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96화 (196/200)

[외전] 종말전야. 46. 운석 사냥 2.

46. 운석 사냥 2.

백곰은 창문에서 점프 하려다 멈칫했다.

앰뷸런스를 터트린 놈이 병원 안으로 뛰어 들어와서다.

즉각 몸을 돌려 달렸다.

아래층에선 비명이 터지고 있다. 다 죽인 다더니, 놈이 소리친 대로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개새끼가!‘

내부에서 치밀어 나오는 근원적인 분노에 휩싸인 채 백곰은 계단을 차고 몸을 날렸다. 계단참을 차고 벽을 차며 내려가는 그 움직임을 다른 요원들이 따르지 못했다. 어느새 1층에 다다른 백곰은 목표를 확인했다.

“뒈져라! 크하하하!“

간호사의 목을 두 손으로 잡고 들어 올린 놈, 앰뷸런스 기사를 향해 백곰은 럭비선수처럼 돌진했다. 놈이 돌아보고 눈을 치뜨는 순간 충돌했다.

충격과 동시에 나가 떨어지는 간호사를 백곰은 의식하지 못했다.

아니 안했다.

간호사를 놓치고 구르는 앰뷸런스 놈만 핏발선 눈으로 쫓았다.

‘이 새끼!‘

다시 일어서는 놈에게 점프한 백곰은 회전 뒷차기를 후려 넣었다.

가슴을 강타 당한 놈은 다시 굴렀지만 역시 오뚜기처럼 일어선다.

악귀처럼 험악한 얼굴이 된 놈은 무지개 빛이 어른대는 손을 벽에 대고 외친다.

“터져라!“

그 순간 일어난 폭발에 힘에 백곰은 바닥을 굴렀다.

병원 내부에서 일어난 폭발이 병원을 삽시간에 화마로 뒤덮는다.

도시가스가 폭발했다.

‘이!‘

불길 속에서 어른거리는 놈을 향해 백곰은 포환처럼 튀어나갔다.

병원 밖으로 나가려는 놈을 잡았다.

허리를 잡고 함께 구르며 목을 감았다.

“케!“

초크에 걸린 놈은 사지를 버둥거린다. 하지만 등에 붙어 팔다리를 제압한 백곰의 의지를 떨쳐낼 수가 없다. 얼굴은 흑색이 되고 입에선 침이 흐른다. 목을 감은 백곰의 팔을 잡고 터지라고 염원하지만 그대로다.

부득.

장작이 뽀개지는 소리를 내며 앰뷸런스 기사는 목이 꺾어졌다.

눈알은 튀어 나올 듯하고 혓바닥이 늘어졌다. 하지만 안 죽었다.

운석이 다시 살려내려고 한다. 그래서 백곰은 팔을 풀고 서둘러 운석을 찾았다.

‘어디 있는 거야?‘

미친 듯이 앰뷸런스 기사의 몸을 뒤지던 백곰은 순간 느꼈다.

짜릿한 전류의 감전 같은 감각이다.

앰뷸런스 기사의 가슴이다.

거기 손을 댔다. 그래야 한다는 본능이 시켜서다.

손바닥이 불에 덴 것처럼 뜨겁다.

‘심장이구나!‘

그곳에서 떠오르듯 나오는 운석, 오른 손바닥을 파고 들어가는 광경과 감각에 백곰은 전율했다.

* * *

아무도 없는 화장실을 응시하던 현인규는 움직였다.

분명히 회장이 남긴 것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현인규 자신에게 불리한 것이 분명하다. 찾아서 없애야 한다.

현중그룹은 누구에게도 나눠줄 수 없다.

‘pc에 기록하거나 폰에 녹음해서 만이 아니야.‘

비밀공간이 있을 만한 곳을 찾으며 현인규 자신이 한 일을 곱씹었다.

부친 현태수 회장의 가슴에 손을 대 심장을 멈추게 한 결과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 그걸 이루는데 한건의 남긴 흔적과 같이 하진 않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했어.‘

전율과 소름이 다시 돋는다.

현인규 자신이 운석소지자가 돼서 그 힘을 사용했다.

유적협회 대표가 가지고 있던 운석, 잠들어 있던 거다.

그것이 현인규 자신의 손에서 깨어났다. 적합자로 인정하고 활성화한 거다.

‘여기구나……‘

해바라기 그림이 재물운을 준다면서 벽에 걸어뒀다.

현중그룹 회장씩이나 되는 존재가 그런 소리를 한다는 게 우습지만 걸려있다.

유명화가의 그림도 아닌 것, 떼어내고 벽을 보니 역시 미세한 차이가 보인다.

‘금고.‘

현인규는 오른손을 그림이 붙었던 벽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열려라.“

알리바바와 사십인의 도적의 명대사인 열려라 참깨나 다름 없다.

손에서 무지개 빛이 어른거리더니 벽이 정말 열렸다.

