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종말전야. 35. 김철기.
35. 김철기.
윤지희가 탄 팰리쉐이드는 역시 지원차량이 뒤따르고 있다.
두 대의 승합차다. 최소한 열다섯에서 스무 명이다.
현중그룹의 행동지원팀, 저들도 이젠 청록원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대응하는 준비를 갖췄을 것이다.
‘신북방향.’
폰 네비로 확인하는 지금 이동경로가 그렇다.
조금 전에 율문리 막국수박물관을 지났다. 이대로 진행하면 산천리와 발산리 쪽이다.
저들의 거침없는 주행은 분명 목표를 찾은 거다.
발화사건관계자, 운석소지지다.
‘그럴 가능성이지만.’
입 안에 머금은 숨을 씹어 삼키듯 넘긴 한건은 뉴스를 검색했다.
뜨겁게 달궈진 사건들로 인한 여론과 사람들의 반응, 어떻게 돼 가는지 궁금하다.
진실의 단편들이 음모와 결함하여 확대재생산중이지만 드러났다.
‘윤곽은 드러났어.’
기사를 확인하던 한건은 미간을 확 좁혔다.
‘이건 뭐야? 로또 당첨자가 이렇게 많아?’
강남경찰서사건들 비롯해 강남y대학병원사건의 뜨거움 사이에서 고갤 올린 사건이다. 이번주 로또당첨자가 일백 명을 넘었다는 황당한 뉴스다.
[그동안에도 당첨 조작시비에 휘말렸던 로또복권은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지난 토요일 당첨자가 백오십육명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한건은 눈썹을 경직한 채 중얼거림을 흘려냈다.
“운석……!”
룸미러로 흘긋 보는 운전사의 시선을 느끼고 한건은 표정을 수습했다. 그러노라는데 윤지희와 현중팀의 차들이 산천리에서 우측방향으로 간다.
운전사는 눈으로 계속 따라가냐고 묻고 있다. 한건은 바로 대답했다.
“지금처럼 거리를 두고 따라가다가 저 차들이 멈추는 곳을 지나서 세워 주십시오.”
오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운전기사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흥신소 직원이든 범죄자든 내 알바 아니란 태도, 택시비만 내란 거다.
그런데 그래야 할 때는 바로 찾아왔다.
산천리에서 꺾어 들어간 지내리에서 현중팀의 차들은 멈춰 섰다.
폰 지도상에 은내리길이라고 된 곳이다.
흔한 시골길, 시멘트도로 좌우측으론 밭과 과수원과 집들이 있다.
‘여기구나.’
길옆에 멈춘 현중팀의 차들을 스쳐지나간 한건은 지도에서 찾은 곳을 말했다.
“앞쪽에 있는 양로원 안으로 들어가 주십시오.”
택시기사는 군말하지 않고 그렇게 했다.
낮은 남장에 마당 넓은 양로원에서 택시는 차를 돌려나갔고, 한건은 누군지 보는 양로원 관계자에게 인사했다.
저 뒤에서 바라보는 현중팀의 눈에는 양로원을 찾아온 자다.
“안녕하세요. 후원문제를 상의 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아 그러세요? 잘 오셨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평상에 나물을 널어 말리던 양로원 관계자, 중년 여자는 정말 반갑게 맞아줬다.
* * *
“그래, 서울청의 꼬리도 같이 해결 하도록 해.”
현장에 도착한 윤지희에게 지시를 내린 현인규는 폰을 책상에 던졌다.
피곤이 몰려와 뒷목의 뻐근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음모론과 같이 얽힌 운석의 진실은 물결치고 있다.
생각지 못한 상황 전개, 골이 아프다.
‘자칫하면……’
현재 상황의 엄중함을 곱씹던 현인규는 폰의 울음에 흠칫했다.
책상으로 손을 뻗어 잡아보니 4팀장이다.
운석의 자취를 찾는 임무를 맡은 게 4팀장이다.
뭔지 모를 강렬한 예감이 든다. 지금 전화 울음이 그렇다.
“말해.”
-실장님, 뉴스 기사를 검색해 보셔야겠습니다.
“뭐?”
-사회면기사에 로또 당첨자에 관한 기사가 떴을 겁니다.
일단 보라는, 4팀장의 긴장하고 경색된 목소리에 현인규는 마우스를 움직였다. pc모니터에 포털을 띄우고 뉴스를 찾자 바로 해당 기사가 나왔다.
[로또 당첨자 일백오십육명 시대.]
이게 뭐야 라는 눈으로 현인규는 기사내용을 봤다.
제목에서 다 말해준 것과 같지만 황당한 내용이다.
지난주 로또 당첨자가 백 명을 넘은 거다.
아무리 로또가 당첨조작설이 나온다고 해도 이건 비상식적이다.
‘괴이 사건!’
이게 바로 그것이란 걸 현인규는 직감했다. 4팀장이 전화한 이유도 알겠다. 이건 운석 때문이다. 운석을 가진 자들이 만든 일, 의심의 여지없다.
