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종말전야. 38. 운석강탈자.
38. 운석강탈자.
-청록원은 극지기지연구를 뒷받침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 생겨난 조직으로, 이번 간첩단사건으로 인해 그 정체성이 드러났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극지연구정보를 빼내기 위한 북한의 치밀하고 음험한 공작을 분쇄한 사건이 이번 사건이 되겠습니다. 놀랍게도 경찰청고위간부……
리모컨을 든 현인규는 모니터를 향해 강하게 눌렀다.
책상위에 리모컨을 던지고 의자를 돌렸다.
강남대로가 보이는 창밖을 응시하며 한숨 쉬었다.
기묘한 기시감은 더 이상 들지 않는다. 눈앞에 닥친 현실은 그따위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
청록원이 저렇게 움직이고 있고 운석은 손에 안 들어오는 현실이다.
‘청록원 놈들이 뭘 어떻게 조작하든……’
핵심은 운석이다. 그것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번번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이번에도 김철기를 먼저 찾아냈건만 허탕을 쳤다.
놀라운 건 다른 운석소지자로 확신되는 존재가 끼어든 거다. 그가 김철기를 죽였다.
‘운석소지자의 운석강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결과다.
운석소지자들끼리 싸웠고 한쪽이 이겼다.
이긴 자가 패한 쪽의 운석을 가져갔다.
혹시나하던 일말의 예감이 들어맞았다.
일련의 상황을 겪으면서, 한건의 사례를 통해 품었던 예감이다.
‘그놈은 누구야?’
갑툭튀로 현장에 나타나 김철기를 죽이고 사라진 놈, 난데없는 존재다.
한건이 아니다. 청록원을 이탈한 놈도 아니다.
정말 생뚱맞은 놈이다.
이결과로 알 수 있는 건 운석이 예상보다 훨씬 넓고 깊게 퍼졌단 거다.
‘그렇다고 해도 그놈은 그곳에 어떻게 나타난 걸까?’
뭘 어떻게 알고 춘천 현장에 들이친 건지 정말 모르겠다. 김철기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럼 그놈도 경찰같은 조직의 일원일까?
‘상봉역발화사건으로부터 추적해 왔다고 밖에는……’
당연히 그 사건에 착안했을 거라는 우선 생각되지만, 운석소지자라면 그렇게 판단했을 거라고 확신되지만, 그다음 정보를 알아내는 건 다른 얘기다. 희생자들의 신원도 모르는 상태에선 주변을 탐문하는 것도 어렵다.
‘응?’
책상 위 폰의 몸부림을 인지한 현인규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뭐가 나왔나?”
2팀장은 차분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보고했다.
-3팀장이 춘천서에 방문하기 직전에 두 번의 정보 유출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황윤성이 보낸 직원이었고 두 번째는 연우진이란 강력계형사입니다. 황윤석의 부하가 김철기의 정보를 빼긴 후에 그가 카피했습니다.
“그놈이 누군데?”
-청록원 이탈자와 선후배사이라고 합니다.
“누구? 3팀장 최강호에게서 운석을 가져간 그놈?”
-이름이 유한기라고 합니다. 본래 동두천서 강력계에 있던 경찰입니다. 연우진과는 그곳에서 같이 근무했습니다. 특수부대출신으로 경찰에 특채된 케이스인데, 조폭검거작전에서 부상을 입고 경찰을 그만뒀습니다.
현인규는 전후를 짐작했다. 지금 2팀장이 보고하는 내용들이다.
청록원이 간첩단사건으로 몰고 가는 상황이다.
김철기의 집에서 둘이나 죽은 마당이다.
연우진이란 형사는 자신의 혐의를 벗기 위해서도 자백한 거다.
‘정확하게는 열일곱이지.’
윤지희가 이끌던 팀원들 열여섯 중에 한명만 살았다. 그 결과를 현인규는 다시 이 악물었다.
-김철기를 노리고 황윤성이 움직였고 유한기가 움직인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청록원을 이탈한 유한기는 전후가 짐작이 되지만 황윤성은 알 수가 없습니다. 경찰청정보외사부장이란 신분의 인물이 무슨 목적으로……
“청록원이다.”
단호하게 결론을 뱉은 현인규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정보를 취급하는 놈들이야. 이전부터 결착이 돼 있었을 거다. 그룹에서도 그런 정황을 눈치 채고는 있었다. 확증이 없었을 뿐이지. 그런데 내가 이해가 안 가는 건 이결과다. 청록원이 황윤성을 제거한 결과를.”
황윤성의 정릉집을 공격했다. 군사작전을 벌이듯이 한 짓이었다.
황윤성은 월차를 내고 귀가했다. 그런데 당했다.
장소는 주차장이었다.
어딘가로 급히 이동하려다 당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건 춘천이었을 거다.
