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86화 (186/200)

[외전] 종말전야. 36. 최적화.

36. 최적화.

귀신처럼 점프해 내리치는 김철기의 낫을 피해 윤지희는 바닥을 굴렀다. 돌아 일어나며 기관단총을 미친 듯이 발사했다. 하지만 김철기는 움찔거리기만 할뿐이다. 피한자리의 복숭아나무처럼 갈라버리려 달려든다.

‘미친!’

탄창이 빈 소음기관단총을 버린 윤지희는 권총을 빼 겨눴다. 그러나 번개 같다고 해야 맞을 김철기의 움직임이 닥쳐왔다. 사선으로 낫을 후려친다.

권총은 발사와 동시에 오이조각처럼 잘려나갔다. 낫으로 만든 결과다.

권총이 잘리는 순간 터져 나온 김철기의 발길질에 윤지희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김철기의 발목을 잡고 돌아 쓰러지면서 디딤발을 걸었다.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김철기의 안면을 향해 돌며 엘보를 때려 박았다.

콱, 부서지는 느낌과 동시에 윤지희는 강력한 충격을 받았다.

옆구리에 낫이 박힌 거다.

흉악하다고 할 그 감각과 고통 속에서 놈을 봤다.

웃고 있다.

뭐라고 형용하기 힘든 웃음, 사악하고 무서운 미소를 짓고 있다.

“악!”

김철기가 낫을 확 잡아당겼다.

옆구리가 갈라져 나가는 그 감각 속에서 윤지희는 경련했다.

김철기는 몸을 세우고 있다.

엘보에 주저앉았던 코가 다시 선다. 그 얼굴로 사악하게 웃으며 낫을 든다. 다가와 내리친다.

‘이!’

피할 수 없는 절망상황의 분노를 윤지희가 악물 때.

그림자 하나가 김철기에게 달려와 겹쳤다. 아니 충돌했다.

김철기는 복숭아나무를 쓰러뜨리며 굴러갔다.

다시 일어서는 그에게 충돌한 그림자 남자가 달려간다.

‘누구!’

옆구리를 움켜쥐고 윤지희는 눈을 치떴다.

김철기의 손에 머리가 쪼개질 찰나였던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준 남자다.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다. 그런데 낯설지 않고 익숙하다.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느낌은?’

고통과 충격과 놀람으로 입술을 악문 속에서 윤지희는 깨달았다.

자신이 천마산 너머에서 청록원의 총격을 받고 죽어가던 때의 느낌, 다시 살아나서 가지게 된 느낌이다.

다름 아닌 한건, 그가 살려준 그 느낌이다.

“팀장님!”

팀원하나가 피투성이 모습으로 다가왔다.

왼팔은 잘려나가 사라졌고 다리와 복부에도 파편이 박혔다.

고통을 악문 그의 얼굴을 돌아본 윤지희는 현실을 깨달았다.

열여섯 명 중에 하나만 살았다. 또 이런 일을 겪는다.

“으……!”

분노로 치를 떤 윤지희는 그들을 봤다. 한건의 느낌을 준 남자와 김철기, 복숭아 과수원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러고 쳐다만 볼 때가 아니다.

“수습팀……!”

폰을 잡고 수습팀을 부른 윤지희는 흐려지는 의식을 잡으려 사력을 다했다.

* * *

둔덕처럼 연이어 있는 과수원을 질주하면서 한건은 극도의 흥분과 희열을 만끽했다. 자신을 유인하고 있는 상대 김철기 때문이다. 저 자는 이제까지 겪은 운석소지자와 다르다. 저자는 마치 킬링머신인 것 같다.

‘잡고 있는 낫도 달라.’

휘두르는 기세로도 느끼지만 윤지희를 공격한 결과가 그렇다.

그녀의 권총을 갈랐다. 농가에서 사용하는 일반 낫으로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

김철기가 움켜쥐었기 때문이고, 운석의 의지와 힘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말로, 입으로 운석의 힘을 실현하는 자.’

김철기는 그런 존재다.

한건 자신은 pc에 기록하거나 폰에 녹음, 혹은 수첩에 적었다.

그러면서 말로는 안 될까 하고 의구심을 가졌었는데 그걸 눈으로 봤다.

가능한 거다. 그런데 저런 결과가 다 같지는 않은 거다.

‘운석에 따라, 소지자에 따라 다른 거야.’

구체적으로 그게 어떻게 다르고 구분되어지는 것인지를 명확히 설명하기 힘들지만 그렇다는 걸 알겠다.

기계장치, 혹은 소프트웨어도 최적화라는 개념이 있다.

지금 김철기가 그런 상태인 거다.

폭력의 최적화다.

‘피를 찾아서 이빨을 드러낸 맹수 같은……!’

김철기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는 걸 느끼며 한건은 전력으로 달렸다. 어느새 저편에 커다란 산이 다가오고 있다. 천마산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이 지역이 주변으로 다 산과 들과 강이니 그렇지만 기시감이 느껴진다.

‘대룡산, 거기로 들어가려는 거냐?’