슬라이드 창처럼 사각의 공간이 옆으로 밀려나며 생겼다. 지문과 홍채인식 방식의 금고문도 열린다.

‘유언장.‘

금고 안에 든 유언장을 꺼낸 현인규는 차분하게 읽었다.

차가운 비웃음을 입가에 물고 돌아서서 회장 책상 위의 라이터를 잡았다.

불을 붙여 활활 타오르는 동안 잡고 있다가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리고 창을 열었다.

* * *

경찰차들이 건물을 봉쇄하듯 둘러싼 가운데 그놈들이 왔다. 현중그룹이라면 저렇게 경찰의 상전처럼 행동할 순 없다. 분명히 청록원 놈들이다.

‘왔구나.‘

사람들 틈에 끼어 구경하듯 한건은 현장을 응시했다.

이층 당구장에서부터 시작한 사건, 자신이 반지하 계단에서 마무리한 일이다.

과학수사대가 진입한 곳으로 청록원 놈들이 들어간다.

급하고 긴장한 얼굴들이다.

‘운석소지자가 당한 걸 알게 됐으니까.‘

벗어나지 않고 지켜보길 잘했다. 역시 저놈들이 왔다. 다른 운석소지자들의 소재를 확인하고 운석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을 놈들, 당황했으리라.

자신들이 한발 늦은 것도 늦은거지만, 다른 운석소지자가 왔던 거다.

‘내 모습을 찾아내긴 하겠지만 확인할 순 없어.‘

당구장 유리창이 박살나고 죽은 자들이 튀어나오던 순간부터, 시간이 일어나기 전후로 건물 주변 cctv를 다 훑을 거다. 당연히 한건 자신의 모습이 포착될 거다. 이런 상황을 예상해 마스크와 모자로 잘 가렸다.

‘얼굴을 알아볼 순 없어.‘

하지만 복장은 아니다. 그렇기에 반지하 창문을 뜯고 빠져나오자마자 대응했다. 주택가의 보안 카메라들 위치를 피부로 느끼기에 피했다.

헌옷 수거함을 찾았다. 점퍼를 바꾸고 바지와 모자와 신발까지도 다 바꿨다.

‘버리는 물건이 넘쳐나는 세상 덕.‘

신발이 조금 작긴 하지만 그런대로 괜찮다. 유명 메이커인데 조금 더럽고 낡았을 뿐이지 멀쩡하다. 점퍼와 바지도 마찬가지, 이 정도면 새 옷이다.

‘주변의 헌옷 수거함들을 뒤지는 데까지 착안한다면……‘

경찰이 그렇게까지 할까 싶지만 가능성이 없진 않다.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다. 한건 자신이 입은 이 헌옷들을 특정해야만 추적이 가능 할거다.

‘역시 촬영하는군.‘

현장에 모인 사람들을 경찰이 촬영하고 있다. 범인이 현장에 다시 온다든지 하는 이론에 입각해서고 단서가 될 만한 걸 포착하기 위해서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건은 다른 사람들처럼 기웃거리며 상황을 지켜봤다.

“그거 절도당한 물건입니까!“

경찰의 저지선 밖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젊은 여자, 한눈에 봐도 기자다. 허름한 야상점퍼를 입었고 머리는 뒤로 아무렇게나 동여맸다. 손에는 폰과 수첩을 들었다. 여자로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없는 모습이다.

“황금당을 비롯해서 금은방 절도사건의 물건들이 맞죠? 그렇죠?“

기자가 소리쳐 묻지만 경찰은 대응하지 않고 가방을 차에 실었다. 한건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상대가 던져버렸던 그 가방, 보석들이 들었다.

기자의 말이 맞는 거다. 그래서 궁금하다, 저 기자는 어떻게 알았을까.

“괴변사태 사건이 분명한데 사망자들 신원이 어떻게 됩니까?“

거듭 소리쳐 묻는 여기자를 제복 경찰들이 적극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안 그러면 건물 지하로 달려 들어갈 기세여서다. 사람들은 그걸 구경한다.

“목격자들에 의하면 세 사람이 불타서 재가 됐다던데요!“

기자가 소리치던 그때 청록원 놈들이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왔다.

“이봐요! 당신들 누굽니까? 청록원이죠! 그렇죠?“

팔짝 뛰며 소리쳐 묻는 기자를 청록 요원들은 힐긋 봤다. 하지만 하등 관심 없는 태도로 경찰 지휘관과 상의한다. 그 광경을 보던 한건은 조용히 돌아섰다. 청록원 놈들이 세워둔 차로 다가갔다. 트렁크에 손을 댔다.

“열려라.“

사람들 모두가 건물을 보는 상황, 이면도로에 다른 차들처럼 세워진 승용차의 트렁크는 스르르 열렸다. 그 안으로 들어간 한건은 문을 닫았다.

