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83화 (183/200)

[외전] 종말전야. 33. 도주, 단서.

33. 도주, 단서.

시간은 이제 막 12시를 넘었다.

11월 1일 월요일의 밤은 지나갔다. 아니 밤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2일로 들어섰다.

그 흐름 속의 세상은 혼란스럽다.

연이어 터진 사건들에 의구심을 가지고 달려들기 시작한 거다.

‘진실을……’

거실 창밖의 어둠을 응시하며 한건은 갈등하고 생각했다.

유튜버들이 떠들고 언론이 의심하며 국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 상황이다.

한건 자신이 던진 청록원이란 이름, 그 기관의 정보공개 요구가 거센 마당이다.

‘내가 모든 걸 밝히면……’

청록원과 현중그룹은 박살낼 수 있을 거다.

황당한 이야기지만 한건 자신이란 존재가 엄연히 존재하니까, 운석과 관련한 진실을 알릴 수 있으니까 가능하다.

그런데 그게 제대로 된 선택과 결정이냐는 다른 문제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국가적인 사안이야.’

북극에 기지를 운용하던 국가들은 다들 마찬가지 상황인 거다.

그들은 정보를 감추고 움직이고 있다.

진실은 나중일이다.

그 속에서 희생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운석을 확보하고 그로인한 이권확보가 최우선이다.

‘운석의 힘을 다 아는 마당에.’

모든 걸 다 알진 못하겠지만 운석이 어떤 일을 만들어 내는지, 그 힘이 어떠한지는 알고 있다. 북극사태관련국들은 그렇다. 아마도 그들 국가 내부에서도 운석소지자들을 찾기 위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거다.

그런 행태가 전정부적이고 국가적인 것인지, 아니면 권력을 독점하는 정보기관의 독단인지는 모르겠다. 국가별로 차이가 있을 테지만 분명한 건 누군가는 안다는 거다. 그들이 운석을 찾기 위해 행동하고 있다.

‘우린 청록원이란 놈들이 나섰고.’

현황을 곱씹던 한건은 자신이 진실을 밝히는 것과 그로인한 후과가 어떠할지를 거듭 생각했다. 역시 그렇게 한다면 정부기관이 아닌 시민단체와 언론을 통해서가 맞다. 그런데 성공여부를 떠나서 위험부담이 크다.

‘경찰위에서 움직이는 놈들.’

청록원이 그렇고 현중도 다르지 않다.

그들이 가진 힘이면 언론도 구워삶고 여론 조작도 가능하다.

벌써 그런 일을 시작했다.

역시 온라인이다. 제라드 같은 유튜버들의 주장을 음모론이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엔 드러난 일들이 너무 충격적이지.’

그렇지만 끊임없이 물고 늘어지며 물량공세를 펴면 일정정도 효과를 거둘 거다.

그사이에 한건 자신을 잡는 등의 일을 마무리 짖는 거다.

그런데 마무리가 되나?

운석소지자들로 인한 사건들이 계속해 일어나는데?

‘전철 안 발화사건은……’

좁힌 미간을 꿈틀거리며 한건은 그 일을 더듬었다.

남녀가 불덩이로 타죽던 그 현장, 그곳에 분명 운석소지자가 있었다.

남자에게 폰을 통해 일을 저질렀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확증은 없지만 확신 같은 예감이다.

‘이종수씨가 가졌던 운석은 출처가 어디인 걸까?’

운석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기념품 팔찌다.

그것이 박인수경정에게도 있었다.

시작은 또 다른 유족인 한만식씨였다.

운석은 최종적합자로 청록원 요원을 택했다. 그런 건지 그렇게 흘러간 건지 아무튼 결과는 그렇다.

‘다른 운석들이 어떻게 퍼진 건지를 알아내면 북극 사태를 추정하는데 도움이 될 거야. 그래, 우선 그 일을 하자. 그럼 춘천? 아니 유족이야.’

결정한 한건은 폰을 다시 들여다봤다. 씨마운틴리조트사건의 유족협회를 찾기 위해서다. 그런데 뉴스속보가 떴다. 일산에서 또 사건이 일어났다.

도심 속의 비즈니스호텔에서 누군가 뛰어내린 뉴스다. 7층의 높이다.

‘이건?’

눈동자를 확 응축하며 한건은 영상을 재생했다.

-보이는 것과 같이 7층에서 뛰어내린 남자는 차 지붕을 박살내고 도주했습니다. 예, 도주가 분명합니다. 남자를 다른 남자들이 쫓아갔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한건 호텔 측의 신고가 없었다는 겁니다. 박살난 차주의 신고도 없었고 뒤따르던 차량도 마찬가지, 블랙박스영상도 없습니다.

현장을 뒷배경으로 둔 기자는 냉철한 눈빛으로 이야기 한다.

