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종말전야. 44. 진실의 음모론.
44. 진실의 음모론.
-이게 과연 무슨 일이겠느냐 이겁니다. 오늘 아침 해양수산부장관의 발표는 백프로 구랍니다. 아니지, 그 속에 진실이 3프로는 들어있으려나?
pc방에 앉아 한건은 유투브방송을 봤다.
제라드라는 이름으로 요새 인기를 얻고 있는 유튜버는 괴변사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퍼지며 힘이 실리고 있는 음모론이다.
물론 덮여 있는 진실이기도 하다.
-다산기지와 해동기지가 폐쇄된 이유는 거기 있던 사람들이 다 죽어서가 맞을 겁니다. 예, 그건 팩트죠. 왜냐면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 누구도 가족과 연락한 사람이 없습니다. 예, 싸그리 행방불명된 상태지요.
파란색 비니모자를 쓰고 파일럿안경을 착용한 제라드는 강변한다.
-바이러스라고요? 예,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도 지금 바이러스 때문에 생난리를 겪고 있잖습니까? 인간들이 만든 환경재앙으로 극지의 영구동토가 녹고 그 밑에 있던 수만년전의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가능하죠.
화면 속 제라드는 차가운 비웃음을 흘려낸다.
-그 이야기가 먹히려면 괴변사태의 주인공들은 뭔지 밝혀야 합니다. 다들 아시죠? 총 맞아도 안 죽고 고층에서 뛰어내리고 펜션지붕을 점프해 넘어가고, 허리우드 히어로 영홥니까? 그게 다 영화 촬영한 거냐고요?
커피를 한 모금 넘긴 한건은 이어 나온 말에 눈가를 움찔했다.
-씨마운틴화재사건을 모르면 간첩일 겁니다.
제라드는 파일럿 안경을 올리며 차가운 조소를 피워냈다.
-간첩, 아 정말 무서운 말입니다. 요새 그 단어가 뉴스를 도배하고 있죠? 때만 되면 등장하는 간첩들. 예, 북한놈들이 보낸 간첩은 정말로 있고 암약중일 겁니다. 그런데 이번 간첩단이 그렇냐 하는 건 다른 문제죠.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쥔 채 한건은 화면을 응시했다.
-어제 씨마운틴화재사건 유족협회대표가 살해됐습니다. 그 이전에 살해돼 발견된 이종수씨처럼 간첩단에 의한 소행으로 말하고 있죠. 포섭돼서 반정부 활동을 벌이다가 팽당한 거라고요. 아 이게 무슨 개소립니까? 목숨 같은 아이들을 잃고 비참한 삶을 살던 분들에게 할 소립니까?
제라드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백프로 조작입니다!
격하게 소리친 제라드는 다시 침착함을 찾은 얼굴로 목소릴 이어냈다.
-청록원인지 뭔지 그 정부기관에서 만든 작품인 겁니다. 이종수씨가 살해된 남양주 폐공장 현장엔 다른 두 명의 변사체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청록원 요원이죠. 예, 이종수씨를 살해한 간첩들과 싸우다 그렇게 됐다는 소리, 거짓말입니다. 그들이 이종수씨를 죽인 겁니다. 그리고 죽었죠.
눈동자에 힘을 가득 실은 한건은 헤드폰을 잡았다. 그렇게 제라드의 목소리에 귀기울였다.
-그 현장에서 그들을 살해한 누군가가 방송사에 제보를 했습니다. 청록원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드러났습니다. 간첩이니 뭐니 그런 헛소리가 아니라 이 일엔 다른 진실이 숨어 있는 겁니다. 그게 뭐냐? 북극입니다.
흥분한 얼굴로 제라드는 청록원이란 이름을 다시 말했다.
-청록원이 뭡니까? 정확히 뭐하는 곳입니까? 해양수산부관련 정부기관이라고요? 극지기지 연구를 위해 만들었다고요? 산업스파이들 잡고 뭐 그런 거요? 이번 북한의 간첩단 사건이 바로 그렇다고요? 그럼 북한 간첩들이 뭘 노리고 있는 건지 말하면 되겠네요? 그죠? 그게 뭔가요?
다시 비웃음을 피워내는 제라드.
-아아 그건 국가기밀이라 안돼요? 쓰바, 그럼 말고.
얼굴 가득 비웃음을 물던 제라드는 다시 진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진실은 이런 겁니다. 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은 북극과 관련이 있다. 당연히 청록원과 관련이 있다. 청록원은 그걸 쫓는 거고 간첩으로 몰린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거나 가지고 있었다.
제라드는 반문한다.
-그게 뭘까요? 청록원이 쫓는 것은 무엇일까요? 한 가지 확실한건 괴변사태라는 겁니다. 청록원이 추적하는 일은 괴변사태였습니다. 이종수씨가 대표적인 사롑니다. 그 사람은 심인구회장 그 개자식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새끼 집에 불이 난 게 그 사람 소행이라고 경찰이 밝혔지만. 네, 맞습니다. 그 사람이 한 겁니다. 그리고 남양주로 간 겁니다.
