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종말전야. 26. 신열.
26. 신열.
밤새 뒤척이며 어떻게 잠이 든 건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직도 깜깜하네.’
베란다 커튼을 열며 윤지희는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6시.’
오늘은 11월이 시작되는 첫날이고 월요일이다.
아파트 중앙을 가로질러 이른 출근을 하는 차들의 불빛이 보인다.
그 빛을 받은 나무들은 단풍이 들었다.
아니 이제는 그 색이 갈빛으로 변하며 잎을 떨구고 있다.
‘겨울이 오고 있네.’
또 한 계절이 가고 있음을, 한해가 저물고 있다는 것에 윤지희는 복잡한 상념을 삼켰다. 지나온 세월이 떠오르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새삼스럽다.
어떻게 살게 될까?
서른 두해를 지금처럼 살아온 것같이 살아갈까?
‘나는 그룹의 손길이 아니었으면 죽었어.’
보육원에서 손목에 칼을 대고 부들거리던 그날이 떠오른다.
‘그날 죽었지. 그리고 살아났어.’
그날, 원장이 상담한다면서 불러 들어갔던 원장실에서 당한 일.
그것은 열다섯 어린 소녀가 밀어낼 수 없었던 세상의 흉악한 발톱이었다.
그 할큄에 당한 것은 아프고 분하다는 것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손에 쥔 칼을 거꾸로 들게 해줬어.’
윤지희 자신의 손목이 아니라 다른 대상이다.
그것을 이루게 해 준 것이 그룹이다.
화장실에서 연필 깎는 칼을 쥐고 부들거리던 자신에게 그가 말했다.
그렇게 죽는 건 어리석다고, 죽어야 하는 것은 원장이라고.
‘선생님.’
그의 이름을 아직도 모른다. 보육원에 정기적으로 찾아오던 후원인사라는 것 외엔 그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그날 오전에 왔었던 사람이 밤늦은 그 시간에 화장실에 있는 자신을 찾아 얼굴을 보일 줄은 몰랐다.
그 후로도 오직 선생님, 그 호칭으로만 부른 그분이 차분하고 차가운 음성으로 이야기했다. 죽이고 싶으면 죽이라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지금 원장은 잠이 들었다고, 그 가슴에 칼을 찌르라고, 칼을 내 줬다.
“하아.”
옛 기억에 사로잡혀 뜨거워진 숨을 윤지희는 격하게 내쉬었다. 베란다 창을 하얗게 덮었던 그 흔적은 이내 사라진다. 그와 같이 기억을 밀어냈다.
‘현재는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 걸까?’
옅게 좁힌 미간을 찡긋거리며 윤지희는 소파로 돌아왔다. 지난밤을 받아준 소파의 흔적, 담요를 옆으로 밀어내고 리모컨을 잡고 tv를 켰다.
잠이 들기 전에 용케 tv는 껐던 모양이다. 흐릿하게 그랬던 기억이 난다.
-부도난 공장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종수씨는 총격을 받고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두 명의 남자는 왜 살해된 것인지, 누구에게 살해된……
눈을 크게 뜬 윤지희는 뉴스에 의식을 집중했다.
-현장에서 누군가 이종수씨의 폰으로 언론사에 제보를 했습니다. 살해된 이종수씨와 그를 살해한 두 명의 남자, 사망한 이들의 모습을 사진 찍어 간략한 메모를 첨부했습니다. 두 명의 살인자들이 이종수씨를 살해했다는 내용이고, 그들의 정체가 청록원이라는 정부기관이라고 했습니다.
윤지희는 즉각 한사람을 떠올렸다.
‘한건!’
그다, 그가 저곳에 있었다. 숨이 막히고 몸이 경직된다.
자고 일어나니 이런 엄청난 일이 생긴 거다.
이종수씨가 살해됐고, 그를 해치고 운석을 확보하려던 청록원 요원 두명이 한건에게 당했다. 두부파손이라고 한다.
두부파손, 그 표현이 얼핏 진짜두부가 뭉개진 것을 연상케 한다. 그 연상의 실제 결과는 청록원 요원 둘의 머리가 부서진 거다. 수박처럼 터진 거다. 한건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는 또 다른 운석을 가지고 사라졌다.
‘그룹도 저기 있었을 텐데?’
바로 떠오르는 생각은 현중그룹의 행동과 대응이다.
그들은 분명히 저 현장을 찾았을 것이다. 청록원에서 찾았으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양측 모두 빈손으로 물러났다.
뉴스내용을 보면 경찰과 언론이 출동했다.
‘한건, 이종수씨를 노린 둘을 해치우고 다른 대응이 닥쳐오기 전에 빠져 나갔어……!’
그런 결과다.
청록원과 현중그룹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심정으로 철수했으리라.
그건 그렇지만 이 결과는 정말 충격적이고 새삼 놀랍다.
한건이 어떻게 저곳을 찾아간 건지 모르겠다. 미리 알고 있었단 건가?
‘뭘 미리 알아? 어떻게 알아?’
