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99화 (199/200)

[외전] 종말전야. 49. 누군가의 삶.

49. 누군가의 삶.

평창동 주택으로 가는 동안 윤지희는 복잡한 마음을 다스렸다.

뒷자리에 탄 두 사람, 안미령과 어린 아들 현인호의 존재를 일로서만 받아들였다.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실상 그게 잘 되지 않는 게 문제다.

‘빈소에서도 쫓겨나야 하는 신세……‘

비통으로 물든 안미령의 얼굴을 윤지희는 정확히 마주 볼 수가 없었다.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추락한 처지와 아들의 미래가 두려워 떨고 있다.

‘후회하고 있을까?‘

저 여자는 현태수 회장이라는 존재를 선택함으로서 이 결과를 맞는 것이다. 인기 절정의 여배우와 재벌그룹 회장의 여문은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결혼까지 이른 과정은 거칠 것 없었다. 귀여운 아들도 바로 낳았다.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던 여자……‘

현중그룹 회장의 부인이 된 안미령이란 여자를 세상은 황후라고 불렀다. 그러한 부러움과 질시를 한 몸에 받고 살던 여자가 이젠 비탄에 차 있다.

‘나도 밉겠지.‘

현인규 실장이 붙인 자신의 존재가 감시역이란 것을 알기에, 그걸 거부할 수 없기에 더욱 비통하고 화가나리라. 하지만 눈도 안 맞춘다. 하등 부질없는 짓이란 것을 알고,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를 궁리한다.

‘그래도 방법이 없을 거예요.‘

차 창밖을 보며 윤지희는 마음 속의 그 말을 허탈한 숨으로 흘려냈다. 동시에 생각했다. 과연 현인규 실장은 모자를 어떻게 하려고 하는 지다.

‘거추장스러운 존재들.‘

당연히 죽여야 한다는 판단이 든다. 그래서 윤지희는 흠칫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결과를 생각했다. 그건 객관적이고 냉정한 상황 판단으로 이끌어낸 것이 아니었다. 그냥 순간적으로 솟아난 감정이었다.

‘왜 내가?‘

현인규 실장의 입장에서라는 생각이었지만 이건 당황스럽다.

저 모자와 윤지희 자신은 하등의 이해관계가 없다.

아니 현실장의 부하라는 것으로서는 있다.

그렇지만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감정은 전혀 다른거다.

그렇다, 감정이다.

그건 분명히 감정이었다.

왜 그런 게 솟구친 걸까?

‘설마, 운석의 영향?‘

한건이 윤지희 자신을 살렸다. 살릴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 한 행위였다.

그렇게 판단한 결과는 이렇게 살아있음으로 증명됐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닌 거다.

운석의 파괴와 폭력을 일으킨다.

그 영향이 맞을 거다.

“엄마, 집에 왔어.“

아들 현인호의 목소리가 차 안을 울렸다. 윤지희는 상념에서 깨어나 저택을 바라봤다. 평창동의 커다란 저택, 성벽같은 축대벽 사이 문이 열린다. 그 안으로 벤츠는 미끄러지듯 들어갔고, 교체된 팀원들이 다가온다.

팀원들의 목례를 받으며 내린 윤지희는 뒷문을 직접 열었다.

안미령과 현인호가 긴장한 기색으로 내리는 걸 보며 조용히 뒤를 따랐다.

내부로 들어가는 계단을 오르는 동안 교체된 팀원들의 숫자를 대강 파악했다.

‘여덟에서 열.‘

본래 경호팀을 빼고 현실장이 교체했다.

안미령과 아들 현인호는 이제 이 집에 감금돼는 거다.

남편과 아버지의 빈소도 지키지 못하고 이렇게 왔다.

충격을 이기지 못해서라고 현인규 실장은 말하고 있을 것이다.

‘더러운 일.‘

그 일을 윤지희 자신이 맡았다.

여태 해온 일이 다 그랬다. 현중그룹의 이익을 위해서다.

윤지희 자신을 살게 해준 그룹의 은혜를 갚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확히 뭘 위해 살아온 걸까?

윤지희 자신의 삶이란 무엇인가?

갑자기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에 윤지희는 상념을 잘라냈다.

마당이다. 커다란 쉐퍼트가 무섭게 짖어댄다.

개 줄의 제압이 아니면 덤벼들 기세다. 그런데 저 사나운 개에게 현인호가 달려간다. 목을 안고 쓰다듬는다.

“제트야, 아빠가 돌아가셨어……“

울먹이는 아이 현인호, 그 얼굴과 손을 제트란 이름의 쉐퍼트는 열심히 핥는다. 마치 슬퍼하지 마, 내가 곁에 있잖아 하는 듯이다. 그런데 윤지희 자신이 다가가자 개는 으르렁거린다. 다가오면 물어버릴 분노다.

