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종말전야. 47. 이제 시작이다.
47. 이제 시작이다.
번쩍이는 카메라 불빛들을 향해 현인규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비통에 찬 모습으로, 슬픔을 억누르는 아들의 얼굴로서, 다시 고갤 들고 말했다.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 현중그룹의 미래를 위해 매진하겠습니다.“
마지막 말을 던진 현인규는 돌아섰다.
기자들의 질문 세례가 쏟아졌지만 회견장을 나갔다.
뒷일은 비서실에서 적절하게 대응할 것을 의심치 않는 가운데 차에 올랐다.
빈소가 있는 강남 y대학병원으로 이동했다.
‘최강호 팀장이 운석을 뺏기고 죽은 곳……‘
기묘한 감회 속에서 현인규는 창밖의 노을을 응시했다.
붉은 저 빛이 하늘을 채우고 있는 것이 흡사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 같다.
어둠에 밀려가기 싫은 저항, 피 흘리는 싸움인 거다.
하지만 결국 지고 만다.
‘아버지, 당신은 졌습니다.‘
노을을 향해 그 말을 마음 속으로 던진 현인규는 차가운 미소를 피워냈다.
승리자의 미소, 그러나 그것이 패륜을 저지른 범죄자의 웃음이란 것을 의식 못한다. 아니 하지 않는다. 운석과 하나가 된 존재에겐 의미 없다.
‘운석들을 더 빨리, 많이 확보해야 해.‘
속에서 치솟아 나오는 본능적인 욕구에 몸이 단 현인규는 폰을 잡았다.
“나다,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거야?“
4팀장의 대답은 역시 시원치가 않다.
-로또 당첨자들의 소재를 파악 중입니다만, 대부분 거주지에 있지 않습니다.
“청록원 놈들과 부딪치는 상황인가?“
-그렇습니다. 현재까지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습니다만, 피할 수 없는 결과로 판단합니다.
분노가 끌어 올린 숨을 흘려내는 현인규에게 4팀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핸드폰 위치 추적 중입니다. 곧 결과를 만들겠습니다.
현인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통화를 종료한 현인규는 미간에 깊은 골을 만들었다.
과연 청록원에서는 현재까지 운석 확보가 어떠한지다.
상주백십자 병원에서의 일은 그들의 수확이 분명하다.
사건 용의자인 앰뷸런스 기사는 화재 속에서 죽었다.
‘함인호처럼 도망친 게 아니니까.‘
청록원이란 이름을 되뇌며 현황을 더듬은 현인규는 문득 다른 나라의 상황을 떠올렸다. 괴변사태라고 언론이 말하는 이 사건들, 운석으로 인한 일들은 점점 많아지며 커지고 있다. 마치 출발하고 달리기하는 것 같다.
‘정말 그런 걸까?‘
황당한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 거라는 예감이 떨어지질 않는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 일이라면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세상이 혼란으로 치닫게 되는 건가?
물론 막을 수 있을 거다. 그렇지만 피해가 엄청날 거다.
“혼란 속에서 이익을 내는 게 기업이야.“
중얼거림을 흘려낸 현인규는 룸미러로 힐긋 보는 운전기사의 시선을 느꼈다. 그에 반해 조수석의 비서실장은 미동도 없다. 부친 현태수 회장을 모시던 자가 이젠 자신을 보좌한다. 누가 왕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변화에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 거지.‘
시트에 몸을 더 기울이던 현인규는 병원의 전경을 봤다.
차는 어느새 병원에 다다랐다. 그룹사옥과 같은 강남권 역에 있는 터라 금방이다.
이 병원 별관 주차장에서 운석을 가지고 달아난 청록원 놈이 문득 궁금해진다.
‘박인수에게서 최강호에게로, 다시 그놈……‘
그런 운석의 이동은 더 최적화를 이루는 게 분명하다.
그런 존재들의 효용, 능력이 어떠할지가 정말 알고 싶다.
첫 번째로 운석을 소지한 개체와 어떻게 다를까?
분명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있다.
‘김철기 같은 놈.‘
그는 첫 번째 운석소지자였지만 승합차를 터트리는 능력을 보였다.
한건처럼 pc에 기록해 이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말로 했다.
한건도 그럴 수 있었는데 몰라서 못했던 건지 그런 과정을 거쳐야 했던 건지 모른다.
‘나도 돼.‘
운석의 힘과 의지를 느끼고 발휘했다.
회장을 잠들게 했고 비밀 금고를 찾아내고 열었다.
그 일에 다른 도구나 방식은 필요치 않았다.
그냥 해야겠다는 의지와 원하는 욕구, 그것을 생각하고 말하는 것으로 이뤄졌다.
‘적합, 조건이 맞아서야.‘
운석은 개체를 선택해서 깨어난다. 조건이 맞으면 그렇다.
그 활성화가 운석마다 다른 차이가 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체격이 다르며 그에 따른 신체 능력과 지능이 다르듯이다.
현인규 자신의 것은 강렬하다.
