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95화 (195/200)

[외전] 종말전야. 45. 운석 사냥 1.

45. 운석 사냥 1.

마지막 현장인 황금당의 간판을 응시하며 한건은 주변을 돌아봤다.

공릉역 대로 바로 배후지의 이면도로다.

초등학교가 있고 아파트가 있으며 빌라와 다세대와 상가들이 밀접한 지역, 조금 올라가면 고깃집이 있다.

‘저기서 셋이 밥 먹은 게 마지막이 됐구나.‘

유명한 고깃집, 친구 이응삼이 쏜다며 호기를 부린 날이다.

파병 가기 전이었다. 최병철과 이응삼과 한건 자신은 저 집에 앉아 있었다.

비싼 한우 고기를 숯불에 구워가며 술잔을 기울였었다.

이젠 다시 안 올 날이다.

“하.“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떨군 한건은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큰 숨을 거듭해서 들이 내쉬었다. 친구들의 얼굴이 아른거리는 시야에 현실을 담으려 힘을 줬다. 고개 들어 하늘을 봤다. 푸르러야 할 하늘이 붉은 빛이다.

‘안 돼!‘

격렬한 외침을 한건은 터트렸다.

두 주먹을 움켜쥐고 가슴속으로 터트린 함성이다.

으드득 소리를 내는 입을 악다물고 목과 이마에 핏대를 세운 얼굴.

곁을 지나가는 아주머니 한 분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서둘러 멀어진다.

아주머니의 시선을 느낀 순간 한건은 진저리를 치며 분노에서 빠져나왔다.

친구들과의 기억을 떠올린 이 순간 치민, 주체 못할 격노에 진이 빠진다.

운석의 의지, 제어한다고 여겼는데 여전히 불안한 시한폭탄이다.

‘내 의지여야 해, 하나부터 열까지 내 의지……!‘

현실에 집중하며 한건은 주변을 다시 돌아봤다.

황금당이란 간판의 금은방이 있는 건너편은 편의점과 카페와 음식점이 연이어 있는 전형적인 상가다.

이 거리 위아래로 생겨난 국수집들은 특화된 풍경이 되어 있다.

‘다섯 곳의 금은방 중에 마지막 장소.‘

운석소지자는 여기서 모습이 잡혔다.

출동한 순찰차를 밟고 뛰어 넘어가는 광경이 영상으로 돌고 있다.

특별히 주목해야 할 일은 아니다. 스턴트맨 같은 사람이면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 점프의 높이가 문제다.

‘저 건물 옥상으로.‘

이면도로에서 시선을 옆으로 돌린 한건은 3층 상가 건물을 응시했다.

3층엔 건물주인 세대의 집이 분명하고 2층은 당구장이며 1층은 야채가게와 자전거포다. 운석소지자는 이 건물에서 사라져 종적을 찾을 수 없다.

‘도주하는 모습이 어디에서도 잡히지 않았다는 건데……‘

근방의 주택가 보안 카메라를 비롯한 어느 카메라에도 범인은 포착되지 않았다. 경찰에서 단서를 숨기고 범인 검거를 위해 밝히지 않았을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그럴 거면 애초 순찰차 블랙박스 영상도 그랬어야 한다.

‘괴변사태라고 떠들만한 영상만 공개할 이유가 없어.‘

침착한 눈으로 한건은 건물 주변을 돌았다. 뒤로 이어진 주택가 골목길들의 방향과 위치를 살피며 제법 걸었다. 그렇게 다시 건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여기가……‘

소름이 치솟았다. 말 그대로 찰나에 전신을 휘감았다.

짜릿한 전류에 감전된 것 같은 감각, 이게 뭔지 한건은 안다.

운석소지자가 주변에 있다.

‘있구나!‘

펑 소리를 내며 위에서 뭔가 터져 나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든 한건은 이층 유리창에서 튀어 나온 그림자가 차 위에 떨어지는 걸 목격했다.

당구장 표시가 그려진 창을 박살내고 떨어진 자, 건장한 젊은 남자다.

심장의 미친 듯한 고동 속에서 한건은 또 봤다.

추락이 이어진다.

이층 창문에서 비상하듯 남자들이 떨어진다. 차 위와 인도에 처박혀 버린다.

전부 네 명이다. 그 중 맨 처음 차 위로 떨어진 남자가 몸을 일으킨다.

“개새끼 죽여 버린다!“

추락한 고통 때문에 악귀 같은 얼굴의 남자는 다리에서 회칼을 뽑았다. 이층의 높이였고 차 지붕 위로 떨어져서 큰 부상이 없는 상태, 분노로 이를 갈며 움직인다. 다른 두 명도 비슷하다. 한 명만이 못 일어난다.

추락한 그림자가 그 순간 또 하나 늘어났다.

‘저 자!‘

추락이 아니라 뛰어내린 남자를 보고 한건은 숨을 멈췄다.

