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종말전야. 41. 죽어 있던 운석.
41. 죽어 있던 운석.
이제 곧 눈으로 보게 될 초운공방을 생각하며 백곰은 의문을 삼켰다.
‘운석으로 팔찌를 만들어 판 수공예품점.’
아직 초운공방 주인여자의 신원이 조회되지 않은 상황, 그러나 확실한건 그 여자가 운석의 소지자였다는 거다. 그 여자가 만든 기념품 팔찌 세 개를 아이들이 가졌었다. 그 중 두 개를 제외한 나머지 하나가 대표다.
‘이종수에게서 정체모른 놈에게로 간 걸로 추정되는 것, 한만식과 박인수를 거치고 강남에서 현중놈을 경유해 유한기에게로 넘어간 운석 말고, 나머지 한 개는 유족협회대표가 가지고 있다 현중놈들이 가져간 건데……’
대표의 말에 의하면 그렇다. 씨마운틴화재사건을 글로서 세상에 정확하게 알리겠다면서 찾아온 젊은 남자, 그가 운석팔찌를 가져가지 않았다.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했다…… 그놈이 이종수가 죽던 현장에 있던 놈이고 김철기를 죽인 놈이 분명한데…… 애초에 추정했던 한건과는 다른 놈.’
그놈의 누군지 정말 모르겠다.
팀원들이 추적중인 김철기 살해자, 양로원에 들어갔고 거기까지 택시를 타고 갔던 놈의 모습과 다르다.
대표와 만난 카페 cctv에 찍힌 놈의 모습은 남춘역에 잡힌 놈과 다른 얼굴이다.
‘기묘하게 같은 놈인 것 같다는 느낌을 빼면.’
둘 다 마스크를 썼고 모자를 착용해서 확실치 않지만 다른 얼굴이다. 그런데 같은 놈인 것만 같은 기묘한 느낌, 강렬한 예감이 드는 건 왜일까.
‘대표의 운석은 뭐야?’
현중놈들이 죽도록 고문하고 가져간 팔찌, 그것은 이종수나 한만식이 가졌던 것과는 다르다. 대표에게 아무런 행운도 주지 않았다. 그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있었다. 마치 잠들어 있는 고물시계처럼 작동하지 않았다.
‘이름 없는 글쟁이라고 속이고 접근한 그놈, 그놈은 그렇다는 걸 안거야?’
그래서 운석팔찌를 안 가져간 건지 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건 정말 생각할수록 복잡하다.
애초에 한만식의 경우도 그렇다.
그는 운석의 힘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
아내와도 헤어지고 홀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이종수처럼 복수할 생각을 하지 못했어. 운석이란 존재를 몰랐던 거지.’
운석이 그에게 작용하지 않은 거다. 유족대표의 손목에 팔찌로 감겨있던 것처럼 죽어 있었던 거다. 그러던 것이 박인수의 손에 잡히면서 깨어났다.
이결과를 보면 운석은 제 힘을 발휘할 적합한 대상을 찾는 거다.
‘현중놈들이 가져간 게 이번에도 그렇게 깨어나는 거라면……’
미간을 꿈틀거리며 생각을 거듭하던 백곰은 김철기와 춘천을 다시 붙잡았다.
‘김철기, 그놈은 운석을 어디서 찾은 거야?’
춘천에서 팀원들이 조사 중이지만 알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춘천엔 유한기의 자취도 있었다.
그놈의 이동경로로 추적중이지만 역시 쉽지 않다.
무엇보다 놈에겐 운석이 있다, 그 힘을 십분 활용하고 있을 거다.
“부장님!”
팀원의 외치듯 부르는 소리에 백곰은 고개를 홱 들었다. 그렇게 그 광경을 봤다.
목적지, 초운공방이란 간판이 달린 상가에서 튀어나오는 그림자다.
* * *
강력한 충격을 받고 엎어진 한건은 가게 안으로 들이닥친 두 남자를 봤다.
한건 자신의 등에 육연발고무탄 발사기를 겨누고 있다.
다른 한 놈은 권총을 겨눈다.
그냥 권총이 아니라 마취제 주사기를 발사하는 총기다.
‘내가 너무 방심했구나……!’
콱하고 둔부에 박히는 주사기를 느끼자마자 한건은 경련했다.
이런 상황을 당연히 염두하고 대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당하는 순간이다.
운석의 출처를 알아내고 그에 얽힌 내용들을 접하며 긴장이 흩어졌다.
‘이렇게!’
등을 밟힌 채 수갑이 채워지는 상태에서 한건은 민초희를 봤다.
자신처럼 마취제를 맞은 그녀는 완전히 늘어졌다.
한 놈이 어깨에 둘러메고 나간다.
이 상황을 바로잡아야 하는데 경련하는 몸은 의지를 따르지 못한다.
‘이렇게 당하진 않아!’
불같은 분노와 살의가 내부에서 폭발해 나오는 걸 한건은 분명히 느꼈다.
무시무시한 의지, 그 힘이 마취제로 인한 몸의 경련을 밀어냈다.
