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82화 (182/200)

[외전] 종말전야. 32. 진실의 주머니.

32. 진실의 주머니.

손끌이 떨려서 윤지희는 물 잔을 다시 내렸다.

tv를 달구며 쏟아져 나오는 저 사건 보도들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3팀장 최강호가 청록원의 손에 사망했다.

박인수경저ㅤㅏㅇ에게서 운석을 확보한 그가 다시 뺏긴 거다.

‘괴변……!’

언론은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다. 총탄을 맞고도 청록원 요원을 해친 최강호와, 가슴에 손이 박히고 죽었어야 하지만 되살아난 청록원 요원의 일이다. 씨마운틴리조트사건 관계자들의 죽음과 연관된 더 큰 괴이다.

“후우.”

큰 숨을 뱉으며 몸에 들어찬 충격과 흥분된 감정을 윤지희는 몰아냈다.

괴이라는 말이 가장 자 어울리는 대상은 바로 윤지희 자신이다.

이제 진실의 주머니는 열렸다. 냉정하게 현상황을 받아들이고 생각해야 한다.

‘유튜버들까지 달려든 마당.’

사건사고만 일어나면 개떼처럼 달려드는 골칫덩이들이다. 그들의 행위는 짜증을 넘어 공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때론 핵심에 접근하기도 한다. 그들은 어느새 한건 사건까지 연관해서 괴이사건을 말하고 있다.

‘녹양역 오피스텔에서 생중계를 해대는 마당……’

제라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유튜버는 9층 현장 복도까지 올라가 중계했다. 수습팀에서 처리한 흔적들을 용케도 찾아내 총격전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길 건너편 옥상에서 불량청소년들이 찍은 영상으로 해설했다.

“하아.”

자신도 모르게 다시 나온 한숨을 삼키며 윤지희는 폰을 들여다봤다. [제라드세상]이라는 이름의 유튜브채널, 그 안에 이미 본 영상을 재생했다.

-여러분, 보이는 것과 같이 이 영상 속의 섬광들은 분명히 총격으로 인한 겁니다. 이것들이 보인 직후에 이 남자가 뛰어내립니다. 하, 정말 건너편 옥상에서 술 처마신 애새끼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워, 보셨죠? 이 남자는 누군지 모를 다른 남자의 머리를 잡고 뛰어내렸습니다.

한건을 떠올리며 입술을 문 윤지희 귀에 다시 제라드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특전사 출신인 제가 확실하다고 외칩니다. 오피스텔 안에서 터진 섬광들은 분명히 총격에 의한 겁니다. 한건이라는 남자가 9층에서 점프해 내린 건 뭐라고 설명하지 못하겠습니다만, 지금 우리가 캐는 게 그거 아닙니까? 괴이, 괴변, 이후로 여태 일어난 일들이 다 이런 식입니다?

윤지희의 시선을 조롱하듯이 제라드는 비웃음으로 이야기 한다.

-한건은 머릴 잡고 뛰어내린 남자를 살해했습니다. 저기 보이는 저쪽, 3번 도로가 지나가는 대로 건너편, 중랑천이 흘러가는 다리 밑에서 그런 겁니다. 예, 경찰은 입에 지퍼를 닫고 있습니다만, 시체를 수습하는 걸 목격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웃기는 건 용철이파의 대응입니다. 그 조폭새끼들은, 아 이거 조금 무섭긴 합니다. 그래도 조폭 아니겠습니까?

키득 거리고 웃는 제라드, 폰 화면 속 그를 보며 윤지희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미 봐서 아는 내용이지만 그랬다. 말대로 웃기는 일이다.

-용철이파 보스 조용철 회장, 그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거창하지만 지 혼자 기자들 몇 불러놓고 한 짓거립니다. 자신은 조폭이 아니며 건실한 사업가라는 것, 삼화파이낸스와 엮어서 범죄자로 낙인 찍히는 일에 강력히 저항하겠다는 겁니다. 경찰에서 이야기 하는 내용은 완전한 날조이며, 경비회사를 비롯한 전직원의 신원과 알리바이를 밝혀……

조용철은 그렇게 했다.