이십대 후반의 남자, 운석소지자다. 저자의 전신에서 퍼져 나오는 에너지를 느낀다. 분노와 살의, 그 힘으로 저자는 네 명의 남자를 창밖으로 던진 거다.

“물건을 사려면 제 값을 줘야지.“

칼날을 숫돌에 갈 때의 느낌, 남자가 낸 목소리는 그랬다.

“까는 소리 하지 마라!“

상대방, 차 지붕 위로 떨어졌던 남자는 움켜쥔 회칼을 다른 손으로 옮겨 잡으며 자세를 낮췄다. 좌우로 다른 두 명이 역시 회칼을 잡고 붙었다.

“창자를 꺼내서 목구멍에 다시 쑤셔 박아버릴 거다!“

왁 소리치며 남자는 움직였다. 좌우의 둘과 함께 셋이 동시다.

“터져라.“

명징하게 흘러나온 남자의 목소리에 한건은 흠칫했다.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다름 아닌 김철기다. 그가 승합차에 손을 대고 저랬다.

퍼퍼펑.

거리를 울리는 소리가 동시에 귀를 파고들었다.

회칼을 움켜쥐고 공격하던 세 남자에게서다. 그들의 가슴과 골반이 폭발했다.

원인이 뭔지 한건은 안다.

세 남자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 화려한 불로 퍼진다.

“크아악!“

비명을 지르며 회칼을 놓친 남자는 인도를 구른다. 하지만 점퍼 안 주머니에서 폭발한 폰의 불길은 온몸을 휘감았다.

그냥 찰나였다. 몸부림치다 재로 변해 버린 것도 순간이다.

세 남자가 전부 숯덩이가 돼버렸다.

* * *

가죽점퍼 놈이 흘려내는 에너지가 이젠 흐릿하다. 제가 죽여 버린 놈들이 있던 현장을 지켜보던 감흥이 돌아서서 가는 지금은 흩어져서다.

‘아직 상황 판단을 못하는 놈이구나.‘

운석이 가진 힘을 각성하고 사용하긴 했지만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까진 아직이다. 바로 지금 같은 일이다. 다른 운석소지자인 유한기 자신 같은 자들의 접근이다. 안다면 저런 실수는 안 할 거다.

‘거기가 네 둥지인 거냐?‘

오래된 주공 아파트로 들어가는 가죽점퍼의 뒤를 쫓아 유한기는 계단을 올라갔다.

옥외 계단을 차분히 올라가는 가죽점퍼는 옥상까지 멈추지 않았다.

옥상문 앞에서 멈춘 유한기는 목표의 등을 응시하다가 들어갔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은데?“

옥상을 지나는 바람은 유한기의 목소리를 가죽점퍼에게 전해줬다.

“그래, 초대 받은 거다.“

미소 지으며 몸을 돌리는 가죽점퍼, 미행당한 게 아니라 유인이란 거다.

“나처럼 운석을 가진 놈들이 있을테고, 다른 운석을 노리는 놈들이 당연히 접근해 올 거란 생각을 했지. 그런데 그게 누군지 서로 모르잖아?“

가죽점퍼의 미소엔 차갑고 섬뜩한 살의가 어려 있다.

“그렇구나, 네가 냄새를 흘렸고 난 거기 꼬인 거지. 잘했다.“

태연하게 미소 짓는 유한기, 마스크 쓴 얼굴 위로 난 흉터의 실룩임을 가죽점퍼는 그제야 봤다. 저 얼굴을 어디서 봤는지도 뒤늦게 기억했다.

“넌 그 새끼구나. 강남에서 화끈하게 지랄 한.“

가죽점퍼의 눈동자가 깨달음을 품고 붉게 충혈 되는 것을 유한기는 가만히 응시했다. 가죽점퍼도 더는 다른 말을 안 하고 노려보기만 했다.

“너희들 뭐냐?“

가죽점퍼는 툭 물음을 던졌다.

강남 y대학 병원 주차장에서의 총격전, 분명 조직의 일원들이 움직인거다.

그게 바로 상대방, 정체가 궁금함이다.

“그게 궁금하냐? 조폭새끼가?“

유한기의 비웃음에 가죽점퍼는 낯빛을 굳혔다. 돌처럼 굳은 그 얼굴에 드리우는 것이 지독한 살의와 폭력을 향한 의지란 걸 유한기는 안다.

“청록원이다.“

아무렴 어때 하는 식으로 답을 던진 유한기, 가죽점퍼의 당혹하는 반응을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네가 가진 운석이 뭔지는 알거다. 그래, 그것만 알면 돼. 그 이상 알면 그 돌머리가 아파질 거다. 그냥 오늘이 재수 없는 날이라고만 생각해라. 운석이 주는 행운도 끝난 거고. 죽이고 싶어 하던 놈들은 죽였잖아?“

가죽점퍼의 반응을 무시하듯 유한기는 걸음을 냈다.

“그냥은 당연히 안 주겠지?“

* * *

일인용 중환자실을 향해 서둘러 걸음을 옮긴 백곰은 걸음을 멈췄다.