‘초운 공방에서 만든, 유족 대표의 손목에서 여태 잠들어 있던 것.‘
내부에서 느껴지는 운석의 에너지를 만끽하며 현인규는 가늘게 눈 밑을 떨었다. 그러는데 차가 멈췄다. 비서실장이 얼른 내려 차문을 열어준다.
느릿하게 차에서 내린 현인규는 빈소를 향해 걸음을 옮기며 작게 말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야.“
* * *
농축산 연구소라고 써진 흰색 승합차 아래서 한건은 밤의 시작을 가늠했다. 어딘지 모를 이 장소로 와 이렇게 차 밑에 누워 보낸 현시간이다. 주차장 창으로 들어오던 노을빛은 완전히 스러졌다. 밤이 내려앉고 있다.
‘몸이 굳었는데……‘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온 냉기에다 장시간 움직이지 않은 경직이 더해졌다. 하지만 작은 장애에 불과하다. 이젠 나가서 움직일 시간이다.
승합차 밑을 빠져 나온 한건은 주변부터 다시 살폈다.
차 밑에 누워있는 동안 다른 차들이 들고 나가는 것을 계속 살폈다.
유일하게 움직이지 않는 차는 숨어있던 이 승합차였고, 이 주차장 안에 다른 위험은 없다.
‘이 장소와 관련 있는 차량이 분명해.‘
축산 연구소라고 표기한 이유가 그것이다. 청록원 놈들은 이곳의 외형을 그렇게 꾸민 거다. 이 근거지 주변에 인접한 다른 시설은 없을 거다.
‘세 대.‘
주차장에 남아 있는 차량의 숫자다. 승합차 두 대와 suv 한 대다.
차량으로 추정해 볼 때 이 장소에 있을 인원은 스무명 안팎이다.
그만한 인원을 혼자서 처리하긴 무리다. 그래서 무기가 간절하다. 묻어둔 것이 아쉽다.
‘가지고 다니기가 힘들어서 묻었는데……‘
배낭에 돈과 함께 지녔던 소총과 권총을 땅에 묻었다. 종이 가방을 구해 배낭의 돈을 옮겨 담아 지구대 앞에 버린 후다. 그런데 지금 필요하다.
‘필요한 건 현장에서 구하면 되지.‘
서늘한 눈빛을 흘려낸 한건은 차 세 대를 살폈다.
주차장을 비추는 카메라의 각도를 피해 귀신같이 움직였다.
suv 뒤에 붙어 공무수행이라고 붙인 표시를 봤다.
이 차 안에 필요한 것이 있을 거란 확신이 든다.
‘보자.‘
차 뒷문에 손을 댄 한건은 나직하게 말했다.
“열려라.“
경보 장치의 발동 없이 차문은 역시 열렸다. 올라가는 그 문을 잡고 내부를 보니 군용 케이스가 보인다. 끄집어내고 차문을 닫으며 다시 말했다.
“닫혀라.“
suv 뒷문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닫혔다. 그 뒤에 붙어서 한건은 케이스를 열었다.
권총 두 정이 있다. 베레타m9이다.
실사용인지 소장용인지 모르지만 관리가 잘 돼 있다. 역사와 실전성의 명성만큼 그립감이 좋다.
‘좋아.‘
권총 두 개에 15발들이 탄창을 삽입한 한건은 차에서 떨어지며 명령했다.
“카메라 노이즈.“
내부로 들어가는 출입구 위의 카메라의 불능을 확신하며 한건은 안으로 들어갔다. 시멘트 위로 도색이 이뤄지지 않은 벽이 복도처럼 이어져 있다. 역시 천정에는 카메라가 있지만 신경 쓰지 않고 빠르게 이동했다.
“아 씨바, 카메라는 왜 지랄인거야?“
복도 끝에서 투덜거리며 돌아 나오는 놈과 눈을 마주쳤다.
그 순간 한건은 전력으로 달렸다. 놈이 눈을 크게 뜨며 소리치려는 순간 충돌했다.
콱 하는 충격과 함께 놈이 벽으로 튕겨 나갔다. 쓰러지는 그 몸을 잡았다.
입과 코와 귀로 피를 흘려내며 즉사한 놈, 청록원의 요원을 차갑게 응시하며 한건은 즉시 움직였다. 놈이 나온 왼쪽 복도로 시체를 끌고 갔다.
좌우 이미터가 조금 안될 것 같은 복도, 오미터 정도 끝에 문이 있다.
“야 뭐하냐? 카메라가 아직도 안되잖아?“
삼분의 일쯤 열린 문 안에서 짜증내는 놈, 그 뒤로 한건은 유령처럼 다가갔다.
의자에 앉은 놈은 모니터들을 보고 있다. cctv 보안실이다.
한건 자신의 의지대로 카메라들이 노이즈를 내고 있다. 바라보며 말했다.
“정상이 된다.“
순간 모든 모니터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동시에 의자의 놈이 돌아봤다.
어, 하며 튕겨 일어나는 놈의 안면에 엘보를 후려쳤다.
바닥에 쓰러진 놈은 다시 일어서며 권총을 뽑는다. 그 손을 후려차고 목을 돌려 찼다.