이종수란 인물이 운석을 가지고 있고 복수할 거란 내용, 남양주 화도란 지역으로 이동해 와서 윤기훈을 해칠 거라는 계획, 그런 걸 알 리 없다.
부도난 거 공장 현장에서 저런 상황이 벌어질 거란 걸 알 수 없는 거다.
‘운석이 알려줬다고?’
예지란 단어를 떠올렸던 윤지희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렇지만 이내 부정을 부정하는 생각을 잡았다. 운석이 만든 일들이 괴이사건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음이다. 윤지희 자신이 살아난 일, 그게 괴이다.
‘그렇지만……!’
다시 부정을 이사이에 문 윤지희는 또 다른 가능성의 추정을 삼켰다.
‘신호?’
그런 것일 수 있다. 운석과 운석 사이엔 일정한 주파수 같은 것이 흘러 서로를 인지할 수 있는 건지 모른다. 그런 시그널이 작용해 만든 결과일 수 있다. 이종수씨의 운석과 한건의 운석이 서로 소통한 결과다.
‘소통이든 다른 형태든 서롤 인지했다면 가능해.’
그러면 함인호의 일도 말이 된다. 그는 왜 하필 천마산으로 도주했는가의 부분이다. 그가 사건을 일으킨 양지리 한성병원에선 차를 타고 도주하는 게 가장 상식적인 행동이다. 그런데 그는 두발로 달려 도주했다.
‘천마산으로, 한건이 있던 곳으로.’
그곳으로부터 한건은 산을 넘어 이동했다. 그 앞을 윤지희 자신이 막았었고, 그는 청록원요원들을 쓰러뜨리고 사라졌다. 그 흔적을 그룹과 청록원에서 추적하고 있었는데, 저렇게 이종수씨의 죽음 앞에 나타났다.
‘절대 우연이 아니야. 이 흐름은 그렇게 이뤄질 수 없는 거야.’
자신도 모르게 소파에서 일어선 윤지희는 흠칫하며 스스로를 돌아봤다.
‘나는 지금……’
숙소에서 대기 중이다. 그런 이름으로 배제돼 있다.
임무를 실패해서고 괴이사건의 당사자가 돼서다.
운석을 가진 건 아니지만 운석으로 살아났다.
그런 자신에게 그룹이 다시 일을 맡길지는 미지수, 그런데 흥분한다.
‘습관처럼.’
그룹이 살려준 이후로 그룹의 가르침을 받으며 이날까지 숨 쉬었다. 선생님의 지도하에 오늘의 윤지희 자신을 만든 거다. 그룹이 시키는 일은 뭐든지 다했다. 그것이 옳고 살아 있는 이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할머니…… 나는 잘하고 있었던 걸까?’
마음속에 고개를 든 의문, 윤지희는 답을 찾지 못해 눈을 감았다. 만일이 자신이 임무에 복귀한다면, 한건을 죽여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갑자기 몸이 떨리고 열이 올라 윤지희는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점점 더 뜨거워지는 체열을 인지하며 천장에 한사람의 얼굴을 그렸다.
‘한건, 당신은……’
스르르 감기는 눈을 이기지 못하고 윤지희는 잠이 들었다.
* * *
“후아.”
깊은 숨을 내쉬면서 한건은 몸을 일으켰다.
누웠던 자리를 돌아봤다. 침낭이 땀에 젖어있다. 입고 있던 옷도 마찬가지다.
벌떡 일어나 욕실로 갔다. 옷을 다 벗고 물을 틀었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며 정신 차렸다.
‘밤새 고열 속에서 앓았는데……’
이젠 멀쩡하다. 지난번처럼 자고 일어났더니 개운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게 아니다. 지난밤에 이종수씨의 죽음을 받았다.
‘복수.’
그의 부탁을 받았고 그가 내민 운석을 받았다.
세 번째 운석, 그것이 몸 안에 들어와 신열을 일으켰다.
이 결과가 어떨지 모르겠다.
이전과 다른 무엇이 있을지, 아니면 아무렇지도 않을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아니, 변화가 있어.’
찬물을 맞으며 한건은 피부의 자극을 떠올렸다.
카메라들의 시선을 피하게 만들어 주는, 그것을 인지하게 해주는 감각이다.
이것은 함인호로부터 두 번째 운석을 취하고 나서 생긴 변화다.
그런 게 있을 것이다.
‘지금 상황이……’
샤워기를 끄고 나간 한건은 수건을 찾아 몸을 닦았다. 비누와 치약칫솔과 함께 산 수건 세장 중 하나다. 새것이라선지 기름 냄새 같은 게 난다.
‘역시.’
폰을 켜고 뉴스를 본 한건은 현재 상황과 시간도 확인했다.
아침 6시를 넘었다.
밤사이 이종수씨의 죽음으로 인한 파장은 가볍지 않게 퍼졌다.
-제보자가 언급한 청록원이란 정부기관은 해양수산부 주변기관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정확한 내용을 알아낼 수 없는 기관이었습니다. 해양수산부가 극지 기지를 건설하면서 관련업무를 위해 만든 기관으로만……
앵커가 말하는 청록원이란 단어를 한건은 기분 좋게 들었다.