등 뒤로 채워진 수갑도 끊어버렸다. 그렇게 한순간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났다.
“쏴!”
격하고 단호한 발포명령, 그렇게 날아오는 총탄들을 한건은 봤다.
문 앞에서 미니미 경기관총을 겨누고 발사하는 놈과 그 앞에서 좌우로 벌려서는 두 놈, 찰나에 날아오는 총탄들이다.
이 순간 그것들이 전부 보인다.
‘죽인다.’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의지에 몸을 맡긴 한건은 벽을 차고 나갔다.
무릎을 굽혔다가 펴며 나가는 동작 한 번에 좁은 점포의 벽을 밟으며 휘돌아나갔다.
총구를 채 돌리지 못한 기관총놈의 가슴에 발뒤꿈치를 박았다.
파괴를 알려주는 발의 감각 속에서 한건은 돌아섰다.
그 순간 점포의 유리문과 전면창을 부수고 튀어나간 놈이 도로에 구르는 걸 보지 않았다.
뒤돌아서며 권총을 뽑아 겨누는 두 놈에게 달려가 가위차기를 찼다.
뒤늦은 권총두발의 총성 속에서 두 놈의 안면이 부서졌다.
허수아비처럼 쓰러지는 그 최후 앞에서 몸을 돌린 한건은 가게 밖으로 달려 나갔다.
경기관총을 안고 굴러나간 놈 때문에 가게 앞 이면도로는 패닉이다.
‘너희들!’
승합차량 한 대에서 다른 놈들이 튀어나온다.
전부 외투 안쪽으로 총기를 지녔다. 하지만 주변 행인들의 비명 속에서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다.
그렇기는 한건 역시 마찬가지, 그런데 민초희를 실은 차는 이미 갔다.
‘개새끼들!’
승합차의 인원들을 향해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려던 한건은 다른 차량을 봤다. 급정거하는 대형 suv와 승합차, 거기서 또 다른 놈들이 내린다.
‘청록원!’
공방을 공격한 놈들이 현중이고 이제 나타난 놈들이 청록원이란 걸 한건은 깨달았다.
이 거리에 더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돌아서 달렸다.
현중과 청록원 놈들이 뒤 쫓아 오는 걸 인지하며 전력 질주했다.
* * *
“후.”
긴장된 숨을 내쉬며 현인규는 엘리베이터의 숫자를 응시했다.
지하주차장이 표시된 B3를 지나야 최종 목적장소에 다다르게 돼있다.
그릅 내에서도 이 장소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 그곳에서 운석을 볼 거다.
‘민초희.’
운석과 함께 확보한 여자의 이름이 그렇다고 한다.
지문을 통해 알아낸 신원은 놀랍게도 민유한 박사의 딸이다.
운석의 아버지, 운석에 미친 사람, 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학자다.
이제 아귀가 들어맞는 상황이다.
‘죽은 걸로 돼있는 여자……’
민초희는 공식기록상 그런 여자다. 그런데 살아 있었다. 다른 신분으로 여태 숨어 산 거다. 왜 그런 사연을 품고 있는 건지 이제 알게 될 거다.
‘그놈은……’
민초희를 찾아낸 놈, 결국 놓치고 만 그놈에 대한 분노와 의문이 가라앉질 않는다.
그놈이 누군지를 모르겠다.
김철기를 살해한 놈이 아니다.
윤지희와 살아남은 팀원에게 확인했다.
전혀 다른 얼굴의 다른 놈이다.
‘청록원을 이탈한 그놈도 아니고, 대체 누구야?’
누군지 모를 그놈은 운석소지자다. 초운공방이라는 작은 점포에서 그놈이 만든 결과가 증명한다. 경기관총으로까지 무장했는데 결국 당했다.
‘일이 거기서 끝난 게 다행인지 아닌 건지……’
점포 앞의 행인들이 목격한, 총기를 가진 자들의 난투극과 일장의 추적극은 뉴스를 타고 있다. 그렇게만 알려진 건 그놈이 도망쳐서다. 현장에 닥쳐온 청록원도 그이상의 행동을 자제해서다. 그래야 할 일이었다.
‘청록원이 이런 때는 도움이 되는 건가?’
현인규는 피식 웃었다.
청록원이 어떻게 마무리 할지 예상이 된다.
이미 발표한 간첩단사건으로 엮을 거다.
그게 저희에게 도움이 되는 거다.
진실이 알려져 세상이 시끄러워지면 그들로서는 좋을 게 하나도 없다.
‘덕분에 우리 애들은 국기기관원들이 되겠군.’
초운공방이란 곳에서 암약하던 고정간첩을 체포하려던 사건, 아마 그렇게 될 거다. 총기를 발사하면서까지 급습했지만 한 놈을 놓친 거다.
다른 수확이라면 유족협회 대표다. 역시 간첩활동을 하던 그를 찾아낸 거다.
‘도망친 놈이 살해한 걸로 하겠지. 이용하고 죽인 걸로.’
