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종말전야. 31. 괴변, 괴이.
31. 괴변, 괴이.
-영상에 보이는 것과 같이 남자는 갑자기 불덩이로 변했습니다.
사건보도프로그램을 달구고 있는 것은 한건 자신이 본 전철역발화사건이다. 아니 그보다도 강남경찰서에서 일어난 심인구회장 사건이 더 충격적인 일이지만, 너무나 생생한 발화사건영상은 그에 못지않게 뜨겁다.
‘sns를 타고 퍼지는 영상을 제어하기기 쉽지 않겠지.’
정부당국은 고심하며 분주할 거다.
강남경찰서 영상도 그렇지만 전철 안 발화사건 영상도 삽시간에 퍼지고 있다.
tv에서 나오는 저 영상은 모자이크 처리가 된 거다.
왜 저런 일이 생긴 건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남성 a씨와 여성 b씨는 연인사이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거주지가 춘천인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던 중 참변을 당한 상황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원인을 찾기 위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만, 발화 원인이 뭔지를 찾아내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영상을 보면 남자가 갑자기……
불덩이가 된 사건, 저 원인을 찾기 힘들 거다. 운석이 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 짐작이 맞다면.’
틀리지 않을 거란 확신으로 한건은 이어지는 앵커의 목소리를 들었다.
-유일한 단서는 남성 a씨의 전화기입니다. 발화가 일어나기 직전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목격자의 증언이 나왔습니다. 폰에서 불이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배터리 화재사건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는 결과입니다. 남성 a씨는 그야말로 삽시간에 전신이 불덩이로 변해버린……
폰 배터리로 인한 발화가 아님을 한건은 직접 봤기에 안다.
그런데 의문은 그 부분이 아니다.
목격자에 의하면 폰에서 불이 시작됐다는 거다.
남자가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거다.
역시 폰을 통해 작용한 거다.
‘직접 전화를 건 건 아니고, 뭐지?’
폰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을 텐데 그럴 수가 없다. 남자와 함께 불타버렸다.
‘혹시 문자?’
가능성이 있다.
제삼자, 운석소지자가 남자에게 문자를 보냈고 그걸 본 남자가 행동한 거다.
전화통화를 통해 한 것과 같은 결과를 만든 거다.
‘내가 pc에 기록하고 녹음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면……!’
피부에 돋는 소름을 느끼던 한건은 이어지는 시선을 폰에 고정했다.
-강남경찰서를 발칵 뒤집은 사건, 현직 형사과장이 일으킨 범행에 경찰내부는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심인구회장의 저택에 불을 지른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이종수씨가 남양주 화도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직후……
앵커의 눈동자는 흥분으로 빛나고 있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씨마운틴리조트화재사건입니다. 2년 전 대한민국을 충격과 분노로 몰아넣은 참혹하고 비극적인 사건, 그 핵심책임자로 재판을 받았지만 무죄가 된 심인구회장을 이종수씨는 해치려했습니다.
말하는 동안 감정이 고조돼 그런지 앵커는 짧게 숨고르기를 했다.
-일심과 이심의 연속적인 무죄판정에 유족들은 항의하며 대법에 상고를 한 마당이지만, 심회장은 법의 심판이 아닌 경찰의 총탄에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려던 장본인 이종수씨는 남양주에서 살해 된 변사체로 발견됐습니다. 현장엔 총기를 소지한 두 명의 남자가 역시 사체로……
그 현장에 있었기에 한건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같은 지역 내에 있던 윤기훈의 투신자살입니다. 그는 전 화성시청공무원으로서 씨마운틴리조티화재사건의 핵심관계자입니다. 아내를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하다가 끝내 투신했습니다. 그가 투신 전에 주장한 내용들은 죄값을 치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고 행동을 한 건지 추측이 힘든 가운데, 일련의 사건들이……
앵커의 이야기 뒤로 패널들이 드디어 입을 열고 있다.
누구라도 추정할 이야기들이다.
씨마운틴리조트화재사건이 사안의 원인이고 핵심이란 거다.
초등학생도 연결할 사건들이다. 그렇지만 진실이 뭔지는 모른다.
‘운석.’
주먹 쥐었던 손을 편 한건은 손금이 선명한 손바닥을 응시했다. 이 속으로 파고 들어간 운석, 세 개나 되는 그것들이 새삼스러워 숨이 뜨겁다.
-사건들의 배경이 뭔지 경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서 밝혀야 할 겁니다.
흥분을 억누르며 말하는 패널은 오랜 시간 현직 경찰로 근무했다는 사람이다. 같은 뿌리를 가진 현직경찰이 벌인 범행으로 인해 흥분한 얼굴이다.
-박인수경정이 무슨 이유로 심인구회장을 사살했는지 밝혀내야 합니다. 이사건과 이종수씨의 사건, 윤기훈의 투신자살은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확실한 연관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결과입니다.