‘애 좀 써 봐라 새끼들아.’
청록원을 생각하며 주먹을 쥔 한건은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격노에 치를 떨었다.
친구 이응삼을 생각하니 나오는 반응이다.
그런데 이 분노는 제어해야 할 것이란 걸 안다.
한건 자신의 순수한 분노가 아닌 것이다.
‘갚아준다, 그런데 운석에게 정신을 뺏기고는 아니야.’
이 악문 숨을 거듭 들이 내쉬며 분노를 밀어낸 한건은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면도기를 잡고 수염을 깎았다. 그런데 문득 거울 속의 몸이 다르다는 걸 인지했다. 강인한 근육이 상하체를 덮었다. 오년 전의 몸이다.
‘어? 이거……’
일회용 면도기를 내려놓은 한건은 팔을 만졌다. 이두와 삼두와 전완근이 강철 같은 느낌을 준다. 가슴의 대흉근도 마찬가지고 어깨 삼각근은 훌륭하다, 옆으로 몸을 돌려 광배근을 들어보니 역시 완벽하게 돼 있다.
‘하체도.’
대퇴사두근과 둔근과 종아리 비복근이 훌륭하다고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모습이다. 마치 근육갑옷을 입은 것 같은 몸이다. 오년 전 몸을 완전히 회복했다. 운동으로 다시 만든다고 다짐한 몸이 저절로 이렇게 됐다.
‘운석.’
그 힘으로 인해서라는 걸 한건은 소름처럼 깨달았다.
그래서 기분이 묘하다, 좋으면서도 꺼림칙하다.
한건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게 아니어서다.
‘그렇다고 물릴 수도 없는 거, 여기에 내 노력을 더하자.’
고민할게 아니기에 한건은 그렇게 마음먹었다. 어쨌든 운석은 몸 안에 있음이다. 그 힘으로 인해 다리가 정상이 됐고 오년동안 방치됐던 몸으로 적들을 상대 한 거다. 다리만 정상이라면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일이다.
‘오늘은 주민센터도 들르고 할 일이 제법 있지.’
옷을 갈아입으며 한건은 오늘 할 일을 순차적으로 정했다. 코펠에 불을 받아 버너에 끓이고 즉석밥을 넣었다. 그러며 새삼 집안을 돌아봤다.
‘잘 살고 싶었는데……’
남들처럼 제대로, 잘 살고 싶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집 안에 그럴듯한 가구와 가전제품도 들여놓고, 좋은 여자도 만나고 싶었다.
그랬는데 그렇게 되질 못했다.
지금은 이런 곳에서 이러고 있는 거다.
“지금 상황이 이럴 뿐이야. 그렇게 산다, 살 거다, 반드시.”
강한 눈빛으로 독백을 뱉은 한건은 아침을 차려 먹었다.
* * *
“청록원의 이름이 드러났으니 북극 사태가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폰을 귀에 댄 현인규는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신에게 피를 준 아버지, 현중그룹의 회장, 현태수라라는 이름으로 재계를 호령하는 거목이다.
신중하지만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부친의 목소리는 경고한다.
-북극사태의 진상이 그대로 알려질 일이야 없을 테지만, 그룹의 이름이 청록원과 같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거다. 해동기지는 어쨌든 우리그룹이 운영하던 것이니까 당연한 일이야. 우려하던 일차적 위기상황이 온 거다. 위기는 기회다. 청록원이 위축해 있을 때에 목표를 확보하도록 해.
그렇게 못하면 모가지를 치겠다는 것 같은 느낌에 현인규는 바로 반응했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그래, 그런데 한건이란 그놈이 그럼 운석 세 개를 가진 거냐?
“그렇습니다. 이종수에게서 운석이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그놈이 참 보통 놈이 아니구나. 그것도 운석 때문인 건가?
“영향이 분명 있을 겁니다만, 한건이란 인물 자체가 예사인물이 아닌 걸로 판단합니다.”
-그렇지?
한건의 인사파일을 들고 있을 부친 현태수를 떠올리며 현인규는 말했다.
“한건이 살려낸 직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누구? 음, 다시 살아났다는 아이?
“그룹연구소로 보낼까요?”
-급하게 굴지 마라. 우선은 현안이다. 운석을 확보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
“알겠습니다.”
-대답만 잘하지 말고, 어떻게 할 건지는 생각하게 있냐?
현인규는 즉답을 못했고 현태수 회장이 다시 목소릴 냈다.
-내 생각엔 심인구회장, 그자를 주시하면 될 것 같다.
현인규는 눈썹을 곤두세웠다.
심인구회장, 이종수가 복수하려한 대상, 그자가 살아 있다.
‘한건은 이종수의 죽음 앞에 있었어, 그의 운석을 가져갔지!’
운석은 폭력과 죽음에 즉응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소지했던 자의 복수의지, 그 폭력성이 한건에게도 작용하는 건 아닐까?
물론 뇌피셜이다. 그렇지만 가능성이 있다.
현재로선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잡아야 한다.
“잘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현인규는 바로 팀장들에게 전화를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