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종말전야. 37. 출처.
37. 출처.
부릅뜬 눈으로 유한기는 싸움을 지켜봤다.
김철기와 정체모를 남자의 무서운 싸움이다.
저 남자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운석을 가진 자다.
그게 아니면 저렇게 싸울 수가 없다. 김철기는 승합차를 터트려 날린 자다.
‘그런 일이 가능한 거야……!’
운석의 힘이 그렇다는 걸 자각하며 유한기는 전율했다. 동시에 숨어 있는 모습이 드러날까 두려워 경계하며 긴장했다. 소나무 숲에 숨어 있지만, 거리를 상당히 벌렸어도 그렇다. 저들의 운석은 위험하다고 느껴진다.
‘김철기를 먼저 찾았어도 위험할 뻔 했어……!’
뒤늦은 자각으로 유한기는 주먹을 움켜쥐고 가늘게 떨었다. 선배 연우진으로부터 김철기에 대한 정보를 전해 받고 곧장 이곳 지내리로 왔지만, 비어있는 김철기의 집을 보고 그를 찾는 동안 현중그룹에서 닥쳤다.
‘현중놈들 눈을 피하기 힘들 뻔 했는데……!’
이 상황은 차라리 잘된 것이라고 해야 하겠다. 만일 김철기를 먼저 찾았다면 저렇게 싸워야 했을 거다. 정체를 숨기고 의도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모를까, 김철기가 바보가 아닌 이상 낯선 방문자를 환영할리 없다.
‘당연한 결과였을 거야.’
김철기와 유한기 자신은 서로에게서 결국 운석의 힘을 인지할 테고, 서로 죽이려 했을 거다. 지금 저들의 싸움을 보고 있는 속에서 치미는 충동이 그거다. 운석을 차지하고픈 강렬한 충동과 욕구, 동시에 두려움이다.
‘저자들에 대한, 저들이 가진 운석에 대한.’
가지고 싶고 가져야 한다는 절대욕구지만 물러서야 한다는 본능이다.
사냥을 하고 싶다고 해서 호랑이와 사자를 창 하나만으로 사냥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저들이 바로 그렇다. 그러니 물러서는 게 맞다.
‘엇!’
유한기는 숨을 멈췄다. 드디어 결판이 나서다.
정체모를 남자가 김철기의 공격을 받아치고 결정타를 때려 넣고 있다.
밑에 깔린 김철기는 두 손을 남자의 옆구리에 대지만 아무 일도 안 생긴다.
저렇게 끝나고 있다.
‘승합차를 터트린 것 같은 일은…… 저건!’
전신을 경직한 채 유한기는 그 광경을 봤다.
남자가 김철기의 가슴에 손을 대는 것, 김철기의 가슴에서 운석이 빠져나와 남자의 손으로 스며드는 광경이다.
육십여미터의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 눈앞에서처럼 보인다.
‘저 빛!’
남자가 일어서며 돌아본다, 그 순간 유한기는 바싹 엎드렸다.
남자가 자신이 숨은 것을 알 수 없을 테지만, 바람도 맞바람이고 숨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긴장했다. 그렇게 기은 숨을 들이 내쉰 후 천천히 고갤 들었다.
‘갔구나.’
황량한 늦가을 바람이, 아니 초겨울 바람이 부는 산비탈 앞엔 김철기의 시신만 남았다. 암산이 아니고 육산으로 유명한 대룡산 자락이다. 등산로도 아닌 곳, 인적이라곤 없는 곳에서 벌어졌던 혈투는 바람만 안다.
‘현중에서 오겠지.’
그들만이 아니다. 청록원도 올 거다. 그들은 지금쯤 유한기 자신의 자취를 찾았을 거다. 그래서 선배 연우진이 걱정되지만 그가 잘 해낼 거다.
‘나도 가야겠다.’
소나무 숲에서 벗어나며 유한기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다른 운석소지자들을 찾아내는 것, 운석을 취하는 거다. 그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 * *
농로와 들길로 이동하며 한건은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새 12시가 거의 돼 간다. 신북읍 마저도 지나 이젠 우두동에 다다르고 있지만 염려된다.
‘날 윤지희가 봤어.’
그들은 추적해 올 거다. 마스크를 썼지만 지금 이 신분의 정체가 누구인지 알아낼 거다. 범위를 좁히면 어렵지 않다. 이십대에서 사십대의 남자, 수확도 끝나고 농한기에 접어든 과수원에 나타난 이질적인 존재다.
‘택시를 찾아내겠지.’
한건 자신이 춘천경찰서 앞에서 잡아타고 이동한 택시가 결정적인 단서가 될 거다. 택시 안 블랙박스에 잡힌 이 모습을 통해 그들은 추적해 올 거다. 그러니 번거로운 일을 만들었다. 왜 그때 달려간 건지 모르겠다.
‘충동.’
너무나 강렬한 충동이 그 순간 폭발해 나왔다.
김철기가 승합차에 손을 대고 터져라라고 말하는 걸 본 순간, 운석이 힘을 발현한 그 찰나에 그랬다.
심장이 터지게 달려갔다.
