 해도 회생가능성이 없다. 본인이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저렇게 간절한 눈으로 말하는 거다.

무엇을 말할지 알고 있다.

복수, 자신이 하지 못한 복수를 부탁함이다.

‘운석은……!’

이종수를 치유하지 않는다.

완전히 버렸다.

한건 자신을 적합자로 택했다.

운석의 그 의지와 결정을 이종수는 알고 있다.

운명을 받아들임이다.

“심인구회장…… 그 놈을…… 죽여주십시오……!”

마지막 통한을 풀어내듯이 이종수는 그 말을, 간절한 애원과 부탁을 한건에게 던졌다. 부들거리는 손으로 운석을 내밀면서다. 그리고 절명했다.

툭, 떨어진 이종수의 손에서 운석이 굴러 나왔다.

그런데 예상하던 모양은 아니다.

유리질 같은 결정의 안에 있다.

콩알만한 크기, 흡사 목걸이나 팔찌 같은 걸로 만들기 위해 가공한 것 같은 모양, 그런 것 같다.

운석이 발끝에 부딪치고서야 한건은 이종수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 들였다. 한 남자의, 아버지이자 남편의 비통한 죽음을 바라보다 운석을 주웠다.

“해드리겠습니다.”

나지막하게 그 말을 흘려낸 한건은 돌아서려다 이종수를 다시 응시했다.

다가가서 품을 뒤져 폰을 찾았다.

전원을 꺼놓은 폰, 전원을 켰다.

이종수와 청록원 놈들의 사진을 찍었다. 유력언론사에 사진을 전송했다.

‘됐어.’

현장 위치와 간략한 상황을 메모로 첨부했으니 이 사건은 덮일 수 없다.

폰이 커졌으니 청록원 놈들과 현중에서 달려 올 테지만 돌아서야 할 거다. 예상치 못한 한방을 맞은 놈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정말 궁금하다.

‘가자.’

이종수의 폰을 시신 옆에 놓은 한건은 다시 창틀을 넘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이종수의 폰이 켜졌습니다!”

흥분한 팀원을 돌아본 유한기는 얼굴의 흉터를 자신도 모르게 실룩였다.

“위치로 이동한다!”

혀끝에 아릿하게 몰리는 이 감각, 목표를 눈앞에 뒀을 때의 흥분을 유한기는 만끽했다.

이제 이종수를 잡는 거다. 그래야 한다.

그가 무슨 일로 꺼둔 폰을 다시 켰는지 모르지만, 현중에게 빼앗기는 일은 없을 거다.

‘모조리 죽여서라도 확보하는 거야.’

거칠게 달려가는 차의 진동 속에서 유한기는 의문을 삼켰다. 이종수가 벌인 일의 정확한 내용이 뭔지다. 엄밀히 운석이 힘이 작용한 결과다.

‘뭐가 다른 거지?’

심인구회장과 윤기훈이 다른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윤기훈은 제대로 했지만 심회장은 화재로부터 빠져나와 무사하다.

복수에 실패한 거다.

운석의 힘을 이용했는데 뭐가 다른 걸까?

이종수는 왜 한건과 다른가?

‘cctv영상을 피하는 결과 같은 건 없었어.’

한건은 카메라를 작동불능상태로 만들거나 노이즈를 일으켜 시선을 피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된 카메라들을 추적하면 되니까 결국 꼬리를 흔든 셈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일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종수는 아니다.

‘운석에 따라 다른 거야? 아니면 소지자에 따라 발현되는 게 다른 건가?’

미간을 꿈틀거리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유한기는 차가 급정거 하는 속에서 고갤 들었다.

외진 길, 어둠속에 부도난 공장이 있다. 정확히 다 짓지 못한 공장이다.

유치권행사중이란 표시가 보인다. 바로 이곳이다.

차문을 열고 내리던 유한기는 공장 우측의 다른 외길로부터 달려오는 검은 승합차를 봤다. 저 차가 왜 달려오는 지, 누가 타고 있는지 알겠다.

‘현중!’

* * *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거실에 앉은 한건은 허공을 응시했다.

불 꺼진 거실엔 보일러를 틀지 않아서 냉기가 돌고 있다.

내일이면 11월이니 난방을 할 계절이다. 그 생각을 해선지 가슴속에 든 냉기가 꿈틀거린다.

‘복수.’

이종수씨는 자신이 못한 복수를 부탁했다.

심인구회장, 씨마운틴리조트 참사의 원흉인 그자가 살아 있다.

그를 실패한 원인이 뭐냐고 물어보지 못했다.

윤기훈은 성공했는데 뭐가 달랐던 건지, 이제는 물을 수 없다.

지금 중요한 건 이종수씨의 부탁을 받아들였다는 거다.

한건 자신이 심인구회장을 처단해야 한다.

하겠다고 했으니 하는 거다. 할 수 있다.