“미안, 처음보지만 나는 친구가 되고 싶단다.“

윤지희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개와 현인호 옆에 무릎을 접고 앉았다. 현인호가 목을 잡고 있기도 하지만 개는 으르렁거림을 차츰 멈췄다. 킁킁거리며 윤지희의 냄새를 맡는다. 그러더니 꼬리를 작게 흔든다.

“어? 제트야?“

현인호가 놀라운 듯이 개와 윤지희를 본다. 윤지희는 개에게 손을 내밀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안미령이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 * *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모든 유리창이 폭발한 도봉구청, 그 속에서 튀어나온 두 개의 그림자는 바람처럼 달려간다. 그 뒤를 한건은 쫓아 달렸다.

배후로 흘러가는 중랑천변이다. 도로를 건너간 그들은 천변을 따라 위쪽으로 달린다. 아파트 단지 앞쪽, 갈대와 수풀이 우거진 곳에 멈춰 섰다.

‘또 중랑천인가.‘

상황과 안 맞는 생각을 한건은 품었다. 처음 운석의 힘을 사용했던 곳이 중랑천변이었고, 친구 이응삼을 살해한 놈의 머릴 뽑은 곳도 옆에 중랑천이 흘렀다. 그 물길이 흘러내려온 곳이 여기다. 기이한 인연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지만.‘

실상 인연이랄 것은 없다. 무슨 섭리가 작용하는 것도 아니다.

운석의 퍼진 범위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이곳 말고도 상주니 원주니 사건들은 터지고 있다. 어쨌거나 저들을 찾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개소리 마!“

왁하고 터진 분노의 고함에 한건은 몸을 낮추고 두 사람을 봤다.

갈대숲 너머의 두 사람은 손에 도끼를 들었다.

소방용 도끼다. 험악한 기세다.

“로또당첨 된 게 어째서 네 덕이냐? 내 돈 주고 내가 산건데 왜 네 덕이야? 행운석을 준 게 너라고? 왜 그게 너야? 나한테 택배를 네가 전해 준 것 뿐이잖아?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내가 전했으면 네거겠네?“

한건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며 일어설 뻔했다.

‘행운석? 택배?‘

두 사람의 거칠고 험악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내가 행운석의 능력을 가르쳐 줬잖아! 그건 너한테 소용없는 거였단 말이다! 내가 아니었으면 너는 로또는 커녕 새벽에 비질이나 하고 있을 놈이야! 너한테는 처음부터 안 맞는 거야! 과분한 물건이란 말이다!“

“헛소리 작작해라! 내가 행운석을 그냥 뺏길 것 같으냐? 그래, 너처럼 하는 거지! 네가 가진 행운석을 내가 갖는 거야! 모가지를 끊어버린다!“

두 사람은 바로 싸움을 시작했다. 소방용 도끼를 휘드르며 불꽃을 피워냈다. 사십대로 보이는 두 남자의 무지막지한 싸움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운석의 힘, 부딪치는 도끼에는 오로라 같은 기운이 어른거린다.

갈대숲이 휘청거리며 흔들리는 싸움의 여파를 받으며 한건은 몸을 움찔거렸다. 튀어나가서 저들을 해치고픈 욕망을 억누르느라 이를 물었다.

‘그럴 마음으로 온 거긴 하지만……!‘

둘 다 운석소지자, 저들을 해치면 운석 두 개를 확보하는 거다.

그 욕구로서 명단에 있는 로또당첨자들 중 한 사람인 홍창기의 거주지 인근으로 온 거다.

그런데 이제 자각한다, 운석을 확보한다는 건 해친다는 거다.

‘죽여서……!‘

주먹을 움켜쥐고 어깨를 떨던 한건은 급격한 에너지의 발산을 느꼈다. 온몸의 모발이 곤두서고 고압전류에 감전된 것 같은 감각, 원인을 봤다.

‘저!‘

소방용 도끼를 휘두르며 싸우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휘청거린다.

가슴에 도끼가 박혔다.

끝내 주저앉은 남자, 그에게 다른 남자가 다가간다.

“홍창기, 내가 말했잖아? 너는 행운석의 주인이 아니야.“

남자는 이름을 불러 말한 자를 발로 밀어 쓰러뜨렸다. 그런데 남자는 버르적거리며 움직인다. 운석의 힘, 다시 상처를 복원하려는 현상이다.

그걸 느낀 남자는 즉시 홍창기란 남자의 몸을 뒤진다. 그리고 물러선다.

“이젠 죽어라.“

남자의 말대로 홍창기는 경련을 멈추고 늘어졌다. 남자는 중얼거린다.

“새벽에 도로청소하다 뒈지는 거나 이거나 다를 거 없어.“

차가운 미소로 죽은 자를 향해 말하고 돌아서는 자, 그를 향해 한건은 움직였다.

