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종말전야. 29. 네 번째 운석.
29. 네 번째 운석.
-확인하고 확보해!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가져야 한다!
폰을 울리며 귀를 파고든 현인규 실장의 목소리에 최강호는 이를 물며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한 최강호는 거리를 돌아봤다. 기자를 비롯한 언론사인원들이 가득채운 강남경찰서 앞 도로, 이곳에서 한건의 자취는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있다. 청록원놈들, 대성리에서 본 그놈도 여기 있다.
‘위장을 했어도 알아볼 수 있어.’
그놈 역시 그럴 거다.
최강호 자신의 현재 모습처럼 비니모자를 쓰고 뿔테 안경과 마스크로 얼굴을 거의 가렸지만 본질의 기세로서 알 거다.
그런데 당면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박인수다.
시체를 확인해야 한다.
‘한건의 조종을 받은 게 아니라면, 만에 하나라도 운석을 가졌다면.’
현인규 실장의 강력한 지시는 그것이다. 그러니 이제 박인수의 시체를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그건 청록원 놈들도 같은 생각일 거다. 그러니 빨리 움직여야 한다. 자살한 박인수의 사체를 옮겨간 병원부터 찾는 거다.
‘도대체 이건 뭐야?’
심인구의 눈과 심장에 총탄을 박아 처단한 박인수경정, 그가 마지막에 자살한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 배경을 알기 위해서라도 확인해야 한다.
박인수경정의 폰과 개인물품 등, 주변관계까지 확실하게 파헤쳐야 한다.
‘한건, 너는 정말로 이 거리에 없었던 거냐?’
사진과 영상으로 본 한건, 그의 얼굴을 떠올리던 최강호는 하늘이 찌뿌등하게 변하는 걸 봤다.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이 비가 쏟아질 판이다.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있었던 것도 같다. 어 하는 사이 빗방울이 떨어진다.
“팀장님, 앰뷸런스가 간 병원을 확인했습니다.”
곁으로 와 속삭이는 팀원을 돌아본 최강호는 바로 몸을 돌렸다.
* * *
‘강남y대학병원.’
차가 달려가는 목적지의 이름을 속으로 되뇌며 유한기는 차창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흐린 하늘이 토해내기 시작한 빗줄기는 제법 강하게 차를 때리고 있다. 그 박자에 맞춰 손가락을 두들기지만 긴장은 더 하다.
‘현중이 손쓰기 전에 해야 해.’
강남경찰서에서 빠져나간 앰뷸런스를 추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당장은 당황했었다. 심인구와 박인수의 사체를 싣기 위해 나타난 등장이 너무 갑작스러워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당연한 대응과 순서다.
인질극이 벌어지자마자 강남경찰서에선 119구급대원들을 부른 거다. 일련의 상황이 시작과 동시에 결과까지 급박하게 흘러가 종결돼 당황을 부른 것이다. 그 결과를 쫓아 지금 간다. 박인수의 사신을 확인해야 한다.
‘운석 소지자인지, 그렇다면 운석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
속도를 내는 탓에 거칠게 흔들리는 차의 진동 속에서 유한기는 의미를 곱씹었다.
오늘, 직전에 보고 겪은 사건의 의미다.
박인수라는 경찰이 갑자기 등장해 심인구회장을 처단한 이결과에 무슨 내막이 있는 걸까.
‘결국 응징을 한 거야.’
씨마운틴리조트 화재사건.
전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그 대형참사의 주범이라고 할 인물들이 죽었다.
보스몹이라고 할 심인구 회장은 눈이 터지고 심장이 구멍 나 죽었다.
투신한 윤기훈도 조금 전 사망했다고 한다.
‘이종수, 그의 복수는 성공한 거야.’
이종수만이 아니라 유족들 전체의 복수가 이뤄진 거다. 그런데 이종수는 복수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 바톤을 받듯이 박인수가 등장한 거다.
아무 관계가 없는 자, 현재까지 연관성이 찾지 못한 인물의 복수다.
‘제 삼자의 조종을 받은 건지 당사자에게 운석이 있었던 건지, 그렇다면 왜 이런 식의 결말인건지, 하, 아무것도 모르고 짐작만 하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에 유한기는 가슴을 쓰다듬었다. 체해서 막힌 속을 뚫으려는 듯이다. 그러는 사이 차는 병원에 도착했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신속하게.’
머릿속으로 플로우차트를 그리며 유한기는 팀원들을 돌아봤다. 소음기 장착한 m4a1 소총을 점검하는 그들은 청소원 복장으로 변복하는 중이다.
‘강력하게, 한방에.’
품안의 권총을 움켜쥔 유한기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 * *
흔들리는 전철의 진동 속에서 한건은 폰을 들여다봤다.
