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92화 (192/200)

[외전] 종말전야. 42. 살아나는 운석.

42. 살아나는 운석.

“죽여……”

생의 미련을 버린 눈이다. 민초희라는 이름으로 산 인생을 버렸듯이 저 여자는 이제 정말 아무런 미련이 없는 거다. 그래서 모든 걸 말했다.

‘운석이 깨어나는 조건이 있다는 건데……’

피투성이 몰골의 민초희에게서 돌아선 현인규는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을 들으며 운석을 향해 걸어갔다. 민초희가 텅 빈 눈으로 바라다보던 강화플라스틱케이스, 덮개를 열어놓은 그 안에 운석팔찌가 놓여 있다.

‘유족대표가 가지고 있던 운석.’

2팀장이 확보해온 것이다.

절대 직접 손대지 말라고, 이 케이스에 넣어오라고 지시한 대로다.

물론 운석을 그곳에서 확보할거라곤 생각 못했었다.

유족대표를 그렇게 처리할 생각도 아니었다.

그런데 상황의 급박함으로 그렇게 됐다. 유족대표를 처리하는 과정에게 초운공방을 알아낸 거다.

‘민유한 박사로부터 나온 운석.’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그렇다.

이것 말고 두 개가 더 있었다.

하나는 이종수가, 다른 하나는 한만식이 가졌다. 그런데 둘의 경우가 다르다.

‘한만식은 자살했고 이종수는 운석의 힘으로 복수……’

그런 개별의 차이가 왜 있는 건지 정확히 모른다.

한만식의 운석은 행운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 운석이 박인수에게는 달랐다.

그는 부천서에서 강남서로 승진해 이동했다.

따져보나 마나 분명 운석의 영향이다.

‘그걸 최강호가, 다시 청록원놈에게로 옮겨 간 건데……’

일련의 흐름을 보면 운석이 그렇게 한 것 같다.

한만식에게서는 깨어나지 않고 있다가 박인수에게서 깨어난 거다.

그건 모종의 조건이 맞아서라고 판단된다.

적합한 상태가 돼서다. 그이후로도 그런 식인 것 같다.

‘더 나은 환경을 찾아서, 그래, 적합자를 찾아서.’

뜨거워진 숨을 입과 코에 머금고 현인규는 팔찌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이순간의 흥분과 동시에 솟구치는 건 의문이다.

그놈이 왜 안 가져간 건지다.

유족대표에게 글쟁이라고 속이고 접근한 놈, 그냥 가버렸다.

‘이 운석이 죽은 거라는 걸 알아서?’

유족대표를 보면 확실히 그렇다. 그래서 필요 없다고 판단해서 그냥 간 건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놈은 빈손으로 갔다. 그 덕에 지금 눈앞에 있다.

“그걸 잡아, 그러면 너도 나처럼 될 테니까.”

뒤에서 들려온 민초희의 목소리에 현인규는 흠칫했다. 느릿하게 돌아서서 민초희를 바라봤다. 의자에 결박된 상태의 그녀는 차갑게 웃는다.

“그건 죽은 게 아니야. 나도 이제야 한 거지만 잠들어 있을 뿐인 거야.”

차가운 미소 뒤로 민초희는 회한의 숨을 이어냈다.

“그래, 내 손에서 수십 년을 그렇게 있었듯이 그냥 잠자고 있을 뿐인 거야. 그러다가 깨어났지. 불속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던 아이들의 비참한 원통을 빨아먹고 깨어난 거야. 잠든척하고 있는 건 적합자를 찾는 거고.”

허공을 응시하던 민초희의 텅 빈 눈은 다시 현인규를 바라봤다.

“아버지가 준 운석 중에 하나만 내 손에서 깨어났었어. 나는 그걸로 향락을 즐기며 살았지. 그러다 황윤성을 만났고, 그가 내 운석을 쥐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어. 그래서 도망쳤지. 그런데 아직도 운석이 있더라고.”

그게 팔찌로 만든 운석인 거다. 그런데 이어내는 이야기는 놀랍다.

“내가 팔찌로 만들어 판 운석이 세 개뿐일 거 같아?”