그의 대응이 드러나지도 않고 묻힌 것은 연속해서 터진 사건들 때문이다.

오늘일로 해서는 더 신경도 안 쓴다.

경찰도 용철이파의 반발을 신경 쓸 틈이 없다. 저희 속에서 폭탄이 터진 거다.

-한성병원에 불을 내서 사람들 수십 명을 죽인 의사새끼, 함인호 그 놈은 미친놈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놈이 경찰이 쏜 총을 맞고 안 죽었걸랑요?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니 뭔가가 아니라 그냥 이상하죠?

사림이 총을 맞고 어떻게 안 죽어? 판 표정으로 제라드는 계속 지껄인다.

-황당한 이런 일이 오늘도 생겼다는 거 아닙니까? 강남y대학병원 제2 별관 주차장, 거기서 생긴 영화 같은 일을 다들 아시죠? 예, 병원 의사새끼들한테 주라고 받은 뒷돈을 지가 쓰던 제약회사 영업사원 놈이 거기 자빠져 자고 있었죠. 어떻게 아냐고요? 내 친구가 그일 하거든요?

다시 생각해도 기묘하고 황당한 우연임을 윤지희도 공감한다.

-그 영상 봐서 알겠지만 다들 황당하시죠? 지들이 무슨 영화 주인공도 아니고 말이죠, 미친 듯이 총질을 해댔잖습니까? 강남한복판 병원에서 대낮에요? 그랬는데 한 놈은 총 맞고도 안 죽고, 다른 놈은 가슴에 손이 박혔는데도 안 죽었습니다. 아 그리고 총 맞았던 놈은 죽었습니다만.

일련의 그 과정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 일이 아니잖아요? 그죠? 내가 헛소리 하는 게 아니잖아요? 영상 본 사람들이 다 눈이 삔 게 아니잖아요? 그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방송사에다 한 말 들으셨죠? 수상한 남자들이 사건 직후에 들이닥쳐서 블랙박스 다 뜯어가고 탄피 수거하고 총 자국 메우고, 그 지랄 했다잖아요? 블래박스는 차 도둑이 들어서 훔쳐갔다고 할라고 한 거겠죠?

제라드는 한 박자를 두고 강한 목소리를 이어냈다.

-그 새끼들이 누구냐는 겁니다?

흠칫하는 윤지희의 눈동자에 폰 속 제라드의 모습이 비쳤다.

-뭐하는 것들이길래 그럴 수 있는 거고 그러냐는 겁니다? 총싸움을 했습니다? 영화 아닙니다? 대한민국에선 총기를 휴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놈들이 그런 놈들이라는 겁니다! 그것들이 박인수경정과 심인구회장의 사체가 보관된 사체실에서부터 싸운 겁니다!

제라드는 역시 한 박자의 사이를 둬 긴장을 키우며 소리친다.

-뭣 때문에 그러냐는 겁니다!

알면서도 움찔하는 윤지희에게 하듯 제라드는 계속 소리친다.

-총싸움은 계속 있었습니다! 여기, 지금 제가 서 있는 녹양역 오피스텔에서부텁니다! 이종수는 총 맞아 죽었습니다! 거기 같이 죽어 있던 두 남자는 총을 가졌습니다! 누군가 제보를 해서 경찰이 덮지를 못했죠!

윤지희가 다시 한건을 떠올리는 순간 제라드는 그 이름을 말했다.

-누가 제보를 했을까요? 한건일까요? 이건 또 무슨 헛소리냐고요? 그가 왜 끼어드냐고요? 나도 모르죠? 근데 이상하잖아요? 무쟈게 이상한 사건들이잖아요? 한건 사건부터 그렇잖아요? 여러분은 안 이상합니까?