-그렇죠, 그래서 괴변이라고 말들을 하는 것 같습니다만.
앵커가 기어들지 차가운 눈빛을 내며 패널은 다시 말했다.
-이 사건들은 분명히 흑막이 있습니다. 그것을 경찰은 철저하게 수수해 밝혀야 할 겁니다. 괴변이라는 말로 방패를 만들고 어물거리다간 또 무능경찰이란 말을 듣게 될 겁니다. 제대로 수사하고 확실하게 진상을……
-아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다시 말을 자른 상황이 된 앵커를 패널이 재려보는 가운데 속보가 나왔다.
-강남y대학병원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제보입니다.
한건은 눈썹을 거칠게 세웠다.
* * *
이가 부러지는 소리를 악문 입사이로 낸 현인규는 영상을 노려봤다.
청록원 놈들에게 공격당한 3팀장 최강호가 죽는 광경이다.
청록원 놈들은 시체실을 비롯해서 현장을 수습한다고 했지만 이걸 놓쳤다.
지하주차장의 차안에서 잠자던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블랙박스영상을 올린 거다.
‘아무리 별관 지하주차장이었다고 해도 이것뿐인 게 다행이지.’
시체실을 비롯해 병원의 혐오시설이라고 할 부속시설들이 모여 있는 곳이 제2별관이다. 대낮이었지만 차량출입이 거의 없는 곳인 거다. 장례식장 건물과는 또 따로 떨어져 있었기에 놈들은 마음 놓고 총질했다.
‘그래도 결국 샜어,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하나.’
분노 속에서 현인규는 이 결과의 기묘함에 전율했다.
운석의 가능성을 찾아간 3팀장 최강호는 끝내 운석을 확보했다.
그런데 청록원 놈들에게 당했다.
백주대낮에, 강남의 대형병원에서, 놈들은 소총을 사용했다.
그래야 할 청록원의 다급함과 단호함을 알겠다.
그래서 이련 결과가 만들어진 것이다.
박인수와 심인구의 시체를 보관하던 시체실 앞엔 경관들도 있었다.
그들을 예기로 살해했다. 다른 장소에서 그들은 발견될 거다.
‘엉뚱한 사건으로, 강도와 격투를 벌이다 칼 맞고 순직한 걸로 만들려 했겠지.’
그런데 일이 이렇게 틀어진다. 최강호를 제압하느라 미친 듯이 총을 쏴댄 영상이 블랙박스에 잡혔고, 놈들이 수거해가지 못한 그 영상은 떴다.
영업사원의 말에 의하면 블랙박스를 떼자마자 짐 속에 숨었다고 한다.
‘승합차 뒤의 약품박스 사이에……’
청록원 놈들은 그렇게 구멍을 만들고 철수했다. 처리반이 와서 지하주차장의 총구멍들을 메우고 탄피를 줍고 하는 일을 처리하는 동안, 두려움 속에서 갈등하며 시간을 흘려보낸 영업사원은 방송사에 제보한 거다.
그런데 그런 과정과 결과들이 중요치 않다.
최강호가 운석을 가졌었다.
‘수십 발의 총탄을 맞고도 저렇게……!’
벌집이 된 suv를 벽에 추돌하고 나온 최강호는 계속 총탄을 맞았다.
그렇지만 죽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를 죽였다.
그런데 그게 또 뒤집어졌다.
‘운석이 옮겨 갔어……!’
그런 결과란 걸 현인규는 확신했다.
최강호를 막고 총격을 퍼부어댄 놈, 청록원 놈은 최강호의 손에 죽었다.
최강호의 손이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그런데 마지막의 죽음은 최강호고 놈은 살아났다.
원인은 운석이다.
“괴이……!”
뜨거운 숨으로 중얼거림을 흘려낸 현인규는 위스키를 거칠게 넘겼다.
* * *
뜨거운 물을 맞는 몸이 거울 속에 보인다. 가슴에 아무런 자국도 남아 있지 않다. 현중그룹 그놈의 손이 뚫고 들어갔던 가슴인데 흔적이 없다.
‘죽어야 했는데 살아났어. 한건, 그놈처럼……’
운석이 변화시킨 자신을 유한기는 유심히 바라봤다.
거울 속의 얼굴은 달라진 게 없다.
그런데 달라졌다.
최강호가 운석 때문에 총을 맞고도 죽지 않았듯이, 유한기 자신은 죽지 않고 살았다.
운석을 받아들였다.
‘최강호에게 있던 운석이 내게로 옮겨왔어. 그런 게 가능한지 몰랐을 거야.’
운석이 다른 자에게 이렇게 옮겨진다는 것을 청록원도 현중도 몰랐다.
최강호는 손목에 그 팔찌를 차고 있었다. 그 주먹이 가슴에 박힌 거다.
그런데 이련 결과가 났다.
이제 운석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 가슴을 열어야 하는 건가?’
미간을 찌푸린 유한기는 이 결과로 인한 것을 더듬었다.