청록원 입장에선 현중그룹의 현장팀들도 간첩단으로 몰아버리고 싶을 거다. 그런데 그렇게 하질 못한다. 초운공방 앞 그 이면도로, 상가와 주택가가 이어진 그 장소에는 행인들이 많았다. 그래서 즉각 추적만 한 거다.
‘한적한 장소였으면 달랐겠지만.’
청록원과 전면 접전을 벌이면 생겨날 결과를 더듬던 현인규는 땡 소리에 깨어났다. 그룹강남사옥의 제일 아래층, 지하의 비밀 공간에 도착했다.
* * *
‘제길……!’
분노로 이를 갈며 백곰은 태블릿을 들여다봤다.
이동하는 차 안이라 시야가 어지럽지만 지금 어지러운 건 실패한 분노 때문이다.
초운공방에서 아무것도 못 건졌다.
그나마 건진 건 민초희, 지문을 통한 신원파악이다.
‘죽었다고 돼 있는 여자, 민유한 박사의 딸이란 말이지?’
초운 공방의 주인은 그녀다. 그녀가 운석팔찌를 만든 장본인이다.
‘운석의 최초 출처는 민유한 박사.’
이제 밝혀진 진실을 숨으로 삼키던 백곰은 태블릿이 흘려내는 뉴스에 정신을 집중했다.
-부천 원미공원 앞 상가에서 벌어진 총기사건은 청록원의 긴급작전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미 충격을 주고 있는 간첩단사건의 연장선입니다. 초운공방이란 곳에서 암약하던 고정간첩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뉴스는 기획한 내용대로 흘러나오고 있다.
이어지는 내용은 유족협회 대표의 죽음이다.
이종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용당하고 살해된 거다.
-경찰은 카페의 cctv에 잡힌 범인의 사진을 공개수배로 올렸습니다. 간첩단의 핵심인물로 추정되는 이 남자가 바로 그 인물입니다. 비탄에 빠져 있는 씨마운틴유족들에게 접근해 반정부의 사상을 주입하고 조종한……
유족대표와 만난 카페 카메라에 포착된 놈의 사진이 떴다. 정말 모를 얼굴이다.
“넌 내가 잡는다, 반드시.”
분노를 숨과 함께 넘긴 백곰은 새삼 치미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현중새끼들……!’
눈앞에서 그것들을 보내야 했다. 손가락 하나도 대지 못했다.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 거리에서 총을 쏘고 피를 본다면 다 망치게 되는 거다.
모조리 쳐 없애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최후엔 이기기 위해서다.
‘이겨?’
문득 치민 반발의 생각에 백곰은 당혹을 삼켰다.
‘누굴 위해서?’
머리와 가슴을 채워 들어가는 분노와 살의 속에서 백곰은 거칠게 종용했다.
“마석이 북극보다 머냐! 밟아!”
김철기 살해자의 종적을 찾아가는 길, 차는 어두워지는 도로를 맹렬히 달려갔다.
* * *
봉합한 옆구리를 내려다본 윤지희는 미간을 구기면서 일어섰다.
침대를 벗어나 창가로 가 밖을 보며 그를 생각했다.
한건, 그는 지금 어디 있을까.
그룹에서 오늘 오후에 벌인 작전에서 그의 자취가 느껴진다.
‘김철기를 살해한 그 남자와 다른 얼굴.’
초운공방이란 곳에서 도주한 그 남자는 제삼의 인물이다.
한건도 아니고 김철기를 살해하고 사라진 남자도 아니다. 그걸 현장팀에게 확인해줬다.
그런데 그가, 그들이 그인 것만 같다.
한건, 그 남자가 모두인 것 같다.
“잡히지 마요……”
창문을 향해 그 말을 던진 윤지희는 흠칫하며 입을 닫았다.
자신도 모르게 흘려낸 내심의 중얼거림, 혼자이기에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가슴속의 진심을 부정할 수 없어 윤지희는 고개를 떨궜다.
* * *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한건은 냉기 어린 집안 공기를 들이마셨다.
이미 확인한대로 집엔 침입자가 없다. 그런 흔적도 없다. 그러나 이제 곧 그렇게 될 거다.
그 전에 이동해야 한다. 지금 얼굴과 신분도 바꿔야 한다.
‘춘천에서 탄 택시, 양로원, 그렇게 거쳐서 여기로 오겠지.’
이곳 신분은 원지훈, 애니메이션 박물관 앞에서 버스를 타기 전 바꾼 신분은 김종찬, 이제 또다시 갈아타야 한다. 그래서 한편 걱정이 된다.
이렇게 연속해서 가능할 것인지의 걱정이다. 하지만 달리 방법도 없다.
‘우선은 지금 이 얼굴로 벗어난 후에.’
한건은 서둘러 짐을 챙겼다. 돈이 든 배낭에 옷가지를 넣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가며 드는 생각은 보증금을 버리는 아쉬움이 아니라 민초희에 대한 미안함이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건 결국 자신인 거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마음속으로 사죄를 올리며 한건은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를 빠르게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