* * *

불길에 휩싸인 도봉구청을 본 백곰은 주변을 빠르게 돌아봤다.

폭발에 이은 화재로 주변은 아수라장이다. 도로에 차량은 얽혀 있고 인근 주민들이 몰려나왔다. 그런데 이렇게 만든 원인을 찾아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놈이 한 짓은 아니야!‘

그렇다는 직감을 백곰은 확신했다. 신왕역에서 귀신같이 종적을 자르고 사라진 놈, 그놈이 이동해 왔을 확률이 높아 여길 왔지만 이건 아니다.

이렇게 대놓고 막 저지르는 놈이 아닌 거다. 이건 폭주한 거나 같다.

‘폭주?‘

단어의 의미를 새삼 인지하며 백곰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운석의 힘, 그 충동을 이기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 있다. 백곰 자신도 이겨내기 힘든, 운석이 주는 충동을 알고 있다. 지독한 살의와 폭력에의 욕망이다. 운석소지자라면 필연이다.

‘이 지역에 있던 운석소지자가……!‘

화재를 무섭게 노려보며 백곰은 지시한 보고를 들었다.

명단의 인물들에 관한 내용이다.

여전히 폰은 꺼져 있고 집에는 안 들어왔다, 주소지를 확보해 가족에게 확인한 결과다.

공교로운 건 두 사람이 한 직장이란 거다.

‘홍창기, 엄규철.‘

도봉구청 청소과 소속의 남자들이다.

둘이 동시에 로또에 당첨됐다. 그리곤 둘 다 며칠째 집에 안 들어가고 있다.

집에 전화할 때만 폰을 켰다.

위치추적 당할 걸 알아서인지 다른 이유인지, 대부분이 그런 상태다.

‘로또라고 할 것도 없는 푼돈.‘

백 명이 넘는 당첨자가 나왔으니 그렇다. 도로청소를 하는 일이 직업인 사람들, 고단한 삶이 짐작된다. 그래도 공무원이기에 안정된 직장이라 경쟁이 치열하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더 나은 삶을 바라는 건 당연하다.

‘그들 중에 누군가가 한 짓인가?‘

혀 끝의 매운듯한 감각을 밀어내던 백곰은 보고를 들었다.

“목격자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폭발시에 구청 건물에서 튀어 나왔다고 합니다.“

백곰은 바로 움직였다. 구청 배후 방향, 중랑천 방향으로 달려갔다는 자들을 쫓아 달렸다.

* * *

“흐……“

진득한 피를 입으로 흘려내는 자, 엄규철이 가졌던 운석을 한건은 움켜쥐었다. 손바닥으로 파고드는 뜨거운 감각, 그보단 눈 앞의 살인이 뜨겁다.

홍창기의 운석을 빼앗기 위해 죽인 자, 엄규철을 자신이 죽였다.

“그거면…… 안 죽는데……“

팔다리가 부러지고 가슴이 함몰된 모습으로 엄규철은 갈망을 풀어냈다. 빼앗긴 행운석을 가진 남자를 보면서, 그것을 다시 갖기를 염원한다.

그렇지만 이젠 끝이다. 죽여 버린 홍창기처럼 자신도 죽음을 맞는 거다.

“새벽에…… 차에 받혔지…… 멀쩡했어……“

무슨 소린지 한건은 알아들었다. 운석을 흡수하는 순간, 홍창기와 엄규철 두 사람이 운석의 힘을 깨운 기억이 흐린 영상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이럴 거 같더라고……“

이 소리도 무슨 소린지 안다.

‘안 당하려고.‘

이들이 폰을 꺼놓은 이유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본능이 그렇게 시킨 거다.

운석의 본능이다.

다른 운석소지자에게 사냥 당하지 않으려는 거다.

“택배를 받았다고 들었는데, 누가 보냈습니까?“

한건은 정중하게 물었다. 눈 앞에서 죽어가는 이 사람은 이제 보통 사람일 뿐이다. 살기 위해 발버둥치며 산 사람, 세상에 널린 평범한 남자다.

“몰라……“

마지막 대답을 내고 엄규철은 숨을 멈췄다.

그 죽음을 내려다보던 한건은 깊고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과연 이 사람을 이렇게 죽여야 했는가 자문했다.

체외에 운석을 지닌 자, 운석만 빼앗으면 되지 않았을까?

‘또 사람을 죽일 테니까.‘

운석을 잃는다 해도 그럴 거라는 걸 안다.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살의는 더 강하게 폭발했다. 운석의 그 의지를 싸우는 동안 제어할 수 없었다.

“미안합니다.“

엄규철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한건은 현장을 벗어나 천변 도로로 올라갔다. 심야 조깅을 나온 사람처럼 달렸다. 그 속도를 점점 높여 밤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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