훅킥에 이은 뒤돌려차기 일격.
머리가 옆으로 꺾어진 놈은 벽을 타고 쓰러졌다.
놈의 머릴 강타하고 벽까지 부수며 멈춘 발을 한건은 느릿하게 내렸다.
바닥에 발을 대며 숨을 다스렸다. 치미는 살의를 제어했다.
‘청록원, 너희가 만든 채무다……!‘
친구 이응삼의 참혹했던 죽음을 떠올리며 한건은 모니터를 살폈다. 축산 연구소라는 이름의 이 장소, 건물에 있는 놈들의 위치와 숫자를 파악했다.
예상대로 딱 스물이다. 처리한 두 놈 말고 열여덟 놈이 안에 있다.
‘2층과 3층.‘
청록원 요원들이 있는 장소를 확인한 한건은 바로 돌아섰다. 시멘트의 냉기가 퍼져 있는 복도를 지나 이층으로 이어진 계단을 올라갔다. 머리에 그린 순서를 짚으며, 모니터로 확인한 놈들의 공간을 향해 달렸다.
“뭐야!“
복도에서 첫 놈을 마주쳤다.
침입자임을 확신하고 반응하는 놈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미간이 터진 놈을 받고 나가 문이 열리는 오른쪽 A룸의 안을 향해 권총을 난사했다.
아니 여섯 놈에게 정확하게 한 발씩 안겼다.
피 꽃을 터트리며 쓰러진 놈들에게서 돌아선 한건은 2층 복도를 달렸다.
목표로 한 D룸의 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들어간 순간 총격이 날아왔다.
바닥을 구르며 좌우로 총을 쐈다.
다섯 놈이 심장에 구멍 나 쓰러진다.
스프링처럼 튕겨 일어난 한건은 D룸을 나갔다. 이제 목표는 3층, 남은 놈은 처리한 숫자와 같은 여덟 놈이다. 그런데 계단 위에서 뭔가 날아온다.
‘수류탄!‘
눈을 부릅뜬 한건은 피할 곳이 없음을 알았다.
수류탄은 바로 앞에 멈췄다. 그 찰나에 도박을 걸었다.
권총 잡은 두 손을 십자로 가리며 말했다.
“막아낸다!“
엄청난 충격이 몸을 강타했다.
휙 날아간 한건은 복도에 늘어졌다.
“확인해!“
3층에서 들려온 긴박한 목소리. 폭발로 인해 엉망이 된 모습으로 움직이지 않는자, 시체가 된 게 분명한 한건에게 청록원 요원들은 접근했다.
“확인사살!“
누군가의 외침으로 다가선 두 놈이 권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한건이 빨랐다.
하늘을 보고 누워 있던 자세로 두 손을 들었다.
눈을 치뜨는 두 놈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두 놈의 머리가 터졌다.
그 순간 자동소총의 총격이 한건을 향해 날아들었다. 튕겨 일어난 한건은 쓰러지는 두 놈을 잡았다. 고양시에서 그런 것처럼 방패로 삼았다.
그대로 밀고 나갔다. 3층 계단을 향해 달려갔다. 다시 수류탄이 날아왔다.
수류탄이 구르는 위로 한건은 점프했다.
방패로 삼았던 두 놈을 밀어버림과 동시에, 수류탄을 던지고 웅크린 계단의 놈들을 덮쳤다.
벽을 차고 돌며 휘돌린 발로 한 놈의 안면을 부수고, 휘돌아 백스핀 블로우를 날렸다.
콱, 하는 파괴음으로 턱이 날아간 놈을 한건이 지나갈 때 수류탄이 터졌다.
파멸의 그 열풍에 떠밀리는 것처럼 한건은 3층에 올랐다. 입고 있던 옷은 걸레처럼 됐고 모든 게 엉망인 모습이지만, 베레타를 쏘며 달렸다.
* * *
부들거리는 분노를 제어할 수 없어 백곰은 치를 떨었다. 상주에서 뒤처리를 하며 시간을 지체하는 동안 일이 생겼다. 수도권 본부가 공격 당했다.
‘남아 있던 스무 명이 전부 당한거야……!‘
이상 상황이 발생하면 발신하게 돼 있는 신호가 떴다. 그리고 끝이다. 상황이 어떤지를 알리는 요원이 없다. 전부 당해서 그렇다는 결론이 된다.
‘누구냐? 현중이냐?‘
여태 충돌한 그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무리지 싶다. 현중이 정말 미친게 아니라면 국가기관인 청록원의 거점을 공격할 수 없다. 그런데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지금 상황을 보면.
‘현태수 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
쌩뚱맞다.
왜 이 시점에 심장마비로 죽은 건가?
물론 심장마비라는 게 예고 없는 것이긴 하다.
그렇다고 해도 의문스러운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만일 현인규가 그런 거라면……?‘
의문과 분노가 뒤섞인 숨을 내쉬던 백곰은 버럭 소리쳤다.
“빨리 달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는 경광등을 번쩍이며 미친 듯이 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