김철기에게, 운석을 향해 끌려갔다.
‘운석이 날 선택해 부른 건 아니야.’
앞선 경험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번은 김철기의 운석이 그를 버리고 한건 자신을 선택해 끌어들이며 신호를 보낸 게 아니라 적대반응이었다.
한건 자신에게서도, 내부의 운석으로부터 강한 적개심과 분노가 터졌다.
‘모르겠네.’
맥락을 짐작하기 어려워 한건은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기묘하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결과적으로 윤지희를 또 도운 일이 돼 버린 거다.
‘우선은 춘천을 벗어나는 게 최우선.’
대로 쪽의 버스정류장을 찾은 한건은 바로 다가가지 않았다.
현재 위치는 춘천의 강북이라는 우두동, 신사우동이라고 하던가, 아무튼 그곳이다.
유명한 에니메이션박물관 건물이 대로변에 보인다. 그 앞이 정류장이다.
‘될까……’
미간을 깊게 좁힌 한건은 폰을 꺼내 들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지금 현재의 신분, 원지훈이 아닌 다른 신분으로 바꾼다.”
김철기가 말로서 운석의 의지를 발현하는 것을 봤다.
한건 자신도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 이일, 신분을 바꾸는 건 다르다는걸 인지하고 있다.
행정전산망의 기록까지도 바꾸는 일, 폰이 필요하다.
얼굴에 간지러움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직후 한건은 폰 사진기로 확인했다.
역시 얼굴이 달라졌다. 원지훈은 사라지고 또 다른 남자의 모습이다.
평범한 얼굴, 하관이 날렵한 생김이다. 바로 신분증을 꺼내 확인했다.
‘역시.’
김종찬이란 이름을 가진 남자가 됐다. 나이는 같은 34세다.
신분증에 손을 대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변했다.
몸에 스며들어간 운석들, 합쳐진 그 힘이 더 강력해져서다.
무려 네 개의 운석, 김철기의 운석은 특히 더 강렬하다.
‘사용하고 난 마스크를 버리듯이 이렇게……’
새삼 황당한 놀람을 삼키며 한건은 다시 주변을 살폈다.
박물관 앞 대로로 이어지는 배후주택가의 골목길, 보안카메라는 다른 쪽에 있다.
빠르게 점퍼를 벗어 뒤집어 입었다. 얇은 패딩 안쪽의 후리스가 밖이 됐다.
‘비니도 쓰고 마스크도.’
점퍼 주머니에 넣어뒀던 비니 모자를 쓰고 마스크도 검은색으로 바꿨다. 그렇게 대로로 나갔다. 애니메이션박물관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 * *
허탈한 심정이 담긴 눈으로 백곰은 집 밖을 응시했다.
김철기의 집, 낡은 슬라브집엔 냉기만 가득하다.
아직 한겨울은 오기 전이지만 한겨울 속의 집인 것 같다.
이 느낌의 원인이 다름 아닌 운석 때문임을 안다.
‘김철기.’
황윤성으로부터 짚어낸 놈은 운석소지자다.
상봉역 전철 안 발화사건, 놈이 한 짓이다. 그런데 놈을 찾아서 현중이 먼저 왔다.
그들만이 아니다. 도주경로를 추적하던 놈, 유한기도 여기 왔다. 흔적을 찾아냈다.
‘연우진이란 놈에게 대응방법을 알려줬어.’
유한기와 경찰시절 인연이 있는 그놈이 김철기의 정보를 줬다.
경찰서 안에서 나오지 말라고 당부한 걸로 짐작된다.
그놈을 족쳐보고 싶지만 이젠 필요 없다. 여기 이곳에서 일은 이미 벌어졌고 상황도 종결됐다.
‘더럽게 돼 버렸군.’
미간을 거칠게 꿈틀거리며 백곰은 부하들을 응시했다.
거리가 떨어진 곳에 있는 양로원과 과수 농가에서 탐문중인 상태다.
차사고가 나서 수습했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현중이다. 그것들 전에 황윤성의 부하가 왔다.
‘그것들이……’
어금니에 힘을 싣던 백곰은 다급히 다가오는 부하와 눈을 맞췄다.
“시체를 찾았습니다.”
주변을 수색하라고 명령했다, 그 결과다.
“어디냐?”
앞서가는 팀원을 따라 걸음을 옮긴 백곰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과수농가 창고로 향했다. 저온저장고가 설치돼 있다. 그 옆에 노인이 사색이 된 얼굴로 서 있다. 자신들을 경찰로 인지하는 터, 두려움을 말한다.
“이게 무슨 일이야? 일할 사람도 못 구하는 판이라 과수원 접을 생각이었는데……!”
과수농가 주인, 노인을 다른 팀원이 데리고 물러난 자리로 간 백곰은 멈춰 섰다.
인도한 팀원이 문을 여는 저온저장고 안을 봤다.
머리 없는 시체가 있다.
늘어진 손앞에 떨어져 있는 것은 경찰공무원 신분증이다.
“김철기를 발견했답니다.”
폰을 귀에서 뗀 부하의 얼굴을 무심히 응시한 백곰은 몸을 돌렸다.