현인규는 미간을 확 좁혔고 민초희는 흐린 미소로 뒷말을 냈다.

“아버지의 운석상자에는 수십 개의 운석이 있었어. 모두 잠들어 있었지. 난 그걸 다 팔찌로 만들어 팔았어. 정확하게 숫자도 몰라, 누가 사갔는지는 더 모르지. 아는 건 하나야, 그것들이 이제 깨어나고 있다는 거.”

미소 짓는 민초희를 보며 현인규는 한마디를 신음처럼 흘려냈다.

“촉발……!”

예감하던 운석의 내용이다.

북극사태 이전부터 운석들은 퍼져 있었고, 북극사태는 운석들이 깨어나게 한 알람 같은 거란 거다.

물론 민초희처럼 훨씬 이전부터 깬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전체를 깨운 것은 북극이다.

“로또당첨자가 백 명이 넘게 나왔다면서?”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다시 문 민초희는 텅 비었던 눈에 즐거움을 담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현인규의 미간이 더 깊게 좁혀지는 걸 보며 민초희는 희열을 삼켰다.

“이 세상에, 인간들에게 어떤 일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아?”

자신에게 던지던 의문이다.

이종수씨가 복수를 위해 나선 걸 인지하고 나서부터 예감하던 거다.

그 남자가 찾아와서 들려준 이야기로 확신했다.

“당신도 느끼고 있지?”

면도날의 번득임 같은 미소를 풀어낸 민초희는 바로 물음을 던졌다.

“그 남자는 왜 유족대표의 운석을 안 가져갔을까?”

현인규는 미간을 크게 꿈틀거렸다.

자신도 품은 의문이다.

김철기를 죽이고 운석을 가져간 놈이거나 이종수의 운석을 가져간 놈이거나, 동일인이거나 아니거나, 어쨌든 운석소지자인 놈이 다른 운석을 포기한 거다.

“그 운석이 죽은 거라서? 그래, 그럴 수 있지. 운석은 가진 자와 조건이 맞아야 한다는 걸 이젠 아니까. 그런 이유일거야, 안 맞아서 말이야.”

이어 나온 민초희의 짐작이 답일 거라고 현인규는 생각했다.

활성화의 조건이 안 맞아서다.

운석소지자인 놈은 그걸 느끼는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된다. 다른 운석을 강탈하던 놈이 포기한 케이스다.

“그런데 그건 너희 같은 자들의 생각이고.”

멸시를 담은 민초희의 눈과 목소리에 현인규는 미간을 구겼다.

“그 남자의 눈에는 너희들이 갖지 못한 게 있었어. 슬픔을 이해하는 마음, 이종수씨와 한만식씨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그는 알아. 불속에서 숨진 아이가 남긴 유품인 거야. 그걸 지니고 있는 부모의 마음을 그 남자는 너무나 잘 아는 거야. 그래서 그냥 돌아선 거지.”

구긴 미간을 느릿하게 펴며 현인규는 2팀장의 보고를 떠올렸다.

‘그래서……’

유족대표는 운석팔찌를 숨겨놨었다.

고문과 자백약물을 병행해서야 초운공방과 운석팔찌에 대해 알아낸 거다.

그놈이 팔찌를 숨기라고 했던 거다.

‘그놈……’

취재하는 동안 알아본 바의 의하면 팔찌를 찾아 노리는 자들이 있다는 소리를 한 거다.

이종수와 한만식에게도 있었다는 걸 대표도 알고 있었다.

진실한 내막이야 어떻든 이종수가 죽었으니 대표는 겁을 먹었다.

그래서 결국 협조를 못 얻어내고 강제력을 사용했고, 그 뒤로 청록원이 닥친 거다.

그놈들은 죽어가는 자를 다시 한 번 죽이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너희가 이렇게 까지 잔혹하게 하리라곤 생각 못했을 거야.”

다시 목소리를 낸 민초희는 증오를 품은 눈동자를 빛냈다.