미간을 꿈틀거리며 한건은 제라드의 주장을 들었다.
-윤기훈이 미쳐서 창문 밖으로 날았잖아요? 그게 바로 이종수씨가 한거라 이겁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나도 모르죠. 예, 뇌피셜입니다. 그 부분이 괴변사태라는 거고요. 그게 정확히 뭔지를 몰라요. 아는 건 청록원이 추적한단 겁니다. 그런 일이 가능하도록 하는, 원인을 쫓는 거죠.
한건은 빈 종이컵을 우그러뜨렸고 제라드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씨마운틴화재사건 관련한 사건은 또 이어지죠? 예, 이종수씨가 죽이는 걸 실패한 놈, 강남경찰서에서 심인구회장이 총 맞아 죽었죠? 쏴 죽인 경찰이 한 소리 다 아시죠? 정의실현이잖아요? 윤기훈이 죽기 전에 한 말과 비슷하죠? 이거 뭘까요? 바이러스에 감염돼서 미쳤던 걸까요?
제라드는 핵심을 짚고 있었다.
-거기가 끝이 아닙니다. 심회장을 쏴 죽인 박인수 경정, 그의 시신이 옮겨진 강남 y대학병원에서 총격전이 일어났습니다. 네, 모두가 본 그 영상이죠. 괴변사태의 결정판입니다. 수십 발의 총을 맞고도 안 죽였죠.
현중그룹과 청록원의 접전. 제라드는 더없이 무거운 눈으로 말한다.
-이게 다 뭔지, 무슨 일인지 우린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드러난 진실의 단편들을 모으고 분석해서 추측할 뿐이죠. 제가 찾아낸 진실은 이렇습니다. 북극에서 뭔가 나왔다. 그건 괴변사태를 만들어 내는 원인이다. 청록원이 추적하는 그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 주변에 퍼지고 있다.
한건은 눈을 감고 헤드폰을 벗었다. 그렇게 이 현실의 무게를 가늠했다.
어느새 세상은 저렇게까지 진실에 접근해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거다.
주머니 속의 송곳은 삐져나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아직 음모다.
‘운석들이 창궐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병마처럼 창궐이란 말이 이상하지만 지금 상황이 그렇다.
운석을 가진 자들이 출발 총소리에 맞춰 달리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일제히 움직이고 있다.
아니 이미 출발은 이뤄졌다. 앞뒤로 달리는 작은 차이일 뿐이다.
‘운석이 가진 본능은 폭력과 살상.‘
제어하기 힘든 그 충동을 떠올리며 한건은 어깨를 떨었다. 하지만 이내 심신을 제어하고 검색했다. 운석소지자들에 의한 사건들이다. 그 중에 가장 가까운 곳을 찍었다. 서울 노원구에 연쇄금은방절도사건이다.
‘하룻밤 사이에 다섯 곳.‘
금은방 유리창과 출입문을 파괴하고 들어선 일인절도범이다.
일이분 만에 진열된 금은보석류를 싹 털어갔다.
경찰이 출동하는 사이 다른 곳을 털었다.
모두 다섯 곳, 귀신같은 도주로 경찰을 희롱하고 사라진 사건이다.
‘괴변사태라고 말하는 운동능력.‘
마지막 금은방에선 경찰차를 밟고 점프해 도주했다. 그 광경이 다른 경찰차 블랙박스와 바디캠에 찍혔다. 운석소지자가 아니면 저럴 수가 없다.
‘청록원 놈들과 현중에서 움직였겠지.‘
운석을 확보하려고 혈안이 된 자들, 그들의 뒤로 가기 위해 한건은 일어섰다.
* * *
더듬이를 움직이면 먹잇감을 찾아내듯이, 그렇게 운석을 찾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게 안 된다. 운석이 스스로 드러나지 않는 이상은 알 수 없다. 그건 유한기 자신도 마찬가지, 발각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운석을 가진 놈들은 다른 운석을 노릴 거야.‘
그렇게 적합자가 된 경우에는 그럴거라고 확신한다. 불필요한 숙주들을 거쳐 어느 정도 최적화가 된 개체들은 분명 다른 운석을 필요로 한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다.
유한기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본능이 그거다.
‘여긴데……‘
경찰의 폴리리스라인이 쳐 있는 소형빌딩은 번화가의 한복판이다. 부동산에게 매물을 보러온 사람처럼 하며 탐문한 내용으론 피해자들이 조폭이다. 셋이나 타 죽었다. 과학수사대 조끼를 입은 경찰들이 분주하다.
‘안에 들어가긴 힘들겠고.‘
그럴 필요도 없다. 운석소지자만 찾으면 된다.
그런데 그게 누군지를 알기 힘들다.
짠하고 눈앞에 나타나 준다면 모를까, 덤불에서 바늘 찾기다.
‘어!‘
등골을 훑고 내려가는 짜릿한 감각에 유한기는 흠칫했다.
반사적으로 주변을 돌아봤다.
차도 건너편, 검은 가죽점퍼를 입은 남자가 빌딩을 바라보고 있다.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본다. 그런데 운석소지자다.