* * *
“면목 없습니다.”
나직하지만 차분하게 윤지희는 그 말을 냈다.
폰 너머 듣는 이, 현인규 실장의 심정이 어떨지 잘 알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고 차분해진다.
그 이유가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걸 받아들여서인 것 같다.
-팀원들은 다 잃었고, 머리 하나만 수습했다?
어떤 감정인지 짐작이 어려운 현인규실장의 목소리다.
열여섯 팀원들 중에 생존자는 한명, 그런데 얻은 것은 경찰로 짐작되는 자의 머리다.
현장을 빠르게 수습하면서 그것까지 수습한 거다.
거기 둘 순 없었다.
그러나 의미 없는 짓이다.
정체모를 남자와 김철기의 싸움이 결론이 날거다.
둘 중 누군가는 죽었을 결론, 그로인한 파장이 생겨날 거다.
그걸 막자면 그들의 싸움 결론까지도 수습해야 했는데, 청록원이 달려왔다.
‘수사과장이 전화해준 덕분이지만……’
너구리같은 웃음을 짓던 자, 춘천서의 그를 떠올리던 윤지희는 차량 진동에 얼굴을 찡그렸다. 서울을 향해 고속도로를 달리는 현실이 절감된다.
-그자가 누군지 알겠나?
정체모를 남자, 김철기를 공격한 존재가 누군지 현인규는 묻는다. 당연히 윤지희 자신이 알 수 없으리란 걸 알면서도 내는 물음, 현재의 심정이다.
“모르겠습니다, 처음 보는 자였습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서 더욱……”
-그놈도 운석소지자가 맞겠지?
“그렇게 판단됩니다.”
옆구리 통증으로 얼굴을 찡그리면서 윤지희는 그를 떠올렸다.
한건, 전혀 다른 사람이 분명한데도 그의 느낌이 드는 이 마음을 정말 모르겠다.
-청록원에서 이탈한 그놈이 아닐까?
청록원 이탈자, 일산의 비즈니스 모텔에서 도주한 자다.
그는 최강호에게서 운석을 취했다. 그가 다른 운석을 찾아왔을 개연성은 상당하다.
그렇다, 이젠 그런 흐름인 걸 안다.
운석소지자는 다른 운석을 가지려 한다.
‘그의 얼굴이 아니었어.’
윤지희의 귀에 현인규의 목소리가 다시 파고들었다.
-청록원이 지금 막 발표했다. 경찰청정보외사부장 황윤성이 북한에 포섭된 간첩이라는 발표다.
황당하고 허탈한 숨 뒤로 현인규는 목소릴 이어냈다. 윤지희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에게 이 상황을 이해시키려는 듯이.
-그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던 경찰 한명이 춘천에서 김철기란 이름의 주민을 살해한 후 변사체로 발견됐으며, 황윤성이 적발되자 간첩단이 꼬리 자르기에 나선 거라는 소리다. 현재 청록원은 간첩단추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일각에서 제기된 음해성 루머에 흔들리지 않는단 소리다. 북극기지와 관련된 정보는 조만간 공개할 거란 소리도 했구나.
윤지희도 허탈한 숨을 내쉬었다.
-일단 병원에서 대기해라. 2팀이 대신 움직일 거다.
통화가 끊긴 폰을 내린 윤지희는 눈을 감았다.
이동 침대를 흔드는 차의 질주는 거침없이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 * *
전철의 진동에 몸을 맡긴 채 한건은 폰으로 검색했다.
씨마운틴리조트화재사건의 유족협회다.
어렵지 않게 찾았다. 사무실 번호도 나와 있다.
그런데 이번호로 전화를 하는 건 아니다, 우선은 주변부터 살펴야 한다.
‘유족협회 사무실이……’
부천이다.
참사를 당한 아이들이 한마음어린이집 아이들이어서다.
다 같은 지역에 살던 아이들, 그 부모들이다. 우선 이곳을 찾아가 살피는 거다.
‘운석, 팔찌형태로 만들어진 그것이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아이들이 기념품으로 산 것으로 짐작되는데, 정확한 출처를 파악해야 한다.
이종수씨와 한만기씨, 두 개나 된다.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운 일이다.
팔찌를 누가 제작했으며 어디서 어떻게 판 건지 알아내는 거다.
‘김철기는 어디서?’
서울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실은 순간부터 그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짐작이 안 된다.
김철기가 운석을 손에 넣은 기억을 안다면 좋겠지만 안 된다.
이종수씨가 심인구회장과 윤기훈에게 복수한 기억처럼 안 떠오른다.
이종수씨가 운석을 가지게 된 기억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딸 예림이가 먼저 가져서인 걸로 짐작된다.
이종수씨는 딸이 참화를 당한 현장에서 모발 속에 들어있는 걸 찾아낸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다가 아닐 거다.
‘운석에 대해 다 모르는 것처럼.’
의문과 새삼스러운 마음을 한데 삼키며 한건은 폰을 다시 들여다봤다. 부천시 소사구에 있는 유족협회 사무실, 지금은 그 생각만 하기로 했다.
전철은 차가워진 가을바람을 헤치며 세차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