폰 지도로 안 산 이름을 이에 물고 달리던 한건은 멈춰 섰다. 김철기가 멈춰서서다. 산으로 이어지는 외진 비탈의 앞이다. 주변에 띄엄띄엄 보이던 농가도 이젠 없다. 김철기는 낫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웃고 있다.

“이런 일이 생길 것 같더라니까.”

섬뜩하다고 해야 맞을 미소로 김철기는 목소리를 이어냈다.

“너 같은 놈을 만나게 될 거라는 예감이, 아니 확신이 들더란 말이지.”

그랬다는 거다. 다른 운석소지자가 찾아올 거라는, 아니면 김철기 자신이 찾아갈 거라는 예감이 생각이 확정으로 변해가던 중이란 소리다. 그건 김철기의 운석이 가진 의지다. 그랬는데 현중에서 먼저 닥쳐온 거다.

“얼쩡거리던 놈을 잡고 보니까 경찰이더라 이거야.”

비릿한 미소를 피워 문 김철기는 빙글대며 돌리던 낫을 멈췄다.

“경찰이 날 어떻게 찾아낸 거지? 년놈을 태워 죽인 걸로 날 특정했다고? 벌써? 어떻게 그럴 수 있는데? 라고 생각하다 우선 경찰놈을 죽였지.”

죽이기 전에 알아내야 할 것들을 알아냈다는 미소가 김철기의 입가에 있다.

“뭐 경찰이 그럴 순 있지. 그 전철 안에 나도 분명히 있었으니까. 전철역을 드나든 모든 사람의 영상을 찾아 뒤졌다면 날 알아낼 수 있었을 거야. 어쨌든 그 년놈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다 나온 이력이 있으니까.”

김철기는 미소 속에 칼날 같은 눈빛을 흘려내며 계속 말했다.

“목을 딴 경찰 놈의 위에 경찰청정보외사부장이란 새끼가 있더라고. 그놈이 대단한 힘을 가진 것들하고 붙어먹는 놈이라는 데, 현중그룹 얘기도 하더라고. 아까 그것들이 현중그룹놈들인 거지. 그래, 뭐가 뭐든, 그것들이 내가 불장난한 거에 관심을 가진 거야. 왜냐고? 너도 알잖아?”

장난하는 아이 같은 웃음을 흘려낸 김철기는 다시 섬뜩한 눈빛을 뿌렸다.

“운석 때문이지. 그것들이 운석에 대해 알고 있고 확보하려고 이 지랄을 하는 거야. 총을 들고 와서 날 죽이려고 했지. 그걸 순순히 당해? 아니지, 절대로 그럴 수 없지. 안당하고 오히려 잡아 죽일 수 있는데 왜?”

악마 같다고 할 웃음이 김철기의 얼굴이 피어났다. 그 순간 한건은 물었다.

“운석을 어디서 얻었나?”

웃던 얼굴을 느릿하게 무표정으로 바꾼 김철기는 되물었다.

“너는 어디서 났는데?”

한건의 차가운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미소 짓던 김철기는 키득거렸다.

“큭큭큭, 그게 알고 싶냐? 그걸 안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한건은 김철기의 웃음을 자르며 다시 물음을 던졌다.

“언제부터냐?”

김철기는 웃음을 멈추고 한건을 응시했다.

운석의 힘을 깨닫고 이런 짓을 한 것이 언제부터냐는 물음, 미간을 옅게 꿈틀거리면서 기억을 잡았다. 그러다 한건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분명 질문하는 의도가 있다.

“넌……”

“운석이 널 잡아먹고 있는 거다.”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살의와 폭력에의 갈망을 억누르며 한건은 이야기 했다.

“운석은 소지자를 이용한다. 제게 더 유리한 숙주, 적합자를 찾으면 이동하지. 기왕의 숙주는 버려지는 거다. 그건 곧 죽음이고. 폭력과 살인에 대한 욕망을 폭증시키면서 숙주를 조종한다. 폭주기관차로 만들지.”

지금의 바로 너처럼 이란 한건의 눈빛에 김철기는 강한 분노를 발산했다.

“개소리!”

쩌렁하게 울리도록 소리친 김철기에게 한건은 차갑게 다시 말했다.

“이 일은 우리가 예상하고 짐작하는 것 이상의 일이다. 오늘 뉴스나 기사를 봤나? 로또당첨자가 백쉰여섯명이나 나왔다. 그게 무슨 일인 것 같나?”

김철기는 꿈틀거리던 눈썹의 움직임을 멈췄고 한건은 결론을 말했다.

“운석, 그것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거다.”

자신의 짐작, 그렇지만 분명한 현실이라는 걸 한건은 확신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낫을 움켜쥐고 반발하는 김철기를 바라보며 한건은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죽게 될 거다. 운석을 포기하면 살 수 있다.”

김철기는 바로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이 새끼 뭐라는 거냐? 운석을 포기해? 누구한테? 너에게 줘라 이거냐? 넌 뭔데? 그러는 넌 운석을 포기 안하는 거냐? 죽는다며?”