‘어떻게 흘러가는 거냐……!’
마우스 잡은 손을 현인규는 가늘게 떨었다.
* * *
운석이 몸에서 떨어지자 황윤성의 피구멍은 메워지지 않았다. 데져트이글의 강력한 탄자가 뚫어 버린 심장의 구멍은 엄청난 피를 흘려냈다.
섬뜩한 피 속에 누워버린 황윤성을 내려다보던 백곰은 나이프를 던졌다.
챙그랑 소리가 주차장 바닥에 울리는 가운데 백곰은 밖을 봤다. 팀원들이 준비한 대로 잘 하고 있다. 폴리스라인을 치고 놀란 이웃주민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경찰신분증을 보이면서, 주차장이 안보이게 차단중이다.
섬광탄이 폭발했고 총소리가 퍼졌으니 당연한 결과다.
정릉의 단독주택가에서 일어날 일은 아닌 거다.
그렇지만 일어났다.
이제 황윤성은 간첩혐의로 현장에서 저항하다 사살된 자가 되는 거다.
코풀기보다 쉽다.
‘죽이는 건 쉽지 않을 수도 있었어.’
황윤성의 시체 옆에 떨어진 왼손을 응시하다 백곰은 주워들었다. 보위나이프였기에 단번에 손목을 자를 수 있었지 칼이 작았다면 안됐을 거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손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가 핵심이다.
‘운석.’
백금반지 중앙의 결정이 운석이다.
회색빛의 이 작은 돌을 황윤성이 가지고 있었다는 게 놀랍다.
이건 분명히 오래된 거다.
운석을 넣기 위해 두껍고 폭이 넓게 만든 반지다. 세월의 흔적이 표면의 스크래치로 보인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네.’
곤혹스러운 눈으로 반지를 응시하던 백곰은 바로 지시를 내렸다.
“황윤성의 과거 이력부터 모든 걸 파악해.”
반지를 손가락에서 뺀 백곰은 황윤성의 손목을 시체 옆에 던졌다. 그렇게 새삼 이제부터 할 수습의 흐름을 짚었다. 경찰청정보외사부장이란 직책의 고위직 인물이 황윤성이다. 이런 자를 죽인 수습은 쉽지 않다.
‘증거를 완벽하게 심을 거니까.’
황윤성이 북한과 내통해온 간첩이라는 건 케케묵은 수법이지만 아직도 먹히는 방법이다. 국정원과 공조한 청록원의 성과가 되는 거다. 청록원의 정보를 공개하라는 여론을 잠재울 방법이기도 하다. 그 시작인 거다.
‘대한민국의 극지연구를 캐내려는 북한의 소행.’
일련의 사건들은 그렇게 연관되는 거고 청록원은 그걸 막기 위해 피땀 흘리는 기관인 거다. 무리한 설정이지만 일단은 프레임을 만드는 거다.
“부장, 이걸 좀 보셔야겠습니다.”
팀원이 내미는 태블릿을 본 백곰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
‘로또 당첨자가 백오십육 명이라고?’
황당한 기사, 보는 순간 예감이 확 솟구친다.
‘운석!’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쥔 백곰은 그 순간 피어나는 감각에 이를 악물었다.
손 안에서, 움켜쥔 반지로부터 피어나는 감각, 분노와 살의다.
그렇다, 이건 감정이 아니라 감각이다. 그렇다는 걸 분명히 느낀다.
‘이!’
부르르 진저리를 친 백곰은 떠올렸다.
운석을 찾는 일, 그 일을 하고 있으며 찾을 것이 있다는 거다.
황윤성이 찾아가려던 운석이다.
그곳으로 가야 한다. 다른 운석을 확보해야 한다. 이 의지는 명령 때문이 아니다.
“춘천으로 간다!”
수습해야 할 현장에서 인원을 가른 백곰은 춘천으로 향했다.
* * *
뒤를 따라오던 택시는 양로원으로 들어갔다. 돌아나가는 택시를 팀원들이 확인했다. 더 신경 쓸 문제도 아니고 그럴 상황도 아니다. 서울청에서 왔다는 꼬리를 잘라야 하고 김철기를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안 보인다.
“집 안팎에 별다른 동정이 없습니다.”
보고하는 팀원의 눈을 응시했던 윤지희는 낡은 슬라브집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철기의 집, 그가 혼자 사는 곳이다.
저 앞쪽으로 낮은 담장이 보이는 양로원을 빼면 주변에 다른 집들은 없다. 거리가 제법 떨어졌다.
‘서울청에서 온 경찰의 차만 마당에 있고.’
김철기의 차가 아니다. 그에겐 차가 없다. 저 차번호는 서울청의 것이다. 춘천서에서 먼저 사건내막을 입수한 자가 김철기와 접촉한 정황이다.
‘주변은 과수원들인데……’
둔덕과 평지가 이어진 과수원들이이다. 사과나무와 복숭이 나무들이 지천이다. 그 광경 어디에도 두 사람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팀원들이 흩어져서 찾고 있지만 어디로 간 건지를 모르겠다. 숨을만한 곳이 없다.