제라드는 흥분을 가라앉히듯 휴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자 냉철하게 사건들을 분석해 보자고요. 최근에 강력사건들이 빈발했습니다. 의정부 천변 살인사건, 입양아 학대 살인자 년놈 사건, 조용철 자살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 한건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는 여기 녹영역 오피스텔에서 친구와 약혼녀를 살해하고……

아니야, 하며 윤지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 이후에 함인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건 사건 다음 날이죠. 함인호는 천마산에서 칼로 제 모가지를 땄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요, 산 너머 마을에서 생긴 일입니다. 거기 수목원이 있는데, 당직자가 불꽃놀이 하는 걸 봤다는 겁니다. 예, 불꽃놀이 아닙니다, 총싸움입니다. 마을 노인 몇 분은 못 보던 차들이 다녔다고 했습니다. 이거 딱 견적 나오죠?

자신이 만든 흔적이기에 윤지희는 입술을 물었다.

-한건이 오피스텔에서 죽였다는 놈들, 경찰이 용철이파 조직원들이라고 한 새끼들, 용철이파는 아니라고 하는데 정말 조폭들일까요? 정말 조폭이라면 여럿이서 한 놈을 못 잡아 죽일까요? 아 물론 한건은 9층에서 점프하는 존재입니다만, 예, 그 부분은 경찰도 다른 헛소리 못하고 있죠?

날카롭게 눈을 번득인 제라드는 다시 핵심을 짚어 나갔다.

-총질하고 뒈진 놈들의 정체가 뭔지 모르지만 한건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조폭? 까라고 하세요. 바로 그놈들인 겁니다. 오늘 병원에서 총질한 놈들이라 이겁니다. 그것들이 천마산 너머에서도 출몰했던 겁니다. 왜일까요? 당근 거기 사냥감이 있어서죠, 사냥감은? 예, 한건일겁니다.

제라드는 진한 미소를 피워냈다.

-이제 보이시죠? 이 흐름이요? 그 다음이 어딥니까? 남양주 화도라 이겁니다. 씨마운틴리조트화재사건 주범새끼, 아니 법원이 무죄를 안겨 췄으니까 그건 아닌가요? 아무튼 비리공무원 윤기훈이, 그 새끼가 13층 아래로 다이빙했죠. 바로 그 동네에서 그날 밤에 이종수가 죽어버린 겁니다.

제라드의 미소는 차갑게 피어났다.

-얘기했죠? 제보한 자가 누구냐고요? 이종수와 총 가진 두 놈이 죽어 있는 걸 방송사에 알린 자가 누구겠습니까? 아니, 총 가진 놈들을 죽인 게 누구일까요? 예, 이종수는 총 가진 놈들이 죽인 거 맞고요, 맞습니다.

짝짝짝, 세 번 박수까지 친 제라드는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를 이었다.

-그 다음이 바로 오늘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강남경찰서 형사과장 박인수가 심인구회장을 권총으로 쏴죽이고, 시체가 실려 간 병원에서 총싸움이 일어나고, 죽어야 할 놈들이 안 죽는 걸로 보여준 괴이한 사건.

제라드는 입을 닫았다. 응축한 눈동자를 빛내기만 했다. 그러다 말했다.

-이것들 뭘까요? 뭣 때문에 이러는 걸까요?

* * *

‘어느새 나까지…… 유튜버들이 사건 현장을 훑고 다니는 구나.’

폰을 들여다 본 한건은 복잡하고 어처구니없는 감정을 삼켰다. 유튜브채널에서 앞 다퉈 내보내는 개인 방송들, 이 안에 진실의 조각들이 들어 있다. 음모론이라고 부를 만한 내용이지만, 진실을 품고 있는 이야기다.

‘운석을 가진 그자는……’

청록원의 그 남자는 이제 어떻게 될까, 아니 어떻게 할까가 궁금하다.

운석은 분명히 그에게로 넘어갔다. 그를 선택한 거다.

그렇다면 그는 이전과 다른 존재다.

그가 조직의 명령을 따라 운석을 내놓을지 의문이다.