“그 자신이 짚어낸 진실의 가닥을 너희 같은 놈들도 찾아낼지 모른다는 생각은 했겠지. 그렇지만 사실관계를 부인하고 아무것도 모른 척하면 별일 없을 거라고 판단한 거야. 운석관련 증거도 없고, 언론에 나오는 유족대표를 함부로 못할 거라고. 그런데 너희 같은 짐승들은 아닌 거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을 말하는 것처럼 민초희는 무감정하게 말을 이었다.

“운석은 너희 같은 것들을 좋아해.”

무감정하던 민초희의 눈에 불꽃같은 것이 피어났다.

“그 손으로 어서 움켜쥐어 봐.”

더러운 기분이 든 현인규는 민초희를 향해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냈다. 하지만 바로 멈췄다. 험악한 눈으로 민초희를 노려보다가 돌아섰다.

“그래, 아는 척 해라. 그러기에 좋은 꼬라지다.”

조소를 입가에 문 현인규는 운석을 잡았다. 투명플라스틱재질로 감싼 콩알만한 운석, 붉은 수실을 꼬아 만든 줄과 함께 그것을 쥐고 숨을 삼켰다.

그 순간, 변화가 왔다.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느낌, 손에 빛이 피어났다.

* * *

사색이 된 집주인을 지나쳐 빌라 계단을 올라간 백곰은 집안에 발을 들였다.

가재도구라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다.

안방에 침낭이 있고 싱크대엔 소형버너와 코펠이 있다.

집안에 남은 거라곤 그게 전부다.

‘원기훈.’

계약서에 기록된 신원이다.

34세의 미혼남자다. 그렇지만 오년 전에 행방불명된 자다.

가족이 없어서 실종신고도 되지 않은 자, 그런 신원이다.

그래서 이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자는 누구인가.

‘분명한건 운석 소지자.’

한건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그놈의 자취가 인접했던 곳에서 이런 놈이 튀어나왔다.

이놈이 이종수가 죽던 현장에 있던 놈이다.

요원 둘을 살해하고 이종수의 운석을 가져간 거다. 그리고 김철기까지 노린 거다.

‘김철기를 특정한 건……’

상봉역 발화사건으로부터일 가능성이 크다.

희생자들이 춘천거주자인 것을 알고 춘천에 갔고, 우연인지 뭔지 경찰서 앞에서 현중놈들 뒤를 밟은 거다.

그렇다는 건 그놈이 현중놈들을 알고 있단 거다. 어떻게 알까?

‘제길, 머리 아프네.’

인상 쓰는 백곰에게 팀원이 다가와 보고한다.

“빌라를 나서는 모습은 골목 전봇대의 관제카메라에 잡혔습니다만, 이후로는 어디에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진데다 모자와 마스크 때문에 동인일인지 식별이 어렵습니다. 배낭을 메고 도주한 모습입니다.”

배낭이란 말에 백곰은 미간을 확 좁혔다.

‘배낭?’

한건이 그랬다. 그놈은 맨 처음 의정부 집을 나갈 때부터 그랬다.

그러니 기묘하다.

여기 있다 도주한 놈은 한건이 아니다. 원기훈이란 놈이다.

겹칠게 없는 놈들이다. 그런데 배낭이란 게 겹친다.

이건 또 뭔가?

‘두 놈 다 운석을 가졌다는 것도.’

힘이 들어갔던 어금니를 풀며 백곰은 지시했다.

“놈을 찾아.”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라는 말은 하지 않아도 알기에 팀원은 즉각 돌아섰다. 그런데 다른 팀원이 바로 다가와 새롭게 알아낸 걸 보고한다.

“유족대표와 만난 놈, 초운공방을 찾아갔던 자의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카페의 찻잔에 남은 지문을 조회한 결과 김창진이란 자로 확인됐습니다.”

백곰은 태블릿 안 사진의 인물을 응시하며 이를 악물었다.

‘이 새끼는 또 뭐야?’

* * *

깊어가는 밤 속을 걷던 한건은 문득 등에 진 배낭의 무게를 느꼈다.

피 같은 돈이 든 배낭, 현금 사억의 무게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이 돈이 짐으로 여겨지는 건 왜일까?