-강남경찰서는 현재……
이어폰을 통해 들어오는 뉴스 내용은 박인수와 심인구회장의 죽음 위를 더듬고 있다. 충격적이고 이해 못할 사건, 이종수란 인물이 뉴스를 탄지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다. 원인은 씨마운틴리조트화재사건이다.
-강력계과장으로 재직 중인 박인수경정은 씨마운틴리조트사건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사건 수사에 관여한 적도 없고 유족은 더욱 아니며, 오늘 사건 이전까지 전혀 무관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그런 사람이 심인구회장을 사살했다.
강남경찰서 안에서, 중인환시리에 권총을 발사했다.
그 이유를 밝혔다.
마땅히 죽여야 할 죄인을 처단하는 거라고 했다.
정의의 발로이며 정당한 행사라고 했다.
그건 맞는 말이다.
‘법이 응징하지 못한, 오히려 보호한 죄인.’
박인수가 외친 말이다, 하나도 틀린 곳이 없는 소리다.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아이들, 부모의 가슴 속에 파묻힌 영혼들, 불속에서 죽어간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법이 무섭게 다스렸어야 한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발아래 있는 게 법.’
정말로 재수가 없어야 그 발을 헛디뎌 추락한다, 간혹 그런 자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한껏 누리고 웃으며 산다. 그럴 힘과 돈을 가져서다. 그 위세는 대를 이어간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만 억눌려 살 뿐이다.
-강남경찰서는 아무런 보도자료도 내지 않고 있습니다. 경찰서에서 보호 중이던 심인구회장이 경찰인 박인수경정에게 사살당한 초유의 사태인 겁니다. 인과관계를 밝히기 이전에 경찰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폰을 내린 한건은 전철 내부의 광고판을 응시하며 속으로 말했다.
‘이종수씨, 복수는 이뤄졌습니다.’
유언으로 남긴 그의 복수는 한건 자신의 손이 아닌 다른 자에 의해 이뤄졌다.
예상치 못한 일, 돌아가는 이 걸음이 자꾸만 망설여지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운석, 네 번째 운석이 한건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거다.
‘그에게 있었어.’
이젠 확신 한다.
박인수가 심인구를 처단하고 제 머리에 방아쇠를 당겨 자살한 직후에 전율처럼 느껴졌다.
네 번째 운석의 파장, 숨결을 느꼈다.
그렇지만 발길을 돌렸다.
내부에서 그 손짓의 파장을 거부한 거다.
‘내 속에 들어와 있는 운석들이.’
강렬한 그 느낌도 그랬지만 한건 자신도 그럴 마음이 없었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사체를 옮겨간 병원으로 현중그룹과 청록원에서 달려갈 것이다.
백주대낮에 그들과 싸우게 될 일은 피해야 한다.
‘내가 아무리 비상식적인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그들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철저하게 대응할 거다. 그런 위험을 지금 계획 없이 감수할 필요 없다. 무엇보다 운석들이 거부하고 있다.
‘이건 뭘까?’
정말 궁금해서 한건은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운석을 취할 때는 이런 현상이 없었다.
그런데 이건 왜일까? 더는 용량초과인 건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그렇다면 뭐가 달라서 그런 건가?
‘두 번째와 세 번째하고 다른 거라면……’
명확한 담을 찾을 수 없어 한건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 순간 비명이 터졌다.
“까아악!”
전철을 뒤흔드는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
사람들은 일제히 근원을 찾아 몸과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봤다.
좌석에서 일어난 여자가 뒤로 물러나 주저앉아 엉덩이를 미는 모습, 여자의 곁에 앉아 있던 남자의 발화.
화르르, 남자는 삽시간에 불덩이로 변해버렸다.
* * *
별관 지하3층의 시체실이다. 그곳에 박인수의 시체가 있다. 그곳으로 접근하자면 경찰의 협력이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을 이뤄 놨다. 서둘러야 한다.
‘청록원 놈들이 오기 전에.’
가죽점퍼 차림으로 최강호는 빠른 걸음을 냈다.
팀원들을 대동하고 걸어가는 이 모습은 누가 봐도 경찰이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병원관계자들은 그렇다는 눈빛이다.
강남경찰서 사건은 이미 뜨거운 화제, 다들 안다.
“수고 많습니다.”
시체실 앞 제복경찰들에게 엷은 미소로 인사하며 최강호는 안으로 들어갔다.
경관들의 거수경례를 뒤로 두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나란히 놓여 있는 지퍼백을 열고 박인수의 시체를 찾았다. 아직 옷 입은 그대로다.
‘운석을 가지고 있다면……’
정신없이 박인수의 몸을 뒤지던 최강호는 흠칫했다.
왼손목의 팔찌가 눈을 사로잡는다.