‘위에선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유한기 자신은 이제 어떻게 될지도 의문하다.
‘운석을 확보한 결과이긴 하지만……’
현장을 수습하는 건 물 건너갔다. 처리반이 움직이는 동안 터지고 말았다. 일이 벌어지는 동안 지하주차장의 승합차 안에 숨어 있던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영상을 방송사에 보냈다. 그런 구멍이 있는 줄 전혀 몰랐다.
‘일이 이렇게 되면 경찰 내부의 협력도 기대하기 어려워.’
시체실 앞을 지키던 제복경찰관 둘을 처리했다. 그들의 죽음을 다른 모양으로 꾸미기 어려워 질 거다. 경찰도 제 보신을 위해 움직일 것이다.
영상엔 유한기 자신이 자동소총을 발사하는 모습이 뚜렷하게 잡혀 있다.
‘그보다는 현중그룹 놈이 죽고 내가 살아난 게 문제지……!’
그 광경이 고스란히 블랙박스영상에 잡힌 거다. 그래서 뉴스가 지금 난리다. 연이은 충격사건들에 이은 괴이한 사건인 거다. 강남한복판의 대형병원 주차장에서의 총격전도 놀랍지만, 싸운 자들의 생사가 황당함이다.
‘총을 맞고 죽지 않은 현중 놈, 그놈 손에 죽었어야 할 내가 살고 놈이 죽은……’
황당무계하다는 말로는 설명조차 안 되는 괴이한 사건.
뉴스는 괴변이라고 말하고 있다. 영화를 촬영한 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한다.
하지만 방송국과 기자들은 역시 빠르다.
법영상감식전문가의 감식까지 마쳤다.
일체의 조작이 없는 실제영상이란 결과로 병원내부의 상황을 훑었다. 그렇게 시체실까지 찾은 거다. 처리반이 채 다 처리하지 못한 총격전의 흔적이다. 박인수경정과 심인구회장의 시체가 보관된 곳에서의 사건인 거다.
‘운석을 가진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현황의 급박하고 중대함 보다 유한기는 그게 궁금하고 긴장된다.
현중놈의 손을 통해 가슴 속에 들어간 게 확실한 운석, 그걸 꺼내려고 이 가슴을 갈라야 하는 걸까?
위에서 그렇게 할까? 그걸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뭣 때문에?”
거울을 보고 그 말을 뱉은 유한기는 순간 흠칫했다.
명령은 절대적이다.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고 의심을 품은 적도 없다.
그런데 지금 그러고 있다.
이러는 이유가 운석 때문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개처럼 혹사당하고 내가 얻는 게 뭐야?’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반발을 유한기는 억누르려고 했다. 그런데 되질 않는다. 억누르려는 것 자체가 웃기는 거고 노예근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운석이 날 선택했어, 이건 그런 거야.’
확신을 이 사이에 물고 거울속의 자신을 본 유한기는 욕실을 나갔다.
* * *
저녁 먹는 것도 잊고 한건은 폰으로 뉴스와 기사를 봤다.
괴변이라고 언급하는 사건영상을 다시 봤다.
강남y대학병원 주차장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청록원과 현중이 분명한 놈들이 붙었다.
운석을 차지하려는 싸움이다.
‘차에 숨어 있던 제약회사 영업사원이라니, 황당하네.’
진실의 창은 이렇게 열렸다.
현중도 청록원도 지금 황당함을 삼키고 있을 거다.
한낮의 도심에서, 대학병원에서 저런 짓을 벌일 정도로 저들의 목적의식이 대단하지만, 사후수습에 자신이 있어서 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부서졌다.
박인수경정과 심인구회장의 사체가 있던 시체보관실의 상황도 드러났다.
일의 시작은 그곳인 거다.
현중이 먼저 박인수에게서 운석을 찾아낸 거다. 그걸 청록원이 차지하려다 저렇게 됐다.
‘괴변, 저게 왜 저런지는……’
운석을 가졌던 현중그룹의 남자가 죽이려던 자에게 운석을 빼앗겼다.
주먹을 가슴에 박았으니 죽인 거다.
그런데 본인이 죽고 상대는 살아났다.
그 광경이 고스란히 블랙박스에 담겼고, 지금 뉴스와 온라인에 퍼졌다.
‘운석 때문이라는 진실은……’
한건 자신만이 안다. 아니 현중과 청록원도 안다. m4a1을 난사한 저놈들은 청록원이다. 천마산을 넘어 갔을 때 현중을 습격했던 저놈들은 공권력 주머니를 가졌다. 하지만 이 사건은 저희 입맛대로 할 수 없게 됐다.
“너희가 운석 하나를 가졌구나.”
폰을 내린 한건은 이일의 흐름이 어떻게 될지 생각했다. 어둠이 내린 거실 창밖은 고요할 뿐이다. 그러나 저 고요 속엔 출렁임이 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