‘너구나……!‘
뜨거운 침을 삼킨 유한기는 느릿하게 움직였다.
* * *
‘상주백십자 병원.‘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 안에서 백곰은 목적지의 위치를 맵상에서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생각은 다른데 가 있다. 국장과의 오늘 아침 대화다.
운석확보는 물론 백곰 자신의 체내로 흡수된 결과를 비밀로 하는 거다.
‘팀원들은 알 수 없어.‘
황윤성이 운석을 가졌었다는 걸 알리지도 않았고 팀원들도 묻지 않는다. 해야 할 일만 할뿐인 거다.
하지만 황윤성을 본 팀원들은 알고 있다.
그가 운석소지자였다는 것, 운석은 국장에게 올라갔다고 여길 것이다.
그 중간에서 국장과 백곰 자신이 비밀을 만든 거다.
위에선 황윤성의 운석을 모를 테고, 현장 팀원들은 위와 접촉할 일이 없다. 설사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백곰 자신의 부하들이다.
비밀은 지켜질 것이다.
“김철기가 운석을 갖게 된 경위를 파악했습니다.“
팀원이 내민 태블릿을 들여다보며 백곰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민초희, 민유한 박사로부터군.‘
반년 전 춘천고등학교 과학실 리모델링 공사현장에 김철기가 있었다.
인부로 일하던 그는 가스폭발에 휘말렸지만 멀쩡했다.
이유는 운석, 민유한 박사가 모교인 춘천고등학교에 기증했던 것이다.
운석이 깨어난 거다.
‘김철기라는 적합자로 인해서.‘
지그시 어금니에 힘을 줬다 푼 백곰은 현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운석소지자들 추적과 관련해서 아직 성과가 없는 건가?“
태블릿을 건넸던 팀원이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범위를 좁혀서 대응중이지만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쥐고 있던 태블릿을 팀원에게 던진 백곰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 손으로 하나씩 해결할 수 밖에.‘
지금 그러기 위해 간다. 상주단위농협을 턴 놈에게다. 경찰의 총격으로 쓰러진 놈, 왜 그런지 상처가 복원되지 않아 병원에 누워 있는 놈이다.
“너부터.“
창밖을 보며 나직하게 말한 백곰의 눈동자엔 섬뜩한 살의가 지나갔다.
* * *
“이게 운석이냐?“
열려 있는 플라스틱 케이스를 보는 회장의 눈이 뜨겁다. 그 모습을 보며 현인규는 갑작스러운 충동을 느꼈다. 회장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은, 아버지이지만 아버지처럼 느껴본 적 없는 저 얼굴을 때려 부수고 싶다.
‘내가 후계자라고?‘
그렇지 않다. 회장 현태수가 점지한 후계자는 따로 있다.
젊은 여배우년이 낳은 애새끼다.
이제 열 살이 된 놈, 그놈의 앞길을 닦아주는 역할이 현인규 자신의 것이다.
언젠가 그놈이 주인 노릇을 할 날이 오는 거다.
‘그런 일은 안 생길거야. 절대로……!‘
부르르 진저리를 치는 현인규를 그 순간 현태수 회장이 돌아봤다.
“뭐하는 거냐?“
미간을 찡그린 현태수 회장을 향해 현인규는 즉각 심신을 수습하고 말했다.
“다른 운석을 계속 확보 중에 있습니다.“
“그래, 그건 당연한 건데……“
고개를 주억거린 현태수 회장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여태 괴이사건을 만든 게 이거라는 건데, 그렇게 보기엔 그냥 조약돌처럼 보이는데?“
시선을 다시 던지는 아버지 현태수 회장에게 현인규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맞습니다.“
“뭐?“
“그냥 조약돌입니다.“
“무슨…… 너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의혹의 표정에서 분노로 바뀌는 현태수 회장, 현인규는 슥 다가갔다.
“그년하고 애새끼가 그렇게 좋습니까?“
차갑다 못해 섬뜩한 미소를 피워내는 현인규. 현태수 회장은 당황했다.
“이, 이놈이 지금?“
현인규는 부친 현태수 회장의 멱살을 확 잡아 당겼다.
이 순간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충동에 전율하면서다.
숨결에 불이 붙은 것처럼 뜨겁다.
“당신 뜻대로 될 일은 없어.“
숨이 막혀 창백해지는 얼굴로 현태수 회장은 버둥거렸다.
“컥, 이, 이, 커헉!“
현인규는 사악한 미소를 흘려내며 살의를 토했다. 죽음의 선고다.
“먼저 가 있으면 그것들이 따라갈거야.“
현인규는 부친 현태수 회장의 가슴에 손을 댔다.
운석이 스며들어간 손이다.
손에서 무지개 빛이 어른거렸고, 현태수 회장은 꿈틀하곤 늘어졌다.
“죽어서 만큼은 아버지 노릇을 해 보라고.“
현태수 회장을 의자에 놓고 물러난 현인규는 비서실을 향해 소리쳤다.
“회장님이 이상하다! 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아버지!“
회장실 문을 열고 비서들이 달려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