-황윤성이 김철기를 인지하고, 운석을 확보하려다 당했다고 보십니까?
폰 너머의 2팀장이 볼 수 없는 데도 현인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청록원 몰래, 그들보다 먼저 김철기의 운석을 차지하려고 한 거지.”
-황윤성이 전후내막을 어떻게 알고……
“그놈도 운석을 가졌으니까.”
숨죽이는 2팀장에게 현인규는 4팀장이 알아낸 것을 말했다.
“황윤성, 25세에 순경이 돼서 파출소근무부터 시작한 자다. 배경도 없고 출신이나 강력도 일천한 존재지, 그런데 계속해서 승진하고 공을 세운다. 놀라울 정도지. 그렇게 승승장구해서 지금 자리에까지 오른 거야.”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운석이지.”
황윤성에게 행운을 주고, 장애가 될 주변인물들을 사고로 제거하면서 오늘에까지 이른 거다. 4팀장의 조사보고서를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제까진 봐도 몰랐을 일이겠지만 이제는 그 흐름이 확연하게 보인다.
“황윤성 그놈이 욕심을 부린 거다. 그러다 죽은 거야.”
냉정하게 결론을 말한 현인규는 다시 현실을 잡았다.
“운석은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북극사태 이전에 퍼진 것들이 있는 거다. 황윤성이 대표적인 답이다. 그것들이 어디에 어떻게 퍼져 있는지 알아내고 확보해야 한다. 유족협회부터 뒤져라.”
말미에 명령을 던진 현인규, 2팀장은 묻는다.
-유족협회라면 씨마운틴사고를 말씀하십니까?
“거기다. 이종수와 한만식, 두 사람이 운석을 가졌었다. 그 경로를 찾아내.
심회장을 죽인 박인수가 부천서에 근무할 당시 한만식과 접점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한만식이 자살한 사건을 박인수가 맡았었던 거다.
바로 그 일이다.
운석은 그렇게 흐르고 옮겨가 유한기란 놈에게 있는 거다.
-결과 보고 드리겠습니다.
통화가 끊긴 폰을 책상위로 다시 던진 현인규는 문득 피곤함을 느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이러고 있는 자신이 문득 한심해진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품을 일이 아니다.
자신의 미래와 그룹의 미래가 달려 있다.
‘반드시……!’
창밖을 보며 현인규는 결의를 다시 각인했다.
* * *
-제대로 가지고 있는 거냐?
귀를 울리는 목소리 주인, 국장의 불독 같은 얼굴을 떠올리며 백곰은 대답했다.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복귀하는 대로……”
-효과가 있는 것 같으냐?
미간을 꿈틀 거린 백곰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다시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짧게 반응한 국장은 침묵했다. 백곰도 그랬다.
운석을 가지게 된 유한기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서로 알고 있다.
국장은 다시 목소릴 낸다.
-어쨌든 황윤성이 운석소지자였다는 건 제법 놀라운 일이었다. 그놈이 백곰 네 손에 죽었다는 결과도 놀랍고. 물론 당연한 결과지만 그놈은 운석을 가졌으니까 말이다. 잘했다. 운석은 가지고 있다가 같이 보자.
백곰은 기묘한 감정을 삼켰다. 국장의 지시가 그렇다.
운석을 따로 보관케이스에 넣어 보내라는 지시를 하지 않는다.
가지고 돌아오란 거다. 그런데 그게 백곰 자신은 믿어서라기보다는 일종의 검증 같은 기분이다.
-황윤성은 북극사태 이전에 운석을 가졌다. 그런 케이스들을 찾아내야 한다. 현재 가장 유력한 곳은 씨마운틴사건 유족협회다. 거길 뒤져봐.
더 이상 다른 말없이 국장은 통화를 끊었다.
느릿하게 폰을 내린 백곰은 소양강을 바라봤다.
강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어온다.
아름답다고 할 풍광 속에 자신이 서 있다.
그런데 마음이 불편하다. 이유를 알고 있다.
‘나도 유한기처럼 될까?’
운석을 가지게 되자 조직을 이탈한 유한기, 그건 분명히 운석 때문이다.
그렇다는 걸 이 가슴이 알고 있다. 황윤성의 운석을 가지게 된 후부터 이감정과 감각을, 느낌을 알겠다. 모든 굴레를 벗어던지고픈 열망이다.
‘차지하고 싶다, 다른 운석을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그렇게 하는 과정에 걸림돌이 되는 건 다 때려 부수고 싶다, 모조리 죽이고만 싶다.
이것이 운석의 의지다. 이렇기 때문에 유한기는 뛰쳐나갔다.
물론 그것을 촉발한 원인은 유한기를 손대려고 한 조직에게 있다. 그러니 생각하게 된다, 조직이 백곰 자신에게도 같은 일을 하려한다면이다.