-jwbc에서 본 영상을 확보하지 않았으면 소리 없이 묻힐 사건이었습니다. 이영상은 저편에 보이는 빌딩에서 제보자가 촬영한 것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비즈니스호텔이 코로나 대응 생활치료센터로 지정되는 것을 반대하는 시민모임의 관계자가 촬영했습니다. 호텔을 감시하다 우연히……

한건은 도주자가 누군지 알았다. 청록원의 그자, 운석을 가진 자다.

* * *

“당신들이 일을 이따위로 해놓으니까 우리 경찰만 욕을 먹는 거 아닙니까?”

황윤성은 차갑고 건조한 목소리를 폰 너머로 거듭 던졌다.

“우리 안에 있던 닭이 도망치도록 둔 능력이 한심합니다. 그런 일에 언제까지 뒷치닥거릴 해야 하는 건지 정말 짜증이 납니다. 잘 좀 합시다.”

폰 너머의 목소리, 백곰이란 별명을 가진 자는 별다른 대응 없이 끊는다.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그의 얼굴을 그리며 황윤성은 차갑게 웃었다.

“병신새끼들.”

폰을 책상 위에 떨군 황윤성은 새삼 사무실 안을 돌아봤다.

경찰청 정보외사부장의 집무실이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정말로 힘들고 고달팠다.

이제 고지는 멀지 않았고 열매도 따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지랄이다.

‘도대체 이건 뭐야?’

거칠게 미간을 찌푸린 황윤성은 습관적으로 반지를 돌렸다. 백금으로 제작한 굵은 반지다. 중앙에는 회색빛의 쌀알만한 결정이 박혀 있다.

‘도망친 그놈이 운석을 가졌다고?’

자신이 가진 운석, 지금 돌리고 있는 백금반자에 박혀 있는 행운의 돌.

그것 때문에 이 사달이 나고 있다.

일산 호텔에서 도망친 놈은 운석을 가졌다.

그놈이 강남y대학병원 주차장 영상의 그놈이다.

청록원 놈이다.

그놈을 가두고 있었는데 놓쳐버린 거다. 그렇게 된 이유가 운석 때문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없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현재 일어나는 일들이다.

운석소지자들이 출현하고 있다. 세상의 이목을 끌며 소동중이다.

‘뭐가……’

뭔지 모를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거, 일어나고 있는 흐름이란 것을 황윤성은 느꼈다.

시작은 북극이다.

해동기지와 다산가지가 폐쇄된 진실이 알려졌다. 그런데 그런 일은 다른 나라들도 같다.

그곳이 시작점이다.

‘운석.’

청록원의 모든 정보를 다 파악하진 못하지만 상관없다. 알아야 할 것들은 알고 있다, 오히려 청록원은 모르고 있다. 황윤성 자신에게 운석이 있다는 걸 그들이 알 리 없다. 반지 속의 이것은 십년 전에 얻은 거다.

‘내 것과는 다른 운석들이 출몰하고 있는 이일은……’

찌푸리듯 좁힌 미간으로 생각에 골몰하던 황윤성은 엷은 미소를 입가에 물었다.

‘운석을 더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반지를 돌리며 미소 짓던 황윤성은 그녀의 얼굴이 떠올라 미소를 지웠다.

‘초희.’

민초희, 자신에게 운석을 준 여자. 이것이 운석이라고 알려준 여자, 그녀는 죽었다. 차를 몰고 해안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그 얼굴이 생생하다.

“후우.”

짧고 강하게 숨을 뱉어낸 황윤성은 다시 폰을 들었다.

“나다, 어디까지 파악했나? 그래? 삼각관계였다고?”

폰을 통해 보고하는 부하직원의 목소릴 들으며 황윤성은 눈을 빛냈다.

“그놈이다. 소재를 파악해, 아니 접근하지 말고 나한테 바로 알려.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다른 기관 놈들이 붙을 거다. 드러나면 안 돼, 알겠지?”

부하 직원에게 거듭 강조한 황윤성은 폰을 내렸다.

지웠던 미소를 입가에 다시 피워냈다, 역시 예상대로다.

춘천에는 운석소지자가 있다. 그는 상봉역 발화사건 사망자들과 삼각관계였던 남자다.

바로 그놈이다.

‘하나를 더 가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진한 미소 속에 일어선 황윤성은 어둠 짙은 창밖을 응시했다.

* * *

주차장에 파킹돼 있는 차들을 응시하던 유한기는 밤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움직였다. 공터에 조성된 공용주차장이라선지 cctv는 없다. 그런데 솔직히 그걸 시험해 보고 싶다. 한건처럼 카메라를 먹통 만드는 거다.

‘나도 운석을 가졌으니까 가능할 거야.’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하는 건지는 모른다. 북극 다산기지의 모든 자료가 소실된 터라 운석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그나마 알아낸 것이 해동기지 경비대장이 현중에게 보낸 보고일지와 정기수의 일기다.