한건은 반응 없이 무거운 숨만 내쉬었다. 객관적으로 김철기의 말이 옳기 때문이다. 한건 자신이 운석을 내라마라 할 권리도 없고, 김철기와 다를 바 없는 존재인 거다. 그런데 이래야 한다고 본능이 소리치고 있다.

“갖고 싶다면 덤벼! 날 죽여서 가져가 봐!”

소리친 김철기가 먼저 움직였다.

시퍼런 날빛을 번득이는 낫을 사선으로 가르면서다.

그 움직임을 보며 한건은 본능으로 마주 움직였다.

어쩔 수 없다는 마음, 결국 이렇게 될 거라던 예감의 안타까움 같은 건 없다.

이 순간 속에서 폭발해 올라오는 건 분노와 살인욕망이다.

운석이 운석을 향한 욕망이다. 김철기를 죽이고 차지하라는 영혼의 외침이다.

그런데 왜 다른 것일까?

네 번째 운석을 거부했던 것과는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이토록 강렬한 욕구를 발산케 하는 저 운석은 뭐가 다른 것일까?

김철기가 휘두른 낫을 피하며 마주쳐 들어간 한건은 오른손 스트레아트를 뻗었다.

목을 노린 낫을 피하느라 자세를 낮추며 낸 주먹, 정확히 김철기의 안면에 박혔다.

뻑하며 두발이 뜬 김철기는 등부터 떨어졌다.

그 순간 김철기의 낫이 정강이를 가르며 들어왔다.

너무나 빠른 그 공격을 한건은 피하지 못했다.

콱, 하고 종아리를 찍은 낫의 감각에 몸을 경직했다.

그 순간 보니 부서진 김철기의 안면이 삽시간에 복원되고 있다.

“으아!”

기합인지 괴성인지 모를 소리를 터트리며 한건은 왼 무릎을 찍어 내렸다.

몸을 일으키려는 김철기의 가슴에 때려 박았다.

쾅하는 울림으로 김철기는 다시 땅과 등을 맞댔고, 주변으로 흙먼지와 돌들이 퍼져나갔다.

낫을 움켜잡은 한건은 날을 부러뜨렸다. 그렇게 김철기로부터 물러나 종아리 상처를 확인했다. 박혀 있던 날을 빼자마자 복원이 이뤄진다.

그런데 그때 김철기가 일어선다. 웅덩이처럼 변한 자리에서 도약한다.

표범이 먹이를 덮치는 것같이 공격해 온 김철기, 그를 향해 한건은 마주 점프했다.

몸을 돌리며 뻗어낸 뒷차기를 턱에 때려 박았다.

허공에서 뒤집힌 김철기는 다시 바닥에 떨어졌고, 그 몸 위로 한건은 올라탔다.

한건인 미친 듯이 주먹을 내리꽂았다. 김철기의 얼굴과 목과 어깨에 해머를 내리치듯 강타했다. 그러는데 김철기의 두 손이 옆구리에 닿았다.

그렇게 느껴진다.

김철기가 마음속으로 외치는 의지, 터져라라는 목소리.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 승합차가 터진 것 같은 일은 생기지 않는다.

한건 자신에게 있는 운석들이 그게 안 되게 막는 거다.

피 튀기는 주먹질을 때려 박던 한건은 움직임을 멈췄다. 운석이 느껴져서다.

‘운석……!’

김철기의 피가 낭자하게 묻은 주먹을 한건은 폈다.

깔고 앉은 김철기의 가슴에 손바닥을 댔다.

밀착하지 않고 5cm 정도 위다.

손바닥이 간질거리는 원인이 감철기의 가슴에서 보인다.

운석이 스르르 떠오른다.

마치 진흙 속에서 솟아난 것처럼 드러낸 운석.

김철기의 가슴에서 빠져나온 그것이 오른 손바닥 안으로 스며들었다.

한건은 진저리를 쳤다.

* * *

수습팀은 빠르게 일처리를 하고 있다. 총소리를 들은 양로원과 과수농가들을 찾아가 차사고에 대해 설명하고 보상에 대해 논의 중이다. 과수들의 손상됐지만 제시하는 보상액에 놀란 사람들은 이의제기를 안할 거다.

차량 파편들은 수습팀이 빠르게 수거했다. 목격자는 없다. 있다고 해도 그룹에서 해결 못할 건 아니지만 다행이다. 차 사고가 났다는 것만 알지 정확한 경위를 사람들은 알 수 없다. 이렇게 앰뷸런스만 볼뿐이다.

“으……!”

응급처치중인 옆구리 부상통증에 윤지희는 신음을 흘렸다.

수습팀의 응급의 말에 의하면 신장은 무사하다고 한다.

불행 중의 다행이다. 그러나 또 팀원들을 잃었다. 팔을 잃은 팀원하나만 남았다.

이젠 어째야 할까.

출발하는 수습팀의 앰뷸런스 안에서 윤지희는 그를 떠올렸다.

한건, 그리고 오늘 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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