붉은 실을 꼬아 만든 줄, 팔찌에 매달린 작은 결정체, 투명한 유리질의 그 안에 든 것이 운석이다.
콩알보다 작은 크기지만 분명 그거다.
‘찾았다……!’
뜨거운 숨을 삼키던 최강호는 거칠게 열리는 문을 향해 반사적으로 고개 들었다.
한 순간 명멸하는 섬광, 본능이 일으킨 반사작용으로 몸을 던졌다.
하지만 화끈한 감각이 왼다리에서 피어났다.
바닥을 구르면서 권총을 마주 쐈다.
‘미친!’
청록원이다, 놈들이 닥쳐왔다. 그런데 이렇게 대응할 줄은 몰랐다.
여긴 강남 한복판의 대형병원이다.
백주대낮이다.
그런데 소총을 난사하고 있다.
물론 소음기를 장착했지만 미친 짓이다. 저것들이 제대로 미쳤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거구나!’
최강호는 시체가 놓인 부검대를 등지고 앉아 팀원들의 최후를 봤다. 같이 들어온 두 명이 벌집이 돼 즉사했다. m4의 세례를 받았으니 당연하다.
‘두 놈!’
탄창을 갈아 끼우며 미친 듯이 소총을 쏘고 있는 놈들은 둘이다. 시체실 입구에 서 있던 제복경관 두 명은 이미 죽었다. 나이프에 당한 그들의 시신이 문 안쪽에 쓰러져 있는 걸 봤다. 청록원 놈들은 막 나가고 있다.
‘이대로는 죽어……!’
권총을 두 손으로 움켜쥔 최강호는 새삼 황당한 충격을 삼켰다. 청록원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런 상황은 아니었다. 어느 쪽이든 선수를 친 쪽을 다른 쪽이 쫓는 형국일 거라고 예상했었다.
‘병원 안에서 소총을 난사 할 줄은!’
다가오는 놈들의 기척을 인지하며 최강호는 결심했다.
좌우에서 놈들이 오고 있다. 이대로는 어차피 죽는다. 대기 중인 팀원들도 지금 당장은 소용없다.
이 상황을 뚫고 나갈 방법은, 당사자는 최강호 본인이다.
‘이!’
피나게 악문 입술로 최강호는 몸을 돌렸다.
우측으로 구르면서 권총을 발사했다.
어깨와 등을 화끈하게 강타하는 감각 속에서 습격자를 쓰러뜨렸다.
그렇지만 다른 한 놈이 돌아와서 미친 듯이 소총을 난사한다.
바닥에 누워 꿈틀거리는 움직임 속에서 최강호는 늘어졌다.
* * *
사람들의 비명과 혼란 속에서 남자는 일어섰다.
불덩어리가 된 채로 주저앉은 여자에게로 다가간다.
여자는 바닥을 밀며 필사적으로 물러난다. 그런 여자의 움직임 아래로 액체가 흐른다.
공포에 질린 여자의 방뇨다.
“꺄아아아!”
사람들이 물러난 속에서 여자는 비명을 지른다.
불덩이가 된 남자는 여자를 덮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타오른다.
전철은 환승역을 말한다.
-이번 정거장은 상봉, 상봉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안내 방송 속에 속도를 늦추는 전철 안에서 한건은 겨우 현실로 돌아왔다.
앞을 막으며 물러난 사람들의 뒤에서 본 광경, 여자와 남가가 불타는 무시무시한 광경이다.
왜 갑자기 저런 일이 생긴 건지 예감이 든다.
‘운석……!’
생뚱맞고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이지만 그럴 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런데 생각을 이어갈 틈이 없다.
전철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미친 듯이 뛰어나간다. 그 움직임에 밀려 전철 밖으로 나왔다.
내부는 불이 퍼지고 있다.
* * *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다는 걸 최강호는 느꼈다.
이제 죽는 거구나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지나온 삶이 모든 시간들이 스쳐간다.
죽을 때가 되면 이렇다더니 정말이다.
뭐하자고 그리 악착같이 살았던 걸까.
‘그저 남들처럼 살고 싶었던 건데……’
그렇게 살지 못하고 이제 죽는다.
허무하다.
아니 억울하다. 화가 난다.
이대로는 죽을 수 없다.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왜 죽어야 하나?
‘죽기 싫어……!’
최강호는 봤다.
마음속으로 죽기 싫다고 외친 순간 손에 피어난 빛이다.
무지개빛 같기도 하고 오로라 같기도 한 빛, 찰나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런데 다시 숨이 쉬어진다.
몸에 박힌 총탄들이 밀려나간다.
‘이건……!’
운석, 손에 쥐고 있던 박인수의 팔찌가 만드는 일이란 걸 최강호는 깨달았다.
“흐으.”
깊은 숨을 이사이로 뿜어내며 최강호는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