‘거부할 거야, 운석이.’

확신을 이 사이에 물고 한건은 다시 뉴스를 검색하며 생각했다.

‘북극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내는 게 중요해, 병철이가 어떻게 된 건지.’

그러자면 북극에 가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방법을 찾으면 북극에 갈 방법이야 없지 않겠지만, 윤지희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그곳은 폐쇄됐다.

사건 해당국들의 조사팀들이 들어가 있는 거다.

‘역시 청록원과 현중을……’

생각을 씹던 한건은 눈썹을 세웠다.

-해동기지와 다산기지가 폐쇄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정부와 해양수산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기지종사자 가족들의 말에 의하면 일체의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고 합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해외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생겼다는 겁니다. 북극에 기지를 운용하는 나라들의 현재 상황이……

뜨거운 숨을 머금었던 한건은 길게 내쉬다 다시 멈췄다.

-연관된 사안으로 이종수씨의 사망현장에서 제보된 내용의 청록원, 정체성이 불분명한 그 기관에 대한 정보공개 요구가 거세지고 있습니다.

멈췄던 숨을 한건은 다시 흘려냈다.

* * *

-대기하고 있으면 지시가 있을 거다, 푹 쉬고 있어라.

백곰부장의 목소리를 귀에선 뗀 유한기는 폰을 침대에 던지고 tv를 틀었다.

깔끔한 비즈니스호텔답게 최신형의 벽걸이 tv는 ott서비스도 된다.

그런데 지금 그런 걸 즐길 때가 아니다.

돌아가는 판이 어떤지가 먼저다.

-일부 유튜버들의 주장처럼 일련의 사건들에 연관성이 있는지는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일입니다만,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한 사건이 또 발생했습니다. 상봉역 전철 안에서 발생한……

리모컨을 던지려던 유한기는 눈썹을 세웠다.

-남성 a씨는 폰을 들여다보던 중 갑자기 온몸이 불덩이로 변해……

오늘 낮에 일어난 사건이다.

유한기 자신이 현중놈의 손에 죽어야했는데 살아난 그때 이후다.

전철 안에서 발화한 남자가 여자를 안고 타 죽었다.

‘저건……?’

기묘한 소름으로 피부에 돋아나는 예감.

-a씨와 b씨는 연인 사이인 걸로 밝혀졌습니다. 현재 화재 원인을 국과수에서 조사 중입니다만, 그와 별도로 경찰은 사건에 범죄혐의점이 없는지를 수사 중입니다. 사건 당사자인 두 사람은 춘천시에 거주하는……

춘천이란 말을 이에 문 숨과 같이 삼킨 유한기는 그 순간의 변화를 인지했다.

‘가스!’

룸 천장에 배립된 통풍구로부터 흰색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보고 인지한 순간부터는 거칠게 뿜어져 나온다. 삽시간에 호엘 룸 안을 가득 메웠다.

이 상황이 말해주는 것은 명확하다.

조직은, 상부는 자신을 버렸다.

‘개새끼들! 뜻대로 안될 거다!’

침대 위 폰을 잡고 점퍼를 걸친 유한기는 창문을 향해 돌진했다.

두꺼운 페어유리를 전신으로 박살내며 점프했다.

7층 높이를 비상해 착지했다.

공교롭게도 호텔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방향을 바꾸던 차위다.

쾅, 지붕이 우그러지고 유리창이 산산조각 나는 가운데 비명이 터졌다.

번개같이 땅에 내려선 유한기는 위를 돌아봤다.

자신이 뚫고나온 객실 상하좌우에서 창문을 연 요원들이 내려다보고 있다.

경악한 눈들이다.

“난 이제 청록원이 아니다.”

나직하게 그 말을 뱉은 유한기는 뛰었다. 우사인볼트가 저리가라 할 스피드로 호텔 앞 도로를 달렸다. 뒤에선 동료였던 요원들이 쫓아오고 있다.

일산의 비즈니스호텔을 벗어난 유한기는 도심 속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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