뼈다귀를 물고 안 놓으려는 개 같다는 느낌은 왜일까?

‘통장의 이십억도 그림의 떡인데.’

그러니 이 돈만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솟아오르는 생각과 감정은 그게 바보짓이라는 거다.

현재의 한건 자신에게는 짐일 뿐이라는 거다.

이렇게 배낭을 메고 cctv를 피해 이동하는 건 한계가 있다.

‘필요한 돈만 챙기고 처분하는 게 맞아.’

강하게 어금니를 물었다 힘을 푼 한건은 결심했다.

신분까지 바꾸는 자신이다. 필요하면 어떤 방법으로든 돈을 구할 수 있다.

피 같은 돈이라지만, 그 돈은 이미 사라졌다.

등에 진 이 돈은 삼화파이낸스를 턴 돈이다.

‘의미 부여일 뿐이야.’

걸음을 멈춘 한건은 주변을 돌아봤다.

마석을 벗어나 산길로만 이동하는 지금 위치는 마석터널 옆이다.

폰에 뜬 위치가 그렇고 저 편의 자동차전용도로가 그렇다.

이제 조금 더 가면 평내다. 거기서 갈아타야 한다.

‘신분을 포함해서.’

배낭을 내린 한건은 현금 다발을 되는 대로 주머니에 넣었다.

배낭을 여미고 이후 행동을 계획했다.

우선 돈을 해결하는 거다.

종이 쑈핑백 같은데 넣어서 지구대 앞에 놓으면 될 거다. 가끔 나오는 뉴스처럼이다.

그리고 난후엔 안전한 곳을 찾아 휴식을 취하고 이후 행동을 준비하는 거다.

냉철하고 치밀하게 해야 한다, 오늘처럼 어설픈 행동은 피해를 만든다.

민초희씨가 그렇고 유족대표가 그렇다. 그는 결국 죽임 당했다.

‘개새끼들……!’

현중그룹과 청록원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 한건은 진저리를 쳤다.

간첩단 사건으로 몰아가는 청록원의 힘과 능력을 확실히 인지하고 행동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드러내놓고 유족대표를 만나는 짓은 안했을 거다.

‘그렇지만 결국……’

한건 자신이 짚어간 것을 그들도 짚어 온 거다.

결국은 피하지 못했을 일인지도 모른다.

무소불위, 공권력을 이용하는 자들이다. 운석을 향한 그들의 행동은 거칠 것이 없는 거다.

그렇지만 죄책감이 사무친다.

‘미안합니다……!’

깊고 무거운 마음으로 사죄의 숨을 삼킨 한건은 다시 배낭을 메고 움직였다.

* * *

“후아……”

십년동안 막혔던 숨을 틔우듯이 현인규는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속에서 꿈틀거리는 힘과 의지를 느꼈다.

운석, 깨어나서 하나가 됐다.

현인규 자신을 적합자로 선택한 거다.

이결과의 명확함이 영혼을 울리고 있다.

‘내거야, 모두 내가 가질 거야……!’

부르르 진저리를 친 현인규는 운석이 들었던 빈 케이스를 봤다.

운석을 확보했다고 보고했으니 회장님께 가져가야 한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떠오른다.

가짜다, 저 안에 가짜를 넣어 죽은 운석임을 보고하는 거다.

‘어차피 그룹도 내 것이 될 테니까.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다시 한 번 진저리를 치던 현인규는 민초희의 목소리를 들었다.

“네 영혼도 이젠 오염됐구나.”

차가운 증오의 미소를 풀어내고 있는 여자, 민초희를 향해 돌아선 현인규는 웃었다.

소리 없이 웃으며 걸음을 냈다. 민초희 앞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무슨 의미인지 바로 이해 못했던 팀원은 권총을 꺼내 건넸다.

철컥, 슬라이드를 당겼다 놓으며 현인규는 말했다.

“잘 가라.”

민초희에게 권총을 겨눈 현인규는 방아쇠를 당겼다.

총소리와 섬광 속에서 민초희는 꿈틀거렸다.

열다섯 번, 탄창이 비고 나서야 움직임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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