그런데 가슴 속에서 고갤 드는 것은 또 다른 복수다. 한건 자신의 복수다.

‘내가 당한 일……!’

아버지 어머니의 죽음에 책임을 전가한 자들, 집주인과 소방서와 경찰이다.

열여덟 당시에 그들을 향해 품었던 증오와 원한은 포기하고 사라졌던 게 아니다.

가슴 깊은 곳에 묻혀 있었다. 그것이 지금 고개를 들었다.

‘그들을 찾아서 복수해야……!’

부드득 소리나게 이를 악물었던 한건은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소리야!”

격하게 소리친 한건은 주먹을 움켜쥐고 몸을 떨었다.

등골을 훑고 가는 이 강렬한 전율, 복수심에 불타는 마음을 억누르려고 혀를 깨물었다.

그러자 몸에서 열이 오른다.

팔다리가 부들거리면서 오한이 일어난다.

‘이……!’

악문 숨을 흘려내면서 한건은 깨달았다.

전에 했던 경험, 사람을 해친 대가를 신열처럼 받은 기억이다.

그게 정확한 판단이었는지도 알지 못하지만 그렇게 여긴 일이다.

그 일이 또 시작된다. 이번엔 다른 이유 같다.

‘운석을, 세 번째를 가져서.’

이종수씨로부터 받은, 그가 죽으면서 떨군 운석을 손에 쥐는 순간 손바닥을 파고 들어갔다. 이종수씨의 피가 묻은 운석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것 때문인 것 같다.

이번에도 아는 것 없이 추정일 뿐이지만 그거다.

“흐으……”

신음을 흘리며 한건은 쓰러졌다. 신열과 오한 속에서 의식을 잃어갔다.

* * *

“옆으로 접근해!”

팀원들에게 소리치며 최강호는 공장으로 달려갔다.

저편 길에 멈춘 차량에서 내리는 놈들도 그렇게 하는 것을 봤다.

청록원놈들, 그놈이 왔다.

‘그따위 협박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똑똑히 알려주마.’

k7소음기관단총을 움켜잡은 최강호는 공장 벽에 몸을 붙이고 심호흡했다. 대성리에서 자신을 향해 협박을 던진 흉터 얼굴 놈을 떠올리며 흥분을 삼켰다. 윤지희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놈들, 제대로 갚아줄 것이다.

“팀장님, 내부를 보십시오!”

뒤로 붙은 팀원의 굳은 음성에 최강호는 바로 반응했다.

걸음을 물려 네모나게 뚫려 있는 창문으로 안을 봤다.

창틀조차 붙이지 못한 공장, 먼지가 쌓인 그 안쪽에 쓰러진 자들이 보인다.

벽에 기댄 자는 이종수다.

‘뭐!’

눈을 부릅뜨고 경직한 최강호는 이종수를 비추는 다른 불빛을 봤다. 자신들처럼 어둠 속의 시체를 확인하기 위해 비춘 플래시빛, 총격을 의식해서 빠르게 훑고 지나간다. 그 빛이 건너간 반대편엔 두 명의 시체가 있다.

‘청록원!’

그들이다.

이종수의 마지막 영상에서 본, 뒤를 쫓아가던 놈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죽었다. 셋이 다 죽었다.

저들의 이동경로를 훑던 중에 폰이 켜진걸 알고 즉각 달려왔다. 그렇게 확인한 지금 결과는 셋의 죽음이다.

‘누가?’

흔들리는 눈에 힘을 실으며 최강호는 청록원쪽을 응시했다. 그런데 저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게 보인다. 이종수의 뒤를 밟던 두 놈이 여기서 죽어 있는 상황에 놀랐다.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게 분명하다.

‘보고하지 않았어.’

머리통이 박살나 죽어 있는 두 놈이 그랬다. 잡고 나서 보고할 생각이었는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지 그랬다. 그랬거나 저랬거나 누구인가?

저들을 죽인 게 누구란 말인가? 설마 한건인가? 그가 여기에 있는가?

‘그일 수 있어!’

한건, 그자가 사라진 곳이 이지역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이곳 마석역 인근에 숨어들었을 수 있다.

그가 함인호를 만난 것처럼 이종수를 만났을 가능성이 있다.

그 스토리가 아니면 이결과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팀장님,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언론사에 제보가 들어간 모양입니다.”

팀원의 긴장한 목소리를 들은 최강호는 뺨에 주름이 지게 이를 물었다. 하지만 그 힘을 풀어내고 지시했다.

“철수 한다.”

공장 벽으로부터 물러나며 최강호는 그들을 봤다.

청록원, 자신들처럼 빠르고 신속하게 물러나는 중이다.

이 밤은 이렇지만, 조만간 또 볼 것이다.

‘다시 보자.’

마음속으로 인사를 던진 최강호는 승합차에 올랐다.

어둠이 길을 열어주는 것 같은 속으로 승합차는 굉음을 내며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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