* * *

-현태수 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병실 벽의 tv를 응시하며 윤지희는 말처럼 충격을 삼켰다.

현중그룹의 주인 현태수 회장이 죽은거다.

심장마비가 사인이라고 한다.

마침 아들 현인규 실장이 곁에 있었다는 건데, 이권 왠지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확보한 운석을 보고하던 자리가 맞을 텐데.‘

분명 그런 상황이었을 거다. 그런데 현태수 회장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장소는 화장실, 그 자리엔 현인규 실장만이 있었다.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인 동시에 그렇지 못한 결과다.

여기엔 필연 곡절이 있다.

‘현인규 실장……‘

그룹의 대외적인 후계자로 알려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안다.

현태수 회장에게 젊은 후처가 있고 열 살 난 늦둥이 아들이 있다.

끔찍이 여기는 그 늦둥이 아들에게 회장은 다 주고자 했다.

‘그걸 당하고 있을 현실장이 아니야.‘

혼회자도 아니고 엄연히 정실 부인의 아들로 태어난 존재가 현인규다.

그룹의 오늘이 있기까지 혼신의 노력을 다 해온 삶인 거다.

그걸 부정당하고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와 부를 뺏기고 싶지 않을 거다.

나누는 것도 마찬가지다.

‘준비를 해왔을 텐데……‘

분명 현실장은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덜컥 이런 일이 일어났다. 그게 현실장의 준비와 관련 있다고 연결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갑작스럽다.

왜 갑작스러울까, 그 원인은 역시 운석이다.

‘아버지를 죽였어……!‘

뉴스를 응시하며 윤지희는 소름을 털어냈다.

* * *

-상주 백십자 병원에서 일어난 화재로 희생자만 현재까지 마흔 여섯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남양주 한성병원 화재를 떠오르게 하는 이 사건은 괴변사태라고 하는 사건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병원 내 도시가스 폭발로……

폰으로 뉴스를 보는 유한기는 이어폰을 귀에 더 밀착했다.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습니다. 사건 당시 병원에 있던 직원들의 말에 의하면 앰뷸런스가 폭발했다고 합니다. 화재로 병원 내외부 영상이 소실돼서 정확한 진상을 알 수 없습니다만, 엠뷸런스 기사가……

어느새 뜨거워진 숨을 달래며 유한기는 숨을 골랐다.

사건 내용을 파악하는 동안 내부에서 충동이 치솟았다.

주체하기 힘든 살의와 폭력 욕구다.

‘청록원에서 달려오자마자 일이 터졌구나.‘

병원 직원들의 증언에 의하면 상황은 그렇다. 병원 밖 차량들의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한 방송사들의 재주로 백곰이 거기 있다는 걸 확인했다.

‘앰뷸런스 기사가 운석을 가진 놈이었어.‘

상주농협을 턴 강도, 그 자로부터 옮겨간 거다.

경찰의 총격을 받은 강도는 회복되지 못하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운석이 그를 버린 결과다.

앰뷸런스 기사가 두 번째 적합자가 됐다. 그는 몸이 안 좋다고 했다 한다.

‘병원 소속 앰뷸런스 기사, 차에서 쉬던 중에……‘

백곰이 팀원들을 데리고 도착했다.

그게 원인이었을 거다.

다른 운석으로 인한 위기감을 감지한 앰뷸런스 기사가 폭주한 거다. 그렇게 추정된다.

‘정확한 진실이야 알 수 없지만, 그런 흐름.‘

백곰은 역시 대단한 자다. 운석소지자를 해결했다.

목격한 병원 직원들의 증언에 의하면 경찰에서 온 사람이 싸웠다는 거다.

그가 바로 백곰이다. 그렇지만 그는 경찰이 아니다.

필경 그에게도 운석이 있을 것이다.

‘청록원은 무슨 생각인 걸까? 이 상황은 이렇게 가는 건가?‘

경찰의 단속도 소용 없다. 사건 내용은 언론을 타고 자세히 알려지고 있다. 괴변사태라는 이름으로 연결된 사건들, 간첩단으로는 막을 수가 없다.

‘온오프라인이 그물처럼 연결된 시대에 간첩단 가지고 되겠냐.‘

냉소를 흘려낸 유한기는 이어폰을 빼고 폰을 넣었다. 저절로 돌아가는 눈길은 고속버스 밖 풍경을 담는다. 이젠 가을도 스러지고 있는 풍경이다.

* * *

덜컹거리는 차의 진동 속에서 한건은 기다렸다. 차가 멈추는 시간, 드디어 왔다. 공릉동을 출발한지 사오십분 정도 됐을까, 완전히 멈춰 섰다.

‘여기가 너희들 근거지 중 한 곳이겠구나.‘

청록원이란 이름을 새삼 분노와 함께 삼킨 한건은 다시 기다렸다. 정적 속에서 적막을 삼키며 30분을 흘려 보냈다. 그리곤 트렁크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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