‘김철기가 운석소지자라면 서울청에서 온 경찰은……’
변을 당했을 공산이 크다.
“팀장님!”
팀원의 다급한 부름에 몸을 돌린 윤지희는 그를 봤다.
복숭아나무들 사이에 서 있는 남자, 김철기다. 그의 손에 낫이 들려 있다.
낫으로 친 게 분명한 머리도 잡혀 있다.
눈을 부릅뜬 저 머리 주인은 서울청경찰이다.
“잡아!”
팀원들에게 소리치며 윤지희는 코트를 펼쳤다, 안쪽으로 걸치고 있던 소음기관총을 겨누고 달려갔다. 팀원들과 함께 달리는데 김철기가 달려온다.
“저지해!”
단호하게 명령을 외치며 윤지희는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둑하는 소리로 튀어나간 총탄들은 복숭아나무들을 헤집었다.
그 속의 김철기도 때렸다. 그런데 김철기는 변함없다. 총질하는 팀원들의 사이를 달려왔다.
‘뭐?’
윤지희는 그 광경을 보고 얼어붙었다. 김철기가 팀원들 사이를 헤치고 달려와 멈춘 곳, 팀원들이 타고 온 승합차다, 차체에 손을 대고 말한다.
“터져라.”
김철기의 손에서 빛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걸 윤지희는 분명히 봤다.
그 순간 승합차가 터졌다. 김철기가 말한대로다.
폭발, 그 확산이 팀원들에게로 날아왔다.
팀원들의 형상이 흩어진다. 과수원나무들도 흩어진다.
* * *
믹스커피를 대접받으며 양로원 관계자인 중년여인과 이야기 하던 한건은 경직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게 하는 느낌, 이건 운석으로 인한 거다.
그런데 이전에 경험했던 것과 다르다.
부르는 게 아니라 아우성이다.
‘시작했구나!’
상황을 직감한 한건은 화장실에 갔다 오겠다며 일어섰다. 응접실을 나와 좁은 복도를 지나 화장실도 지나쳤다. 빠르게 밖으로 나와 상황을 봤다.
지나온 시멘트도로 저쪽, 외딴 집 앞에 멈춰 섰던 승합차가 터졌다.
‘운석!’
바로 그 힘이다.
운석을 가진 자가 승합차를 터트렸다.
안에서 느낀 감각이 첫 번째고 지금 보는 것이 두 번째다.
현중팀이 타고 온 두 대가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건 아니다. 현중팀원들의 형상과 같이 흩어졌다.
‘말로!’
운석을 가진 자가 그렇게 했다는 걸 한건은 알았다, 봤다.
승합차에 손을 대고 터져라, 라고 말하는 걸 분명히 들었다.
오십여미터 이상의 거리가 있지만 마치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렸다.
저자는 위험하다.
‘여태 겪은 운석들과는 달라!’
뭐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 체급이 다른 거다.
여태 경량급을 겪었다면 저건 중량급이다. 아니 헤비급이다.
저자가 상봉역전철발화사건의 범인이다.
분명 그때 그 열차 안에 있었을 텐데, 그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뭣 때문이지?’
알 수 없다. 다양한 전제와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의지 발현의 정도차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제 본격적으로 살인과 폭력에 각성해일 수 있다.
그 무엇이든 저자는 위험하다. 저 운석의 의지는 폭주하고 있다.
“너도 먹어야겠다……!”
한건은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흘려내고 걸음을 냈다. 자신의 의지인지 운석의 의지인지 모르는 채, 현중팀에게 낫을 휘두르는 자에게 달려갔다.
* * *
‘저건……!’
모니터에 뜬 뉴스방송을 보며 현인규는 직감했다. 청록원의 작품이란 것을, 그들이 소행이란 걸 확신했다. 정릉주택가에서 벌어진 사건, 이웃주민들의 제보로 지금 방송을 타고 있다. 집주인은 경찰청고위간부다.
무슨 이유이고 내막인지 알 수 없지만 저렇게 했다.
틀림없는 청록원이다.
저희의 행위와 목표에 관련된 일이란 것은 거의 확실한 짐작이다.
-현재 자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정부정보기관의 개입이 라는……
청록원의 과격한 대담성과 힘을 새삼 느끼며 현인규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춘천의 일이 어떨지 궁금하고 걱정스럽다. 저렇게 무식하게 해치우는 청록원 놈들이 그곳에 걸음했다면 피해가 없을 수 없다.
-LA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난 총기난동 사건은 이 시간 현재 진행 중입니다. 범인은 이십대의 IT기업 종사자로 알려졌으면 사건을 일으킨 원인은……
다른 사건을 내보내는 뉴스에 현인규는 다시 눈을 고정했다.
-비상식적인 것은 범인이 경찰들의 총격을 맞고도 멀쩡하다는 것입니다. 화면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범인은 자동화기를 시민들에게 난사하며……
경직한 눈의 눈썹을 가늘게 떨며 현인규는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