‘그것도 확보하지 못했으면 현중에게 물만 먹었겠지.’

어떤 방법이었는지 모르지만 청록원은 해동기지 경비대장의 일지를 확보했다. 그렇게 운석쟁탈전에 뛰어든 거다. 처음엔 현장요원들인 자신들도 정확한 내용을 몰랐다. 그렇지만 일을 하면서 모를 수가 없었다.

‘한건이 대표적인 사례.’

한건을 다시 떠올린 유한기는 그의 구체적인 행동들을 더듬었다.

‘그놈, 고양시에서 차를 훔쳐 타고 이동했지.’

녹양역에서 발견한 구형그랜져, 그 차엔 어떤 흔적도 없었다.

강제로 차문을 열거나 시동을 건 흔적이 없는 거다.

키도 없는 데 어떻게 그런 걸까?

물론 운석이다. 불가사의한 일을 만드는 그것이 그렇게 해준 거다.

‘한건이 안 죽었듯이, 내가 그랬듯이.’

어금니에 힘을 주며 유한기는 목표한 차로 다가갔다. 구형 쏘렌토다. 한건의 친구 이응삼의 차와 같은 차종, 차문 손잡이를 잡고 나직이 말했다.

“열려라.”

이순간의 충동, 막연한 예감이 토해낸 말이다. 그런데 손끝에서 기이한 빛이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찰나의 그 순간을 유한기는 분명히 봤다.

‘이런 거구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열려라 참깨 하는 마음으로 한 거다.

그게 됐다, 차 문은 열렸다.

그런데 이뤄지는 순간 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됐어.’

머뭇거릴 상황이 아니기에 유한기는 운전석에 올라탔다. 키박스에 손을 대고 역시 말했다. 시동걸려라, 하는 말과 함께 차는 엔진이 깨어났다.

공터 주차장을 빠져나온 유한기는 춘천을 향해 어둠 속을 달렸다.

* * *

새벽 첫차를 기다린 한건은 전철에 올라탔다. 춘천으로 가는 전철, 이 결정을 한 것이 제대로인지는 확신이 없지만 행동하기로 했다. 우선은 운석의 출처를 알아내는 일이다. 그 다름이 현중과 청록원으로의 복수다.

‘진실은 나서지 않아도 알릴 수 있어.’

가슴속의 이 분노, 친구 이응삼과 송미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이 먼저다. 최병철의 생사를 확인하는 일이 우선이다. 다른 건 나중이다.

‘북극사태의 원인이 된 운석과 별개의 운석들이야.’

이종수씨가 가졌었고 한만식씨가 소지했던 운석은 그렇다, 아이들이기념품으로 가졌던 거다. 그걸 알자면 유족들을 만나는 게 먼저지만, 춘천에 있을 운석의 가능성을 향해 간다. 그걸 노리고 놈들이 움직일 거다.

‘운석이 원인이라는 걸 모를 수 없겠지. 그렇다고 해도 확인해야 할 테고.’

강렬한 의지를 눈빛으로 흘려내며 한건은 춘천으로 향했다.

* * *

-춘천으로 출발해.

짧고 명료한 현인규의 목소리를 귀에 담고 윤지희는 입술을 옅게 물었다. 최강호의 죽음이후로 내려온 지시, 춘천으로 가서 운석소지자를 찾으라는 명령이다. 상봉역발화사건, 운서소지자로 인한 사건으로 보는 거다.

‘청록원이 움직였을 거고.’

그들의 실패 영상이 떴다.

일산의 비즈니스호텔에 가둔 청록원 요원이 도주했다.

최강호로부터 운석이 옮겨간 그자는 조직에 등을 돌리는 결정을 했다.

그래야 했을 거다. 운석으로 인한 자신의 운명을 알았을 테니까.

‘이 흐름은 괜찮은 걸까?’

준비를 하며 윤지희는 그 의문을 곱씹었다.

현재 상황, 유투버들이 떠들고 언론이 진실에 접근하는 상황이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을 비롯한 나라들에서도 괴이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음모론이 난무중이다.

‘북극사태와 연결해서 주장하는 상황.’

미국의 유투버들, 일부과학자들과 북극기지 관계자들이 주장을 터트리고 있다. 그곳에 무슨 일인가 일어났는데 정부는 아무것도 밝히지 않고 있다고,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라고, 뭔가 심각한 일이 진행 중이라고.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거울을 보며 그 말을 던진 윤지희는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그대로인 얼굴, 이것이 부서졌었다, 그런데 한건에 의해 다시 돌아왔다.

죽었다가 살아난 거다.

그 사람, 한건은 다시 만나게 될까?

그를 잡아야 할까?

핏기 가시게 입술을 문 윤지희는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었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들고 거울을 봤다. 선명한 눈동자로 자신에게 말했다.

“네 할 일을 해.”

외투를 걸친 윤지희는 아파트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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