‘국장은 무슨 생각일까.’
운석을 가지고 있으라 한 의미를 곱씹던 백곰은 팀원의 보고를 들었다.
“김철기 살해자의 종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유한기도 마찬가집니다.”
긴장하며 보고하는 부하를 힐긋 응시한 백곰은 고개만 끄덕였다.
‘누구냐.’
현중그룹이 작업하던 중에 끼어든 놈, 그놈이 김철기를 죽이고 운석을 가져갔다.
그놈은 춘천서에서 기다렸다.
현중의 팀장 중에 유일한 여자, 그년이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미행했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김철기를 죽이고 나서부터는 연기가 됐어.’
그 어떤 카메라에도 안 잡혔다. 지내리에서부터 춘천의 강북인 이곳 우두동까지는 관제카메라와 교통카메라들이 도심과 같을 수 없지만, 그래도 이동하면 잡힌다. 그런데 전혀 없다. 산과 들로만 이동했다는 거다.
‘아니면 cctv에 잡히지 않는 능력이 있거나.’
그 부분이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건 역시 운석 때문이다.
그런데 한건의 경우를 보면 완벽하지 않다.
백곰 자신이 직접 실험도 해봤다.
차량 블랙박스 앞에서 운석반지를 움켜쥐고서다. 기도하듯이, 소리도 쳐봤다.
‘한건의 경우처럼 화면에 노이즈가 생기는 정도, 그런데 한건같이 되지도 않았어.’
백곰 자신의 모습은 심하게 흔들리는 영상으로 잡혔다.
‘뭐가 다른지 모르겠지만.’
핵심은 그자의 존재다. 이곳 춘천에서 종적을 잡은 유한기도 그렇지만 그놈은 운석을 노리고 덤벼든 거다. 갑자기 튀어나온 송곳 같은 놈이다.
“일단 부천으로 이동한다.”
결정을 내리고 강으로부터 몸을 돌린 백곰은 추가지시를 내렸다.
“그놈이 춘천까지 온 경로도 뒤져봐라.”
역시 못 찾으면 어쩔 수 없지만이란 생각을 털어내며 백곰은 차에 올랐다.
* * *
역곡역에서 내린 한건은 폰으로 지도를 띄우고 주소지를 찾아갔다.
유족협회사무실이 있는 곳, 카톨릭성심대학이 있는 곳이다.
대학전경이 보이는 대신 유명아파트가 시야에 들어온다. 주변은 다세대와 상가들이다.
‘여기 어딘데.’
빌라와 다세대들이 밀집한 이면도로를 기웃거리던 한건은 마침내 찾아냈다.
이름 없는 편의점이 일층을 차지한 상가건물이다.
2층이 유족협회다.
다른 곳을 찾는 척 지나쳐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지켜봤다.
‘여기선 카메라들의 시선을 피한다는 게 불가능 해.’
그러니 이곳에서 노출될 경우를 생각하면 지금 이 모습과 신분도 도 바꿔야 한다. 정말로 쓰고 난 마스크를 버리듯이다. 그런데 의구심이 든다.
‘계속 가능한 거야?’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쓰다듬던 한건은 눈에 힘을 줬다.
유족협괴 상가건물에서 나온 남자, 분명히 대표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일단 따라나섰다.
한블럭을 걸어가니 공용주차장이 나왔다. 작은 승용차에 오른다.
“실례합니다.”
경계심으로 돌아보는 유족협회 대표에게 한건은 공손하게 인사했다.
“유족협회 대표님이시죠? 바쁘신데 실례가 되겠지만 여쭤볼게 있어서 인사드립니다. 아 저는 이름 없는 글쟁이입니다. 글로서 씨마운틴사건의 진실을 정확하게 알리고 싶습니다. 도와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조금은 황당한 눈을 한 유족협회 대표는 한건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작가시라고요? 진실을 글로 알리고 싶다고요?”
불신이 가득한 대표의 시선과 물음을 박고 한건은 뜨거운 숨으로 대답했다.
“아이들이 당한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터집니다.”
한건의 진심이 담긴 눈동자를 유족협회대표는 뚫어지게 응시했다.
“결코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겁니다. 어른들의 책임이고 이 나라의 책임입니다.”
움찔하는 대표의 표정을 향해 한건은 계속 말했다.
“그런데 책임지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정말로 벌을 받아야 할 자들은 법꾸라지가 돼서 다 빠져나갔습니다. 물론 심인구회장과 윤기훈 같은 자는 천벌을 받았습니다만, 근본적인 부정과 범죄를 심판해야 합니다.”
이글거리는 것 같은 한건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대표는 후하고 한숨 쉬고 말했다.
“커피라도 한잔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