침대에 산소 호흡기를 달고 누워있는 자, 상주농협을 턴 강도는 의식이 없다.

숨은 붙어 있지만 죽은 거나 마찬가지, 이 자에겐 운석이 없는거다.

‘운석은 이자를 버리고 다른 숙주, 적합자를 택했어.‘

침대에서 돌아선 백곰은 병실 밖의 경관과 마주섰다.

“병원으로 이송해 온 인원이 누구누군가?“

청록원에서 갈 테니 무조건 협력하고 지시에 따르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 경관은 긴장으로 입술을 핥았다. 흔들리는 그 눈을 향해 백곰은 다그쳤다.

“현장에서 범인을 이송해 온 인원이 누군지 파악해서 전부 데려와!“

움찔한 경관은 서둘러 경계를 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그 순간 폭음이 터졌다.

경관보다 백곰이 먼저 움직였다.

창문에 붙어 병원 앞 주차장을 봤다.

앰뷸런스가 불길에 휩싸여 있다. 그 옆에서 구급대원이 소리친다.

“모조리 죽여 버릴 거다!“

* * *

건물 지하로 들어가는 남자를 쫓아 한건은 계단을 내려갔다.

반지하의 집, 세 남자를 태워 죽인 저 이십대 후반 남자의 거주지가 분명하다.

태연하게 들어가서 가방을 꺼내 나온다.

다 잠기지 않은 지퍼 안이 보인다.

‘보석.‘

금은방을 턴 장물이다.

황당하다. 저 물건을 직전에 처리한 자들과 거래하려 한 거다.

이곳이 집인데, 이 건물 2층의 당구장에서 하려던 거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자가 아니다. 그렇다는 건 눈에서도 보인다.

“넌 뭐야? 죽여줘?“

핏발선 눈동자를 부라리며 남자는 가방을 던진다.

그와 동시에 튀어 나온다. 계단에 선 한건을 탱크처럼 어깨를 받는다.

한건은 밀려 올라갔다. 동시에 남자가 터져라 하고 외치는 소릴 들었다. 안 되는 소리다.

계단 위로 튕기듯 올라가 멈춰 선 한건을 보고 남자가 당황한다.

자신이 오늘 아침에 깨닫게 된 능력이 안돼서다.

내려오기 전에도 한 일이다. 세 놈의 폰을 터트려 불태워 죽였다.

그런데 저놈은 왜 안 되는 걸까.

“너만 운석을 가진 게 아니다.“

빙결한 얼음의 빛깔을 눈동자로 흘려낸 한건은 계단을 다시 차고 나갔다.

남자의 당황하는 얼굴을 향해 무릎을 내질렀다.

뻑하고 남자는 뒤로 굴렀다.

오뚜기처럼 벌떡 일어나는데 턱이 박살났다. 하지만 복원된다.

“이 새끼!“

격노를 발산한 남자는 사자처럼 덤벼 들었다. 그런데 전신에서 무지개 빛이 어른거린다.

처음 보는 모습, 한건은 남자의 공격을 받고 깨달았다.

운석이 육체 능력에만 힘을 토해내는 것이란 걸, 받아치며 절감한다.

‘엄청난 파워!‘

남자가 휘두르는 손과 발에 계단과 벽이 부숴지고 있다.

무지막지한 그 힘과 스피드를 피하고 받아치다 한건은 남자의 허릴 잡았다.

그대로 들어 올려 계단 천정에 찍어 올렸다.

머리가 박힌 그 몸의 허리를 분질렀다.

손을 푼 한건은 경련하며 계단에 늘어진 남자의 품을 뒤졌다. 그러다 복부에 손을 댔다.

피부와 옷을 뚫고 무지개 빛을 풀어내는 운석이 떠올랐다.

손바닥 안으로 스며든 그 감각에 순간 전율을 삼키고 일어섰다.

밖에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의 반대로 돌아선 한건은 집안 창문을 뜯었다.

* * *

“커……“

마지막 숨과 경련을 풀어내고 있는 가죽점퍼의 가슴에서 유한기는 손을 뺐다. 뜨겁게 벌떡거리는 심장을 움켜지었다. 터지는 속에서 그걸 느꼈다.

‘운석!‘

죽은 자의 피를 흘려내며 무지개 빛을 풀어내는 회색 돌멩이.

“넌 이제 내가 주인이다.“

운석은 순응하듯이 유한기의 손바닥 안으로 스며 들었다.

가죽점퍼를 죽이기 직전까지 저항하던 의지를 이젠 포기한 거다.

그래서 궁금하다. 가죽점퍼 놈은 어떤 조건이 맞기에 이랬던 걸까, 왜 포기 하지 않은 걸까.

‘확실한 건 이놈이 살인자라는 거.‘

여태 사람을 여럿 죽인 놈이다. 같은 살인의 경험자로서가 아니라 그걸 느낀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운석이 원하는 조건이 그것일지 모른다.

“뭐든.“

차가운 미소를 바람에 풀어낸 유한기는 죽은 자에게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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